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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과 빵셔틀'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SBS '학교의눈물' 3부작은 결국 아이들의 문제가 아닌 어른들의 문제로 끝이 났다. 아이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왕따 문제가 단지 아이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 해답에 대해서 풀어내기에 '학교의눈물'에서 보여진 학원폭력에 대한 문제점은 너무도 짧게만 느껴지기만 한다. 완전한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폭력의 세계의 노출되게 되는 경위에 대해서 보여주고는 있지만 정작 그 완전한 해결책에 대한 솔루션은 아이들이 다른 학생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문제는 어떠한가?
정답은 없다.
아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교육시키면서도 정작 어른들의 세계는 여전히 불평등의 세계와 부와 권력의 세계를 향해서 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에서는 정작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가 낮아져야 정상이다. 사회적인 기부와 잘사는 나라들이기에 그만큼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좋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인데, 본질적으로 경제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 나라일수록 학교폭력은 높다는 통계치가 나왔다.
방송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소득불평등'의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적인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소득불평등'의 통계가 적용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간단하다. 이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닌 어른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학교폭력이 일어날 때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먼저 욕하기 보다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회성과 어른들의 세계를 먼저 뒤돌아본다. 하지만 잠시다.
과거와 비교해볼때, 과연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
아니 과거에도 학교폭력은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의해서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그렇지만 약육강식의 세계가 지배하는 동물들의 세계와는 달리 인간들에게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의 분배와 힘의 배분이 작용한다. 이것이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그렇지만 어른들에게 완전하게 평등하게 부의 배분이 일어나는 것일까?
시사 프로그램인 '학교의눈물'에서는 의미있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바로 어른들의 '신사다운 폭력성(?)'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폭력은 아이들 세계에서 독단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를 투영한 거울과도 같은 작은 사회라 할 수 있다. 미디어와 매스컴을 통해서 보여지는 혹은 부모로부터 들려지는 교육들은 어느새인가 아이들에게 하나의 잘못된 작은 폭력세계를 만들게 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폭력은 통계학적으로는 미국이나 캐나다보다는 작은 수치에 불과하지만 다른 데이터를 통해서 알려진 바로는 이들 나라들보다는 더 큰 수치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는 있지만, 다소 충격적인 수치였다.
무엇이 이같은 결과를 낳게 한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어른들의 규칙은 '좋은 학교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강요'가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다. 교육열이 이처럼 높은 나라는 한국이 세계수준이라고도 한다. 좋은 학교와 무조건 높은 성적을 요구하는 어른들의 욕심은 많은 학원에 아이들을 내몰고 있고, 학교는 어느샌가 교육의 장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곳을 가기위한 목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과거 70년대와 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필자의 생활환경을 생각해본다면 현대의 교육환경은 너무도 고급스럽고, 주입식으로 바뀌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우고 암기하는 방식의 주입식 교육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현대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필자의 어린시절은 대가족화된 가정이었다. 소위말해 부락형태로 일가들이 모여사는 시골에서 자란터라서 어른들을 대하는 예절교육은 늘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졌었다. 몇십미터 내외에 일가친척들이 모여있는지라서 어른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환경속에서 교육은 어떤 행동으로 어른들을 대해야 하는 것인지부터 먼저 배우기 시작했었다.
요즘에 M본부에서 '아빠!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을 보게되면 아이들이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달리 여러 어른들 속에서 생활하게 되는 모습들이 대견스럽게 보여질 때가 있다. 집에서는 부모들의 보호아래에 어리광을 부리기가 일쑤지만 다른 어른들과 함께 있음으로 해서 말을 조심하고 아빠를 따르는 남다름이 엿보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르고 있는 것조차도 어른들의 행동이나 사회성에서 배운 것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자식이 좋은 대학과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픈 학부모들은 누구나 똑같다. 하지만 과열된 교육열은 하나의 불평등을 만들어놓기 마련이다. 사회적 소득에 대한 불평등을 따지기 이전에 어른들의 사회성을 좀더 조명하는 것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 '학교의눈물' 마지막 3부작이었다.
사회가 존재하는 한 학교의 눈물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사회문제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지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강요되는 교육의 장은 과거와는 달리 예체능이 줄어든지 오래다. 오로지 대학이라는 커다른 목표점을 위해서 학교가 존재하고 있기에 인성교육은 바닥이다.
그렇다고 이러하 학교폭력에 대한 원인들은 어른들은 모르는 것일까?
필자는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누구보다 어른들은 알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아이는 자신보다 더 좋은 환경과 더 잘살기를 남들보다는 편안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잘살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의 사회성까지도 변화시키는 맹목적인 자식사랑이 어쩌면 학교폭력이라는 거대한 사회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SBS '학교의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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