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강경은 여러모로 찾아볼 만한 국내 여행지다. 근대화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기도 한데, 젓갈로 유명한 강경시내를 이곳저곳 다니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픔 역사때문에 울컥해지기도 한다. 한국의 근대화는 그리 화려하고 기분이 나아지는 신문물의 유입보다는 오히려 침략과 침탈의 역사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모습을 비췄던 일본의 '군함도'라는 곳을 기억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한데, 일본은 그곳을 근대화의 집합체니 뭐니 하면서 관광객들에게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와 함께 하하가 찾은 곳은 하시마섬의 버려져 있는 한국인 징용인들이 무덤을 찾았었다. 온갖 수탈의 대상이었던 하시마섬이 어떻게 일본의 근대화의 상징으로 둔갑돼 세계인들에게 소개되고 있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올 뿐이다. 그네들에게는

 

 충남 논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연무대, 즉 군대를 떠올리기도 할 듯하다. 얼마전 필자의 조카도 군입대를 위해서 논산 연무대 훈련소에 입소했으니 우리나라의 자식둔 부모님들은 대체적으로 논산과 연무대를 떼어놓을 수 없을 듯하다.

 

충남 논산 강경에는 유서깊은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그중에서도 강경 젓갈은 전국적으로 이름나 있다. 요즘같은 김장철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새우젓인데, 강경의 새우젓은 으뜸으로 손꼽힌다.

 

왜 이곳 강경 젓갈이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백제의 대표적인 수원지인 금강을 따라 내륙으로 깊이 뱃길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륙 깊숙이 포구가 형성돼 있어서 전국으로 수산물을 운반하는 데에도 더없이 편리하고, 또 내륙의 물자를 수송하기에도 편리하다.

 

이곳 논산 강경에서 백제의 마지막 격전지로 불리워지는 계백의 황산벌 전장터는 그리 멀리지 않다.

 

강경 시내 어디를 보더라도 눈에 띄이는 것이 젓갈 상회다. 맛좋은 젓갈을 판매하는 곳인데, 관광객들도 많이 찾기로 이름난 곳인만큼 상점들의 수도 셀수없을 만치 많다.

 

하지만 이곳 강경은 처음엔 우리가 알고 있는 새우젓 보다는 홍어와 갈치, 고등어 등 많은 생선들이 거래되었고, 그중에서도 조기가 으뜸으로 취급되던 곳이었다고 한다. 생선들이 많이 유통되다 보니 남으면 저절로 소금에 절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젓갈이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해서 강경에 배가 들어오기 시작하먼서부터 젓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3대 시장이 문을 닫은 뒤로 맥이 끊겼다가 현재는 다시 젓갈축제를 열어 강경젓갈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강경의 조기는 전국 곳곳에 팔려나갔다. '파시'는 한철에 배가 들어오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기에 형성되는 장을 말하는데, 조기가 날 때는 풍성하게 장이 섰다가 조기가 떨어지면 장이 파했다. 강경 젓갈은 전국의 60%를 감당하고 200년의 역사를 가졌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구한말 때에는 여러 척의 배가 드나들며 장사를 하다가 남은 생선으로 소금에 절여 보관을 하는 염장법이 개발돼 지금의 젓갈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것갈의 역사가 159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인 김치가 떠올려보면 구한말보다는 오히려 더 오래인 1590년이라는 주장이 더 신빙성이 높아보인다.

 

하지만 이곳 강경은 이러한 근대화의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근대화 시기인 일본의 침략의 현장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에서도 배웠듯이 일본은 우리나라의 물자를 수탈해갔다는 사실을 배웠을 법한데, 논산과 가까운 군산포구가 그 대표적인 곳이다.

 

농업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는 것은 역시 곡식이다. 벼농사를 통해 쌀을 수확하는 농업형태를 지니고 있는터라 전라도 지역과 드넓은 평야지대에서 나는 쌀을 운반하는 항구가 군산항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모습을 바꾼 구한일은행건물이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건물로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형태는 좌우 대칭형으로 지진이 많이 나는 일본의 건축기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상권의 중심이 된 강경에 1905년에 한호농공은행이 들어섰고, 젓갈냄새가 가득한 강경거리에 세련된 붉은 벽돌 걸물이 세워진 것은 강경의 경제가 얼마나 부흥을 이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반듯한 좌우대칭을 보여주는 외관과 천정고가 높아 실재 공간에 비해 내부 공간이 환하고 넓어보이는 이 건물은 화려한 장식과 규모에 비해 상당히 줄입구는 작은 게 특징이기도 하다.

