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게 될 '수로부인 헌화공원'의 웅장함을 뒤로 하고 삼척의 가볼만한 곳을 찾던 중 들린 곳은 죽서루라는 곳이다.사실 삼척에서 죽서루를 찾아보지 않는다면 삼척을 다녀왔다 말할 수 없을 듯도 하다.

동해의 검푸른 바닷가를 찾는 것도 삼척을 여행하는 한가지 방법이겠지만, 죽서루라는 곳을 찾아 옛 문인들의 시가 새겨져 있는 현판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죽서루에서의 관람시간은 고작해야 30분이면 족하다. 주자창에 차를 주차시키고, 죽서루의 정문을 넘어서면 예쁘게 꾸며진 정원같은 모습에 황훌감을 맛보기도 할 듯하다.

죽서루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누각의 웅장함은 또다른 시선으로는 소박함을 담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마치 두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 곳이 죽서루 같았다고 할까?

현재 삼척시 성내동 오십천 절벽위에 위치한 보물 제213호인 죽서루는 누각이다. 누각이란 일반적으로 기둥이 층 받침이 되어 마루가 높이 된 중층의 다락집을 말한다. 보통 누각의 1층바닥은 자연상태 혹은 기단으로 남겨두고 그 상층에 우물마루 바닥이나 온돌바닥을 깔았다. 이러한 누각은 그 기능상으로 볼때, 여러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죽서루는 조선시대에 일종에 관아시설로 활용된 누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조선시대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이었다.

객사란 지방에 파견된 중앙관리들이 묵던 숙소를 말한다. 따라서 조선시대 죽서루는 공공시설로 접대와 향연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물론 삼척지방 양반 사대부와 삼척을 찾아오는 시인묵객들의 정신 수양을 위한 휴식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죽서루는 건물 자체의 오래된 역사나 웅장함 뿐만 아니라 주위의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인해 일찍부터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혀 사시사철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던 곳이다. 서루 혹은 죽루라고도 불리웠는데 죽서루는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이 누각이 죽서루라는 이름을 얻게 된데에는 누각 동쪽에 옛날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만 전해오고 있다.

또 일설에는 죽죽선이라는 명기의 집이 누각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죽서루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 명종 때에 문인인 김극기의 시 중에 죽서루에 관련한 시가 전해오고 있는 것을 보면 12세기 후반 이전에 창건되었음은 분명하다.

고려말의 인물인 이승휴,안성, 김구용, 정추 등이 죽서루 관련 시를 읊은 것을 보면 죽서루는 고려말에도 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죽서루는 여말선초에 혼란기 때에 허물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허물어진 죽서루는 조선태종 3년에 당시 삼척 부사였던 김효손에 의해 옛터에 다시 건립되었다.

죽서루는 주춧돌 대신에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을 이용해 기둥을 세웠다. 상층의 기둥이 20개인데 비해 하층의 기둥은 17개로 상층에 비해 3개나 적고 하층의 기둥길이도 다르다. 이것은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을 이용해 건물을 세웠기 때문이고, 기둥이 세워진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기둥의 길이도 각각 다르다.

양측면의 칸수역시 다르다. 북측면은 2칸인데, 비해 남측면은 3칸으로 되어 있다. 측면 칸수의 차이가 있는 것은 자연암반의 형태에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홀수칸인 남측면을 주출입구로 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또한 누각 좌우의 천연암반을 이용해 2층 누각이면 반드시 있어야 할 사다리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 건물에 2개의 건축양식이 조화되어 통일성과 변화를 추구한 것이 죽서루의 건축양식이다. 죽서루의 공포는 주심포와 익공의 두가지 양식으로 되어 있다. 원래의 5칸은 주심포로 되어 있으며 좌우로 한칸씩 증축된 곳에는 익공을 채택함으로써 통일성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죽서루에는 많은 시와 기문 편액이 있는데, 누가 지었는지 모를 '죽서루'의 현판을 비롯해, 숙종 36년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관동제일루라는 현판도 있다. 동일인물인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죽서루의 현판도 함께 있다. 조선 선조때의 문인학자로 호는 율곡으로 유명한 이이는 죽서루에서 시를 짓기도 했었고, 고려말 학자인 이승휴의 시 또한 죽서루에 있다.

이밖에도 죽서루를 찾게 된다면 조선 22대 개혁군주인 정조가 쓴 시를 일충 심충현이 글씨로 새겨놓은 현판도 찾아볼 수 있고, 삼척부사 양정호의 시도 만나볼 수가 있다. 홍백련이 지은 중수기, 강원도 관찰사 안성과 강징이 지은 시, 죽서루 중건시에 홍종범이 지은 상량문이나 삼척시장 김광용이 지은 중수기를 일죽 홍태의가 서각한 것도 만나볼 수 있다.

죽서루에는 조화로운 누각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꾸며진 정원같은 경관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여행팁이라 할만하다. 용문바위와 성혈유적이 있는 곳은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경관에 빠져들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 넓지 않는 용문바위 주변임에도 불구하고, 죽서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십천 내의 장관과 정원같은 용문바위 주변의 모습은 안락함을 느끼게 만든다.

죽서루 동쪽 옛 연근당 자리 가까이에 있는 바위문, 행초서로 '용문'이라 새긴 음각글씨가 남아있는데, 바위 상부에는 성혈유적이 있다.흔히 성혈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선사시대의 상징물이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민간신앙으로 정착되어 득남의 기원처로 변모하게 되었다. 

즉 칠월 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에 찾아가 일곱구멍에 좁쌀을 담고 치성을 드린 후 좁쌀을 치마폭에 감추어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는 민간신앙이다. 용문바위의 성혈은 크기가 3~4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로 10개가 만들어져 있다.

죽서루 오른편에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이 위치하고 있다. 문화관광부에서 1991년 2월을 송강 정철의 달로 정하고 우리나라 가사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을 기념하는 표석을 2개소에 세웠다.

하나는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8경의 하나의 삼척 죽서루 경내이고 다른 하나는 성산별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식영정 부근이다. 삼척과 담양에 세워진 송강가사의 터 표석은 종전의 일반적인 시비와는 달리 팔각형의 장대 표석과 8각의 각면마다 송강의 대표적인 친필, 수결, 세움말, 가사 창작의 배경을 담아 송강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미니박물관 구실을 하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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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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