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거운 국내여행

담양 소쇄원, 일상의 시름을 잊게 만드는 무릉도원

by 뷰티살롱 2012. 8. 3.
반응형

전남 담양에 위치하고 있는 대표적인 원림인 소쇄원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명소입니다. 원림은 개인정원과 같은데, <소쇄원>을 찾게 되면 한국의 정원문화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동남아에서 일본과 중국의 정원문화가 유명한데, 두 나라의 정원문화는 각기 특색이 있습니다. 일본의 정원이 아기자기한 자연의 소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중국의 정원문화는 스케일이 크다는 것이 특징일 겁니다. 그런반면 한국의 정원은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사람이 자연속에 동화되는 최적의 모습을 만들어놓은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자연채광이나 경관, 물의 흐름까지도 고려한 정원을 만들지만 무엇하나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속으로 들어가있는 듯하다고나 할까 싶어요.

소쇄원은 30여분이면 족히 모든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는 조그마한 정원같은 곳인데, 한곳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아도 한눈에 소쇄원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에 많이 걸을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쉽게 지나친다면 아무것도 아닌 듯 싶지만 소쇄원이 지니고 있는 담벼락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고 둘러본다면 무수히 깊기만 해서 절로 감탄이 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원림으로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곳은 소쇄 양산보가 조성한 곳으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당해 죽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 소쇄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고 합니다. 소쇄원이라는 것은 양산보의 호 소쇄옹에서 비롯된 것인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지요.

소쇄원에는 영조 31년 당시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가 남아있어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데, 이곳은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린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5대손인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소쇄원으로 들어서는 초입으로 발을 옮기게 되면 마치 깊은 산중으로 들어서는 듯한 모습입니다. 길 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ㄷ, 현재는 시멘트길로 정돈되어 있지만, 조선중기의 시간대로 시간을 거슬러 생각을 멈추게 되면 들어서는 입구가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는 느낌이 들겁니다. 현재의 시멘트 길보다는 길이 덜 높았을 듯 싶기도 하고, 평탄하게 다져져 있는 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서 산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최근들어 부쩍이나 걱정거리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나이가 중년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점차 직업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늘어나고, 집안에 대한 걱정거리와 미래에 대한 여러가지 일들이 복합적으로 생겨나 머리속이 복잡한 시기입니다.

전남으로의 여행을 준비했던 것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자질구레한 고민거리들이 생겨났기 때문이기도 했었지요. 처음에는 외국으로 일주일 가량을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나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금사정이 여의치않아 국내여행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운 유흥의 한가지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여행은 후자쪽에 가까운 것이었지요.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리려 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습니다. 담양에는 여러가지 볼거리가 있는데, 담양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대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한국대나무박물관>을 비롯해, 가볍게 산책하며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죽녹원>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또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높은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도 이곳 담양에 위치하고 있지요.

소쇄원은 담양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필히 가봐야 하는 필수코스이기도 한데, 그 전에 소쇄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를 알고 가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어요.

죽녹원이 대나무 숲속을 산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담양의 볼 곳이라면, 이곳 소쇄원은 대나무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쇄원으로 들어서는 초입부터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대나무 숲은 마치 학문을 논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선비들을 맞이하는 듯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대나무는 선비들이 즐겨 그리는 4군자 중 하나로 선비의 굳은 성품과 절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더운 여름 한철에 찾은 소쇄원의 대나무 숲은 마치 어서오라는 듯이 바람에 부대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옛날 선비들의 예와 효, 충에 대해서 논하던 토론을 벌이는 듯하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시골 시장의 정겨운 노이즈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곳 소쇄원은 특별하게 문이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치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개념치 않고 포용하고자 하는 소쇄 양산보의 마음같기도 한데, 유일하게 돌담을 쌓아놓은 것이 외부의 길과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표시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돌담앞에는 정자 하나가 있는데, 이곳은 비룡대라는 곳으로 손님들이 기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벽오동 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하는데, 익히 알고 있듯이 벽오동 나무는 봉황이 둥지를 트는 나무라 하기도 하지요. 즉 찾아오는 손님들을 귀히 여긴다는 양산보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흙과 돌로 쌓아올려진 담에는 <애양단>이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치게 된다면 어쩌면 소쇄 양산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도 한데, 애양단 글씨가 보여지는 바로 옆에는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사시사철 햇볕이 가장 많이 드는 곳인데, 동백나무는 효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시간이 간다는 뜻이 담겨있기도 한데, 양산보는 벼슬을 버리고 이곳 소쇄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효성이 지극했다는 하더군요. 햇볕이 가장 많이 드는 애양단에 동백나무를 심은 것은 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애양단 글귀가 새겨져 있는 담을 따라가게 되면 <오곡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의 계곡물은 아홉번이나 굽이쳐 흐르는데 이곳이 다섯번째 물이 굽이치는 곳이라 해서 오곡문이라 한다고 합니다. 오곡문이라는 글씨는 오암 송시열이 쓴 글입니다.

