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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국내여행

[경주 여행]신라의 천문학과 건축과학을 엿볼 수 있는 '첨성대'

by 뷰티살롱 2014.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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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경주여행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곳을 더 소개해 보기로 하자. 경주 역사유적 월성지구에는 신라의 특정 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선덕여왕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의 여왕이기도 한 선덕여왕의 업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경주 역사유적 월성지구내에 있는데, 월성왕궁터와 첨성대다. 월성은 신라의 왕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명칭이 나왔던 바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여긴다.

 

최초의 여왕으로 신라를 다스렸던 선덕여왕은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시켜 삼한일통의 기틀을 만들기도 했는데, 현대에는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황룡사 9층목탑 또한 선덕여왕 제위시기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석탑이 아닌 목탑으로 지어진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실로 그 모습이 장관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선덕여왕 제위시기 건축물로 현대에까지 남아있는 것이 바로 첨성대다. 첨성대는 익히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천문을 관측하기 위한 건축물로 과학적인 설계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신라시대 대표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첨성대에 대한 견해와 의견이 달리 나오기도 하는데,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천문건축물이 아닌 제사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설도 등장한다. 그도 그럴것이 첨성대 안으로 들어서서 위로 올라가 하늘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들어서는 공간이 너무도 비좁기 때문이다.

 

 

정사각형의 기단 위에 30㎝ 두께의 돌 362개를 27단으로 쌓아 올린 술병 모양의 형태이며, 한가운데에는 네모난 창이 뚫려 있고, 맨 위에는 2단의 정자석을 올려놓았다. 이 정자석 위에 혼천의와 같은 관측기구를 설치하고 별을 통해 동지·하지·춘분·추분 등의 24절기를 측정한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다.

 

하지만 과연 하늘을 관측했던 건축물인까 하는 것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일 듯하다. 단지 천문을 살피기 위한 건축물이라 여기는 이유는 선덕여왕 제위기간에 신라는 천문학이 우수하게 발달했다는 기록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첨성대의 건축 설계는 모서리가 방위를 나타내고 있어 과학적인 설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하늘을 관측하는 건축물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높다. 동양에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기도 하다.

 

 

첨성대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는 9.17m이고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의 돌의 형태는 불규칙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과 흙으로 채워져 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밑부분을 지탱하는 아랫부분이 튼튼해서 오랫세월동안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중간부분에 우물 정 형태의 판돌을 길게 맞물려 놓은 점은 석조건물이 비틀리지 않는 균형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보다 안정적으로 첨성대가 축조될 수 있게 된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고 하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생각해볼 때, 첨성대의 의미가 단순히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관측대였던 용도는 아니었을 거라 여겨진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이 삼국시대에 하늘을 읽는다는 것은 곧 왕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이 신라궁으로 들어가 월식을 예견하던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와 함께 덕만공주가 모습을 보이며 미실과의 본격적인 대립을 알리는 대목이 등장한다.

 

 

 

 

첨성대는 일종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였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여왕의 등극으로 신성함을 백성들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준 건축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천문대를 월성과 가까운 곳에 축조한 것도 그러하거니와 산이 아닌 평지에 만든 것 또한 이같은 추측을 만드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신라시대 당시 가장 웅장했을 것이라 여겨지는 황룡사 9층목탑을 놓고 본다면 첨성대는 또하나의 왕권에 대한 강화를 알린 대표적인 건축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첨성대의 축조기간은 정확하게 신라 어느시대라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으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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