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백두대간을 따라 산세좋은 등산로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험하디 험한 산길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도 있지만, 어떤 곳들은 마치 동산을 오르는 듯한 가벼운 조깅길을 걷는 듯한 등산로들도 많다. 충북 충주이 하늘재라는 곳은 후자에 속하는 곳이라 할만하다.

산세가 험하다 여겨질 정도의 높이는 아니다. 미륵리사지에서 40여분을 걸어오르면 하늘재 정상에 도착하게 되는 곳이다. 얼핏 하늘재의 이름에 지레 걱정부터 앞서지 않을까 싶은 곳이다. 마치 험한 고갯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다보면 하늘까지 이어졌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높디높은 고봉을 연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산에서 부는 바람이 그다지 따스하지만은 않은 4월의 날씨탓이었을지 미륵사지 주차장에 차가 없는 한산한 모습이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바람은 다소 시원함이 들기도 했었는데, 오전에 출발할 시간에는 차갑다는 느낌마저 들었드랬다.

산을 오른다는 말에 두꺼운 잠버의 내피를 벗고 가벼운 외피만을 몸에 두르고 일찌감히 앞서서 걸어가는 일행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늘재 국립공원인지라 주차장 인근부터 등산객의 발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하는 모습들이 가득하다. 주차장 입구 인근에는 미륵리 마을회관이 눈에 보이는데, 마치 하늘재의 이정표마냥 간판은 정감이 들기도 하는 모습이다.


산에서 맞는 벚꽃길은 기온이 낮아져인지 도심에서 맞는 것보다 시간이 늦춰져 등산객들을 맞았다. 4월 중순이면 이미 낙화되었을 것인데,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어서오라고, 반갑다고 손짓하는 듯한 모습에 걸음은 더디져만 간다.


미륵사지 주차장에서 10여분을 걸어들어가게 되면 본격적인 탐방로가 시작되는데, 하늘재를 찾게 되는 여행객들은 자연탐방로인 하늘재를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륵대원지를 찾기 위한 여행객들도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 넓지 않는 절터를 갖고 있기에 산책하면서 과거에 지어졌을 절터를 구경하기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충주 미륵대원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봄으로 들어서는 시기였던지라 본격적인 등산철로 접어 든 탓이었을지 관광가이드의 설명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어 미륵대원지의 이곳저곳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높이 10.6m의 거불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을 비롯해, 미륵리 석등과 오층석탑 등이 남아있어 귀중한 문화의 보고가 이곳 미륵대원지이다.(충주 미륵대원지에 대한 포스팅은 추후 다시 한번 자세하게 기술해 보기로 하고, 본 포스팅에서는 하늘재로 오르는 등산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를 코를 자극했다. 미륵대원지 일대의 산에서 채취했다는 산더덕을 정성스레 손질하면서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바삐 움직이고 더덕 내음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던 탓이다. 더덕의 옷을 벗기자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아주머니는 시식하기 위해서 마련해 놓은 고추장에 찍어 지나치는 필자에게 건네며 맛을 보라고 권한다.

미륵대원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하늘재로 오르는 중이라는 말에 '내려오면서 사시면 되지요~' 하며 웃으며 말씀하시는 통에 계면스럽게 더덕 한뿌리를 건네받고 맛을 보았다. 향긋한 향이 입안으로 퍼진다.


하늘재로 오르는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미륵리 원터. 충주 미륵대원지 창건과 더불어 지리적 중요성이 큰 이곳에 원을 별도로 세우고 운영했던 것으로 보이는 원터는 고려초기 충주와 문경을 잇는 계립령로에 위치하며 충주를 넘어가면 문경 관음리에 절터가 있는데, 이 또한 원의 기능을 갖추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 조령이 개통되면서 미륵리의 원은 점차 그 기능을 상살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에 대한 조사결과 두차례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물의 형태는 중첩 사각형태 구조로 가운데에는 말을 묶어 두는 마방을 두고 주변에 여행자와 고리인이 기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한다.


미륵리 원터를 지나니 계획했던 충주 하늘재의 등반로가 시작된다. 아차 싶었다. 사실상 하늘재를 오르는 등반로는 30~40여분이 지나는 짧은 등산로지만 미륵사지 주차장에서 출발하게 된다면 1시간여가 필요한 거리가 아닌가.

미륵사지 주차장에서 미륵대원지까지 오는 여정만으로도 시선을 빼앗기는 자연의 모습에 발걸음을 늦추게 되었던 탓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겨울을 지나고 과수원에서는 수확을 준비하기 위해 과수들을 다듬어놓은 모습들도 눈에 보였으니 쉬엄쉬엄 걷는 여행객의 발걸음은 늦어지기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늘재의 주 탐방로를 알리는 이정표와 솟대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충주 계립경로인 하늘재는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에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왕 3년에 개통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죽령보다 2년 앞선 것으로 오래된 고갯길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로 고구려가 남진할 때 중요한 거점이 되기도 했으며, 신라가 북진할 때에도 길목이 되어 충주지방을 확보하는 통로였다.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 고개를 넘어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중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을 조성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충주는 어떤 곳일까?

백두대간을 축으로 한 남한강과 중상류에 위치해 있어 한반도의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지역이다.  마한에서 일어난 백제는 63년 충주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신라의 보은지역까지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이 지역에서 10수년동안 수차례 서로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대립되어 있는 삼국시대에는 이곳 충주는 영토를 빼앗고 빼앗기는 전장의 한복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427년 고구려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남진정책을 펴 진천과 음성, 도안, 괴산, 연풍, 단양, 영춘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고 중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충주를 중원성이라 이름하여 중원 고구려비를 세웠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5소경, 중원경, 서원경, 남원경, 금관경을 두어 실질적인 통일의지를 표현했고, 고려 태조 23년에 중원은 충주하 개칭했다.


