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드라마인 MBC의 <선덕여왕> 38화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곡물의 매점매석을 통한 귀족들의 부의 축적이 그것이었다. 시장에 곡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귀족들은 매점매석을 통해 작게나마 자영업을 하는 농민들의 곡물을 거둬들임으로써 곡물값이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었다. 결국 농민들에 의해 시장에 팔려나간 곡물은 좋은 시세를 치고 상인들에게 넘겨졌다하더라도 그것을 구매해서 먹게되는 다른 상공업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은 높은 값에 곡물을 사들여야 한다는 이치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미실(고현정)가와 왕실인 덕만공주(이요원)나 김서현(정성모) 재가에서 곡물값을 가지고 장난아닌 장난을 치는 모습이었다. 시장에서의 원활한 시장논리로 본다면 이야기는 100% 이치에 맞는다고 봐야 할듯한 이야기다. 더욱이 삼국시대인 농경사회에서 농사일 이외에는 사실상 경제적인 활동이 많이 보급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선덕여왕>에서 보여진 시장논리는 맞을 법도 하다. 적어도 고대사인 농경사회에서 비춰어볼 때말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같은 시장논리는 맞지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농경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시화된 사회에서 농사를 통해 곡식을 거두들이고 시장에 내다파는 일련의 행위에 있어서 농민들은 과거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소출물들을  전부 내다팔지는 않는다. 농민들에게 있어서 한해 농사일을 마치고 농작물을 내다파는 행위에 앞서 다음해의 씨앗을 남겨두어야 하는 게 상례다.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매점매석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농민이 아닌 소작인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소작인들의 경우에는 귀족들이나 땅주인에게서 땅을 빌어 농사를 짓기에 가을걷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다지 생활이 녹록하지 않기 마련이다. 때문에 곡식이 떨어져가는 봄이나 파종시기에는 남겨놓은 곡물마저 내다팔게 되고 결국에는 그마저 수월치 않게 되면 귀족들의 노예계약으로 나앉게 되는 꼴이 되는 셈이다. 그로 인해 귀족의 세력은 커져만 가게 된다.

귀족과 왕실의 치킨게임

별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다루었던 귀족과 왕실의 곡물전쟁을 보면서 실상적으로 그 시대에 주류 피지배층이었던 농민들은 어떻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던 바가 있어 <선덕여왕>에서 보여졌던 곡물전쟁은 적잖게 관심거리가 되는 부분이었다.


귀족들의 매점매석으로 시장에서의 곡물값이 폭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 농민들의 어려움보다는 농민들의 어려움에 비해 중간마진을 남기는 상인들의 모습이 보다 부각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상 곡물값으로 인해 자영업(그 시기에 자영업이라는 의미는 어쩌면 농사를 짓던 소농경인들을 의미할 듯함)을 하던 농민들은 곡물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귀족들의 소작인으로 나앉게 되고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얘기를 한다. 거기에 시장의 곡물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덕만공주는 묘수를 써서 군량미와 구휼미를 풀어야 할 듯 싶지 않냐며 귀족들인 미실과 설원(전노민), 세종(독고영재) 등을 압박해 나간다.

일련의 모습은 사실 농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보여지기는 했었지만,  엄밀히 말해 농민의 이야기는 없는 상인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얘기했듯이 농민들이라면 자신들이 일궈낸 소출물에 대해 100% 시장에 내다팔지 않는다. 그것은 농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얘기다. 자신들이 굶주릴지언정 다음해에 뿌린 씨앗까지 소진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내일 당장에 굶어죽지 않는다면 씨앗으로 저장해놓은 낱알 한톨이 농민들에게는 희망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드라마상에서는 세상의 곡식들을 귀족이 사들임으로써 농민들이 자영에서 귀족의 노비로 전락되는 사태를 풀어나간다. 솔직히 말해 시장논리는 맞지만 농민의 생활에서 본다면 맞지 않는 얘기일 법하다.

곡물가격이 높아진다면, 농민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은 곡물가격 자체가 아니라 생필품에서 오는 어려움에서 비롯된다. 고대 농경시대에 곡물은 오늘날의 화폐나 다름없는 상거래 수단이었다. 특별한 통화화폐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콩이나 쌀 등의 주요 농작물이 시장에서 화폐와 같은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농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소상공인들에게 엄청난 타격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농민들과 더불어 중인들이 위치도 어렵게 만든다. 삼베를 짜서 파는 중인계층의 사람들이나 혹은 가공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을까.

