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주에는 몇번인가 찾았었지만 간절곶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몇번인가 울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방문했을 때마다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던 곳이 간절곶이다.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으로 여름여행을 떠나볼까.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다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시간만 마음잡고 움직인다면 바다를 접할 수 있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해변도로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울주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곳 울주에서 만나게 되는 '간절곶'이라는 곳은 잠깐의 쉼터로는 제격이다.

 

 

서해의 낙조와 남해의 다도, 그리고 동해에서 맞는 새로움의 시작을 연상케 하는 해돋이. 각기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안고 있는 있는데, 그중에서도 동해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해돋이를 감상하고자 하는 바람이 많을 듯 하다. 아침일찍 일어나 바다의 수평선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하루가 아닌 일년이 잘 풀릴 듯 하는 환희마저 들게 만든다.

 

울주는 여행할 곳들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관광코스가 다양하게 만들어진 지역 중 하나인데, 이름난 명소를 많이 다녔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곳 저곳을 구경했었던, 마지막으로 숙소에 들어서기 전에 아침일찍 일어나게 되면 간절곶을 잠깐 들러 해돋이를 보러가자는 가이드의 말을 듣기도 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찾았을 때마다 다음날 늦게서야 일어나는 통에 간절곶을 찾지 못했었다.

 

지난 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역시나 아침 여섯시 경이 되서야 눈을 떠 숙소를 빠져나와 간절곶을 향했다. 가을이나 겨울에 방문했었다면 아마도 아침 해돋이를 보게 될 수도 있었으련만 아쉽게도 여름으로 지나는 계절에 아침 6시나 늦은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해는 언제 떠올랐는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숙소에서 30여분을 자동차로 달려 간절곶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곶'이라는 이름은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돌출된 지형을 이르는 말이란다. 동해에서 해돋이의 명소로 알려져 있는 울산 호미곶이라는 곳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곶'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간절곶은 자동차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꽤 매력적인 곳이라 여겨지는 곳이었다. 얼핀 보기에는 그다지 볼거리가 없어 보이는 황량함마저 들게 하는 평원이 펼쳐져 보이는 광경과 만난다.

 

간절곶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데에는 아마도 이곳 등대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두운 밤에 바다를 향해서 환한 불을 밝혀주는 등대는 이곳 간절곶의 명소다. 하지만 여행객들이라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할 듯 하다. 간절곶 등대를 관람하기 위해선 해돋이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람시간이 오전 9시부터다.

 

 

간절곶에는 등대앞 조각공원과 새천년 기념비가 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 부인과 두 딸의 조각상이 있는데, 치술령에 올라 애절하게 남편을 그리워하던 마음과 출어한 어부의 무사귀항을 비는 가족의 애절한 소망을 함께 담은 모녀상이다.

 

간절곶의 볼거리는 아마도 대형 우체통이라 여겨진다. 성인 키보다 큰 소망우체통은 간절곶의 명물처럼 바다를 등지고 서있는 모습이다.

 

 

단아하게 정돈된 간절곶을 찾게 되면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아마도 그리운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은 곳도 아닌 곳이 간절곶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조성된 공원을 돌아 드라마 촬영장까지 가벼운 산책길을 나서보는 것도 좋다. 영화 한반도와 드라마 욕망의 불꽂, 메이퀀 등을 촬영했었던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한데, 주변에 커피 한잔 여유를 부릴 수도 있는 커피전문점도 있다.

 

무성한 음식점들로 북적거리거나 요란법석한 카페들이 즐비한 곳도 아니다.

 

 

어쩌면 여유를 찾아 떠나는 곳이라면 어울리법한 곳이기도 해 보인다.

 

거대한 풍차는 이곳 간절곶의 명물처럼 이국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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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역에서 가까운 울주여행은 국내여행지로는 볼거리뿐 아니라 먹을거리도 많은 여행지 중 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의 산세를 찾아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경남지방으로 여행의 눈을 돌리게 되면 경주와 부산을 대표적으로 손꼽을만 하다. 울주는 경주와 부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색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BEST1. 선사시대로의 시간여행 '반구대 암각화'