삼국시대의 주원문화의 중심지였던 충주. 역사적인 사실들을 생각하며 하늘재를 오르는 길은 그리 높지 않은 산책로라 여길만큼 가볍다. 돌을 쌓아 길을 만들고, 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과거의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상상속을 유영해 본다. 길옆의 돌무더기에는 오랜시간동안 버텨온 시간이 쌓여던 것인지 자라난 이끼의 두께가 돌두께만큼 깊게 여겨진다.


하늘재는등산로라기 보다는 자연탐방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관찰로 갈림길의 구름다리가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어 마치 산속으로 들어서게 되면 갖가지 이름모를 들풀과 수목들이 무성할 것만 같은 신세계로 접어드는 초입처럼 여겨진다.


전문 산악인은 아닌 필자지만 등산로나 국내 여행지를 어느정도 찾아가보았지만 하늘재의 모습은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특별한 기암괴석은 쉽게 찾아볼 수 없이 소담스러운 산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하늘로 뻗어있는 수목들이 시원함마저 들게 하는 탐방로이다. 하늘재 산길을 오르면서 필자는 산림욕을 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산책로라는 생각이 쉼없이 들기만 한다.


울퉁불퉁 비포장 길은 하늘재 고갯마루에 이르러 쭉 뻗은 아스팔트 길로 이어지는데, 서쪽으로 문경 대미산 정상이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기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신라가 일찍부터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백제와 고구려는 남진을 저지했던 전략적 요충지였었다.

전국으로 이어진 아스팔트 길이 오늘날에는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고 있지만, 과거 삼국시대에는 험한 산길을 따라 군사적인 요충지로 삼았었다니 시간을 늦추어 느릿느릿 걷는 하늘재의 도보가 역사기행으로 여겨질만도 하겠다.


하늘재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연아를 닮은 소나무'가 존재한다. 갈라쇼에서 다리를 한껏 뻗어 손으로 잡고 있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 연상되는 나무다.


필자는 산행길보다는 산책로를 걷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높디높은 고봉을 오르는 것보다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샌가 스트레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복잡한 도심에서의 생활도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샌가 한가로운 여유를 찾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자연과 동화되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의 시간을 바삐 보낸다. 그렇지만 산길에서 만나는 초목의 하루는 마치 시간이 멈추어진듯 하다. 단지 푸르름이 등산길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화답하듯이 손짓하는 게 전부다. 바람이 분다면 흔들림으로 산속 산책로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인지시켜준다.

바람에 화답하는 소나무 가지의 스치는 소리가 유난스레 크게 들리는 곳이 하늘재의 모습이었다.


멀리 하늘재의 정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30여분을 걸어 도착한 듯 하다.


높은 고봉을 오르다보면 등산객들은 '왜 산을 오르는 걸까'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곤 한다. 처음에는 산행을 계획했지만 험한 산길을 따라 힘에 버거운 산행에서 맞게 되는 자신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데, 혹자는 '산이 있기에 오르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우수갯 소리로 '내려가기 위해서 오르는 게죠' 라며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하늘재를 오르는 산길은 '왜 산에 오르는지'에 대한 자신과의 물음보다는 '무상무념'에 빠지게 만든다. 힘들이지 않고 동네 동산을 오르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옆 이름없는 들풀과 수목들의 푸르른을 보면서 자연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곳이니 말이다.

 
하늘재 정상으로 향하는 나무난간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남은 명의 등산객들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힐법도 한 땀방울도 이곳 하늘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치 완만하다. 아니 어쩌면 아직은 계절이 무더위를 향해서 가는 시기가 아니기에 하늘재를 오른 것이 상큼함으로 가득한 때문은 아닐까.


난간에서 바라보니 멀리 호암산이 보이는 풍경이 시원함을 더한다.


하늘재 정상에서 맞은 바람이 상쾌하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산을 오르는 까닭은 이런 상쾌함을 맛보기 위함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산을 왜 오르는 것일까? 누군가가 묻는다면 답을 해줄 수는 없을 듯하다.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르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전부일 듯 하다. 단지 산을 오르는 이유는 어쩌면 정상에서 보라보는 산세의 모습을 본 사람만이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 까 싶다.


산세가 깊은 이곳에도 농사를 짓는 것인지, 중턱에서는 벌써부터 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려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산에서 맞게 되는 세상은 너무도 한가한 풍광이기만 하다.


하늘재에 올라서야 이곳이 문경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분명 출발할 때에는 충북 충주에서 올랐는데, 문경시 계림령 유허비를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니 말이다. 몇해전인가 경북 문경새재의 과거길을 걸었던 필자로써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문경새재는 드라마 촬영지로 관광객이 많이 유입되는 관광명소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고, 걷고 싶은 산책로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하늘재 산장에서 뜻하지 않게 여행객 일행을 기다리는 관광가이드를 만나게 되었는데, 문경새재와 달리 이곳 하늘재는 역사탐방로가 발달되어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20여분을 하늘재 정상에서 보내며 다시금 차가 주차되어 있는 미륵대원지로 내려왔다. 자연생태 탐방로와 역사기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충주 하늘재는 아이들과 함께 오른다면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산책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삼국시대의 군사적 전략 요충지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 힘들여 오르지 않으면서 산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고갯길이라는 것이 필자에게는 매력적이었던 탐방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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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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