사실상 시장에서 물건을 내다파는 역할을 맡게되는 상인들의 입장은 농민들의 입장과는 다르다. 곡물을 종합적으로 내다파는 상인들은 중간마진을 남겨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로 일종에 곡물값이 뛰거나 내린다 하더라도 중산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 생산업자들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국가를 이루는 주요 피지배층이 귀족에 흡수됨으로써 왕실의 세력기반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얘기가 될 법하다. 이는 왕실이나 귀족이나 자신들의 잇속만을 위한 임시방편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왜? 덕만공주는 그래도 시장의 곡물가격을 안정시켜려 노력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곡물값이 내려간다고 만사 해결되지는 않는다

덕만공주는 시장에서의 귀족들이 곡물을 매점매석하는 모습에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미실에게 찾아간다. 마치 미실이 덕만의 멘토나 되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지만, 덕만에게는 소기의 목적을 이룬 모습이었다. 귀족들이 곡물을 매점하는 최종 목적이 자영인들의 몰락을 통해 자신들의 세를 늘려나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곡물이 많지않은 흉작였을 때라 설정해 놓고 있었다. 타당성이 있는 얘기다. 흉작기에 귀족들의 고리대금을 통해 사재를 함으로써 시장경기를 뻥튀기 시켜놓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발을 맞춰 덕만또한 맞불작전으로 나간다. 시장의 곡물값을 낮추기 위해 국고에 쌓여있는 구휼미와 군량미를 풀것이라는 언지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 효과는 금새 시장에서 나타나 천정부지로 치솟던 곡물가격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치는 현상으로 빗어졌다. 과연 덕만의 처사는 옳은 것이었을까? 귀족들의 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는 상당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지만, 곡물값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칠 치는 현상은 오늘날의 주식경기가 하루가 다르게 널뛰기하는 모습이나 다름없다. 또한 어찌보면 부동산경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일 수 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현대 우리나라 사회에서 자본이 움직이는 주요 통로가 할 수 있고, 과거에 곡물값은 오늘날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미실가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돈이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혼란을 빗는 것은 다름아닌 농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곡물값이 떨어진다면 상대적으로 생필품이라 할 수 있는 옷이나 잡화의 가격은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지불해야 하는 돈의 개념인 곡물값이 떨어졌으니 바꿔야 할 잡화비는 높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곡물값이 떨어진다면 상대적으로 잡화나 의료 등의 가격은 떨어진다. 곡물로 인해 경작을 하지 않는 중간층들은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하루가 다르게 왔다갔다 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덕만공주는 시장의 논리에 앞서 귀족들을 제압하기에 앞서 중간마진에 대한 사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했으며, 더욱이 가격변동에 대한 기준치를 조사했어야 하는 게 옳은 처사다. 덕만의 치세는 결국 농민을 위한 처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중간 피지배층의 빈곤을 가져오게 만든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미실이 곡물가격을 통해 자신들이 노비들을 늘리고, 세를 확장해 나가는 모습이나 덕만의 해결은 사실상 지혜롭지 못한 처사였다고 보여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같은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해서 농민들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시장에 물건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물건값은 내려가기 마련이고, 아무리 풍년이라 하지만, 실상 농민들은 빈곤을 겪게 되는 상황이 연속된다. 언젠가 배추 파동으로 인해 한 농민이 트랙터를 가지고 자신의 밭을 갈아업는 모습이 뉴스에서 보여졌었다. 시장에 물건이 많기 때문에 물건을 내다파는 비용이 타산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해서 농민들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만족에서 오는 기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실상 시장에서의 가격을 경험하게 되면 오히려 작황이 적었을 때보다 아니함만 못한 모습에 한숨을 짓기도 한다.

추석이 불과 3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요즘 시장에 나가보면 제수용 물건들이 가격이 오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고수란히 그 이익이 농민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지만, 실상 현대사회에서 농산물의 널뛰기 행진에서 이익을 많이 보는 것은 다름아닌 중간상인들이라 할 수 있다. <선덕여왕> 38화 곡물전쟁을 보면서 올해 추석에는  물건값이 많은 변동폭을 보이지 않기를 바래본다.
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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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항상 이익을 보는 것은 유통쪽이죠...
    그렇다고 직거래를 할 여건도 안되고 말이에요.
    잘 보고 갑니다. ^^

  2. 그게 아니죠 2009.10.01 09:2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드라마 잘 봐놓고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놓치셨네요.
    농민들이 이미 내다판 곡물을 매점매석하여 당장은 상공인이 사먹을 곡물가격이 치솟고,
    그렇게 되면 상공인이 생산하는 물건의 값이 올라 전체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오게 됩니다.
    그럼 다시 손해를 보는 것은 농민이 됩니다.
    상공인의 물건은 금방 만들 수 있지만, 농민의 주요 재산인 곡물은 1년 후에나 가능하니까요.
    그럼 돈을 빌리게 되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땅을 빼앗기게 되는 거죠.
    그렇게 자영농이 몰락하고 귀족은 풍족해지고 왕실 재정이 궁핍해지게 되면
    나라의 기틀이 흔들리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왕실 재정이 아니라 국가 재정이 어렵게 되는 겁니다.
    나라에 돈이 없어 군수물자까지 허술하게 되었을 때 전쟁이 나면
    손해보는 건 역시 백성들입니다.
    군대를 움직일 때도 돈이 들고 그건 왕실의 사비가 아니라 세금으로 모아진 국가 재정에서 나오니까요.
    나라를 책임지고 경영하는 왕과 왕실은 당연히 국가 재정을 신경써야 하고,
    그래서 왕정시대는 더더욱 귀족보다 왕의 권력과 재력이 더 커야 합니다.
    수십명 귀족의 창고를 채우는 것보다 한개 있는 왕의 창고를 채우는 것이 백성들에게도 더 이득일테고요.
    귀족사회에서 왕실은 늘 귀족을 견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니까요. (나라와 백성이 살아야 왕실도 사는 건 당연한 거고요.)

