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인 '육룡이나르샤' 36회는 가장 명장면으로 남을만한 회였다. 선죽교라 불리는 정몽주 최후의 장소에서 마주한 이방원(유아인)과 정몽주(김의성) 두 사람이 나눈 '하여가'와 '단심가'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선문답으로 이루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상은 같았다. 정몽주와 정도전(김명민)은 같은 스승아래 배움을 함께 했던 동문이었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자는 데에 함께했었다. 거기에 이방원은 김명민의 커다란 혁명을 발견하고 같은 길을 가려 했다. 이미 걷잡을수 없을 만큼 부패가 만연한 고려를 두고 이상이 같았던 세사람의 길은 달랐다.

 

고려에는 미래가 없다며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라 여긴 정도전과 달리 정몽주는 자신이 나고자란 고려를 버릴 수 없었는 충신이었다. 그렇기에 뜻은 같았지만 함께 할수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정도전은 고려를 버리지 못하는 정몽주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려 했다.

 

주군으로 새로운 나라의 군왕이 될 이성계 또한 포은 정몽주가 없이는 결코 왕위에 오를 수 없다는 뜻을 굳히지 않았다. 사직을 떠난 이성계는 사냥하던 중에 낙마하고 그 기회를 틈타 정몽주는 역성혁명을 계획하고 있는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기로 나섰고, 정도전을 유배지에서 개경으로 이송했다.

 

정치는 냉혹하다. 패권을 쥐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 고려말의 정치였다. 부상을 당한 이성계를 문병온 정몽주를 보낸 이방원은 자신들이 이루려 한 새로운 나라에서는 결코 정몽주가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죽교에서 죽였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36회 선죽교에서의 정몽주와 이방원이 나눔 '하여가'와 '단심가'의 선문답은 작품의 명장명으로 기록될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에 전해져오는 이 두편의 시조는 사실상 최후를 눈앞에 두고 나누었던 이방원과 정몽주의 선문답이 아닌 서신을 통해 교환된 시조였을 것이다.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천호진)의 5남인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서신을 보내며 자신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는데 함께 힘을 합치자는 내용의 글을 써서 보냈지만, 정몽주는 고려왕조를 결코 버릴 수 없음을 알리는 시조를 보냈다. 그로 인해 이방원은 결코 자신들과 함께 뜻을 할 수 없는 인물임을 알기에 죽일수 밖에 없다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성계의 낙마를 빌미로 자신들의 세력을 와해시켜려 한 정몽주를 죽인 것이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임으로써 새로운 나라 조선창업이라는 역성혁명의 한가운데에 들어서게 됐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개혁을 이끌었던 정도전마저 정몽주의 죽음으로 더이상 개혁의 길에 '이방원의 자리는 없다'며 일축했다. 특히 아버지인 이성계마저도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임으로써 백성들의 민심이 돌아서게 됐고, 새로운 나라의 창업은 더이상 민심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호통쳤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절제절명의 위기에서 이방원의 행동은 어찌보면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는 사건이 정몽주 사건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방원 자신은 조선건국과 함께 철저하게 배제당했다.

 

결국 이방원은 정몽주을 죽임으로써 정도전, 이성계 등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는 대업을 함께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패업의 길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었던 회가 36회였다. 더 이상 정도전은 자신의 스승이 아니었고, 패업을 이룬 나라에서 아버지 또한 부자의 관계가 아닌 패왕의 한사람으로 홀로 서야만 하는 고독한 군왕의 자리를 넘보게 되는 전환점을 맞은 것이라 할수 있었다.

 

그것이 이방원에게 주어진 고독한 군주의 길이자, 망령처럼 자신의 머리속에서 떠나고 있지 않는 홍인방(전노민)의 저주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허나 홍인방의 저주 이전에 이미 개혁의 길에, 새로운 나라의 길에서 이방원의 자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운 나라에는 재상이 모든 정치적 결정권을 지니게 된다는 정도전은 왕의 친인척이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게 새로운 나라의 구상이었다. 본시 권력이란 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되기 마련이고, 왕의 친인척이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면 고려왕조의 다르지 않고 단지 왕씨에서 이씨의 나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논리다.

