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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마의 치종청의 부활, 외과의 개설을 통한 개혁!

by 뷰티살롱 201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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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이는 '마의'는 종기치료의 일인자로 마의라는 천한 신분으로 어의에 까지 오르게 된 백광현(조승우)의 일대기를 다르고 있는 사극드라마입니다. 23회에서는 광현이 현대의학에서 외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절개수술을 시술하게 되는 과정이 보여졌는데, 조선시대에 사람의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은 유교사상에 반하는 행위였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에 칼을 댄다는 것 자체가 불효라 여긴 것이었습니다.

삼의사의 수장인 고주만(이순재)에 의해서 새롭게 부활한 치종청은 조선에서 종기치료를 위해 부활한 의료기관이었습니다. 조선의 역대 왕들을 살펴보면 종기로 인해서 목숨을 잃은 임금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몸에 난 종기를 치료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만큼 사람의 몸에 난 종기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칼로써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탕약과 침으로써 종기를 치료하고자 했다는 것이 되는 것일 거예요. 하지만 종기를 치료하는 데에는 탕약과 침은 한계가 있기 마련일 겁니다. 명의라 하더라도 사람의 몸에 발병한 종기를 완전하게 없애기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데, 이는 탕약이나 침을 이용한 한의학이라는 것이 일종에 몸의 상태를 통해서 치료하는 시술을 하기 때문일 겁니다.

한의학이 양약보다 더 신비롭고 조화롭게 여기는 까닭이기도 한데, 양약이 병증의 보여지는 바를 따라서 치료하는데 반해 한의학은 사람의 음양의 조화에 따라서 약을 제조한다는 점일 겁니다. 사람에게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에 병이 생긴다 여기는 한의학에서는 부족한 양의 기운이나 혹은 음의 기운을 돋우는 처방을 통해서 약을 제조합니다. 이 때문에 오묘하고 신기하기까지 보여지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백광현(조승우)은 반가의 여인을 희롱했따는 강상죄를 짓고 의금부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조선사회는 반상이 법도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양반가의 며느리인 은서(조보아)가 유옹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광현은 과거 치료를 해 주었지만, 그것을 강상죄라는 죄목으로 발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백광현은 차마 은서의 병명이 유옹이라는 것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슴에 종양을 앓고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면 여인의 몸에 손을 댔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조선의 유교주의에서 남자가 여인이 몸에 손을 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백광현은 은서를 위해서 스스로 병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허나 백광현이 은서를 희롱이 아닌 진료를 했다는 사실은 강지녕(이요원)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정성조(김창환) 대감은 며느리인 은서를 집안에 감금시켜 놓다시피 한 상태로 백광현의 강상죄를 기정사실화시키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은서의 병증은 다시 재발되어 더욱 위증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침으로써 유옹의 증세를 잡기는 했지만 완전한 치료를 하지 않은 탓에 가슴에 생긴 유옹의 상태가 심각하게 변한 것이었습니다.

침과 탕약으로는 유옹을 완전하게 치료할 수 없게 되었기에 고주만은 백광현을 통해서 외과의 수술과도 같은 유옹제거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기치료를 목적으로 부활한 치종청이라는 기관의 화려한 출발이기도 했던 모습이었습니다. 고주만에 의해 부활된 혜민서의 치종청은 조선시대에 고질병 중에 하나였던 종기치료를 위한 전문병원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렇다할 치료법이 없었던 종기치료를 동물을 치료하는 수술로 접목시켜 놓은 외과의이기도 했었습니다.

현대의 의사라는 직업은 과거에 유럽에서는 이발사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을 가르고 관절을 자라는 행위는 칼을 사용하는 이발사에게만 허락되었다고 하는데, 절단수술은 이발사가 했었다는 사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오장육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전문의가 아닌 머리카락을 자르는 이발사가 했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수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까닭이기도 할 겁니다.

치종청을 통해서 유옹을 제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선사회에서는 과연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의료행위가 없었던 것이었을까요? 사실상 조선시대에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치종청이라는 기관은 현종(한상진) 이전에 설립된 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주만에 의해서 다시 부활한 치종청이라는 의료기관은 혜민서의 한 기관으로 전락해버리며 유명무실해진 기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어쩌면 유교사상이 뿌리깊게 자리한 탓이기도 해 보이더군요. 환자인 은서의 유옹을 없애기 위해서 시술하려던 혜민서 의관들의 의료행위에 대해서 유생들은 궁 앞에서 궐기하는 장면이 보여졌습니다. 사람의 몸에 칼을 댄다는 것, 그것도 여인의 몸을 시술한다는 사실은 유교사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치종청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유명무실하게 되었던 데에는 적잖게 시대에 반대되는 외과술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나 싶어 보이더군요. 침과 탕약으로 몸을 상하지 않고 병을 잡아내는 것과는 달리 환부를 도러내는 치료술이 치종청의 진료법이기도 할 테니까요. 시대를 바꾼 개혁의 출발점이기도 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MBC 월화드라마 '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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