 

 

 

 

 

강경을 관광의 목적으로 찾았다면 가장 먼저 찾아봐야 할 곳이 이곳 강경역사박물관이다. 강경의 어떤 점들을 주목해서 봐야하고 어떤 지역이었는지를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역사박물관은 안전하고 굳건한 은행의 이미지가 확실한 모습인데, 일제시대와 해방을 거치면서 한일은행과 조흥은행이되었고 현재의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됐다.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강경의 옛모습과 현재까지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근현대 시절의 소품들까지도 다양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일은행 시절의 금고도 그대로 있는데, 금고의 규모는 당시 강경의 경제를 짐작케 한다.

 

 

 

강경은 포구가 유명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최초 기독교문화가 꽃핀 곳으로도 유명하다.

 

기독교 문화 이전에 최초의 유교문화가 꽃피웠던 곳이기도 하고, 최초의 신사참배거부, 최초이 일본역사 거부, 스승의 날 발원지 등 최초라는 말이 자주 붙는다.

 

강경의 정신문화가 실로 대단했다는 모습이기도 한데, 189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개신교인 침례교 예배조가 들어왔고, 그때부터 제일감리교를 비롯한 기독교문화가 생겨났다.

 

교회를 통해서 일제시대와 현대로 들어서는 문화를 접하게 되는 곳이 이곳 강경이다.

 

강경이 내려다보이는 옥녀봉을 찾는 것만으로도 강경의 역사탐방을 끝마쳤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이곳 옥녀봉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가 있었다고 해서 '옥녀봉'이라 한다. 이곳은 다양한 강경의 역사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첫째로는 옥녀봉 입구의 교회가 그것이다. 1897년 미국 선교사 폴링이 강경침례교회를 설립한 곳으로 우리나라 최로츼 침례교회다.

 

침례교회대신에 중앙 감리교회를 카메라에 담았다.

 

강경침례교회는 한강 이남에서 지어진 최초의 ㄱ자 형태이 교회로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형태다. 1895넌 북한의 소래교회 이후 세번째로 탄생한 교회가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치하 당시 우리민족 말살 정책과 항일사상의 근거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폐교 방화한뒤 신사당의 부지로 사용했다. 이후 현재의 침례교회 전국총회에서 이곳에 가옥화 터를 침례교단 사적지로 지정해 과거의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됐다.

 

옥녀봉 꼭대기에 마련돼 있는 봉수대다.

 

향토유적 제38호로 지정된 기독교 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예배지다. 옥녀봉 아래에 마련돼 있는 이곳 최초 예배지는 조선말기 강경과 인천을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 집사의 가택이었다. 그는 1895년 미국 보스턴의 침례교단에서 파송한 하울링 선교사에게 침례를 받았다.

 

그후 1896년 2월에 이곳에서 첫 주일예배를 올렸다. 그래서 이곳은 침례교 축내 최초의 예배지가 되었고, 기독교 한국침례회가 태동한 곳이 되었다.

 

옥녀봉에는 볼거리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모습들이 곳곳에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사다. 현재는 신사는 없어졌는데, 신사로 올라가는 길은 직선이 아닌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형태다. 아마도 고개를 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리며 올라가라는 일본신사 특유의 유형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현재는 신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신사를 관리했던 건물이 남아있다. 관리건물은 한쪽 벽면을 그대로 옮겨놓아 역사적 유뮬로 남겨놓았다. 아픔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관리건물 옆쪽으로 길다란 주춧돌 형태의 시금석이 옮겨져 있는데, 신사를 지은 주춧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찾는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발아래로 밟고 지나가게 되었으니 한번쯤 강경을 찾는다면 추춧돌을 밟고 지나가면 어떨까 한다.

 

옥녀봉에는 놓칠수 없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해조문' 이라는 것이다. 논산시 향토유적 제4호인 해조문은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이다.

 

옥녀봉 정상 부근에 있는 천연 바위 절벽에 가로 131cm, 세로 110cm의 음각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조석표는 시각의 변화만을 다루면서 물발의 세기를 언급할 뿐이었는데, 암각문의 저자 송심두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원리를 전통사상에 따라 풀이하고 처음으로 만조시각고 함께 물의 높이를 다루고 또 그것을 계량화해 표시했다.