  3. 그때는 옷도 거의 삼같은걸 재배해서 스스로 만들어 입지 않았나요? 신도 짚으로 삼아 신었구요... 나무도 산에서 찍어다 땠고... 집도 스스로 지었고...지금처럼 이렇게 공업같은게 발전하지도 않았고 세분화되지도 않았잖아요. 곡물값이 떨어져서 농민들이 다른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워서 헤맸을 정도는 아닐 것 같네요... 농민들은 농사를 해서 세금을 바치고 자기 먹을 식량만 해결해도 거의 족했을 때가 아닌가요? 남아돌아서 판매할 수 있는 정도의 농민이면 꽤 부유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힘들었을 듯...

  4. 전혀맞지않는말입니다. 2009.10.03 06:5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기본 가정에서 간단하지만 굉장히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온 조건은 대흉년입니다. 흉작이 심해서 아마 많은 소규모 농민들은 자기 가족 1년 먹여살릴 식량도 나오지 못했을 상황이었을겁니다.

    오늘날의 흉년이라 함은 농민들이 일단 자기 1년 먹고살 식량+내년 파종용은 보통 있지만 그 이상 출하된 농산물이 얼마 없는 상황이지요. 나머지 농산물로 재화를 별로 살 수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물론 농산물 가격을 고려한다면 흉년이 무조건 농민들한테 안좋거나 대풍년이면 농민들이 좋아지는거는 아니지만요.)
    하지만 농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신라시대에서 그정도면 풍년은 아니더라도 절대 흉년은 아닐겁니다. 이당시의 흉년은 앞으로 1년간 굶어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남은 농산물로 생필품등의 여러 물건을 사는거는 귀족이나 부농 외에는 꿈도꾸지 못할 사치입니다.

    이렇게 흉년으로 1년치 식량도 제대로 마련못한 농민들은 곡물을 팔아서 옷가지등 생필품을 사는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식품과 관련되지 않은 생필품외 기타재화를 팔아서 시장에 그나마 조금이나마 유통되고 있는 곡물을 얻으려고 했겠지요.

    농민들이 원래 자신의 소출물을 100%시장에 내다파느냐, 아니면 그중 몇퍼센트를 자기 가족 식량과 다음해 파종을 위해서 남겨놓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 흉작이라는 조건 하에서, 대다수의 농민들은 아마 다음해 파종을 제외하면, 더 안좋은 경우에는 그것을 포함하더라도, 1년간 먹고 살 곡물량이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문제지요. 다행히 내년파종과 1년식량보다 소출물이 더 많은 농민들은 당연히 비싼 값을 받고 그 곡물을 시장에 팔려고 하겠죠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있으니까요. 그러면 그외 대다수의 식량이 모자란 농민들은 자기 집 안의 무엇이든 팔아서라도 그 곡물을 사야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즉 흉년에는 곡물이 보통때처럼 생필품을 사기위한 화폐의 역할을 하는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재화의 역할을 하게되는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귀족들의 정책은, 화폐를 쌓아놨다가 나중에 화폐가치가 다시 올랐을때 시장에 풀려는 것이 아닌, 농민생존에 직결되는 곡물이란 필수재화를 매점매석을 통해 독점하려는 정책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덕여왕의 정책은, 황궁창고를 열어 곡물 가격을 낮추어서, (즉, 일반 농민들도 생필품 등을 통해 곡물을 살 수 있게 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된다면 그 자체로도 많은 농민들이 흉작을 견딜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귀족들의 매점매석은 힘들어질 것입니다. 흉작이라는 상황 하에서는 정확한 정책이라고 생각됩니다.

    흉작에서의 곡물 가격의 널뛰기는 오늘날의 주식 또는 부동산의 널뛰기와는 그 근본에서 다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전자는 농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 고려하기 전에 농민 입장에서 일단 낮아지고 봐야할 게 흉작에서의 곡물 가격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장에서 한 농민이 생필품이 아닌 곡물을 사려다가 사람을 죽이게 되는 신이 곡물싸움 시작할때 나온겁니다. 여기서의, 그리고 곡물싸움 전체에서의 중간상인의 역할은 단순히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인 곡물의 가격이 시장에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 뿐이지요.

    왕실과 귀족간 치킨게임은 맞지만, 귀족이 이기면 농민은 죽거나 노예가 되고 왕실이 이기면 농민은 사는, 그런 치킨게임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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