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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계백 12회, 사람을 얻어가는 계백 & 점점 무서워지는 은고

by 뷰티살롱 2011.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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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위해서라면 원수의 첩이라도 되겠다는 은고의 독한 결심이 MBC 사극드라마 <계백>12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복수라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은고(송지효)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미 지옥에 떨어뜨린 지 오래인 모양이더군요. 어릴적 만났던 계백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었지만 은고는 사택가의 양딸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었죠. 계백이 품고 있는 원한, 의자가 왕이 되고자 하는 목적도 은고의 복수심 앞에서는 한낱 모래조각처럼 작게만 보였던 모습이었습니다. 양딸이 아니라 사택적덕(김병기)의 첩이라도 되어서라도 복수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은고의 복수는 너무도 오랜시간을 숨죽이며 품어왔던 것이었죠. 그것은 의자가 여염집 아낙이나 품고자 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숨기며 살아온 것과도 같은 것이었죠. 계백(이서진)이 사지에서 살아돌아와 자신의 아버지인 무진(차인표)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사택비(오연수)가 있던 궁안으로 들어서며 칼을 뽑아 '죽이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복수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제2의 사택비가 생겨나지 않도록 은고는 사택가의 수족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갈 계획이었습니다.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몸통마저도 없애버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머리를 없애버림으로써 완전하게 사택가의 세력을 날려버릴 계획으로 양딸로 들어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은고의 복수심을 시청하면서 은근히 과연 은고는 어떤 인물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계백이 백제의 마지막 3충신 중 하나로 황산벌에서 장렬하게 죽음을 맞게 되는 인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은고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후대에 널리 전해지지는 않는 인물이죠. 그런데 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은고라는 인물이 일본의 사료에 등장한다고 하더군요. 패망한 백제의 왕실과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를 꽃피웠던 것은 알고 있을 겁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자신들의 문화가 자체적인 것이 아니라 백제 즉 한반도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고구려의 광개토태왕비까지도 휘손시켜가며 정통성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본기라는 자료에는 백제의 은고라는 인물이 언급되어 있다고 합니다. 백제 말기 의자왕이 제위시기에 은고는 후궁으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했었다고 하더군요.

드라마 <계백>을 시청하면서 은고라는 인물이 후에 계백의 부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사택가의 양딸로 들어간 은고는 어떤 방법으로 의자왕(조재현)의 후궁이나 혹은 왕후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택비를 포함한 사택가를 없애는데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될 것으로 짐작이 되더군요.


그렇지만 사택가의 파멸은 제2의 사택비가 다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의자왕의 왕비가 된 은고가 왕자를 생산해 낸다면 또다른 피바람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서 은고는 또다른 사택비가 되는 것이 되겠지요.

드라마에서 계백과 은고 그리고 의자는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고의 마음속에는 계백이 있을 뿐 의자왕자는 없는 모습이더군요. 단지 같은 목표를 갖고 있기에 뜻을 함께하는 동지일 뿐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습니다. 사택적덕의 양딸이 되기로 결심하며 사택가로 들어가는 은고는 마음을 계백에게 주었습니다.


어찌보면 은고와 계백의 애뜻한 감정은 이미 전 시대를 살았던 사택비와 무진장군의 순애보를 따르는 모습이기도 하더군요. 사택적덕의 딸을 본 무왕(최종환)은 사택비를 취함으로써 왕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사실상 무진장군에게 향해있던 사택비는 가문을 위해서 왕후가 되었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왕보다 죽기를 각오하며 검을 휘두르는 무진을 살리기 위해서 마음을 다했었죠. 왕후가 되었지만 여전히 무진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은고가 복수가 위해서 사택가로 들어가며 계백과의 이별과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니 훗날 백제의 멸망이라는 역사적인 소용돌이가 하나하나 톱니바퀴 맞듯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사택가를 몰락시킨 은고는 영향력있는 제2의 사택비로 굴림하게 될 것이기에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려 할 것이겠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음에 품은 정인 계백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의자왕은 은고를 얻기는 했으나 마음을 얻지는 못하겠지요. 한명의 여인을 취하지 못한 의자왕은 어쩌면 역사에도 기록되었듯 향락과 사치에 빠져들게 될 것이구요. 허락하지 않은 은고의 마음을 얻지 못한 공허감에 수많은 여인을 품으며 '3천궁녀'라는 희대의 사치에 빠진 왕으로 낙인찍히게 되겠죠. 점차 대신들의 충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술에 빠져 3충신이라 불리던 신하들을 잃게 되는 행적을 남기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계백은 점차 자신의 세력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것이 아니라, 신념이라는 것 하나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신라의 생구가 되어 전장에서 싸워온 병사들은 외로운 늑대인 계백에게 하나하나씩 충성스러운 부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생구의 신분에서 벗어나 백제로 돌아온 백성들은 왕실로부터 정착금과 쌀을 하사받게 되었지만, 약속했던 정착금과 쌀보다 못한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모래가 섞여있는 쌀과 정착금은 관료들의 손을 거쳐서 삭정이 수준이나 될만큼의 몫이었죠.

격분한 생구들은 관료들과 병사들을 죽이기에 이르렀는데, 그 일선에 선 사람은 다름아닌 계백이었습니다. 계백은 부당하게 대우하는 관료들과 병사들을 무력다짐으로 응대함으로써 생구들은 일시에 반란군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충(전노민)은 생각없이 날뛰는 계백의 무모함으로 생구들이 모두 죽게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생구들은 지략가인 성충을 따르기보다는 계백을 따르고 있었죠. 반란의 원흉은 한 사람으로 족하니 모두 피해서 목숨을 건지라 말하는 계백을 따르던 것이었죠. 생구였던 시절 계백을 무시하던 백파(조경환)마저도 성충보다 계백을 따르며 함께 죽는 것을 택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훗날 계백은 황산벌 전투에서 5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떠나게 됩니다. 10:1이라는 인적 스코어로 따지자면 싸움도 하기전에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일 겁니다. 5만병사의 신라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게 된 계백은 어쩌면 생과사를 함께하는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장군으로써의 면모 말이죠. 성충과 더불어 기울어가는 백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계백은 그렇게 천천히 자신과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란군이 되어 의자왕자에게 칼을 겨누게 된 계백은 어쩌면 사택비에 의해서 다시 구명받을 수 있을 듯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반란을 일으킨 역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택비의 잘못된 계산이 다시한번 생겨날 수 있을 듯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외곽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였다면 모두를 죽여 진압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사택비는 반란이 궁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조용히 수습하려 할수도 있겠더군요. 더욱이 의자를 볼모로 삼았던 계백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무진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사택비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사택비의 계산은 착오에 불과할 겁니다. 무진이 그러하듯이 결코 정복되지 않는 한마리 이리같은 사내가 계백이니 어쩌면 계백을 살리는 것이 사택비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사택비의 최후까지도 계백에 의해서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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