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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짝패 종영, 천둥의 죽음과 아이의 탄생 - 비극이지만 또다른 희망

by 뷰티살롱 201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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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짝패는 영원한 짝패인걸까요?
아래적을 이끌던 천둥(천정명)은 결국 짝패인 귀동(이상윤)의 품에서 죽음을 맞게 말았습니다. 드라마 <짝패>는 어찌보면 비극이라는 결말을 처음부터 안고 달려가던 이야기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 드라마였습니다. 조선후기 포도청의 비리와 벼슬아치들의 횡포가 횡행하던 시기에 분노와 함께 일어선 아래적이라는 의적단이라지만 해피엔딩을 예상했던 시청자들은 그리 많지가 않았을 겁니다. 민중사극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는 <짝패>는 특정한 인물이 주인공이 없었던 드라마나 마찬가지였었죠.

한 여인을 짝사랑하던 쇠돌아제(정인기)가 주인공이기도 했었고, 아들의 불운한 삶을 염려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범죄를 저질른 막순(윤유선) 또한 주인공이었습니다. 거지패를 거느리던 장꼭지(이문식)도, 현감(김명수)으로 가난한 양민을 매질로 죽음에 이르게 했었던 사람도 주인공이었습니다. 또한 놀음판을 기웃거리던 조선달(정찬) 역시 주인공들이었던 것이죠. 사람이 살아아가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라는 느낌만이 들기만 합니다. 그 속에서 특별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두 남자 천둥과 귀동이 볼거리를 주었다고 할 수 있어 보였습니다.


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김진사(최종환)은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후회하고 진심으로 누우치게 됩니다. 단순히 아래패의 살생부에 적혀있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서 김진사는 거짓으로 벼슬자리를 내놓았던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에 의지해 참되게 살아가던 신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시대의 흐름을 타고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지만, 진짜 아들에게조차 아비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었죠.

가문이나 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권력과 벼슬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도 하나의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상소를 올리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 김생원을 천거함으로써 비리와 부패에 얼룩져있는 세상을 바로잡아달라고 찾았습니다.

그렇지만 김진사의 염원이었던 진짜아들인 천둥을 살리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천둥은 살아날 수도 있었겠지만, 사고로 인해서 죽음을 맞게 되었죠. 아래패를 쫓던 포도청 군사들은 포위되어 갇혀있던 천둥은 짝패인 귀동의 도움으로 도망을 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도청에서 귀동을 눈에가시처럼 여기던 공포교(공형진)의 암습에 의해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천둥의 허무해보이는 죽음을 시청하면서 허탈한 기분도 들었지만 과거 강포수(권오중)에 의해 주도되었던 민초들이 난을 일으켰었을 당시에도 도초군사들이 난을 진압하는 모습은 <짝패>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단지 몇년이 지난 후에 난이 수습된 모습으로 전개되었었죠. 어쩌면 천둥의 죽음도 강포수가 난을 일으켰던 때와 같은 모습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드라마<짝패>는 화려한 볼거리는 없었던 드라마였습니다. 홍길동전이나 혹은 일지매와 같은 사극액션물과 같은 모습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엮여져 음모와 권모술수가 보여지던 정통 사극물도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일반 민초들에 의해서 만들어져나가던 사극드라마였었죠. 천둥의 죽음이 허무한 모습이기는 했었지만, 짝패인 귀동의 품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 모습은 어찌보면 가장 <짝패>다운 죽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분이 뒤바뀐 천둥과 귀동의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막순은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쇠돌이에게 비로소 마음을 열어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고향으로 떠나게 되었죠. 어쩌면 착하디 착한 쇠돌이의 고집스러운 일편단심이 천둥이 바라던 세상은 아니었나 싶기만 하더군요.


