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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징비록, 눈길 사로잡던 백성 원성 진정시킨 류성룡 국가론

by 뷰티살롱 201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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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대하사극 드라마인 '징비록'은 왜구의 침략으로 계속되는 선조의 파천행이 국민의 입장에서 볼때, 부끄럽고도 낯뜨겁기만 한 일이다. 아니 부끄럽다 못해 분통터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을 듯하다. 선조(김태우)가 나라를 온전히 다스리고 정치인들이 붕당에 의해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하기에는 급급하던 모습이 결국에는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 놓이기 만들었던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으니 부끄럽다기보다는 분통이 터진다는 표현이 더 옳을 법하다.

그래서일까, 서예 류성룡의 위기극복 외교술과 정치술이 뛰어났다 하지만,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그다지 흥미를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뿐 아니라 임진왜란의 전세를 역전시킨 주인공들이 조선의 근간을 읖조리는 양반이나 혹은 대신들로 이루어진 기득층이 아닌 각지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의병들의 항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할만하다.

명과의 교섭으로 명군이 조선으로 들어오게 되기는 했지만, 조선 전역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의병들의 활동과 비교해 볼때, 초반 왜군과의 전투에서 정규군인 조선 육군의 승전은 미미하다 못해 전무한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나마 왜군을 전멸시킨 육지전에서의 장군을 단지 상대 장수에 의해 올려진 장계에 의해서 무참히 참수하게 되는 웃지못할 촌극(?)까지 벌어지는 마당이니 류성룡의 활약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파천행으로 계속해서 피난과 도망을 했던 선조와 왕을 따르는 신하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 '징비록'의 전개는 참담한 모습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난다고 해서 과거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류성룡이 전란이 끝이 난 뒤 쓰여진 '징비록'은 후세에 왜란의 참담함을 알리고 경계해야 함을 알리기 위해 쓰여졌다.

계속되는 선조의 파천행으로 평양성마저 내어주기에 이르른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왕실의 파천행렬은 급기야 민심을 들끓게 만들었다. 20회에서는 평양성마저 버리고 도망하려는 어가행렬을 막아서며 백성들이 분개했다. 마치 왕인 선조를 죽이기라도 할 기세로 행재소까지 찾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하는 왕이라면 능히 백성이 먼저 왕을 버릴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백성들의 분노에 맞서게 된 이는 바로 류성룡이었다.

류성룡은 화난 백성들의 앞에 나서며 '나라를 부정해도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라는 말을 던졌다. 류성룡의 말한마디는 국가론이 응집돼 있는 말이기도 했었고, 드라마 '징비록'에 담겨있는 주제라 해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나라가 어렵다 해서 무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나라의 백성의 아닌 이미 백성의 탈을 쓴 난민이자 반군'이라는 말은 새겨야 할 말이기도 하다.

과거 1970년대 일어났던 베트남 전쟁을 떠올려 보면,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일 법하지만 '보트 피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해로를 통해 베트남을 탈출하는 난민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는데, 자유 민주주의의 공화국과 사회주의 체제였던 민주공화국이 갈라져 전쟁으로 발발했던 베트남전으로 보트 피플이 만들어놓게 됐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그러하다. 조선의 왕인 선조가 계속되는 피난행으로 북상하고, 백성들을 버렸지만, 그 나라에 살고있는 백성들이 선조를 부정하고 나라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류성룡은 나라를 부정한다는 것은 근간이 없음을 말했던 것이고, 나라잃은 난민이나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모습이었다. 1910년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한일합방으로 45년 독립을 이루기까지 35년이라는 기간동안에 암울한 시대를 맞았지만, 그럼에도 곳곳에서는 주권을 다시 찾으려는 열사와 의사들이 일어났었고, 독립군들이 일제에 맞서 항쟁했었다. 이들이 목숨을 바꾸면서까지 주권을 찾으려 했던 것은 '나라'의 존재다.

이 나라가 임금만의 나라가 아닌 만백성의 것이고 그 후손들의 살아갈 터전이라고 말한 류성룡의 말은 국가론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해 보였다. 왕의 존재보다 나라의 존재가 계속되는 한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에 의해서 나라는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난민이자 곧 반군인 셈이다.

국가의 존재에 대해서는 누구나 안다. 올림픽이나 혹은 해외 경기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에 감격해 한다면 그 또한 국가안에서 살아가는 국민으로써 맞는 감격이자 국가에 대한 소중함이라 할만하지 않겠는가. 문득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나의 소원'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라고 할 것이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세번째 묻는다면 나는 더욱 소리옾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라고 답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징비록' 20회가 방송된 4월 19일에는 역사토론 '그날'에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됐다. 광개토태왕비의 비문에 지워진 글귀를 자신들 나름대로 해석해 역사를 왜곡한 것이 '임나일본부설'의 하나인데, 현대로 들어서 과거 고대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엿보인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것 또한 그러하고, 일본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역사란 단지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라 할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징비록 20회에서 류성룡이 성난 백성들에게 일깨워주었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터전'이라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

드라마 '징비록'은 이순신(김석훈), 권율(김영기), 곽재우(임혁) 등의 의병들과 장수들의 등장으로 시청율 반등을 보이고 있다. 초반 선조의 계속되던 신하들을 이용해 왕권강화 술책과 류성룡(김상중), 정철(선동혁) 등의 붕당정치는 그리 곱지 않았던 왜란 발발전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은 불편하기만 하던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했었다. 앞으로 류성룡의 외교술과 정책, 거기에 각지의 의병들과 권율의 합세, 이순신의 활약이 드라마 '징비록'을 보다 더 탄탄하고 시선을 끌게 할 것으로 보여진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출처=KBS 대하사극드라마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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