 

이런 점에서 암각 해조문은 비록 소박해 보이지만 현대 조석표의 두 요소인 시각과 높이를 모두 갖춘 최초의 조석표라 할 수 있다. 또 해조문은 시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심이 높낮이를 계량화해 기록함으로써 현대적 조석표의 구성요소를 구비한 획기적인 것이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에 유서깊은 포구들의 많이 잇는데, 포구에 누구라도 쉽게 보고 고기잡이와 항해, 소금생산 등 해양 관련 모든 부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조문을 새겨놓은 곳은 강경포구가 유일하다.

 

 

 

 

 

옥녀봉을 내려오면서 만나게 되는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이다. 이곳 역시 등록문화재 제42호로 지정돼 있는 건물이다. 한옥교회는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건축양식으로 매우 독특하고 건축구조와 평면구성을 보여준다.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가구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시기 건축기술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한옥교회의 현존사례가 극히 드문 현실을 가안하면 이 건물의 회소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수 있다.

 

초기 한옥교회는 건물 전면에 별도의 문을 두어 남녀신자를 구분했다. 또 교회의 기능에 충실한 평면의 변화와 상부 가구구조의 구성기법 등은 초기 기독교 한옥교회의 근대화에 따른 건축적 변화정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구구조는 9량 구조로 일반적인 가구법에 따라 내부의 고주를 협칸의 기둥열에 맞춰 세우고 대들보와 퇴보를 걸면 상부가구도 편리할 뿐만 아니라 내부도 신랑과 측랑으로 구분돼 공간활용이 용이하다.

 

 

 

 

 

강경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은 시내에 모여있는 가옥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타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가옥들의 이곳 강경 근대문화유산 거리에서 찾을 수 있는데, 모두가 일제강점기 아픈 과거라고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일본의 건축양식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처마를 두개씩 두고 있는 '적산가옥' 형태를 띠고 있다. 쉽게 설명한다면 처마가 두개인 셈인데, 빗물이 떨어지는 부분을 이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할만하다.

 

강경에서 가장 잘 조성해 보존해 놓았다는 '적산가옥'의 한 집을 방문해 보았는데, '적산가옥'이 어떤 모습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집이었다.

 

김대건 신부의 귀국 첫 사목지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9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안토니오 신부, 신도 11명과 함께 강경포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외딴 곳에 도착해 유숙했던 곳이다.

 

당시 구순오의 집으로 이곳에서 한달 남짓 머물고 기도와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교의 발판을 이룬 유서깊은 성지인 셈이다.

 

 

 

내친김에 한곳을 더 소개해 보기로 한다. 옛날 연수당 건재 약방으로 이 건물 역시 등록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연수당 한약방은 지상2층 규모의 한식 목조 건물로 1923년에 건축됐따. 지붕은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지붕내부의 상량문을 통해 지어진 년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강경의 하시장을 중심으로 번성시기에 시장 중심에 위치해 호황을 누리기도 했었다. 1920년대 활영되어진 강경시장 전경사진 속의 건물들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로 건축당시 남일당 한약방으로 사용되던 것을 건축주가 바뀌면서 연수당 건재 한약방으로 상호를 변경해 현재까지 관리되고 있다.

 

전통적인 한식구조에 상가의 기능을 더해 근대기 한옥의 변천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로 전면은 4칸이며 측면은 비늘판벽을 댄 ㄱ자형 건물이다.

 

젓갈로 유명한 논산 강경이니 저녁은 한상 가득한 젓갈 정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하루종일 강경시내와 옥녀봉, 기독교 발생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허기가 진다.

 

강경의 젓갈집을 찾아 저녁을 해결하고 유명한 젓갈을 구입하는 것도 손쉽다. 바로 식당과 젓갈상회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면서 젓갈가격을 흥정해보면 그래도 얼마를 저렴하게 판매해 준다. 하지만 한마디를 한다. 강경젓갈은 100%의 성실한 제품이니 이곳에서 가격을 흥정하지는 말아달라는 얘기다. 그만큼 제품에 대해서만큼은 신용과 최상품이라는 말이다.

 

청란젓갈은 말 그대로 밥도둑이었다. 10여가지가 넘은 젓갈 중에서도 맛나기가 명란젓보다 고소함을 더한다. 토하젓에서 새우젓, 오징어젓, 멸치젓 등 갖가지 젓갈과 함께 한 한끼 식사는 황홀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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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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