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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동이, 숙빈 최씨의 새로운 대항마 인원왕후, 역사적으로는 어땠을까?

by 뷰티살롱 201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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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동이>는 오랜동안 숙빈 최씨인 동이(한효주)와 대립되면서 목숨을 위협하던 장옥정(이소연)이 무고의 옥으로 사약을 받음으로써 일단락이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여지던 모습과는 달리 아들을 생각하고, 다소의 초연함마저 느끼던 장옥정의 최후였었죠.

장옥정의 죽음으로 인해서 가장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는 어쩌면 숙빈 최씨였을 거라 할 수 있겠죠. 자신과 연잉군(훗날 영조)을 위협하던 장희빈이었기에 그녀의 죽음으로 안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거라 보여지니까요. 그렇지만 드라마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신의 지위를 마다하고 숙종(지진희)에게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완전히 못을 박게 되는 모습이었죠. 스스로 청하며 후궁이 중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숙종을 설득하는 듯한 모양새였으니까요. 권력을 놓음으로써 만인의 추앙을 받을 수 있겠끔 만들어놓은 모습이었다고나 할 까 싶기도 했었죠.

숙종은 중전의 자리가 비어있었던 지라 심사를 거쳐 새로운 중전을 간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경은부원군 김부신과 가람부부인 조씨의 딸인 인원왕후(오연서)가 새롭게 중전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성을 놓고 볼때, 가끔씩 논란이 되는 부분이 왜곡되는 정도에 따른 잣대라 할 수 있겠죠. 인원왕후의 등장으로 인해 드라마 <동이>는 다수의 역사왜곡이라는 측면에 쓴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원왕후의 등장과 숙빈 최씨의 행보

드라마에서 보게되는 최씨의 행보는 사실 너무도 천사표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어 보입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중전의 자리까지 마다할만큼 동이의 모습은 만인이 우러러볼 수 있는 자애롭고 권력이라는 것에 물들지 않는 지고지순한 인물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죠. 어쩌면 이러한 완벽하리만치 천사표가 되어버린 동이의 모습에서 역사적 왜곡이라는 좋지않은 구설수에 오르는 모양이더군요.

또한 새롭게 등장한 인원왕후와 동이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것은 일종에 동이를 보다 더 띄우기 위한 드라마상의 전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새로 중전의 자리에 오른 인원왕후는 내명부를 장악하고 있는 동이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연잉군을 궁에서 내보내려는 움직임이 엿보였습니다. 다름아닌 왕자가 혼인을 하게 되면 궁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유로 어린 연잉군을 혼례시키려 한 것이었죠.


또한 내명부에서 생각시에서 나인으로 임명되는 행사에 몸소 등장함으로써 내명부에서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숙빈 최씨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얼핏 본다면 장옥정이 사라진 다음에 새롭게 등장한 숙빈 최씨 동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대항마의 모습이기도 해 보였죠.

인원왕후의 등장은 예초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새로운 대립관계를 형성해 나가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연잉군을 중심으로 내명부를 통솔해 나가는 중전과 숙빈 최씨 정도의 모양새로 보여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었는데, 그 모습은 여지없이 빗나간 새로운 구도였다 할 수 있었습니다.

인원왕후는 누구였을까요?

인현왕후의 승하 이후 1702년(숙종 28) 10월 3일에 16세의 나이로 숙종의 세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경종 즉위한 이후엔 왕대비가 되었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대왕대비가 되었다. 처음에는소론이었다.남편숙종과 연잉군때문에 노론으로당색을 바꿨다.초기에는 천연두, 홍진, 치통, 종기 등를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연잉군를 아꼈다고 한다. 또한 연잉군도 인원왕후를 친어머니 이상으로 따랐다고 한다. 경종보다는 영조를 아꼈다고 한다. 야설에는 유산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는 믿기 어렵다. 경종1년(원년), (1721)년에는 영조를 왕세제로 등극시키고, 양자로 입적했다. 훗날 연잉군이 임금으로 등극하기 위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또한 노론의 4대신과 함께 왕위 등극하기 위한 지원과 요청으로 추진되었다.                                                         ------- 출처 : 다음백과사전