소쇄원을 끼고 흐르는 물길은 지네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소쇄원의 건너편 마을은 지네와 상극인 닭을 의미하는 닭네라는 불렸으며, 지금도 닭네길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곡문 현판을 지나게 되면 외돌다리가 눈에 띕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쇄원으로 들어서는 곳이기도 한데, 소쇄원은 크게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되어 있지요. 흔히 알고 있는 소쇄원은 내원을 말하며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당시 양산보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외돌다리는 조성된 이래로 큰비가 내려도 무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괸돌마음 혹은 지석마을이라 이름붙이기도 했다더군요(소쇄원을 관람하면서 안내해 주시는 분의 도움을 받아 마을지명이나 명칭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계곡을 건너게 되면 소쇄원의 내원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정원과 같은 소쇄원이지만 손님들을 위한 공간과 주인을 위한 공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 곳입니다. 외돌다리를 건너 내원으로 들어서는 곳에는  역시 오암 송시열이 쓴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이것 또한 오곡문을 쓴 오암 송시열이 쓴 글씨입니다.

내원인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의 모습은 선비들이 즐겨 풍류를 논했을 법한 넓직한 공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폭포수 위에 자리하고 있는 넓은 돌단에서는 삼삼오오 선비들이 모여 시와 음주를 즐겼을 법해 보이는 곳이기도 해 보이더군요. 특히 이곳 폭포수가 있는 곳은 광풍각에서 흘러나오는 아궁이의 연기가 낮게 깔리게 되어 마치 무릉도원을 온 듯한 비경에 취하게 될 것이라 예상이 되더군요.

내원인 제월당은 <비개인 하늘의 상괘한 달>이라는 뜻으로 주인이 기거하며 학문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광풍각>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채 같은 곳입니다.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향하는 길은 단지 계단을 조성해서 손님들이 외돌다리를 지나게 되면 주인의 공간이 아니라 밑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광풍각으로 향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소쇄원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이기도 한데, 제월당 마루에 앉아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기도 하고 쉬어가기도 한 모습이었습니다.

제월당에는 <소쇄원사십팔영>이라는 현찬이 걸려있는데, 소쇄원을 주제로 한  한시가 걸려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월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글입니다. 소쇄원의 규모는 현재의 모습보다는 웅장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1755년 소쇄원 목판 탁본도에는 현제의 제월당과 광풍각 외에도 여러 채가 조성되어 있어서 양산보의 식구들이 기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모습이기도 하지요.

제월당으로 향하는 윗쪽길과 광풍각으로 향하는 아래쪽 길이 나있는 것이 보이시죠.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학문을 함께 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월당의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곳인데, 아궁이가 광풍각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고, 굴뚝은 광풍각의 길 아래로 나있어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광풍각 앞쪽으로 새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굴뚝으로 나온 연기는 바로 위쪽으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낮게 깔리다가 서서리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고 하더군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떠올려보니 마치 무릉도원이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광풍각 마루에서는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십장폭포의 떨어지는 낙수를 볼 수 있습니다. 한여름이지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더위가 날아가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찾아오는 벗이 있고, 구경할 수 있는 좋은 비경이 한데 어울어져 있는 곳이니 어찌보면 양산보 선생은 혼자서 무릉도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광풍각 마루에 앉아있으려니 절로 시한 수가 떠올라 흥얼거려 보기도 했어요.

소쇄원을 구경하려면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습니다. 입구 매표소에서 걸어 제월당과 광풍각을 둘러보는데에는 한시간이 채 걸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작은 정원을 둘러보면서 당시 정원을 조성했었던 양산보의 마음과 이곳을 찾아왔었던 벗들과 어울러져 풍류를 즐겼던 과거의 시간을 유영하며 이곳 소쇄원을 둘러보게 된다면 한시간이 짧게만 느껴질 거예요.

이곳 소쇄원은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경과 건축 등 전문가들이 꼭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라고도 합니다. 그 의미를 생각해보니 주인과 손님을 맞이하는 한국적인 정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각각 이름붙인 까닭은 손의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광풍제원>에 비유한 것에 유래해서 각각 이름붙였다고 하더군요. 제월당과 광풍각을 한데 붙여 놓으니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을 보며, 비개인 뒤 해가뜨고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을 맞다>라는 뜻이 되나요? 일종에 본다는 것은 개인의 시선을 의미하고, 바람을 맞는다는 것은 풍류를 뜻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네요.

담양의 죽녹원이 대나무숲으로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의 모습이라면, 이곳 소쇄원은 대나무와 나무들의 조화로움이 배어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과 나무와 대나무의 조화로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발길을 뗄 수가 없게 만듭니다.

한국의 정원이라는 곳이 그런 곳인가 봅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속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이 한국의 정원문화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특히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벗과 더불어 함께 즐기는 풍류의 문화가 숨어있기도 하지요.

요즘들어 가뜩 마음이 심란하기만 합니다. 회사의 일도 그렇거니와 중년의 나이가 되다보니 어디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인생의 허탈함이 들 때가 많아지기만 합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간혹 산행을 계획삼아 가기도 했었는데, 지리산으로 산행을 떠나기도 했었지요.

이번 여행에서 들렀던 소쇄원을 떠나던 순간이 떠오르는데, 크지않은 정원이었지만, 마음을 붙잡고 발길을 붙잡아놓는 매력에 대나무길을 따라 입구로 나서는 순간에서는 주춤거리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도 했었습니다.

<유익하셨다면 쿠욱 추천버튼(손가락)을 눌러주세요~~ 글쓰는데 힘이 된답니다. 아래 구독버튼으로 쉽게 업데이트된 글을 보실수도 있답니다^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