울주의 대표적인 여행지는 아마도 반구대 암각화를 꼽을 수 있다. 언양읍 대곡리의 사연호 끝머리에 층을 이룬 바위 모양이 마치 거북이 넙죽 업드린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가 언양에 유배되었을 때 반구대를 자주 찾아 천혜의 절경을 즐기며 귀양살이의 괴로움을 달랬다 하여 '포은대'라 불리기도 하는데, 선사시대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유구한 시간여행으로 안내하게 될 것이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약 1억년전에 형성된 공룡발자국과 신라화랑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천전리각석이 산책로로 연계돼 있어 역사체험공간으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천전리각석은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긴 하다. 육안으로는 암각화의 실체를 쉽게 찾을 수 없어 설치되어져 있는 망원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1억년전의 선사시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나 천전리각석을 관람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지만, 개인적으로 이곳을 울주 제1의 명소라 이름붙인 까닭은 특별함이 있어서다.

다름아닌 반구대 암각화로 향하는 산책로에서 만나게 되는 천혜의 자연미를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5~6월이면 짙은 녹음으로  둘러쌓여있어 한폭의 수채화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군락지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 울주를 방문했을 때에 역사책에서 볼 수 있었던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 위해서 길을 잡았었다. 대곡리 암각화를 보기 위해서는 긴 산책로로 따라 걸어야 하는데, 깎아지른 절벽에 새겨진 암각화는 사실 멀리에서 봐야 하기에 날씨가 밝은 날에 돌에 새겨진 암각화를 시야로 볼 수 있다.

너비 10m에 높이가 3m에 달하는 암각화에는 선사시대 고래를 잡는 모습들과 바다의 모습들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박물관을 찾을 수 있는데, 반구대 암각화로 들어서는 초입에 박물관이 개장돼 있어 관광객들에게 도움을 준다.

BEST2. 언양의 대표적인 명소 '언양읍성'

대체적으로 지방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성곽터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과거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성으로는 수원성을 손꼽을 수 있는데,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설계로 인기가 높은 곳이 수원성이라 할만하다. 울주에는 대표적인 성곽터로 '언양읍성'이 있다.

 

최근 언양읍성은 개보수를 통해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축조된 성이다. 삼국시대부터 흙으로 토성이 쌓은 토성이 있었는데, 돌로는 1500년 연산군 5년에 처음 쌓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617년에 새로 쌓았다. 성벽은 조선 전기 읍성 축조의 일반적인 방식을 방영하고 있는데 큰돌을 대충갈아 쌓은 후 빈공간에 잔돌을 채워 성벽을 튼튼하게 했다.

특히 이곳 언양읍성을 찾게 되면 읍성 안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밭을 볼 수가 있고, 울주 언양의 대표 먹거리인 미나리밭을 볼 수 있다. 복원된 언양읍성을 찾아 산책로를 거닐면서 한적한 미나리의 향취에 흠뻑 취하게 되는 곳이 언양읍성이다.

BEST3. 가지산 산자락에 고요한 산사 '석남사'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자리잡고 있는 석남사(石南寺)는 가지산으로 오르는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대표적인 울주의 명소다. 특히 가지산은 쌀바위 등의 전설이 숨어있는 곳으로 등산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 중 하나다.

울주는 천혜의 산세를 갖고 있는 지역으로 영남알프스로의 등산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많다. 그중에서 석남사에는 숨겨진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석남사를 울주여행에서 찾아보아야 할 곳으로 손꼽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사실 이름난 산을 배경으로 국내에는 명승고적이 많이 존재한다. 석남사는 보림사의 개종자 도의가 헌덕왕 16년에 창건했다 하는데, 울산사람들에게는 열려있는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 석남사에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자행된 자원침탈의 흔적들이 석남사 인근의 소나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일제는 군수물자를 충당하기 위해서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했다고 한다. 하늘높이 뻗은 크고 굵은 소나무 밑둥에는 어김없이 껍질이 벗겨져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아픔 현대사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곳이 이곳 석남사라 할만하다.

BEST4. 영남알프스를 찾는 여유의 정점 '억새평원'

울주는 영남알프스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다. 특히 신불산 군립공원은 울주군 상북면과 삼남면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면적은 11.66㎢에 달한다. 신불산, 간월산, 영축산의 등산코스가 펼쳐져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 국내 최대 온천위락 시설단지인 등억온천이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등산 뒤 흘린 땀을 씻어내리는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있다.