구원군으로 등장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인원왕후가 장옥정 사후 최대 최씨 숙빈의 대항마로 자리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인원왕후의 모습속에 사실 숙종이 있다

동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인원왕후는 당시 나이 16세로 중전의 자리에 오르게 된 인물입니다. 먼저 궁중으로 들어와 내명부를 장악하고 있는 숙빈최씨와의 관계를 놓고 본다면, 기존 인현왕후(박하선)와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어린나이에 궁으로 들어왔지만 자신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믿음을 받고 있는 최씨의 모습이 드라마에서처럼 어쩌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경종 이후 영조를 부위에 올린 결정적인 인물이 다름아닌 인원왕후라는 사실은 생각해 볼때, 과연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와 심한 대립각을 세웠을까 싶기만 합니다. 어쩌면 숙빈최씨와 다분히 친분있게 지냈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나 짐작을 해 봅니다. 그런데 연잉군(이형석)을 혼인시켜 궁밖으로 내치려는 인원왕후의 행동은 적잖게 숙빈최씨와 틀어져 있는 모습이었죠.

인원왕후의 행동자체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보니 다소 답이 나오더군요. 그것은 다름아닌 숙종(지진희)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동이와 애뜻하고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상 역사적으로는 숙빈최씨는 장옥정이 죽고 나면서부터 화려함을 잃어버린 생을 살게 되죠. 사가로 나가게 되기까지 하니까요. 사실상 숙종과의 애정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동이에 의해서 고사되었던 중전의 자리는 사실상 드라마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숙종의 일방적인 숙빈에 대한 경계이자 경고라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숙종의 결단을 마치 동이의 훈수나 배려에 의해서 포장되어 보여지고 있었던 모습이었다고나 할 까 싶었어요.

드라마 <동이>는 사실상 로맨틱 사극이라 할 수 있겠죠. 숙종과 숙빈 최씨의 로맨스적인 요소를 부각시켜 놓은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애뜻하게 그려졌던 숙빈최씨와 숙종의 사랑을 어그러뜨리지 않고 유지하고자 한 제작진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역사적으로 숙종이 해야할 일들은 다름아닌 인원왕후가 대신해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더군요.

사가로 떠나게 되는 숙빈최씨는 숙종의 미움을 받고 내쳐지는 게 아니라 인원왕후에 의해서 궁을 나가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역사적으로 연잉군과 인원왕후의 관계는 경종보다 더 좋았다고 합니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서 쓰여진 것인지라 사실상 정말로 인원왕후와 연잉군이 좋은 관계로 되었었던 것인지 아니면 영조로 즉위하면서 사가들이 보기좋게 포장시켜 기록된 것인지는 현대인들로써는 알 수가 없는 일이겠죠.


인원왕후와 동이의 대립각은 다른 시선으로 보니 새로운 맛이 느껴집니다. 인원왕후의 동이에 대한 반감을 일종에 숙종이 가진 행동이었다 여기면 역사적 사실을 어느정도 맞추며 나갈 거라 여겨집니다. 숙종의 최씨숙빈에 대한 신뢰가 완벽하지 않고 금이 간 모습이라 상상할 수 있겠죠.

어찌되었든 연잉군은 중전의 명에 따라 어린 나이에 혼례를 치르게 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연잉군이 인원왕후와의 관계를 호전시키는 방법은 아마도 쉬울 것이라 여겨집니다. 혼례를 하고 난 이후 연잉군과 동이는 궁을 떠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게 보여질거라 생각이 되더군요.

그리고 궁으로 찾아들어간 연잉군은 세자(윤찬)와의 만남을 계속적으로 시도할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세자는 자신의 어미인 장옥정의 죽음이 연잉군과 숙빈최씨 때문이었다는 피해의식과 반감을 계속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세자와 연잉군의 모습을 지켜보는 중전인 인원왕후의 눈에는 연잉군의 성품과 됨됨이를 찾게 되겠지요. 어쩌면 활달한 성격의 연잉군을 지켜보면서 인원왕후는 자신의 아들로 입적시키려 하는 모습으로 그려질까 싶어집니다. 연잉군이 자신의 스승을 스스로 찾아내었던 방법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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