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비행기, 스마트폰으로 지구반대편으로의 이동과 통신이 용이해진 오늘날의 문명을 비교해 본다면, 1만년전 지구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날에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질좋은 옷가지와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지만 빙하기를 지나 고대 선사시대의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지 궁금해진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는 선사시대의 시간을 담아놓은 유적지가 있어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현대의 일상시간을 쫓개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KTX를 타고 이동하면 고작해야 3시간 남짓으로 도작하는 오늘날이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과 부산까지의 거리는 5~6시간이 걸려야만 도착했던 머나먼 거리. 기차길은 굽이굽이 산을 돌아 나아갔었고, 산허리를 돌아내려가는 하행선에서는 속도마저 늦추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곳이기도 했었습니다. 여행객들은 그런 지루함마저도 여행의 묘미로 생각하며 기차에 몸을 실기도 했었다.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천리 각석을 방문하기에 앞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번지에는 만년의 세월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이 그것이다. 국보 제285호와 국보 147호로 제정된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중심으로 한국 암각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고 특히 태화강의 지리적인 특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방문하고 암각화와 각석을 찾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울주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모든 정보들이 담겨있는 울주암각화박물관은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하고 있는 중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거리 1.2KM의 도보길을 따라 어느 방향으로 먼저 길을 잡을지는 여행객의 발길이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지역이 여행지를 가게되면 도보를 좋아한다. 무릇 여행의 묘미는 걷는 데에 있다 할 수 있고, 도보로 목적지를 향해가는 여정에서 마주치는 특별함이 좋아서이다. 울산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 대한 정보들이야 요즘 시대에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여행객들의 마음까지 알수는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정보의 바다속에서 정작 여행이 주는 참맛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반구대와 천천리각석 어느방향을 먼저 찾을지 고민하던 필자의 눈앞에서 울산암각화박물관 앞을 흐르는 사연호의 강줄기가 손짓을 한다. 마치 무언가를 그려놓은 듯한 모습에 한참이나 개울의 물줄기를 들여다보았다. 박물관 안에서 선사시대 인들이 사냥했던 혹은 푸른 바다속에서 긴 꼬리를 펼치며 거센 물보라를 만들어내던 거대한 고래의 형상을 닮은 개울의 모습이 저절로 반구대암각화를 향하게 만든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문양은 얼핏 보기에는 특이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알수 없는 상형문자와 도형을 그려놓은 듯한 천전리각석과는 달리 반구대암각화에는 마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꼬마가 그려놓은 듯한 동물들의 뭄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투르지만 뚜렷한 고래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곳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이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 탐방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띄였다. 여행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배려가 엿보이는 것이기도 한데, 위성사진으로 지리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탐방안내도이다. 각기 1.4km내외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 두곳의 선사시대 유적지는 길게 펼쳐본다면 5km의 거리라 보면 이해랄 수 있는 거리다.

지역의 유적지를 찾으면서 도보를 즐기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목적지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여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특별한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필자는 경북의 '문경새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깨끗하고 걷기 편하게 닦아놓은 산책로도 걷고싶은 산책로 몇위안에 선정될만큼 예쁘게 조성되어 있는 곳이지만 과거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서 반두시 거쳐야 했었다던 문경세재의 험한 산길이 선비들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으리라.

울주 반구대암각화 초입을 들어서면서 필자는 예상하기도 힘든 선사시대 인간들이 생활을 떠올려 본다. 대곡천 하류로 강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이곳 언양읍 반구대안길이지만, 아주 오랜 선사시대에는 이곳이 바다와 인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반구대암각화로 향하는 산책로에서는 수많은 세월속에서 쌓이고 깎여져 드러난 단층의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간의 수명보다 더 오랜 지구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켭켭히 쌓인 단층이 아니던가. 수십년의 세월을 돌아 아니 수백년, 수천년의 세월의 시간속에서 쌓이고 쌓인 단층들은 흐르는 물줄기에 의해 부서지고 깨어져 오늘날의 모습을 보였다.


문득 의문이 든다. 선사시대에 이곳이 바다와 연접되어 있었던 곳이라면 대곡천을 흐르는 물줄기는 강물은 강물이 아닌 바닷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울주에서 가까운 울산 앞바다까지 원시인들은 하루나절을 걸어서 고기를 잡기 위해 이동했었까 하는 의문점들 말이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반구대 암각화 산책로를 걸으면서 마치 조각칼로 깎아놓은 듯한 지층단면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옛날에는 어떤 생활들을 했을까'를 떠올린다. 나무로 얽기설기 만든 배를 타고 대곡천을 따라 망망대해가 내다보이는 덞은 울산의 앞바다까지 고기잡이를 하는 선사인들의 모습이 눈이 들어온다.