이곳 신불산에는 단아하게 떨어지는 폭포의 절경을 볼 수 있는데, 신불산의 명소이기도 한 홍류폭포다. 울주의 명소 중 하나인 파래소 폭포와 견준다면?

하지만 무엇보다 신불산의 절정은 산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억새풍광이라 할만하다. 특히 이곳 억새평원은 가을에 절정을 이뤄 찾는 이들이 많은데, 영남알프스의 대표적인 코스가 아닌가 싶다.

BEST5. 생활의 여유를 찾아 떠나자 '작천정별빛야영장'

여행은 새로움을 찾아 떠나기도 하지만 때론 삶에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낯선 곳을 찾아 새로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찾기보다 여유를 찾아 떠나고 싶다면 울주의 작천정 별빛 야영장은 어떨까? 특이 작천정 별빛 야영장은 영남알프스를 찾는 코스이기도 한데, 1박2일의 울주여행을 겨냥한다면 더할나위없는 코스라 여겨진다.

넓은 야영장은 작수천을 따라 조성돼 있고,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배어있는 울주의 명소인 작쾌천이 정자를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작괘천은 수백평이나 되는 바위가 오랜 세월의 물살에 깍여 움푹움푹 파인 형상이 마치 술잔을 걸어 둔 것과 같다고 하여 작괘천이라 한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이곳은 고려 충신 포은 정몽주의 글 읽던 자리와 언양지방 3.1운동의 중심지로서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울주는 8경과 8미로 유명하다. 일출 해돋이로 유명한 간절곶을 비롯해 깊고 청량한 계곡 속의 수려한 연못과 폭포, 한번 누워보고 싶은 반석들을 품고 있는 비경이 일품인 대운산내원암계곡도 둘러봐야 할 명소 중 하나다. 또 파래소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의 시원함은 무더운 여름의 더위를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BEST6. 울주에 왔다면 먹어봐야 할 음식 '봉계한우와 언양불고기'

이제 울주의 볼거리들을 즐겼다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제 아무리 멋진 비경을 보고 새로운 볼거리들을 접했다 해도 배고픔은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기 마련이다. 화려한 볼거리만큼 풍성한 먹거리도 풍부한 곳이 울주다. 그중에서도 반드시 울주를 여행한다면 먹어봐야 하는 것이 바로 '불고기'다.

봉계 한우로도 알려진 울주는 '언양불고기'가 일품이다. 언양불고기는 서울에서도 간혹 맛집들이 등장하는데, 불고기와는 달리 언양불고기는 떡갈비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하지만 떡갈비와는 유사하게 고기를 다져서 만들지만 고기의 두께가 다소 얉은 게 특징이고, 부드러운 식감과 육질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울주에서 불고기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한우는 대표적인 한국의 맛거리 중 하나다. 지역마다 저마다 색다른 특산품으로 한우고기를 상품화하고 있다. 충남 홍성은 홍성한우가 유명하고, 강원도 태백 역시 태백 한우가 대표적인 먹거리 중 하나다. 울주에도 봉계한우라 해서 육질과 씹는 맛이 일품인 한우고기가 일품이다.

특히 울주에는 도매와 식당을 겸하는 맛집들을 찾아 먹거리 여행을 찾는 것도 하나의 여행 노하우라 할만하다.

BEST7. 바다의 야경과 일출 명선도와 횟집

바다에 인접해 있는 울주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이 명선교 일대의 진하 해수욕장이라 할만하다. 명선도의 일출은 익히 알려져 있는 울주의 명소 중 하나다.

특히 명선교의 야경은 찾는 이가 많다. 밤이 되면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명선교의 은은한 별빛은 낭만을 찾아 떠나는 로맨틱 여행코스라 할 만한데, 해변가를 따라 조성되어진 많은 횟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즐기면 밤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귓가에 들릴 듯하다.

개인적으로 명선교에서 가까운 횟집에서 맛본 구들장 장어구이는 울주여행에서 먹어본 가장 기억에 남는 맛집요리에 속한다.

BEST8. 울주의 대표 옹기축제 '외고산 옹기마을'

마지막으로 울주여행의 필수코스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외고산 옹기마을이다.

매년 이곳 외고산 옹기마을에서는 옹기축제가 열리는데, 올해에도 지난 5월 2일에 열렸었다. 매년 열리는 행사이니 축제기간을 찾아 외고산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가지각색의 옹기들을 관람할 수 있고, 체험관에서는 직접 옹기제작 헤체험도 할 수 있다.

