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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드라마리뷰

여왕의 교실, 학교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by 뷰티살롱 201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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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드라마 '여왕의교실'에서 캐나다 유학에서 다시 돌아온 김도진(강찬희)의 질풍노도가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해프닝이라기에는 너무도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아프기만 하다. 언제부터일까? 학교란 곳이 아이들의 천진스러움을 찾아보기보다는 자신보다 큰 가방을 짊머지고 다녀야 하는 경쟁의 장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는 그나마 고등학교에서부터 경쟁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할만했지만, 최근들어서는 중학교...아니 초등학교에서부터 사회에서의 경쟁을 배워나가는 게 아이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잔인스러운 범죄율까지도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현실은 무섭기까지 하다.

드라마인 '여왕의교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왜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는 마여진(고현정)의 교육방식에 대해서 아이들의 변화되는 모습에 잔잔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일까? 극약처방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여진의 수업방식은 당장이라도 학부형들이 탄원서를 낼만한 방식이다. 특히 아이들은 어떠할까? 스마트폰이 대세인 요즘세상에 마여진의 경쟁과 차별방식은 아마도 몇차례는 동영상 촬영되어 인터넷에 올려질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이 보여지기에 감동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배어나오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왕따와 은따가 6학년 3반 심하나(김향기)의 반에서는 없다. 가장 큰 주제이기도 한 왕따없는 교실이 가능했던 것은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냄으로써 아이들 스스로가 교사의 차별교육에 맞서게 된다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분명 비현실적이기만 하다. 자유는 없고, 성적에 의한 차별과 반 친구들을 다정스러운 친구가 아닌 경쟁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마여진의 교육방식은 무참하게도 빗나가기만 한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얼마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시사회를 통해서 보게 되었는데, 살기 위해 열차에 오른 꼬리칸 생존자들은 불합리하고 차별된 자신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화려한 앞칸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말이다.

그들이 차별을 받을만한 이유는 분명하다. 빙하기가 오기 이전에 그들은 오로지 살기 위해서 열차에 오르지 않았는가. 필자는 설국열차를 관람하면서 불친절한 도입부분에 불만이 있었는데,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통해서야 그 불만이 해소되기도 했었다.


인간에게 차별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불요악인 것일까? 드라마 '여왕의교실'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보게 되면 근원적 불합리에 대해서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여왕의교실'로 돌아가 보자.

마여진 선생의 지난 2년간의 과거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도리어 차별과 성적에 의한 불합리성을 정당화시키려 하는 마여진의 차별교육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마여진에 맞서 스스로가 자신들의 교실을 지켜나가기 시작했고, 경쟁이 아닌 친구를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진정한 적은 마여진 담임선생이 아닌 바로 아이들 자신들의 부모들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아이보다는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된 마음이다. 하지만 부모의 과열된 교육열은 아이들을 경쟁사회로 내몰고, 급기야 친구마저도, 우정이라는 것도 한낱 살아지나가는 추억으로 와전시키는 격이다. 현대의 사회에서 아이들은 학교에 갇히고 학원에 갇힌 격이다. 학원을 가지 못한다면 친구는 없는게 오늘날의 사회가 아닐까?

마여진은 학생과 학부모를 함께 대면시켜 3자 면담을 실시한다. 좋은 학교를 가게 만들려는 부모들의 열띤 교육열에 아이들은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마여진의 한마디는 진리와도 같다. '자신의 주장을 확고히 하려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든가'가 정답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일까? 독립은 또다른 책임의 연속이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자유란 없는 법'이다.


아이들의 미래는 이미 부모에 의해서 결정되어가는 모습이다. 고나리(이영유)는 엄마에 의해서 다른 아이들보다는 우월한 교육과정을 밟기를 원한다. 내 아이만은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나리엄마(변정수)만이 자신의 딸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아니다. 나리엄마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는 것이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지만 엄마들의 그같은 마음은 어쩌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누려야 할 추억거리를 하나둘씩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닐까?


마여진의 3자면담의 진위는 어쩌면 아이들의 생각을 누름으로써 스스로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엄마들에게 들려주려 했던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늘 그러했듯이 말이다. 마여진의 교육은 늘 극약처방이다. 정도의 차이에서 타협은 없고 강압만이 존재했었다. 그 강압을 파괴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만들어간 기적이었다.

아이들에게는 경쟁심을 부추기며 차별과 성적에 대해서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마여진의 교육방식은 현대의 주입식적인 교육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을 스스로 파괴해나가는 것은 아이들의 몫으로 비취진다. 학교란 과연 무엇을 위한 곳일까? 경쟁을 위한 혹은 사회에 나아가기 위한 곳일까 아니면 친구들의 우정을 쌓아가며 추억을 만들어나가는 곳일까?

마여진의 참교육은 아이들에게 차별적이고 부당한 성적에 따른 대우를 하지만 6학년 3반 아이들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는 모습이 하나둘씩 보여주고 있다. 김도진의 자살소동은 마여진의 숨겨졌던 본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모습이기도 했었다.

마여진은 오동구(천보근)을 위해서 남모르게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바로 어딘가에 있었는지를 몰랐던 동구의 엄마를 찾아주는 것이었다. 동구와 함께 살고 있는 오여사(남명렬)은 오동구와 오랫동안 살아갈 수 없는 지병을 앓고 있다. 오여사가 죽게 된다면 오동구는 고아원으로 보내지게 될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6학년 3반 아이들과 함께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른의 보호가 필요한 법이다.


초반과는 달리 종영으로 갈수록 차갑던 마여진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이 번지는 것도 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매력적인 요소이기만 하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이고 교사의 뜻에 따라 교육을 받으면 된다는 식의 교육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마여진의 숨은 속내가 완전하게 드러나게 되는 때가 얼마남지 않은 듯하다. 2년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마여진의 비밀을 향한 마지막 수업은 계속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출처=MBC수목드라마 '여왕의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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