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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국내여행

강화 정족산성에 자리한 이천년의 사찰 '전등사'

by 뷰티살롱 2021.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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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멀지않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 동쪽으로는 양평이나 혹은 서종 인근이겠고, 서쪽으로는 인천이나 혹은 강화가 아닐까 한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간다면 1시간 내외로 가까워 주말 나들이를 즐기는 드라이브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2021년 새해를 맞아서 건강을 챙길겸 강화 마니산으로 산행을 결심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해 봤다. 하지만 2019년 연말부터 전세계 대유행을 만들어놓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전염병은 2021년 소띠해에도 여전히 진정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연말로 들어서 확진환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고, 2021년 1월기준으로 전세계 확진환자가 1억명을 넘었다고 하니 전세계 인구가 77억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확진세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강화 마니산 산행계획은 무산됐다. 다름아닌 코로나19 확산여파로 지난해 연말부터 등산로가 폐쇄됐기 때문이다.

 

강화도에서 가볼만한 곳이 어디 없을까를 생각해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전등사를 찾았다.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사찰 중 하나에 속한다. 무려 고구려 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수림왕 381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올해가 2021년이니 2천년에 조금 못미치는 오래된 사찰이다. 처음에 전등사의 명칭은 진종사라 한다.

 

삼국시대에 창건기록 이후 전등사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다시 나오는데, 1259년 고려 고종에 이르러 다시 기록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사찰들이 대다수 수려한 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것에 비해 전등사는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성 안에 절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성은 외적의 침략을 막기위해서 쌓아놓은 것이 일반적이다. 강화도 정족산에 취한 전등사는 정족산성 안에 자리잡고 있는 구조다.

 

강화는 과거에는 내륙과 떨어져 있었던 섬이었지만,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가설돼 섬이라기 보다는 내륙과 이어져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강화도는 외란의 침략이 있었던 때에 항쟁의 장소이기도 하다. 고려 몽골의 침략이 있었을 때에는 강화도에서 항쟁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또 개화기에는 서구세력의 항쟁지이기도 한데, 가까운 초지진이나 덕진진 등이 대표적이다. 한강을 통해서 한양으로 서양의 선박들이 들어올 때에는 거쳐야 하는 곳이 강화도이기 때문에 강화도에는 여러 진지들이 구축돼 있어 찾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까닭으로인지 한편으로 강화도의 여러 유적지를 들여다보면 반갑고 즐거운 마음보다는 오히려 서글프고도 뭉클함이 더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등사는 옛 고구려 시대에 처음으로 지어졌던 사찰이었던 것인지,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 소담스러운 모습이다. 700여 년이나 자란 은행나무의 자태는 세월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한 웅장함과 고풍스러움마저 드는 풍경이기도 하다.

 

정족산성 성문을 지나면 바로 사찰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곳 전등사에서는 초지대교가 멀리나마 한눈에 펼쳐 보인다.

 

전등사에서 초지대교를 바라보고 있으면, 과거에 육지와 연결돼 있지 않았던 때에는 강화도를 어떻게 오갔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들기도 한다. 바다위로 다리를 만들어놓는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과거엔 교통편이 배가 전부였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외딴섬이나 다름없었던 곳이 이곳 강화도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때로는 외란의 마지막 항쟁지로 삼았을 수도 있었겠고, 때로는 죄인들을 잡아두기 위해서 만들어진 유배지로 선택되어지기도 했었다.

 

최근에 방영되는 tvN의 '철인왕후'등에 등장하는 철종은 강화도령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 왕이다.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던 역적의 집안이었지만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조선조 왕으로 이렇다할 업적을 이루지 못한 채 허수아비 왕이라는 오명을 쓴 왕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전등사의 대웅전은 다른 지역의 사찰과 비교해본다면 그리 크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사찰의 규모는 대웅전이 어느정도이냐에 따라 크기를 가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주요 명승사찰을 보더라도 사찰의 규모가 큰 곳들은 대웅전 또한 크기가 대체로 크다.

 

건립이 고구려 시대였다하니 절의 크기가 크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내륙이 아닌 섬이라는 지형을 감안한다면 전등사는 상당히 큰 사찰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특히 현재 국내에 유명 사찰로 내려오고 있는 내륙의 사찰들이 고려시대 거립되었던 것을 보면, 시대적인 종교관에서 대웅전을 크고 화려하게 지었을 수도 있겠다.

 

신라시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첨성대나 황룡사 등을 창건했다는 점을 본다면 불교라는 종교는 나라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정신적 주체였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교로 하던 시대였으니 절의 규모또한 상당히 크고 웅장하게 지었을 거라 가름할 수 있다.

 

전등사 대웅전은 보물 178호로 지정돼 있다.

 

강화도를 찾게 되면 가벼운 산책으로 전등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리 넓지 않은 아담한 전각들과 동종을 볼 수 있고, 가벼이 산사에서 즐기는 차 한잔을 즐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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