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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국내여행

[경북 영주]단종 복위운동의 성지 '금성대군신단' 과 '압각수'

by 뷰티살롱 2016.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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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들어서는 계절에 경북 영주로 여행길을 잡았다. 경북 영주는 역사적으로 돌아볼 만한 유적지와 볼거리들이 많은 곳인데, 그중에서도 영주 선비촌은 매년마다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선비촌과 함께 맞닿아있는 최고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박물관은 하루일정의 여행코스로 손색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선비촌을 둘러보기 전에 역사적인 한이 서려있는 '금성대군신단'을 찾아보자. 선비촌과 가까이에 있어서 금성대군신단은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둘러보는 한 코스로 여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겠지만, 여행지의 한 부분으로 금성대군신단과 압각수를 소개해 보도록 한다. 

 

역사를 뒤돌아볼때, 고려를 멸하고 새롭게 창건된 나라 조선은 피의 숙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사극드라마를 통해서 너무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 등의 개국인사들은 왕위를 두고 칼로써 왕위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조선의 최고 성군으로 칭하는 이도 세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조선의 태평성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한글과 과학문명의 꽃을 피우며 가장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갔던 세종대왕이 세상을 떠나고 그 다음으로 왕위를 잇게 되는 이가 문종이다. 문종이 직접적으로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 시기는 고작해야 2년의 기간이었고, 5년의 섭정을 포함해 7년간의 재위기간을 지닌 왕이다. 문종은 세종의 치세를 이어받아 성군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허약한 체질로 오랜기간을 재위에 머물지 못하게 되었고, 권력은 종친세력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문종의 다음 보위를 이어받게 되는 왕이 단종이다.

 

 

불과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단종은 세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던지라 즉위 1년만에 왕위를 찬탈당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수양대군인 세조다. 계유정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세조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신하들 사이에서는 선대왕인 단종을 다시 복위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단종복위운동'이라 하며, 여기에는 익히 알려져 있는 성삼문, 박팽연,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여섯명의 신하인 사육신이 있다.

 

세조 2년,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은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돼 순흥에 위리안치(귀양을 간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둬 둠)된다.  금성대군은 이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고향의 유림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해 순절하게 된다.

 

이곳 금성대군신단은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제단이다.

 

단종 복위가 실패하자 순흥부는 없어졌지만, 그후 숙종 9년에 순흥부가 복원되고 순절 의사의 원한이 풀리자 숙종 19년에 부사 정중창이 금성대군이 위리안치 당했던 자리에 처음으로 단을 쌓았고, 숙종 45년에 부사 이명희가 삼단으로 고쳐 쌓았다.

 

그후 영조 18년에 경상감사 심성회가 서쪽으로 30~40보 옮겨 단소를 정비해 순의비를 세우고 관리사를 지어 매년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금성대군은 민간의 무속신앙에서도 숭배의 대상이 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금성당이 그 대표적이다.

 

 

이곳 경북 영주의 금성대군신단을 둘러보고 나서는 반드시 찾아봐야 할 곳이 한군데 있다. 바로 압각수라 불리는 은행나무다. 경상북도 보호수 제 46호인 압각수는 은행나무의 잎이 오리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압각수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충신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가 유명한 데에는 순흥과 흥망성쇠를 함께 한 경이로운 이력 때문이다. '순흥이 죽으면 이 나무도 죽고, 이 나무가 살아나면 순흥도 살아난다.'는 언제부터인가 순흥 사람들은 참요를 불렀다고 전한다.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운동(1456년)이 실패하고 순흥도호부가 초토화되면서 이 나무도 불에 타 죽어버리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세월이 흘러 밑둥치만 남아있는 나무에 새로운 가지와 잎이 돋아나더니 노래처럼 순흥부도 다시 설치됐다고 한다(1682년). 그후 순흥부가 명예를 회복해 금성단이 설치되고 그때 회생된 선비들을 모시게 된다. 

 

 

압각수는 수령이 무려 1200년으로 높이가 30m의 거목으로 밑둥치 둘레는 6m에 달한다. 압각수는 금성대군신단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직도 순흥의 옛 영화를 그리며 금성단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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