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에 위치해 있는 가지산은 등반코스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산이다. 울주 상북면과 경북 청도군 그리고 경남 밀양시 신내면에 뿌리를 내린 가지산은 울산의 울타리가 되어 있는 산이기도 하다. 해발 1000m 이상의 일곱 산이 이어져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울산 산악의 주봉이기도 한 가지산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 '석남사'다.

석남사는 1200년 전 신라 현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후 수차례 중수를 거듭하다 1957년 바구니 인홍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현재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도의국사의 부도, 3층 석가사리탑, 3층석탑, 석남사 수조 등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어 울주의 대표적인 명소인 석남사를 향해 길을 잡았다.

석남사를 통해 가지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눈에 띄이는 시간이었는데, 이곳 석남사에서 출발해 가지산 정산 인근에는 또하나의 명소가 자리잡고 있다. 바로 쌀바위라는 곳이다. 쌀바위 아래 암자에서 불경을 외던 수도승은 며칠에 한번씩 마을을 내려가 식량을 동량했는데, 어느날 아침부터 날마다 바위틈에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어쩌랴. 수도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욕심이 생겼고, 쌀이 나오는 틈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틈을 크게 만들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그 이후로 바위틈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쌀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석남사로 향하는 길은 곱게 단장한 포장길로 이어져 있다. 산을 오르지 않고도 명승고찰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포장된 길을 따라서 석남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산책로가 아닐까 싶다. 길 양쪽으로는 정돈되어져 있는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산책길은 흥이 난다.

특히 수백년은 됨직해 보이는 뿌리깊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갖가지 나무들을 감상하면서 길을 걷는 것도 좋으리라.

 
문득 석남사를 향해 한발 한발 대딛다 생각하는 것이 국내의 명승고찰들은 수려한 산을 배경으로 건립된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기 위해서 자연과 하나가 되기위해 험한 산속에 사찰을 지었던 것이었을까?

오늘날에 와서야 사람들에 의해서 산책로가 다듬어지고 산을 오르기 위한 등반로가 만들어졌지만, 과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이곳역시 험준한 산줄기와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로 유일하게 오르는 사찰로 향하는 길은 돌무더기와 흙길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문든 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주고받는 말이 흥미롭게 필자의 귀에 들려온다. 국내의 유명한 산을 가보면 그곳에는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산이 먼저였을까 아니면 사찰이 먼저 들어서 산이 유명해진 것이었을까?


보도블럭으로 깔끔하게 단장된 석남사로 향하는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아직은 때이른 쌀쌀한 바람이 부는 4월의 둘째주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기에는 이른 계절탓이었을까? 아니면 오후로 접어들어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이미 한차례 지나간 탓에 한산함이 마치 도를 깨닫기 위한 수도승의 마음만큼이나 한적하기만 하다.

멀리서서나 들리는 경내의 불경소리가 이곳이 사찰임을 알게해주기도 하다.

석남사 입구에서 사찰까지는 200여미터에 이르는 길이다.


사찰의 첫 관문처럼 보여지는 청운교에 다가랐다. 청운교가 명명한 다리는 아마도 현대에 들어서서 지어진 다리인 듯 보인다. 말끔하게 잘려나간 돌표면과 조각들은 과거에 지어진 것이 아닌 현대의 기술력으로 지어진 듯 보여지는 다리였다.


청운교에서 바라보는 석남사 앞을 흐르는 내천의 모습은 마치 수도를 하는 수도승처럼 한폭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은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으니 말이다. 콘크리트로 내천을 정비한 것일진데, 언제부터인가 물줄기는 낙수를 이루고, 새로운 물길을 열고 있는 모습이다.


석남사는 개산이래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조선 현종때에 탁영, 선철선사 등이 중수했으며, 그 뒤 순조 3년에 참허, 수일선사 등이 중건한 후 근래에 이르러서는 1912년에 우운선사가 다시 중수를 거듭한 사찰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문을 개설한 가지산문의 개창자이자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국사가 1200년전에 창건한 이래 많은 중수를 거듭한 셈이다.

청월 추연이 지은 사적기에 따르면 창건 당시에 화장보탑의 성려함과 깨침의 길을 여는 자비로운 미화가 영남에서 제일이라 하여 지은 이름이 석남사라 한다.


1200년 전이라 하니 가히 천년 세월을 버티고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니 그 모습에서는 고귀함과 웅장함마저 깃들어 있는 것이 석남사의 모습이다.


명승고찰을 찾을 때마다 필자는 종교를 떠나 사찰의 처마에서 느껴지는 갖가지 그림들과 건축양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천년 전에 살았던 선조들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처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공을 들였을까 생각하면 숨이 멎을 듯한 섬세함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랜세월이 지나 뚜렷했던 색감들이 빛을 바랬지만, 빛바램마저도 인고의 시간처럼 찬연하기만 하다. 섬세한 그림들과 아름드리 나무들, 그리고 사찰을 이고 있는 석조기둥은 깨우침을 위한 수도승의 고단한 수행을 그리기 보다 천년의 예술혼이 그대로 담겨있는 모습이 아니던가.