가장 선하고 찾한 인물이었던 쇠돌아제는 남을 속이는 짓을 하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다못해 막순을 협박하는 조선달에게까지 자신에게 쥐어져있던 만냥짜리 환표를 서슴없이 줄만큼 물욕이 없었습니다. 쇠돌을 사모하는 큰년(서이숙)은 쇠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어찌보면 갖은 거짓을 만들어서 덴년이를 회유하기도 했었습니다. 하다못해 주막에 들린 양반네들에게 기생옷차림까지 입혀가면서까지 술시중을 들게 했었죠.

자신의 아들만은 호리호식하기를 바란 잘못된 모정으로 다른 사람의 자식을 거지움막에 보내버린 막순이나 자신이 사랑을 차지하게 위해서 가증스러운 행태를 보여주었던 큰년이, 비록 양반에서 거지꼴이 되어 비로소 인간답게 사는 것을 알게 된 현감에 비한다면 유일하게나마 부처님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던 인물이 쇠돌아제였습니다.

쇠돌아제의 사랑은 어찌보면 양반과 천민의 신분으로 나뉘어져 반상의 법도가 뿌리깊게 내려져 있는 잘못된 시대를 바로잡아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 사랑이었습니다. 유혹도 많도 고난도 많아지만 쇠돌아제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처럼 세상도 한사람의 고집스러운 의로움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변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비록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천둥이지만 짝패의 품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된 모습은 어쩌면 귀동과 천둥 사이에 놓여있었던 영원한 벽을 허문 모습이기도 했었습니다. 썩은 세상을 향해 총검을 휘두르는 의적인 아래적을 이끌던 천둥과 포도청에서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귀동은 결코 섞일 수 없는 관계였을 겁니다. 비록 귀동에 의해서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을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두 남자는 칼을 잡고 서로에게 겨누어야만 하는 사이일 수밖에 없었죠.

세상을 변하기 않았습니다. 김진사는 벼슬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김생원을 천거해 깨끗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했었지만, 깊게 뿌리내려져있는 부패와 비리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이 올 수도 있었겠지만, 천둥이 죽음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리와 부패는 존재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천둥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시작이 되어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게 될 겁니다. 동녀(한지혜)가 가르는 서당에서의 계몽을 통해서 조금씩 세상이 변하겠지요. 그리고 천둥이 떠나면서 세상에 남기고 떠났던 아이에 의해서, 아이가 안된다면 그 다음 아이세대에서 변화된 세상은 오게 될 것입니다.

<짝패>의 마지막회에서 달이(서현진)가 천둥의 아이를 안고 동녀와 귀동, 그리고 천둥의 아비인 김진사를 만나게 되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판도라의 상자>라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떠오르더군요. 판도라에게 제우스신이 상자를 주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판도라는 상자안이 궁금해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상자안에 있었던 전쟁과 질병, 슬픔과 가난, 증오 등의 세상의 모든 나쁜 것들이 밖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놀란 판도라는 급히 상자를 닫았는데, 마지막 희망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상자안에 남아있게 되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을 떠도는 온갖 가난과 질병, 전쟁과 시기 등에 얽매여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남아있는 상자안의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천둥은 죽었지만 아이에 의해서 새로운 희망이 태어난 모습이더군요. 어쩌면 아기장수의 전설은 천둥이 아닌 천둥의 아이에게서 실현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도 아니라면 아이의 아이에 의해서 다음 세대에 또다른 희망의 끈이 이어지게 되겠지요.
그동안 드라마 <짝패>를 시청하면서 '오랜만에 착한 드라마 한편을 본 듯 싶더군요. 이렇다할 크나큰 활극 액션은 없었다 하더라도 <짝패>가 전하는 주제만은 오랜동안 남아있게 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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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Shain 2011.05.25 18:50 신고

    저는 젊은 세대들이 이 드라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해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김운경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아기장수가 과연 누구냐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아쉽게 죽어간..
    아기장수가 아주 많지만.. 그 세대들은 그들의 희생을 잘 모릅니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 부분에서 많이 갈렸던 거 같더군요.
    민란이 성공치 못한 조선 후기 사회의 특징을 봤을 때
    천둥의 죽음은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황당한 결말로 받아들여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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