또 이곳 옹기마을에는 옹기박물관과 울주민속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울주지역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고, 투박하지만 서민적인 옹기의 세계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볼거리가 많아 울주여행 코스로 손색이 없는 곳이 이곳 외고산 옹기마을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크기의 옹기도 옹기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니 직접 관람할 수 있다.

울주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개인적으로 직접 가봤던 곳들을 정리해 울주의 볼만하고 먹을만한 먹거리들을 소개해 봤지만, 모자람이 많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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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에서의 여행 이틀째로 들어섰다.

 

볼거리가 많은 울주를 1박2일로 여행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울주여행은 볼거리 뿐 아니라 먹을거리 여행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이다.

 

이틀날 길을 잡은 곳은 외고산 옹기마을이다.

 

울주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여행코스 중 하나가 외고산 옹기마을이다.

 

 

4월의 마지막 주에는 여주이천에서도 축제가 있다.

 

여주이천 도자기 축제로 5월 17일까지 진행되는 행사다.

 

울주에서는 옹기축제가 5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동안 열린다.

 

도자기와 옹기.

 

도자기는 고급스러운 우리민족의 유산인 반면, 옹기는 서민적인 그릇으로 생활품이라 할만하다.

 

 

아침일찍 외고산 옹기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폭우가 아닌 안개처럼 흩날리는 빗줄기 탓인지 옹기마을과 묘하도록 분위기가 닮아 기분좋은 아침이다.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공기속을 걸으며 옹기마을로 들어선다.

 

외고산으로 향하는 철길은 마을 초입에서 가장 멋진 광경이기도 하다.

 

옹기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특별한 열차편과 교통편이 마련돼 있다고 하니 옹기축제를 찾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을 듯하다.

 

 

 

옹기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옹기다.

 

길거리 옆 조경으로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옹기등은 묘하도록 안개처럼 흩날리는 봄비와 앙상블을 이룬다.

 

옹기는 예로부터 서민들의 삶 깊속한 곳에서 함께 숨을 쉰 우리네 그릇이다.

 

초가지붕에 빗물이 떨어지는 여염집에도 빠지지 않았던 것이 옹기였다.

 

도시화되고 성냥갑처럼 규격화된 아파트와 연립주택으로 생활터전이 변화면서 옹기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간 물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골집을 들어가보면 장독대를 차지하고 터줏대감처럼 집을 지킨다.

 

 

투박한 진흙의 진감으로 빗은 옹기는 유약을 쒸워 짙은 검푸른 몸체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흙에서 마치 생명이 태어나듯이 옹기는 그렇게 몸을 만든다.

 

외고산 옹기마을을 찾은 것은 특별한 일 때문이었다.

 

오랜 옹기 장인이 직접 옹기를 빗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족적인 형태의 자기와는 달리 옹기는 투박하고 때론 정감있는 그릇이기도 한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던

 

터였다.

 

 

공방을 찾았을 때 옹기를 빗는 장인의 손길이 막 시작하려던 때였다.

 

사실 옹기마을을 찾아 장인이 직접 옹기를 빗는 모습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던 터다.

 

작년에도 울주를 여행하면서 옹기를 빗는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올해에는 장인의 곁을 오랜 친구처럼 개 한마리가 지키고 자리를 앉아 있었다.

 

 

 

 

 

 

옹기의 형태가 올라갈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단지 하나의 황토다발이였던 것이 장인이 손끝에서 묘하도록 그릇의 형태로 쌓아올라가니 말이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것이 옹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가는 장인의 손끝은 마치 살아움직이는 듯 하다.

 

황토가락을 쌓아올리던 장인은 널판지로 표면을 다듬는다.

 

마치 소리가 징소리처럼 울린다.

 

수년을 장인의 작업을 지켜보던 개는 그릇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몰려오는지 눈을 잠고 깊은 잠에 빠진다.

 

 

 

 

단조롭게 쌓여가던 옹기의 모습이 중간부분으로 들어서면서 점차 배불뚝이가 되면서 입이 커졌다가 다시

 

위로 올라갈수록 입이 좁아지며 옹기의 형태를 띤다.

