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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해외여행

[중국여행]오천년 중국 역사를 볼 수 있는 도시 '서안'

by 뷰티살롱 2015.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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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얼까.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진시황제의 릉은 도굴을 막기 위해 릉안에 기묘한 장치를 해 두었다고 해서 아직까지도 능안으로 들어서지 못한다고 한다. 자금성과 소림사 등등 중국은 여러 볼거리들이 많은 나라다.

중국 서안은 아테네와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대도시로 손꼽히는 도시다. 또한 동양과 서양의 문화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기도 하다. 기원전 11세기~서기 10세기까지 13개의 왕조나 정권이 서안에 도읍을 정하거나 정권을 세웠다.

이 때문에 중국 서안은 중화 고대문명의 진귀한 유적들이 보존돼 있어 ‘오천년의 중국 역사를 서안에서 볼 수 있다’는 말이 과언은 아닐 듯하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을 여행할 때 서안을 필수코스로 잡는 것도 당연하다.

중국의 오악(五岳) 중 하나인 화산

중국의 화산은 국내에서는 무림영화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산이기도 할 듯하다. 화산은 예전에 태화산이라고 불렸다. 현재 해발 2,200m의 높이를 자랑하며 중국 국가급 풍경구로 지정돼 있다. 화산은 중국의 유명한 오악 중 하나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구불구불 굽어진 12km 길이의 등산로는 도처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있어 예로부터 화산에는 하나의 길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화산에는 명승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사당·누각·암벽조각 등은 산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으며 화산에서 비교적 유명한 고적들로는 옥천원과 진무궁, 금천궁(백제사) 등이 있다. 화산에서 북쪽으로 7km 떨어져 있는 서악묘는 서악화산의 신에게 제사지내던 사당이다.

죽은 진시황을 지키는 진시황 병마용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그중에서도 진흙으로 빗어진 수백의 병마용은 미스테리함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병마용을 보게 되면 마치 시황제가 불멸에 대한 꿈을 많이 꾸었을 거라는 예상을 하기도 한다. 또 진시황제의 능 또한 자신의 사후에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라 여겼음직한 욕망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할 듯하다. 한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중국영화인 '진용'이란 작품이다.

시황제의 명으로 전국각지를 돌며 불사의 약을 제조하려다 끝내는 사랑하는 여인은 불에 타고 호위하던 장군은 불사의 약을 먹고 몇년후에 다시 재회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다.

이곳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4년 중국의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그제야 세상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됐으며 700여개의 토우와 100개가 넘는 전차, 40여필의 말과 10만여 개의 병기가 발굴됐다.

병기들 대부분이 실제 무기이며 현재는 창고에 보관 중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토우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복장, 헤어스타일을 갖고 있어 그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연 시황제는 토우들과 병마들을 빗으며 자신의 사후세계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가장 보전이 완벽한 명대의 건축, 종루

종루는 서안 중심에 위치한 교통 중심지역이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이나 남대문과 비슷한 규모로, 총 높이 36m·총 면적 1377.4m²다. 서안의 종루는 중국에 남아있는 수많은 종루 중에서 제일 크고 보존이 완벽해 서안의 상징적인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예술적·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종루는 명태조 주원장 홍무 제17년인 1384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 건설됐으며 외관 3층·내부 2층 정방형의 누각형태다. 처음 건축됐을 때 지금의 서안시 광제가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명나라 만력 1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건물의 특징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을 올렸다는 것인데 사면에 회랑이 둘러져 있고 내부에 계단이 있어서 서안 시내를 둘러볼 수 있게 했다.

또한 누각 안에 보전돼 있는 종은 고대시대 때 아침을 깨우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새벽에 종이 울리면 종루의 문을 열고 저녁에 종이 울리면 종루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종루가 서안 중심에 위치해 있고 종루를 기준으로 교통이 사방으로 통하기 때문에 이 주변에는 크고 작은 상점과 먹거리 장터가 열려 있다.

양귀비와 현종이 겨울을 보내던 화청지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이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지하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일찍이 서주(西周) 시기, 주유왕이 이곳에 려궁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 무제도 이곳에 행궁을 지었다. 특히 당 현종 천보년간에 건설한 궁전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 때 정식으로 화청궁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돼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화청지 동쪽구역에는 정말약이 쓴 ‘화청지’ 금자편액이 걸려있으며, 구역 내에는 하화각·비하각·오간정(1936년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머물던 곳) 등의 건축물이 있다.

그 중 온천석벽에 있는 온천송비는 중국 비석예술 중에서도 우수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앙구역에는 당 화청궁 어탕 유적박물관이 있으며 당나라 때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연화탕 ▲해당탕 ▲태자탕 ▲상식탕 ▲성진탕 등의 탕과 문물 진열실이 있다.

화청지 온천의 수질은 매우 깨끗하며 수온은 항상 43℃를 유지한다. 다량의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서 관절염·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 또한 매일 육각정 무대 앞에서는 당나라 시기를 재현한 공연이 열린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진시황릉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여기에 묻혀 있다. 능묘는 37년에 걸쳐 완공됐는데 무덤의 둘레가 6km, 높이는 40m에 달한다.

무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내부는 개발되지 않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해도 내부는 볼 수가 없다.

진시황이 무덤을 설계할 때 훗날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은 등을 이용한 여러가지 함정들을 설치해 뒀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 비밀을 풀 수 없어 과학이 조금 더 발전해 그 비밀을 풀 수 있을 때 발굴한다고 한다.

 

따라서 진시황릉까지 간다고 해도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사진촬영을 하거나 릉 위에 오르는 정도의 관광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릉 주변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만들어 미니 전동차나 마차로 릉 주위를 돌거나 공원 주변에 전시해 놓은 옛 유물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놨다. <본 글은 Electric Power 7월호에 소개된 자료임을 밝힙니다. 사진=하나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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