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 경북 안동은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대표적인 볼거리로는 단연 안동 하회마을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하회마을은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지역이 된 지 오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동의 볼거리로는 도산서원을 빼놓을 수 없겠다. 과거 천원짜리 신권이 나오기 이전에는 구권에서 퇴계 이황선생과 도산서원의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 왔었지만, 신권으로 바뀌면서 인물인 이황선생은 그대로지만 도산서원은 사라졌다.

 

안동의 도산서원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황선생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어떨까 한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tv드라마 소재로도 많이 등장했었고, 위인들도 많이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었는데, 특이하게도 퇴계 이황에 대한 드라마나 영화은 소개된 적이 많지가 않아 보인다.

 

영남학파의 시류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의 사상은 이기이원론적 주리론, 이로써 기를 다스려 인간의 선한 마음을 간직하여 바르게 살아가고 모든 사물을 순리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렇지만 퇴계 이황선생의 일대기는 흔히 알고 있는 우리나라 역대 위인들과는 달리 정치적 관료주의를 벗어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도산서원 매표소에서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황 선생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본다. 넓직하게 트여있는 초입부터 시원함이 밀려온다.

 

퇴계 이황 선생은 연산군 7년에 안동에서 태어나 선조 3년에 죽음을 맞았다. 어찌보면 파란만장한 역사의 혼돈과 혼란기를 겪은 인물이라 할 수 있겠는데, 정치적으로도 당파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를 접했었고, 임진왜란의 혼란기를 저술했던 징비록의 저자인 류성룡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한 인물이 이황선생이다.

 

그렇지만 퇴계 이황 선생은 이름처럼 신동에 가까운 영재는 아니었다 할만하다. 무려 34세에 과거에 급제해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에 올랐으니 관직에 이름을 올린 시기는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다 할만하다.

 

우찬성과 대제학까지 지녔지만 이황선생은 사후에야 영의정이라는 벼슬까지 추종된 전대미문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황 선생의 인물됨을 먼저 알고 있는 생모 박씨는 이황선생에게 벼슬에 연연하지 말고 관직에서 물려나 후학양성에 전념할 것을 비췄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황 선생은 벼슬을 등지고 후진양성과 인격도야에 매진했다고 한다.

 

조정에서 70여회나 벼슬에 나올 것을 종용했지만 퇴계선생은 이를 마다하고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생모인 박씨는 아들 이황이 인물됨이 강직하고 여려 정치에 나가게 되면 몸을 다칠 것이 분명하다 여겨 이같이 아들에게 사직을 권고했다고 하니 선경지명이 있었던 듯 싶기도 하다.

 

퇴계 이황선생은 이 나라의 교육과 사상의 큰 줄거리는 이뤘던 인물이니 도산서원을 찾게 된다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할 수 있어 보인다. 어찌보면 경북 안동을 찾게된다면 하회마을보다는 개인적으로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먼저 찾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기도 하다.

낙동강 지류를 끼고 있는 도산서원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시사단이다. 도산서원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2단의 기단으로 이뤄진 시사단이지만 낙동강 물이 물어나게 되면 현재 2단의 하부는 물에 잠기게 된다고 한다. 과거 시사단에 세워져을 당시에는 강의 수량을 조절하는 능력이 현재와는 달라서 시사단 하부가 물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을 거라 예상이 들기도 한다.

 

시사단은 조정 정조 16년에 정조임금이 평소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서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을 실시했던 곳이다. 총 응시자만도 7천명에 달할 만큼 시사단에서의 과거 규모가 엄청났다고 한다.

 

도산서원을 찾게 되면 그리 많은 시간은 소요되지는 않아 보인다. 오늘날로 친다면  대학교와 같은 형태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곳들이 조선시대의 서원이라 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물론 대학교의 기능을 따지자고 한다면 조선시대 성균관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성균관은 관직에 오를 유생들이 공부한다는 점과 차별점을 두고 있는 것이 서원의 역할이라 할 수도 있어 보인다.

 

도산서원은 명종 16년에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다. 선조임금은 당대의 명필가로 알려졌는 한석복에게 도산서원 현판을 사액했다.

도산서원에는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비롯해 대강당인 전교당,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판각 등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각각의 건물들은 특색있는 건축미를 보이고 있기도 한데, 특히 이들 건축물을 통해서 퇴계 이황선생의 사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하겠다.

 

얼핏 보기에는 서원의 건축물 양식은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는 균형미가 돋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좌우 비대칭의 미학이 숨어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좌우가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지 않고, 한쪽이 들어가 있다면 다른 한쪽은 나와있는 형태라는 얘기다.

 

문이 형태도 한쪽은 밀고 들어서는 문이라면 다른 한쪽은 자신쪽으로 제쳐야만 열리는 구도로 천지만물이 나오고 들어옴을 의미하는 형태다.

 

서원의 물을 열어놓고 카메라의 앵글을 맞춰 사진을 찍게 되면 그 모양새가 어디서건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찌보면 예술까지도 염두해 둔 듯해 보이는 옛 건축물이 아닐까 싶기도 해 보인다.

 

책을 보관하는 서고인 광명실 현판은 퇴계 이황선생이 직접 쓴 현편이다. 동서 두곳으로 나뉘져 있는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누각식으로 지어진 과학적인 지혜가 엿보이는 건축물 중 하나다.