 

보기에는 쉬워보이는 옹기만드는 작업이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이룰 수 있는 기술이다.

 

모여있던 일행 중 하나가 또다른 스케줄이 있었던지 작업을 빨리 할 수 없냐는 질문을 한다.

 

장인은 슬그머니 웃으며, 빨리 만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답한다.

 

점성이 있는 황토를 가져다 그 안에도 숨을 불어넣고 옹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을 빨리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아닐 거다.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불룩한 옹기 옆구리에 손잡이를 만들고, 조그마한 뚜겅을 만들며 하나의 공기가 만들어졌다.

 

도자기와 옹기를 놓고 볼 때,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자기에는 사실 뚜겅이 없는 것들이 많다.

 

그에 비해 옹기는 반드시 뚜겅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을 넣는 옹기이기에 야외에 놓아두어야 하는데, 비가 오면 막아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옹기가 숨을 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메주를 넣어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옹기는 외부와 내부를 끊임없이 호흡하며 발효를 거치게 된다.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옹기는 흙이 가진 특성과 불이 가진 강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장인에 의해서 황토가 모습을 찾지만 옹기는 불에 의해 그 단단함을 간직하게 된다.

 

옹기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거쳐가게 될까?

 

장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옹기는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서서히 말린다. 그리고 그 옹기는 잿물과 약토를 섞은

 

잿물유약을 입힌다. 이 때에 문양을 그려 2차 건조를 시킨다.

 

그늘에서 바람에 의해 말려진 옹기는 가마로 들어가게 된다.

 

200도 이하의 약한 불인 핀불에 가마의 내부는 냉기와 습기가 제거되고 가마내부와 옹기에 그을음이 가득 내린다.

 

갑작스런 온도에 옹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핀불은 4일가량을 계속해서 열을 가한다.

 

 

불에 의해서 구워지는 작업은 인내를 요구한다.

 

핀불을 거쳐 중불은 550도에서 600도까지 이르는 높은 온도로 오른다.

 

중불을 거쳐 다름불에 이르면 화통에 불이 가득해진다.

 

가마의 굴뚝이 벌겋게 달궈질 때까지 불은 계속해서 지피고 옹기와 가마의 벽도 붉게 달궈진다.

 

3일간에 걸친 다름불은 800도에서 1150도 달한다.

 

다름불 이후 1200도의 높은 창불과정을 거친후 가마는 서서히 식혀지게 되고 불속에서 꼬박 열흘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옹기로 탄생된다.

 

 

하지만 모든 옹기들이 완전한 제 모습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높은 불을 이기지 못하고 구멍이 뚫리기도 하고 뒤틀려지기도 하고, 장인의 생각과는 달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깨어진다.

 

옹기는 장인의 솜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황토를 있게 만드는 땅의 기운이 있어야 한다.

 

황토는 장인에 의해서 숨을 얻게 된다.

 

바람은 장인의 손길에서 완성된 형태를 붙잡아준다.

 

그리고 불은 바람이 만들어놓은 형태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땅과 사람 그리고 바람과, 불.

 

이들 네가지가 제대로 갖춰져야만 옹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장인의 옹기빗는 과정을 관람했으니 직접 옹기체험에 나서보자,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옹기마카데미가 있어서 일반인들이 직접 옹기빗기 체험에 나설 수 있다.

 

하루에 두차례에 걸친 옹기체험을 할 수 있는데, 체험료는 개인이 7천원이고 단체는 5천원이다.

 

 

옹기축제 기간에는 옹기아카데미의 체험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니 문의처에 미리 시간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옹기를 만드는 방법은 생각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먼저 옹기의 밑면을 만든다.

 

밑면은 생각보다 두껍게 만드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체험하는 황토는 생각보다 축소되는 정도가 약 20%란다.

 

얄게 만들면 그만큼 바닥이 얇아지는 것이니 새끼손가락 두께만큼으로 두께를 잡는게 좋단다.

 

다음으로는 기둥을 만들 황토대를 만든다.

 

역시 손가락 두께만큼으로 황토대를 만든다.

 

 

 

 

황토대를 생각한 높이만큼으로 쌓아올려가면서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마지막으로 그릇이 완성되면 갖은 형태의 문양으로 모양을 만들어간다.

 

이곳 옹기 아카데미에서 직접 만든 그릇들은 추후에 집으로 배달받을 수 있다.