 

때문에 이방원은 정도전이 있는 한 자신의 자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마련이다. 더욱이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을 몰아세우며 더이상 새로운 나라에 설 수 있는 자리가 없다고 말하며 등을 돌린 상황이니 이방원과 정도전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모습이었다.

 

정치는 힘이 아닌 '책임'이라는 신념을 잃지 않은 정도전은 정몽주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며 비통함에 빠져들수만은없다. 이상이 같았고, 함께 하고자 했던 유일한 사람 정몽주가 죽었지만, 그 죽음의 원인에는 자신또한 포함되어 있었기에 슬픔을 참아내고, 살아남은 사람으로써의 책임을 다하고자 마음을 굳혔다. 유자의 길을 택하며 끝없이 회유하고 설득하려 했던 정도전의 노력은 이방원에 의해서 사라져버렸고, 패업의 정당성마저 희석됐지만, 그 또한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의 무게였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이방원은 외로운 군왕의 길로 들어섰고, 정도전은 살아남은자의 책임을 다해야만하는 고독한 길을 걷게 됐다. 앞으로 두 사람의 갈등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정몽주의 죽음이 완전한 고려의 패망과 새로운 조선의 건국은 아닐 듯 싶기도 해 보인다. 이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다루어지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육룡이 나르샤'는 허구를 통해 창작돼어진 드라마라는 점을 눈여겨 볼때, 고려의 최후에는 약점을 찾을 수 없는 무사 척사광(한예리)의 최후가 함께 하지 않을까 예상이 들기도 하다.

 

정몽주를 죽이기 위해 뒤를 따랐던 이방원 일행은 2개조로 나뉘어 호위무사인 척사광(한예리)를 상대하는 이방지(변요한)와 떨어졌다. 드라마 '육룡이나르샤'에서 곡산검법의 척사광과 삼한제일검 이방지의 대결은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부분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결에선 승자나 패자가 없었다. 뒤따라온 무휼(윤균상)은 척사광을 끌어안고 낭떨어지로 떨어지게 됨으로써 대결이 빗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삼한제일검인 이방지가 척사광을 죽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성계와 이방원, 정몽주와 정도전 등의 실존 인물들과 어울어져 있는 캐릭터들이 척사광과 이방지 그리고 무휼과 분이(신세경), 연희(정유미) 등이다. 이들 캐릭터 들 중에 척사광과 이방지 그리고 무휼은 각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사로 등장하는게 눈에 띈다.

 

즉 이방지는 길태미(박혁권)을 죽임으로써 삼한제일검이 됐다. 고려제일검도 아닌 삼한제일검이라는 점은 주목해볼만한 부분일 듯 하다. 척사광은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도엽)을 호위하는 무사다. 즉 고려왕조를 대표하는 무사는 이방지가 아닌 척사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해 보인다.

 

거기에 아직까지 아무런 칭호도 얻지 못한 무휼의 존재는 척사광과의 대결로 새롭게 건국되는 조선제일검으로 거듭나게 될 듯하다. 이방지가 아닌 무휼이 조선제일검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검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닌 도구가 조선건국이라는 뜻을 이어받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방지와 무휼은 검술로는 한수 아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휼이 조선의 제일검이 되는 까닭은 서로 죽고죽이는 싸움에서도 척사광을 죽이지 못했던 것과 맥락이 같다고 보여진다.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는 검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닌 사람을 보호하는 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조선건국이 한발 앞으로 다가선 '육룡이 나르샤' 36회였다. 실존인물인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의 대립도 눈에 띄지만, 무사들의 진검대결인 척사광과 무휼, 이방지의 대립도 지켜볼 중요한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출처=SBS '육룡이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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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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