암각화박물관에서 도보로 30여분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한옥스테이와 대곡리 연로개수기를 만나게 된다. 외국인들에게 한옥스테이는 한국을 다시금 찾게되는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복잡한 서울의 도심에서 생활하다보면 빡빡하게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에 숨이 막히는 답답함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답답한 도심속에서 한가로움을 즐길 여유는 없는 듯 제각기 자신들만의 갈길을 행해 진직을 하고 옆을 돌아보지 않는다. 바쁜 일상의 생활이 습관처럼 변해버린 것일까?

암각화박물관과 반구대암각화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는 대곡리 연로개수기는 반고서원에서 반구대암각화 방향으로 약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곡천 가장자리의 바위 면에 새겨진 일종의 마애기로 훼손이 심한 것이 못내 씁씁함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는 얼마쯤일까?
대곡천 이정표를 지나 만나게 된 대곡리 연로개수기를 만나면서 봄기운이 한껏 올라있는 기온이 상큼하게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아 길을 길으면서 '사색'에 빠져보기도 했었고, 문경새재의 과거기릉 따라 '선비의 길'을 걸어도 보았다면 이곳 울주의 '반구대암각화 산책로'는 '세월'을 걷는 듯한 묘미에 빠져본다.


반구대암각화에 가까워올수록 현대와 선사의 시간이 만난다. 목조로 만들어진 현대적 감각의 다리는 주의의 자연과 더불어 또하나의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길이 50여미터에 이르는 목조다리를 걷다보면 마치 습지를 떠도는 듯한 느낌에 다른 세계로 공간이동을 하는 듯하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줄기는 대곡천을 만든 지류일까? 머리아픈 학문을 접어두고 단지 자연속으로 한발 다가선 자신을 발견하는 듯한 감흥에 휩싸여 또 한번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빠곡히 자라난 대나무 숲속길을 따라 걷아보면 어느샌가 바람이 동행을 한다.

울주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이곳 울주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이기도 하지만, 넓디넓은 대밭이 펼쳐져 있는 '십리대밭'이 유명하다. 지난 여름에 담양 죽녹원을 찾았던 때가 떠오르던 반구대 암각화로 오르는 산책로였다.

 
반구대암각화에 다가설수록 설렘이 앞선다. 선사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담겨있는 암각화를 볼 수 있다는 들뜬 마음이랄까? 암각화란 말 그대로 바위에 다양한 기술로 그려진 그림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문명이 발생한 곳에서 발견되는 암각화를 이곳 울주에서도 볼 수 있다니 말이다.

허나 울주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선택이 중요하다. 반구대암각화는 1965년 울산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물속에 잠긴다고 한다. 연중 5~6개월 가량 물속에 잠기며, 6~7개월 정도가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1년중 갈수기인 11~5월까지의 7개월중 단 2~3개월 정도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한 대곡천으로 인해서 가까이에서 반구대암각화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고 반구대암각화 건너편에서 가로 3m와 세로 1.5m 크기의 대형 모형도을 설치해 방문객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필자는 사실 반구대암각화의 선사시대 유적지에 대한 감흥보다 반구대암각화를 접하기 전에 펼쳐진 대곡천 지류가 만들어낸 푸른청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조형물보다 더 아름답고 거대한 푸른 수림의 모습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인간의 손길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푸른 버들나무의 군락지에 눈이 돌아가게 만들고 몇번인가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위대한 자연의 웅장함마저 감도는 모습이었다. 대곡천이 만들어낸 습기로 인해 군락지의 땅위는 푸른 양판자를 깔아놓은 듯한 모습이었고, 멀리 보이는 산의 나무들과는 확연히 다른 군락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이처럼 좋은 풍경을 단지 몇시간 몇분으로 족하고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에 말이다. 울산이나 부산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두어달에 한번은 찾아와 푸른 청해를 만들어놓은 군락지를 다시금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배어나온다.


30여분을 걸어 산책로를 따라 반구대암각화에 올랐을 때 많은 여행객들이 눈에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대곡천으로 인해 깍아놓은 듯한 단층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었던지라 반구대암각화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여러웠다.

고정식 망원경을 통해서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반구대암각화가 전부였던지라 아쉬움이 많이 들었던 여정이었다.


너비 10m 높이 3m의 울주 반구대암각화에는 300여저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육지와 바다동물들이 그려져 있고, 사냥과 포경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울주 반구대암각화다. 바다동물로는 고래와 거북, 물고기, 늑대, 여우, 너구리 등이 새겨져 있고, 배와 작살 부구를 이용하여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어 울산만이 뛰어난 해양어로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유적물이다.