건물과 건물을 지날 때마다 문을 들어서고 나서는 과정에서 자꾸만 카메라에 손이 가게 만든다. 문으로 빠곰히 들여다보이는 밖의 모습과 안의 모습들이 아기자기하고 신비로움까지 엿보이고 있어 더더욱 그러해 보이기도 하다.

 

옛 구권 천원권 지폐에서 흔히 봐왔던 도산서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좀더 높은 위치로 발길을 옮겼다. 한눈에 서원의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는 곳으로 해설사의 말을 듣고 귀가 솔직해져 무더운 삼복더위 속에서 등줄기에선 연실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도산서원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올라서니 더위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린다.

도산서원을 빠져나왔지만 쉽게 발걸음이 내쳐지질 않는다. 시간상으로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지만 영남학파의 시류를 형성했던 이황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니 그리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듯하다.

 

서원은 나서며 마지막으로 안동호 맞은편에 의롭게 서있는 시사단을 벤치에 앉아 바라보았다. 이곳 도산서원을 찾은 많은 관광객들도 역시나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시사단의 모습은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도산서원 관람의 정점이 되는 가 싶기도 하다.

긴 여정은 아니었지만 도산서원을 둘러 나왔으니 늦은 오후를 맞았다. 배가 출출하고 시장기가 든다.

경북 안동에도 한우가 유명하다. 물론 안동찜닭은 서울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는 먹거리이기도 하지만 안동 한우역시 지역 먹거리로 빼놓을 수 없는 먹의 여행이기도 하다.

 

늦은 오후를 지나서 일행과 함께 동부한우갈비라는 음식점을 찾았다.

동부한우갈비 음식점은 특이한 메뉴로 손님을 맞는다. 일반적으로 한우갈비는 역시 숯불에 구워먹어야 제맛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한우갈비를 주문한다.

소박한 상차림에 된장찌게, 그리고 맛의 정점인 한우갈비가 숯불에 익혀져 가고 일행은 게눈감추듯 익힌 고기들에 젓가락이 먼저 응대한다.

 

소고기로 유명한 음식점을 찾게 된다면 한가지 주의깊게 봐야 할 점이 있는데, 상차림이 과하게 나오는 음식점들은 사실 고기맛이 그리 좋지는 않아 보인다. 그만큼 고기의 맛을 식재료로 포장하는 역할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동부한우갈비 음식점처럼 소고기에 승부를 건다면 사실상 상차림은 소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이곳 동부한우갈비 음식점의 한우갈비는 순 갈비살이 숯불용 양념갈비로 나오고 뼈 부분은 찜으로 내온다. 한가지 메뉴로 손님은 두가지 맛을 보게 되는 셈이다.

 

1석2조의 맛여행을 동부한우갈비에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식사는 한낮의 여행의 피로감을 풀어주는 청량제이기도 하다.

 

한점 먹기가 바쁘게 일행들의 젓가락질이 야속하기만 하다.

하루 여행의 끝을 월영교의 야경으로 잡았다. 안동을 찾게 되면 둘러봐야 할 곳 중 하나인 곳이 월영교로 특히 저녁 야경이 수려한 곳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상아동과 성곡동 일원 안동호에 놓인 목책교로 2003년 개통된 것이 월영교다. 길이 387m, 너비 3.6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 인도교인데, 안동호를 걸어서 건넌다는 것이 마냥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리 한가운데에는 월영정(月映亭)이 있는데, 이곳을 월영교라 칭한 까닭에는 시민의 의견을 모아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이 있기도 하다.

이곳 안동댐 유역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명칭이 '달골'이었으며 다리를 건너면 바로 '엄달골' 마을과 연결되고 강 건너 산중턱에는 옛 선비가 시를 읊었다는 월영대가 옮겨져 있다. 또 강 북쪽으로는 영남산이 시가지감싸안고 있고 남쪽에는 영남 3대루의 하나인 호루가 강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곳 월영교는 안동시민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한데, 공원처럼 조성된 각종 시설물들이 한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바꿔놓기도 하기 때문으로 보여지기도 하다.

 

또 저녁이면 각종 문화공연들의 펼쳐지기도 하는데, 찾아갔을 때에는 마침 안동 하회탈 공연이 한창 이뤄지고 있어 볼거리를 더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날에 안동 하회마을을 여행할 일정을 잡고 있던 터라 월영교에서 맞는 저녁의 하회탈 야외공연은 뜻깊은 강회를 선사해 주기도 했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무렵에 월영대를 찾아봤다.

선성형 객사로 오르는 곳이 월영대 석각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월영교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월영교의 백미는 역시 야경이라 할 수 있다.

 

불꺼진 저녁에 찾아오는 월영교 야경은 피곤해진 여행객의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이기도 한데, 은은하게 빛을 내는 월영교 야경을 감상해 보자. 시간이 때마춰 준다면 분수쇼까지 이어지는데, 대략적으로 8시 30분부터 분수쇼가 진행된다고 하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높은 경북안동을 하루만에 여행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다. 하루코스로 도산서원과 먹거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 야경이 아름다운 월영교 야경까지 이어진 하루코스는 안동을 찾은 여행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해 줄 듯해 보인다.

 

다음 일정으로는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둘러볼 예정이다. 안동시티투어(www.andongtour.kr)의 도움으로 안동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해서 너무도 좋았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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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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