 

 

 

 

옹기 아카데미에서 나왔을 때에는 마침 빗줄기가 다소 잦아졌다.

 

산책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마을 곳곳은 옹기들이 들어차 있다.

 

빗방울이 옹기 뚜껑위로 떨어진다.

 

마치 한가로운 한 시골 마을을 걷는 기분이다.

 

옹기들로 길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 눈에 띈다

 

 

가까운 곳에는 옹기박물관이 마련돼 있어 전국의 옹기들을 한눈에 볼수가 있다.

 

다양한 옹기의 모습은 지역마다 그 모양새도 다르다.

 

어떤 지방의 옹기는 입이 큰 것이 특징이고, 어느 고장의 옹기는 입이 좁은 것이 다르다.

 

이곳 옹기 박물관에서 세계 최대 크기의 기네스 북에 오른 옹기를 볼 수있는데, 높이가 무려 2.2m로 어른 키의

 

두배나 되는 옹기를 볼 수 있다.

 

둘레가 무려 5.2m에 달하는 거대 옹기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발길을 재촉해 보지만 길을 걸을 때마다 색다른 볼거리가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옹기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울주민속박물관이 있는데, 마을에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에

 

벽화가 눈을 사로잡는다.

 

 

울주 민속박물관은 울주군이 지역 향토문화의 체계적인 보존과 계승을 위해서 폐교한 온양읍 온양 초등학교

 

삼광분교를 빌려 2001년부터 운영하던 울주향토사료관을 옹기마을 내에 박물관으로 이전, 확대한 곳이다.

 

박물관은 2013년 5월 2일에 개관했다.

 

전시된 물품들이 대부분 울주군민이 자발적으로 기증해 수집된 것이 매우 의미가 깊다고 한다.

 

 

 

 

 

 

 

 

 

그중에서 울주군의 현재를 만들어온 지역민들이 민속생활을 엿보는 것은 울주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울주만속박물관은 울주 지역의 민속문화를 알리는 곳이란다.

울주민속박물관은 영상관과 울주 8경, 농경생활관, 어구관, 전통놀이 민속공계관과 중앙홀로 이루어져 있다.

 

 

5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울주옹기축제를 가기 위해서는 열차로 외고산역으로 가면 된다.

 

장인의 손끝으로 만들어지는 옹기의 세계를 봄날에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비단 옹기는 한사람의 장인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사람의 손길과 자연이 한데 어울러지고

 

인고의 시간이 더해져 하나의 옹기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을 직접 보고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

 

외고산 옹기마을 여행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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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찾는 이유가 단순히 여행을 위해서만은 아닐 듯하다. 어떤 사람들에겐 산을 찾는 이유가 사색에 잠기기 위해서 찾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즐거운 연인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듯 산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국내에 알프스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곳이 있어서 눈길이 간다. 바로 경남 울주에 있는 영남 알프스다. 스위스의 알프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영화중에 하나인 '사운드오브 뮤직'에서 폰트랩 대령과 마리아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산을 올라 망명길에 오르게 되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고 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뛰놀며 부르던 도레미송의 장소가 바로 알프스다.

 

 

영남알프스를 돌아보고 싶은 생각에 날씨가 풀리고 봄이 찾은 4월에 울주를 찾았다. 사실 여행이라는 1차적인 재미고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계절이 바뀌면서 답답한 고민거리가 생겨나 머리를 정리할 겸 산행을 구상하던 중이기도 했었다.

 

영남알프스는 울산, 밀양, 양산, 청도, 경주의 접경지에 형성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발 1천m 이상의 9개 산이 산세와 풍광을 자랑해서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보니 작년 이맘때에 울주 석남사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가지산 쌀바위에 대한 전설을 들었던 기억이 엇그제만한데,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영남알프스는 전체면적이 약255㎢며, 가을이면 곳곳의 황금억새평원에 나부끼는 순백의 억새가 환상적이라 전국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산 정상 부근에 조성돼있는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곳은 전국에 몇곳이 있는데, 그중에서 영남알프스의 억새바람길은 유명한 곳 중 하나다.

