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나주가 최근들어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많은 공기업들이 각기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최근들어 지자체마다 건설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전남 나주에 터를 잡게 된 공기업이 한국전력이다.

 

한국전력이 나주로 이전하면서 지역상생으로 많은 투자를 기울이고 있는데, 나주시에서 각종 상생정책을 펴면서 투자를 펼치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나주를 찾게 되었는데, 나주시 중앙에 위치해 있는 금성관 일대를 찾아보았다. 한참 도로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금성관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공사현장 인부에게 물어보니 한전에서 선로를 땅으로 매립하는 지중화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지중화 공사라는 건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신주를 통해서 지상으로 늘어서 있던 전기선들을 땅속으로 매립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에 도시에 즐비하게 줄을 맞추며 서 있던 전봇대라는 게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건물과 건물들 사이를 어지럽게 늘어서있던 전기줄도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 외관상으로도 상당히 깨끗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상서울 도심을 걷다보면 인도를 따라 늘어서 있던 전기선들이 온데간데 없어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하로 전기선들을 매립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나주는 현대에 들어서서는 상당히 작은 도시로 변해있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나주는 대표적으로 큰 도시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할만하다. 오늘날에 들어서서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업적인 산업들이 국가의 대표적인 산업이 된지 오래지만 과거 조선시대나 개화기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대표적인 산업은 농업이 대표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보더라도 전라도 지대를 통해 수많은 곡물수탈을 자행했던 사실들을 들여다보면 나주라는 지역은 대표적인 곡창지대를 기반으로 융성했었던 지역이라 할만하다. 한국전력이 나주로 이전하게 되면서 앞으로 제2의 융성을 맞게 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 들기도 하다.

 

 

나주는 백제때의 이름이 발라군이라 한다. 물론 백제 이전에는 불이지국이 있었다는 추정이 있는데, 통일신라 때 금성군, 903년에 지금의 이름인 나주가 돼 982년 나주목이 되었다가 1896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나주관찰부가 설치되고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눠 전라남도청이 광주에 설치될 때까지 약 천년동안 남도의 중심도시였다.

 

이곳은 나주목관아 중심간이었던 나주목 객사 공간이다. 관아는 넓게 해석하면 읍성과 내부의 각종 건물을 이르는 말이다. 객사는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보던 곳이자, 중앙 사신이 지방에 오면 묵던 곳이었다.

 

금성관 주변은 고려때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금성관의 동익현은 전라도 관찰사 이행이 벽오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 또는 초선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김춘경 목사와 오한 판관이 1480년 중수했으며, 금성관은 이유인 목사가 망회루와 함께 건립했다고 한다. 1963년 보수를 거쳐 1976년 완전해체 복원했다.

 

 

금성관에는 나주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하나다. 나주를 들렀을 때에는 한창 문화재 발굴작업이 한창 이어지던 때였다. 여름으로 들어서는 우기를 맞아 더위가 찾아오는 시기인지라 발굴작업도 한창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금성관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많은시간이 소요되지 않아 보인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관아를 둘아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듯 하기도 하고, 지역마다 남아있는 사원을 둘러보는 시간정도로 관람시간을 갖고 있으면 될 듯하다.

 

금성관을 관람하고 나니 조금은 늦은 오후 시간이돼 가까운 음식점을 찾았다. 나주에 가면 유명한 맛집 음식이 생각이 날 듯 하다. 바로 곰탕이다. 나주곰탕은 예로부터 타 지방에서도 이름이 높아 먼 거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금성관 앞을 나서면 눈에 띄는 음식점 하나가 보인다. 한옥으로 이루어진 음식점으로 점심때가 되서인지 많은 인파가 몰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나주에서 이름난 곰탕집이란다.

'하얀집 나주곰탕집'이다.

 

 

곰탕 한그릇에 배가 고플까 싶어서 음식 하나를 더 주문했다. 곰탕에 반찬은 소박해 보인다.

 

특별한 밑반찬으로 상차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깍두기에 풋고추, 오래 묵은 듯 보여지는 김장김찌가 상에 올려진다. 작년에 담근 김장김찌의 빛깔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나주에서 이름난 곰탕의 모습이다. 고기가 한그릇 가득이다.

 

한수저만 먹어도 시장끼를 채워줄 듯한 양이다.

 

일반적으로 탕을 먹을 때, 많은 반찬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많은 반찬은 탕의 맛을 반감시킬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설렁탕은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즐겨찾는 음식점에는 딸랑 큼지막한 깍두기와 어설게 썰은 얼갈이 배추김치가 전부다. 거기에 짭짜름한 새우젓갈 한수푼 쯤 넣어서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곰탕의 맛도 맛이려니와 밥맛이 일품이다. 지방인 나주여서인지 쌀이 찰지고 탱탱한 맛이 살아있는데  입안에서 씹힌다. 시장기가 사라지고 든든함에 겨워 나른해지는 오후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서울로 올라가려다가 한곳을 더 많이 찾아본다. 금성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나주목문화관이다.

 

나주목문화관은 천년고도 목사고을이었을 알리기 위해 설립한 전시관으로 옛 금남동사무소를 개조해 만들어졌으며 2006년 10월 19일 개관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큰 고을에 두었던 지방행정단위였던 '목'에 대한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각종 조형물과 사진,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향 나주목이 되다. 나주목사 부임행차, 나주읍성 둘러보기, 관아 둘러보기, 다시 태어나는 나주 등 8개의 주제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선정을 베푸는 목사, 목사의 하루일정 등도 살펴볼 수 있다.

 

나주목사행차는 대단한 위용을 갖춘 장관으로 나주목에 근무하던 관원들이 모두 나와 함께 했다. 특히 나주삼현 육각이 연구되었다고 하니 그 장관을 상상해 보면 왕의 행차에 버금가는 모습이 아닐런지 싶기도 해 보인다. 조선시대 나주라는 지역이 얼마나 큰 도시였던 것인지를 모형 행차도로도 가름할 수 있겠다.

 

 

 

 

 

 

나주목문화관에는 축소된 나주읍성 뿐만 아니라 나주관아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그림들도 전시돼 있어 나주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보여진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완사천 이야기도 전시돼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모습들을 한자리에서 습득할 수 있으니, 나주를 찾는다면 사전에 먼저 나주목문화관을 먼저 찾는 것을 권해본다.

 

 

 

'목'이란 고려, 조선시대의 지방행정단위로 고려시대 중앙집권정책으로 지방의 중요거점지역에 목을 설치했다. 행정조직으로 성종 2년에 12목이 설치됐는데, 그중 하나가 나주목이다. 무안, 담양, 곡성, 낙안,남평 5개군과 철야, 회진, 반남, 안로, 복룡, 원율, 여황, 창평, 장산, 진원, 화순의 11개 속현을 직접 다스렸다. 고려 현종 9년때 8목으로 개편되면서 전남 지방에서 유일하게 나주만이 목이 돼 이 지방의 중심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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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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