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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드라마리뷰

납량특집 혼, 유난히 많은 수중촬영 왜일까?

by 뷰티살롱 200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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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MBC 혼>

수목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MBC의 납량특집드라마인 <혼>에서는 유독 수중촬영씬이 많이 등장한다. 극중 주인공인 윤하나(임주은)은 장장 10시간에 걸친 수중촬영 탓에 저체온증을 일으켰을 정도로 드라마 <혼>에서는 수중촬영 모습이 눈에 흔히 띤다.
왜일까?(주관적인 견해입니다. 정설은 아니니 재미로 읽어주시길 바래요)

생명과 죽음의 갈림-물

물이라는 매개체는 하나의 죽음과 생명의 갈림을 의미한다. 인간이 어머니의 품속, 양수안에서 태줄에 의해 생명을 연장하고 세상에 태어나지만, 양수라는 물 속에 오랜시간을 웅크리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사람의 무의식에 물이 전해주는 편온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의식이전에 살아온 세상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물이 없으면 살아가지를 못한다. 공기가 있으나 물이 없다면 생명또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의 몸속에서 수분이 빠져나간다다면 고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이라는 것은 생명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모습이다. 고대사를 보게 되면 일례로 고구려 광개토태왕을 상징하는 문양이 우물로 승화되어 있는 모습도 있기는 하다. 흔히 하백이 물의 신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고 광개토태왕의 우물표시는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인 유화를 상징한다고 하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의 중심에는 우물, 즉 물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물이란 곧 권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할까

물과 영혼의 상관관계

극중에서 윤하나는 자신의 동생인 두나(지연)와 결합되어 빙의되는 모습으로 악한자들을 죽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는 죽은 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프로파일러인 신류(이서진)의 말처럼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방은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절대금지의 방이다. 방안에 누워있을 때 방안에 물이 들어차 하나는 물속에 잠기는 모습이 보여졌고, 물속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모습이 보여졌었다.

물은 일종에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그런 매개체로 보여진다. 일종에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근접할 수 없는 세계가 물속의 세계인 셈이다. 하나의 평온은 이러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때,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생명이 있는 상태의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보면 사람이 죽어 연옥으로 가게 되는 마지막 길에 레테의 강, 망각의 강이라는 곳을 지나게 된다. 그곳을 건너게 해주는 사람은 카론이라는 뱃사공으로 그에게 은화 한닢을 주어야만 건너편으로 데려다 준다. 그 때문에 유럽의 신화속에서는 죽은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눈커플 위에 은화 한잎을 올려놓는다는 얘기가 있다. 이는 오딧세이 일리야드라는 소설속에서도 등장하는 모습이다.

카론이 데려다주는 망각의 강은 전생에서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강이라는 전생과 사후세계를 연결하는 강, 즉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육신에서 영혼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라 할수 있다. 드라마 혼에서 하나가 물속으로 잠겨드는 모습은 자신의 순수한 영혼이 존재하는 세계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과의 빙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같은 빙의의 모습은 트럭이 강물에서 추락하는 씬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물속에 빠진 하나와 두나는 서로가 합쳐지는 빙의된 모습이 아닌 개별적인 모습으로 어머니를 구하게 된다. 또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욕실에서 물속에 잠겨있는 하나를 동생인 두나는 건드리지 못한다. 결국 프로파일러인 신류에게 알림으로써 하나를 살려내게 된다. 하나와 두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생명의 갈림이라 할 수 있는 물이라는 매개체가 둘 사이를 합쳐놓지 못하게 만든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영혼의 집착, 그리고 삶과 죽음의 매개체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면 <사랑과영혼>이라는 영화가 떠올리게 한다. 원작은 <고스트>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었지만 한국개봉에서는 <사랑과영혼>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바 있다. 이 영화에서 영혼이 된 남자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어떠한 말도 전달해 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찌해서 주변의 물건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건드릴 수 있게 된다. 그 매개체는 다름아닌 집착과 분노였었다.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이 물건을 움직이게 만들었었는데, 두나는 자신의 언니를 구하기 위해 신류에게 고함을 지르게 된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두나의 목소리를 신류가 듣게 되는 것은 이러한 두나의 강한 집착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다른 영화 하나를 떠올려 본다면 국내에서도 흥행한 영화중에 키아누리브스의 <콘스탄틴>이라는 영화를 기억하게 할만도 하다. 영화 <콘스탄틴>이 지옥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물이었다. 즉 지옥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생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매개체인 물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또한 지옥을 경험하는, 죽음을 볼 수 있는 매개체는 다름아닌 물이라는 것이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일까 그 반대일까?

납량특집극인 <혼>이라는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주중 드라마로는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빠져들게 되는 이러한 발직스러움이 숨어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한시간동안 전개되는 <혼>은 처음서부터 끝까지 온통 수수께끼 같은 퍼즐맞추기식의 내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복잡하기만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짜임새가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종이 애매모호한 몽환적인 이미지와 섬득함의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갈팡질팡스러움이 오히려 끌어당기는 모습이다. 10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채워질 <혼>은 이미 그 중간을 넘어서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신류는 윤하나를 이용해 점차 악마의 본성으로 변해가며 살인마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절대 변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얘기하면서 살인자는 어떠한 이유로도 교화되지 않는다는 무서움이 서려있는 논리를 지니고 있는 신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복수를 위해 하나와 두나를 이용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과연 신류는 악마일까 아니면 사회의 악을 정화시키는 선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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