반구대암각화의 제작연대는 고환경연구와 고고학적 비교연구 결과를 미루어볼때, 선사 약 7,000~3,5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고대암각화는 선사시대 북태평양 연안의 독특한 해양어로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유적이자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으로 평가되어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선사의 긴 세월의 담아놓은 유적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많이 들기도 했었다. 반구대에 새겨진 암각화는 흐린 날씨에는 망원경을 통해서도 희미하게 형체만을 알아볼 수 있다. 날이 좋아 암각화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방문객에게는 행운이 따르는 날이기도 할 듯하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발길을 돌려 천전리각석 지역으로 걸음을 바삐했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즐거움과 설레임이 들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 법일까? 흔히 산행에서 겪게되는 오름길과 내리막길의 느낌이 다르다. 물 무더기 하나 암석 하나를 밟으며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은 설레임이 차지하지만 다시 똑같은 길을 따라 내려와야 하는 내리막길은 터벅터벅 나그네의 봇집진 어깨의 무게만큼이나 더디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구대암각화를 뚜렷하게 관람하지 못한 여운이 들었던 까닭이었을지 박물관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에서는 대곡천 하류의 암석지대를 깎아놓은 지층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혹시라도 새로운 유적물이 내눈앞에 포착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에서 말이다.


반구대 암석화에서 3km를 걸어 반대방향으로 돌아나온 곳에는 천전리각석이 위치하고 있다. 곳곳에 방향을 표시해놓은 이정표들로 찾기가 쉬워 초행길에 나선 여행객들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들어있는 곳이기도 했다.

천전리각석은 암각화박물관에서 대곡천 하류로  1.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천전리에 위치한 암각화를 '각석'으로 불리는 까딹은 암각화뿐만 아니라 신라시대 명문과 세선화가 함께 새겨져 있는 때문이다. 바위면은 너비 약 10m, 높이 약 3m로 전체 암면이 15도 경사져 있다. 바위면의 상반부에는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각종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물결문, 음문, 마름모 등이 새겨져 있다.


세월이 지나서 사람이 사는 곳은 같은 것인가 보다. 반구대암각화와는 달리 천전리각석에서는 시대를 풍미하는 시간을 들여다보게 된다. 선사시대에서 신라시대로 이어지는 문명의 물줄기말이다.


선사문화길로 지정되어 스토리워킹 태화강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인다. 혹시라도 문화적 산물이 훼손될 것만 같아 바삐 뛰는 걸음마저도 천천히 걷게 만드는 경건함이 드는 까닭은 왜일까?


천전리각석은 반구대암각화에서 못대 아쉬웠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주는 곳이기도 했다.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선사시대의 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와는 달리 천전리각석은 바로 눈앞에서 각석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온갖 문양들이 아로새겨진 암석의 각석들을 들여다보면서 '언제 새겨졌을지'를 떠올려 보게 한다.


분명 최초의 누군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또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그림과 문양을 새겨 넣을 것이리라.

하반부에는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새겨진 신라시대의 행렬과 돛단배, 말, 용 등이 세선화와 신라 법흥황 시대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오늘날에는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한사람에 의해서 새겨진 것이 아닌 여러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양들과 그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종이와 잉크가 없었던 선사시대에는 후손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단지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지식을 구전으로 아들과 그 아들들, 아들들의 또다른 아이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이리라.


사람보다 더 큰 바다의 왕이라 불리는 고래를 어떻게 인간들이 잡을 수 있었을까? 아이들과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 마을의 촌장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에 대애서 바위에 그림으로 새겨 남겨주었을 것이고, 후대의 아이들은 선조들의 지식을 통해서 바다에서 고래와 물고기를 잡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시간은 그렇게 또 한세대를 흘러가고 선사의 시간은 신라의 시간으로 겹쳐져 흘렀다. 천전리 각석은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데, 추상적인 도형들은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으로 오늘날의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아래부분에 새겨진 신라시대 명문은 을사, 기미 등을 통해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명문은 크게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아들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선사와 신라를 잇는 역사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천전리각석 앞에서는 암석에 핀 이끼마저도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장엄함을 발견했다. 그 옛날 선조들은 후손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전하기 위해 단단한 돌위에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여행한다면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곳이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서의 시간여행이 아닐까 한다. 경주와 부산에서의 거리가 한시간 남짓 거리이니 울주군 가볼만 한 곳으로 만년의 세월이 숨어있는 유적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유익하셨다면 쿠욱 추천버튼을 눌러주세요~~>
Posted by 뷰티살롱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저도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인데 부럽습니다.

  2. 암각화 소재지가 경상남도 울주군이 아니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임을 알려드립니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src="//wcs.naver.net/wcslog.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