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존허트, 틸다 스윈튼 등의 헐리우드 유명배우들이 출연하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8월 첫날 개봉을 하게 된다. 아직 채 관람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꽤 관심이 가는 영화가 아닐수 없겠다. 하반기로 접어들어 첫 대작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높은 영화이기도 하고, 헐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설국열차'는 단순히 제작비나 혹은 헐리우드 유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지구상에서도 오로지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전지대인 열차안에서 벌어지는 꼬리칸 사람들의 반란과 이를 제압하려는 앞칸의 권력자들의 대응은 마치 인간사회의 권력과 힘의 균형을 그대로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초반 열차의 꼬리칸에 올라타게 된 사람들의 집단에 대한 궁금증이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사람들은 억압되어 통제당하는 집단과 이를 통제하는 집단으로 나뉘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단편 애니메이션 형태가 공개되어 있으니 이를 참고한다면 열차안의 권력계층이 나뉘어져 있는 까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열차는 달린다. 어디로 향하는지를 모른채 17년이라는 시간동안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 꼬리칸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그 가운데, 리더역할인 커티스(크리스 에반스)가 조용하게 반란을 준비한다. 하지만 가장 맨 앞칸으로 가기 위해서는 열차를 설계했던 남궁민수(송강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꼬리칸에서 다음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렵지 않았지만 수십칸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잠금설계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화 '설국열차'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열차안이 배경이다. 사실 꼬리칸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반란으로 자칫 열차가 전복된다거나 혹은 멈추기라도 한다면, 마지막 인간들의 파라다이스라 할수 있는 열차는 더이상 그들에게 안식처가 될수가 없는 위험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열차밖은 모든 것을 열려버리는 추위가 꺾이지 않는 날씨였기에 좁은 열차안에서의 반란은 인류의 종말을 고하는 위험스러운 행보라 할만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반란을 행할 수밖에 없었을까?

영화 '설국열차'는 사실상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초반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조우되는 순간까지의 모습들은 꽤 몰입도를 높여주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앞칸으로 나아가게 되는 커티스 일행들에게 맞닥드리는 위험과 절대적 명제에 대한 해답은 모호함으로 변한다. 특히 앞칸의 부유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는 설명이 다소 미흡해 보이는 느낌마저도 든다.


그런데 말이다. 중반에서의 액션 위주로 변해버린 열차안 반란의 행동들은 마지막 성스런 엔진을 설계한 윌포트를 만나게 되면 또한번 관객을 심호한 철학적 세계로 떨어뜨리게 된다. 왜 그들의 반란은 정당화되어야 하는지, 반란의 진압과 그 속에서 벌어진 살육의 행연에 대한 정당성은 마치 한편의 흑과 백을 가르는철학자들의 논쟁만큼이나 깊이있게 만들어버린다.

꼬리칸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앞칸 사람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에 대해서 자신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었다. 왜 자신들이 온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아야만 했던 것인가에 대한 명제말이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인물은 바로 남궁민수(송강호)다. 윌포트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려는 듯히 열차안에서의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 가장 맨앞칸의 사람이었고, 커티스는 꼬리칸의 불합리에 일어선 반란자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은 모두가 열차안이라는 국한된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권력과 억압의 상징을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원색과 회색의 색감으로도 대비시켜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꼬리칸 사람들에게는 내일은 기대하기 어려운 암울함만이 그들을 기다린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검게 찌들은 자신의 남루한 모습과 회색에 가까운 열차의 내부였다.

커티스의 지휘에 꼬리칸 사람들이 앞칸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색채는 자연색으로 변해간다. 화려한 옷들과 식물이 자라는 칸을 지나고 수족관까지 조성되어진 열차칸을 지나게 되기도 하는데, 꼬리칸 사람들, 17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의 눈에 자연색에 가까운 색감은 처음으로 보게되는 광경이리기도 해 보였다. 마치 부와 억압의 차이를 색깔로 표현해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클로놀이라는 마약같은 약에 취해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열차의 보안담당자였던 남궁민수는 이들 두 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캐릭터였다. 영화의 반전은 바로 남궁민수의 결단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기도 하다.


영화 '설국영차'가 흥행에 성공하게 될지느 미지수로 보여지기만 했다. 물론 흥미롭고도 신선한 모습이었지만, 액션의 정도는 헐리우드 거대자본이 만들어낸 영화들과 비교해본다면 스타일러시한 느낌은 없었다. 단지 필자는 영화 '설국열차'에서 보여진 수많은 캐릭터들만이 기억이 난다. 꼬리칸의 리더였던 커티스와 성스런 엔진을 보호하고 있는 윌포트, 커티스와 함께 반란을 준비해나갔던 원로 지도자였던 길리엄, 그리고 부당하게 아이를 빼앗긴 타냐와 권력층의 상징이었던 메이슨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들은 모두가 각기 다른 색깔들로 채워져 있는 작품이었다.

두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수많은 캐릭터들을 살려내기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너무도 큰 장르가 바로 영화라는 장르다. 액션영화는 무조건적으로 대규모 폭파씬과 격투씬이 관객을 사로잡기 마련이고, 멜로영화에서는 젊은 청춘 남녀의 투톱이 돋보여야 하는게 진리다.

액션영화에 해당하는 '설국열차'에서 그려지는 각기 다른 양상의 인간들의 모습들은 색다른 성격들로 채워져 있어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재난영화에서 주인공이 돋보이는 건 당연하겠지만, 설국열차에서는 특정한 주인공이 돋보이기 보다는 서로 다른 계층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흥미롭게 드러나 보였다는 점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두각을 보이게 된다면 과연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독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흥행요소가 될수가 있을까? 많은 캐릭터들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어쩌면 시선이 분산될수도 없지 않을까?

영화 '설국열차'는 그래서였을지 아주 잘빠진 재난SF영화는 아니라는 느낌이 강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결론이 모호한가? 영화 '설국열차'의 물음과 대답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윌포트와 만나게 된 커티스는 절대 거역할 수 없는 윌포트의 논제에 혼란을 느껴야만 했다. 왜 왜 왜...

결국 좁은 열차안에서의 모든 일들은 계획에 의한 균형을 이루어야했던 일들이었고, 마지막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해야만 했었던 일들이라는 사실에 고통스럽기만 하다. 헌데 그 진리라는 것이 억압받아야만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부류들로 처음부터 결정되어야 했던 것이었을까. 영화 '설국열차'는 의문에 긍정도 부정도 할수 없게 만드는 모호함의 연속을 보여주기만 한다. 부조리한 철학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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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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