 
석남사 안뜰을 차지하고 있는 삼층석가사리탑이다. 연꽃들이 둘러쌓인 모습을 보니 어저깨가 바로 부처님 오신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라 현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호국의 염원으로 15층의 대탑을 건립했지만 애석하게도 임진왜란 때 손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석남사에 남아있는 석탑은 1973년에 인홍선사가 주변의 탑석을 모아 삼층석탑으로 복원하고 스리랑카 사타시싸스님이 부처님 진시사리 삼과를 모셔다가 석남사 석가탑 안에 봉인했다고 전한다. 잡 높이가 11m에 혹은 4.57m이다.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 우리나라는 아픔이 많다. 깨우침을 얻기 위해 수도하는 사찰임에도 침략으로 인해 소실되거나 파괴된 흔적들이 보인다니 가슴아픈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임진왜란 뿐만 아니라 호란을 겪으면서 많은 문재유산들이 잿더미가 되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불교는 한민족과는 떨수 없는 종교이기도 하다. 필자는 불교를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명승고찰을 찾을 때마다 엄숙해지고 숙연해진다.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 종교는 호국으로 바뀌었고, 수천년의 역사를 지탱해오지 않았던가.


부처님의 위신력이 온갖 마군을 항복받은다는 뜻을 갖고 있는 석남사 대웅전은 웅장함을 깃들어 있다. 19754년 인홍선사가 해체 복원한 건물로 중앙에 석가모니불상과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이 봉인되어 있다. 정면의 계단 소맷돌은 용이 여의주를 머금고 불법을 호위하는 자채를 보이고 있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는 3층석탑은 대웅전 뜰 앞에 위치하고 있던 것을 1973년에 극락전 옆으로 옮겨 세운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는 탑이다. 높이 5M에 폭 2.3M의 작은 규모로 소박하고 단아함을 느끼게 하는게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특징이기도 하다.


석남사을 들른다면 봐야 할 것들 중에 3층석탑과 더불어 석종을 빼놓을 수 없다.


신라시대에 구유로 만들어진 것을 지금은 물받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등산객들에게 시원한 약수 한그릇을 선사하는 돌수조는 사면의 모서리에 연꽃봉우리 모양의 무늬를 넣어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석남사에는 특별함이 깃들어 있는 사찰이다. 필자는 처음으로 석남사를 찾았지만 고찰이 주는 아름다움과 고귀함과는 다른 모습을 찾아보았다. 많은 세월을 버티며 남아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석남사를 찾는다면 사찰 내부에서보다는 오히려 사찰주변을 감사안고 있는 자연을 돌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경내의 한가로움을 뒤로 하고 석남사를 나오면서 석남사 앞을 흐르는 내천은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에 눈이 간다. 쉼없이 흘렀던 물줄기는 단단하게 보이는 돌을 가르고 물줄기를 만들어낸 모습은 가히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이 아니고 무엇일까.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있듯이 조용하게 흐르는 것만 같은 물줄기는 견고한 돌을 매끄럽게 다듬어 물길을 만들어놓고 있는 모습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연의 힘앞에서는 인간의 힘은 무기력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나무의 생명력은 암석 한가운데를 뚫고 뿌리를 내려 거목으로 성장한다. 도저히 씨앗이 살아나올 것 같지 않은 암석을 나무뿌리가 자라나 돌을 쪼개고 있지 않은 가 말이다.

석남사 주변을 둘러보면서 마치 자연이 부처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듯한 모습에 발걸음을 몇번이나 멈추고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자연의 깨달음을 본다는 것만으로 석남사를 찾은 의미가 있겠지만 현대사의 아픔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인 현대사에서 일본의 태평양전쟁 당시에 일본군의 만행이 서려있는 곳이 이곳 석남사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산천에서 송진을 채취해갔었고, 이곳 석남사 주변의 소나무들은 밑둥이 흉물스럽게 벗겨진채 아름드리로 성장해있다. 필자는 석남사를 내려가면서 인근에 자라난 크고작은 소나무들에서 똑같은 모습들을 발견했다. 작은 몸통을 지니고 있는 소나무는 온전한 모습이었지만 족히 수십년은 넘은 듯한 큰 소나무들은 여지없이 밑둥부분이 껍질이 벗겨진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자연의 생명력은 놀랍기만 하다. 껍질이 벗겨져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소나무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름드리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울주의 석남사를 찾게 된다면 1200년전에 개설한 가지산문의 유서깊은 선찰이 주는 웅장함과 부처의 깨달음을 눈으로 보는 것도 좋은 관람이겠지만 석남사를 흐르는 물줄기와 자연의 생명력을 보는 것 또한 잊지 말기를 바란다. 특히 현대사의 아픔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분명 뜻있는 여행길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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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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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깊이 있고 유익한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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