 

머리가 복잡한 탓에 울산역에서 가까운 울주를 찾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울주는 여러 볼거리들과 먹거리 들이 풍부한 지역 중 하나다. 산세가 좋은 강원도를 찾는 산악인들이 많지만 울주는 가지산을 비롯해 신불산과 재약산, 간월산, 천왕산, 영축산, 고헌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악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봉계 한우와 언양 불고기 등의 지역 먹거리도 하나의 여행객을 유혹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KTX로 인해서 서울에서 울산까지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서 국내여행이 그리 어렵지 않은 시대다. 이른 아침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울산행 KTX에 몸을 싣기만 하면 오전 중에 울산역에 도착할 수 있다. 또 울산은 영남알프스를 중심으로 총 5구간에 걸친 둘레길을 조성해 놓고 있어서 굳이 높은 산에 오르지 않고 산책길을 나서는 여행객들에게도 인기만점이다.

 

외와마을에서 출발해 중선필 회관까지 이어진 5구간을 비롯해, 반대편인 통도환타지아 인근의 OK목장식당에서 출발하는 1구간은 후리마을삼거리까지 이어진다. 2구간은 다시 3개의 구간으로 조성돼 있어 짧은 둘레길을 선택해서 걸을 수 있고, 선택에 따라서 장거리 둘레길을 선택할 수 있어 맞춤형 산책 둘레길이라 할만하다.

 

둘레길은 제주도가 가장 인기가 많고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자체별로 명산 주변의 풍광을 따라 다양한 둘레길이 조성돼 있으니 시간을 짬내어 전국의 둘레길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봄이 찾아온 4월의 중순이지만 산은 아직까지 푸르름으로 물들여있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낮은 지대의 나무들은 어느샌가 파란 싹이 돋아 여름의 푸르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중턱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부근은 여전히 겨울의 추위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 갈색빛이 깃들어 보이기도 하다.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할 겸 울주 영남알프스를 찾았던 지라 명산 주변의 둘레길을 찾기보다는 신불산으로 오르는 여정을 선택했다. 그중에서 비교적 짧은 산행코스를 선택해 신불산으로 오를 계획을 세웠다.

 

영남알프스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곳이 어쩌면 하늘억새길이다. 총 다섯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하늘억새길은 각기 간월쟁서 영축산까지 이어지는 1구간 '억새바람길'과 2구간은 영축산~죽전마을까지 이어진 단조성터길이 있다. 3구간은 죽전마을에서 천황산까지 이어지고 있고, 4구간은 천황산~배내고개로 이어진다. 마지막 5구간은 배내고개에서 간월재까지 이어지는 코스인데, 이들 5구간을 합치게 되면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과 재악산, 천황산을 모두 오를 수 있게 되는 원형의 코스이기도 하다.

 

 

욕심이야 한도 끝도 없이 모든 구간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당일코스로 짧은 하루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비교적 짧은 1구간을 돌아볼겸 등억온천단지에서 간월재로 향하는 산행을 택했다. 등억온천단지에서 출발하는 산행코스는 신불산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홍류폭포를 관람할 수 있기도 하고, 간월공룡능선을 따라 간월재까지 오르는 1시간 20여분이면 걸리는 비교적 짧은 산행코스다.

 

간월재에서 출발하게 되면 신불산을 거려 신불재왕 영축산을 볼 수가 있는데, 1구간은 4.5km로 대략 2시간 30여분을 예상하면 된다. 종합적으로 4시간여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니 이른 아침에 서울역에서 출발하게 되면, 저녁무렵에 출발하게 되는 서울행 KTX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수월한 산행코스라 할만하다.

 

하지만 멀리 지방으로의 산행은 늘 변수가 따르는 법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곳곳에 다른 볼거리들에 정신이 빼앗겨 막상 계획했던 산행을 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영남알프스를 찾은 경우역시 마찬가지였다. 등억온천단지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복합웰컴센터로 인공암벽장이 들어서는 종합시설의 공사장이었다.

 

 

아직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이곳 복합웰컴센터에는 디스커버리센터가 들어서게 되는데, 건물 조감도를 보니 옥상까지도 사람이 오를 수 있어서 전망대로도 손색이 없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또 난이도에 따라 암벽등반을 즐길 수있는 인공암벽장이 들어서게 될 예정인데, 센터가 완공되게 되면 꽤나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신불산으로 오르는 산악인들이나 혹은 홍류폭포를 보기위해서 찾은 여행객들의 인기를 끌 것이라는 예상이 들기도 했다.

