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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징비록, 신립의 패배와 선조의 파천...이순신 장군 등장은?

by 뷰티살롱 201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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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극드라마 '징비록' 14회에서는 고니시(이광기)가 이끄는 왜군 1만 8천의 군사들이 파죽지세로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충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여졌다.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의 시작과 함께 충주 탄금대에서 마주한 신립장군의 격전은 사실상 조선왕조의 계속되는 파천길을 예고한 것이라 할만하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고니시는 선조와의 교섭을 고려해 북진하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에 비해 가토(이정용)은 고시니보다 늦게 부산에 들어오게 되면서 고니시와의 경쟁하는 대립구도를 보이며 빠르게 북상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고니시와 충주에서 마주하게 된 신립(김형일)은 류성룡(김상중)의 충고를 뒤로 한채 벌판에서 왜적을 맞아 기마병으로 물리치려 하는 전술을 택하게 됐다. 드라마속에서 비춰진 신립장군과 고니시의 대치장면에 다소 의아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역사속에서 신립 장군은 왜의 조총에 대해서 조선의 활을 비교하는 장면이 '징비록'에서도 자주 등장하게 되면서 조총의 정확성과 사거리 그리고 장전 속도를 두고 조총이 화약에 의한 신식무기이기는 하지만 조선의 활에 비교되지 않는다는 말이 등장한다.

 

 

넓은 개활지에서 신립장군이 고니시를 맞서 싸웠다면 신립장군의 승리에 승산이 있다해도 전혀 무방하지는 않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고니시의 전술은 넓은 개활지에서 신립장군과의 전면전보다는 류성룡이 신립에게 얘기한 은폐와 기습작전으로 응대했다 한 것이 옳을 듯 하다.

 

바다를 건너온 왜구는 신립장군이 이끄는 기마병에 비해 움직임은 빠르지 않을 수 있기에 도리어 앞이 내다보이는 개활지에서의 전투는 불리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헌데 어떻게 신립장군이 패배했을까? 고니시는 교란과 기습을 역으로 이용해 신립장군의 기마부대에 맞섰다. 고니시는 조령을 넘어서면서 험난한 산세를 보며 적이 매복하지 않았음을 천우신조라 표현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고니시가 충주로 들어서면서 부대를 여럿으로 분산해 신립장군의 부대와 만나게 된다.

 

좁은 지형을 피하고 넓은 개활지에서 왜군을 맞게 된 신립장군은 오히려 역으로 고니시의 군대에게 포위되는 형국을 맞게 됨으로써 사실상 전군이 진격해서 싸우게 되는 기마부대의 특수성을 살리지는 못하고 오히려 위협에 빠지게 됨으로써 패배를 당하게 된다. 조선군의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신립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왜군에 맞서 싸웠지만 패배하게 됨으로써 한양까지 단숨에 올라가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1592년 4월에 일어난 신립장군의 패전 소식으로 조선 선조(김태우)는 단 하루만에 도성을 버리고 파천을 결심하기에 이르게 되는데, 백성들은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왕과 신하들이 모습에 도성에 불을 지르게 되기도 합니다. 조선 선조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붕당정치로 인해서 백성들의 원성이 어느정도였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3월 29일 방영된 '징비록' 14회에서 신립장군과 고니시의 대치장면이 클라이막스로 끝이 났다. 이는 계속되는 선조의 파천과 임진왜란이 새로운 양상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립장군이 충주에서 적을 맞아 싸우며 방어선을 구축하는 동안 북방의 군사들을 모아 남쪽으로 이동시킨다는 조선조정 대신들의 대비책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 기마병은 정예병이자 조선육군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다.

 

신립장군의 전사로 왜군의 사기는 높아지게 되고 육지에서는 계속되는 패전과 선조는 계속되는 몽진길에 오르는 모습들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그와 함께 종묘사직을 이어가려 한다는 명분으로 세자책봉이 급하게 이루어지게 그 자리에 광해(노영학)가 자리에 오르게 된다. 광해는 전국적으로 의병을 모아 왜군에 맞서싸울 것을 종용하게 되고 육지에의 전투는 조선정예병의 전투와는 달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의병활동이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

 

 

드라마 '징비록'은 해군의 활약상을 배제하고 이어갈 수 있을지가 주목되는 드라마다. 특히 임진년과 정유년으로 이어지는 왜란과는 끊을 수 없는 인물이 이순신이기도 하다. 조선조정을 배경으로 서예 류성룡을 주인공으로 세우기는 했지만, 역시 이순신 장군의 등장없이 드라마가 이어갈 것인지 주목되는 기로에 섰다 할만하다.

 

신립장군이 탄금대에서 전사하고 조선 선조는 4월 30일 파천길에 오르게 된다. 충주방어선이 와해되고 한양으로 이어지는 육군의 방어선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기에 이루어진 결정이라 할만하다. 그와 함께 이순신의 첫 전투인 옥포해전은 5월 7일의 일이다.

 

선조 25년 옥포에서 왜선 26척을 분멸한 이순신 장군의 최초 승전보이기도 하고, 계속되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서의 승전으로 육지에서의 왜군의 진격에 발목이 잡히게 되는 왜란의 전환점을 맞았다 할만하다. 헌데 과연 옥포해전의 전투를 단지 장계로만 드라마에서 풀어나가게 될지 아니면, 이순신 장군의 배역을 맡게 될 배우가 등장하게 될지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출처=KBS 주말사극드라마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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