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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계백 7회, 의자왕자의 트라우마와 계백이 돌아가야 하는 이유

by 뷰티살롱 201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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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극드라마인 <계백>이 성인배우로 바뀌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듯해 보입니다. 그동안 계백(이현우)과 의자(노영학), 은고(박은빈)의 어린시절로 아역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력이 돋보였었는데, 7회에서는 성인이 된 계백(이서진)이 보여지면서 성장기를 마친 모습이었죠.

7회의 모습은 비장미가 따로 없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사택비(오연수) 가문의 위협으로 무왕(최종환)은 허수아비같은 왕권을 유지해야만 하는 모습이 그려졌었는데, 백제가 귀족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나라라는 것이 극명하게 보여준 회차이기도 했었습니다. 윤충(정성모)이 무왕에게 힘이 되어 주었지만, 사택비 가문을 비롯한 귀족연합 세력이 한발 더 앞서 백제궁으로 향하던 군사들을 다시 복귀시켜기도 했었고, 왕후의 자리까지 내놓았다던 사택비는 군사를 일으켜 무왕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허수아비 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기도 했었습니다. '사택비가 곧 백제'라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모습이기도 했었습니다.

사택비는 무왕에게 무진(차인표)과 의자의 안위를 바꾸어야 함을 무왕에게 제시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윤충장군을 제거하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왕후를 납치한 배우인물이 무진이었고, 귀족세력을 제거하려 했었던 것에 대한 보복이기도 했었죠. 나약한 무왕으로써는 사택비의 간교한 계산을 빠져나올 수 없었지만, 마지막 한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무진을 버리고 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말이죠.

아들인 의자를 살리는 방법이기도 했었고, 어쩌면 무왕으로써는 위기를 타계할 수 있는 묘수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것은 바로 무진의 목숨으로 의자를 구하는 것이었었죠. 사택비 가문이 만든 살생부조차도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백제의 암울한 정치적 구도앞에서 무왕은 아무런 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의자는 그런 아버지 무왕의 나약함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구요.


선화왕후와 의자의 목숨을 위해서 자신을 내던졌었던 무진을 버린다는 것은 무왕으로써는 뼈를 깎는 아픔이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무진을 버리지 않고 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죠. 의자는 사택비를 알현하기 위해서 알현을 청하였지만, 왕후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의자를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 왕후를 알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진이었고, 사택비는 그제서야 왕후전의 문을 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택비의 밑으로 들어오기를 바랬었을까요? 사모의 정을 품고 있는 유일한 사내였던 무진을 사택비는 무릎끊려서라도 자신의 밑으로 두고 싶었었을 겁니다. 하지만 충의를 버리지 못한 무진은 사택비의 앞에서 칼을 들고 불가능한 마지막 일전을 치르며 사택비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무진을 막아선 사람은 다름아닌 의자왕자였었습니다.

너무도 계산되어진, 무왕과 무진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무진의 난무는 의자에 의해서 가로막혔습니다. 사택비를 위협한 무진을 제거한 의자는 그 때문에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왕후의 납치배후로 지목된 무진과 의자의 끈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무진의 죽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픽션이기는 하나 드라마 <계백>을 시청하고 있노라면, 한회 한회가 마치 비장미를 연상케하는 모습인데, 무진과 의자왕자때문이기 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죽고, 계백이 태어났지만, 무진은 오랜세월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었고, 오로지 선화왕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결국 의자의 칼에 의해서 목숨을 바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 모습이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을 풍미했었던 시대를 조명해보면 마지막 왕인 의자왕을 여색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만든 군주로 묘사되는 한편, 계백은 만고의 충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5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의 김유신을 맞아 4번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 백제의 마지막 장군이자, 충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의자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3천궁녀의 일화속에서 주색에 빠진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군주로 기억되기도 할 겁니다. 그렇지만 의자왕은 처음부터 주색을 가까이 하고 사치스러움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었죠. 어린 시절에는 효성이 깊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라는 칭호까지도 받았었습니다. 그렇지만 왕위에 오르면서 교기를 비롯해 내좌평 등을 섬으로 추방하는 등 정치적 개혁을 했던 왕이었습니다.

역사적 고증을 뒤로 하고 드라마 <계백>에서 의자는 고독하고 외로운 처지입니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인 선화왕후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며 사택비와 귀족세력의 압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성장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왕자로 살아가면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아무런 포부도 없는 양 무위도식하는 철없는 왕자로 살아갔지만, 의자앞에 나타난 무진으로 한가닥 희망을 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무진마저 자신으로 의해서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사택비에 대한 원한은 뼈속까지 서리게 되었을 것이죠.

자신의 어머니, 충신이었던 무진의 죽음. 이 모두를 의자는 자신의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사택비에 대한 원한은 둘째치고 보통사람으로써는 미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할 정도일 겁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왕이 되기 위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은고의 말처럼 의자는 사택비와 귀족세력에 대한 미움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야 할 겁니다. 어쩌면 의자는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사택비의 죽음과 귀족세력의 몰락으로 점철되어 있을거라 보여지기만 하더군요. 그렇지만 목표했던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면 의자는 어떻게 될까요? 무진을 자신의 손으로 죽임으로써 의자에게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트라우마에 심각하게 빠지게 된 것은 아닐까 싶기만 해 보입니다. 


MBC드라마 <계백>은 폭풍같은 질주를 해왔던 무진의 죽음으로 계백의 성장기는 끝이 난 듯해 보입니다. 죄인이 되어 백제의 변방으로 끌려가게 된 계백은 신라군의 기습으로 포로가 되어 신라군의 포로병사가 되어 고구려 인접지역에서 용병과도 같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계백은 백제로 어떻게 돌아가게 될 것인지 흥미진진해 지기만 합니다. 반드시 살아서 백제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두가지는 있는 셈입니다. 첫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던 의자왕을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아버지를 살려주겠다 약속한 무왕, 혹은 의자를 만나 왜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야만 했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도 아니라면 복수를 위해서라도 살아남아 백제로 돌아가야 할 터이지요.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자신이 업어주고 싶은 여인 은고를 만나기 위해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옥같은 신라진영에서의 포로병사의 생을 탈출해야만 하는 상황이죠.

사극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한가지 법칙이 있다면 '영웅은 반드시 포로가 되어야 한다'는 모습이 드라마 <계백>에서도 보여지는 모습이기는 하나, 매회마다 긴장감과 비장미가 감도는 모습에 빠져들게 하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네요. 언제쯤이면 백제의 달솔이 되어 마지막 전투인 황산벌로 향하게 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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