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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무신 21회, 김경손과 대집성 - 명장과 졸장의 극명한 차이점

by 뷰티살롱 201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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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 사극드라마 <무신> 21회에서는 무려 몽고군이 압록강을 넘은지 한달이 지나서야  도방에서 정예군 5만이 북경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도방의 최우(정보석)는 늦어도 너무 늦은 출병이라며 질타하기도 했었는데, 그때까지도 도방에서는 이미 철주성이 함락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철주성의 소식은 뒤늦게서야 도방에 도착한 어처구니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죠. 도방의 호위군이던 송길유(정호빈)과 최양백(박상민)은 전선으로 떠나는 정예군에 합류하게 되었죠.

드라마 <무신> 21회에서는 너무도 비교되는 장수 2명이 눈에 띄기만 합니다. 무릇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군세의 차이가 아니라 군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적은 숫자라도 대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치밀한 계략과 군사들의 사기에 달려있습니다.

철주성이 함락되고 귀주성으로 향한 살리타이의 주력부대는 10만에 달하는 대군이었지만, 귀주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고작 5천에 불과한 숫자였습니다. 20:1의 싸움이었죠. 하지만 성을 지키는 입장에서 적은 숫자로도 적을 막아낼수는 있기에 5천의 군사는 결코 적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단지 숫적인 차이에서 오는 사기저하가 성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겠죠. 철주성에서의 전투로 몽고군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있는 김준(김주혁)은 귀주성에 들어오기 전에 몽고준 진영을 통과해서 들어왔던 지라 진영에 대한 배치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김경손(김철기) 장군은 숫적 차이에서 오는 병사들의 사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제공격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같은 주장대로 귀주성에서는 기습작전을 펼치기로 했었죠. 10만의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고군에 고작 12명의 결사대로 기습작전을 펼친다는 설정을 시청하면서 사극드라마가 갖고있는 고질적인 전투씬이 또 나오는구나 싶기도 했었습니다. 대게 사극드라마에서의 전투씬들은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몇십명의 엑스트라들만이 등장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번 드라마 <무신>에서도 이같은 모습이 보여지는 게 아닌가 싶은 실망감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12명의 결사대에 대한 이야기는 실록에도 실려있는 사건이라고 하는 나레이터의 말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극적인 모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었던 전술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몽고군은 김경손의 귀신같은 전술로 10리밖까지 군대를 물러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까 말이예요. 적절한 나레이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오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부분이기도 했었습니다. 

김경손은 안개가 끼는 지형지세를 이용해서 단 12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몽고군영을 기습했습니다. 각기 12명의 결사대는 몽고군의 사방에서 불을 놓음으로써 군세가 많이 출병했음을 알리는 듯한 형국을 만들어냈습니다. 더불어서 김준과 함께 사방에서 몇명의 병사들이 교전함으로써 몽고군이 포위된 듯한 형세를 이루어 낸 것이었죠. 우와좌우하기만 한 몽고군은 고려군의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었는데, 그와 동시에 귀주성을 지키던 병사들의 출병함으로써 몽고군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었죠.

결사대의 편성과 귀주성에서의 출병이 시기적절하게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몽고군의 혼졸을 뺀 작전이었습니다. 김경손의 전술을 뒤늦게서야 알게 된 살리타이는 감탄해하며 적군이었지만 칭송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숫적 열세는 귀주성을 지키는 고려군에게는 단점이기만 했습니다. 혼란을 진정시킨 몽고군은 군을 재정비하고 귀주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다시 성앞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고려군이었다면 숫적 열세에 사기가 저하되었을 법했지만, 한차례 김경손과 김준의 전략으로 몽고군을 10리까지 물러나게 했던지라 절대로 불가능한 싸움은 아니었습니다. 싸움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철주성과는 달리 귀주성 안에는 돌을 날릴 수 있는 투석기까지 있었지만 몽고군을 그런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공성병기를 전진시키며 귀주성을 함락시키려 했지만 도리어 귀주성에서 날아오는 돌들로 공성병기들이 무용지물이 되게 되었으니까요.

김경손의 전략은 신출귀몰하다는 말이 나올법하기만 했습니다. 안개를 이용한 기습작전에 투석기까지 활용한 전술운용까지 비록 성을 지키는 고려의 군세가 5천에 불과했지만, 10만의 몽고군은 철옹성같은 귀주성을 넘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한차례 사기가 올라가있는 고려군이었기에 용맹하기로 동서양을 무력화시킨다는 몽고군들도 속수무책이기만 했습니다. 고려의 용맹함이 돋보이던 귀주성의 전투였습니다.

 

살리타이는 귀주성을 말하기는 '귀신이 사는 성'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과거 거란의 100만대군을 맞아서 강감찬 장군이 막아낸 귀주대첩의 장소이기도 했던 귀주성은 그렇게 철옹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실록에서도 몽고군의 침입이 개경에까지 미쳤지만, 귀주성은 끝내 함락당하지 않았습니다. 기발한 전략과 운용으로 몽고군을 막아낸 고려의 김경손 장군의 모습은 명장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려의 무장들이 모두가 명장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죠. 도방에서 출병한 5만의 고려군은 정예병들로 구성되어진 막강한 군대였습니다. 한달여 기간동안의 출병준비를 맞쳤으니 어쩌면 무기에서부터 군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 군대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정예병이라 하더라도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들에 의해서 승패가 좌우되기도 하는게 전선에서의 싸움입니다.

대집성(노영필)은 대군이라는 자만심으로 행군도중에도 술잔치를 벌이면서 몽고군에 대한 안일한 대처를 했습니다. 주둔지 주변에 목책을 세우는 것도 방치하고 경계병들까지도 느슨하게 하면서 장수들과 행군의 피곤함을 달리기 위해서 술을 마시면서 행군했던 것이었죠. 그런 고려군의 진영에 몽고군이 기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몽고군은 대군이 아니라 고작 2만의 별동대였습니다. 5만대 2만의 전투에서 고려군은 크게 패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기습으로 이루어진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고려의 대군이 패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군을 통솔하는 중앙부대가 완파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앙의 명령체계가 무너짐으로써 좌우군으로의 명령전달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많은 병사들이 있다 하더라도 허수아비의 오합지졸이었던 셈이었죠.

다행해 승려군이 나타남으로써 완패하는 굴욕까지는 당하지 않았지만, 크나큰 손실을 맛보게 된 셈이었습니다. 전투에서의 싸움은 어떻게 군사를 통제하는가 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 고구려나 고려를 침입했었던 수나라나 당나라, 거란군은 숫적으로 고구려와 고려군을 능가하는 숫적 우세를 점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패배하고 완패당하며 급기야는 나라까지도 패망하는 사례를 겪기도 했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며 숙적 열세속에서도 용맹함을 겸비했었던 김경손과 숫적 우세만을 믿고 자만심과 오만함에 쌓여있는 대집성은 명장과 졸장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만 하더군요.

고려의 정예병 5만의 참패는 몽고군이 개경으로 향하는 단초를 만들기도 하는 대목이기도 해 보였습니다. 몽고군의 전술은 숫적인 장점을 활용해 산성에 진을 치고 있는 고려군을 포위하면서 성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고립하는 한편, 기동대나 별동대를 운용함으로써 남하하는 전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몽고군의 전술은 마치 고려군의 정보망을 철저하게 봉쇄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각 산성과 도방간의 연락을 끊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 MBC 주말드라마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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