 

 

복합웰컴센터 건물을 돌아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섰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산행이었기에 다소 늦은 시간이기도 했었는데, 막상 1구간을 돌아보려고 하니 정해진 시간안에 돌아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이 들기도 했었고, 너무 욕심을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득 뇌리를 스치기만 하다.

 

다행스럽게 날씨는 그리 더운 날씨도 아니고, 겨울이 떠난 봄이라서 차가운 바람이 불지 않는 등산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씨였던지라 울주여행이 살포시 환영이라도 해주는 듯해기만 하다.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에 오르는 여행객들에게 알리는 안전수칙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하나 빼놓을 수없는 수칙들이다.

 

 

초입부터 산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계곡에서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오늘은 왠지 계획했던 산행이 중도에서 끝마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하게 불안스러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왠지 산에 오게 되면 물 흐르는 소리가 좋다.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나무들은 어느새 파란 새싹이 돋아 여름의 푸르름을 준비하는 풋풋함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시집가는 수줍은 새댁의 모습과도 같은 부끄러움이 묻어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일지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는 깨끗하기만 하다. 날씨는 따스하지만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고면 겨울의 한기를 느낄만한 차가움마저 들 정도다.

 

한동안 초입부터 발길을 멈춰서서 멋진 풍광에 도취되어 버렸다.

 

 

산은 왜 오르는 것일까?

 

사람들은 산이 있기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은 내려가는 여정이 있기에 산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기에 산이 있기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이다.

 

간월재로 향하는 간월공룡능선길은 비교적 잘 조성되어진 돌계단을 따라 중턱까지 이어진다. 구간마다 돌계단이 있기도 하고, 목재로 난간을 만들어놓기도 해 놓았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제작기 각양각색이다. 여행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손에 카메라를 들고, 평상복으로 가볍게 산을 오르는 사람도 눈에 띄고 어떤 사람들은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스틱을 손에 들고 오르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계절을 맞기 위해서 옛옷을 벗어던지듯 지난 가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낙엽들이 쌓여있고, 신록을 위한 파란 새싹은 앙상했던 나무가지를 다시 생기있게 만들었다.

 

생명의 순환을 보는 듯하다.

 

 

 

산길을 걷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나무에서 쏟아지는 피톤치드니 하는 이론적인 상쾌함보다 조용하면서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산행이다.

 

그 때문일지 산행을 결심하고 산에 오르는 때는 언제나 무엇가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던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산길을 따라 걸으면서 개인적으로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는 것을 즐기기도 하는데, 한걸음 한걸음 높은 곳으로 오르는 여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광경을 되돌아서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름산과 가을산, 겨울산의 느낌이 다르듯이 봄에 오르는 산행은 다르다. 신불재로 오르는 봄 산행은 상그러움이 몸을 멈추게 만든다.

 

앙상했던 가지들이 새로 돋아난 작은 새싹들이 채워지고, 채 하늘을 가리지 못한 사이로 햇살이 부서진다.

 

산속에서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본적이 있다면, 얼마나 기분좋게 만드는 광경인지를 알 듯 하다. 도심에서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전신에 맞는 햇살과는 달리 산속에서 맞는 햇살 부서지는 광경은 또 다른 흥겨움이기도 하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어 보인다. 한참을 걸어 올라간 영남알프스에서 정겹게 보이는 노년의 부부을 만났다. 흔쾌히 사진모델을 승낙해 주는 마음은 넉넉함마저 엿보인다.

 

어쩌면 두사람이 오랜시간동안 함께 살아온 세월이, 서로를 닮아가는 모습으로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산을 오르면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신불재까지 얼마나 걸려요?'를 묻는다. 누구하나 눈흘기며 피해가는 사람이 없고, 오르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건넨다. '조금만 오르면 됩니다. 바로 앞이예요' 라고 말이다.

 

더털웃음까지 내보이는 넉넉함은 산에서 만나는 인정이기도 하다.

 

 

노 부부가 떠나고 난 빈 의자는 새로운 주인공을 맞는다. 어린 아이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젊은 연인이 자리의 주인공으로 시간을 기록한다.

 

가까운 곳에서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 홍류폭포가 가까워진 듯 하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누군가의 소망을 담아 쌓아올린 돌무더기들은 산행길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함부로 허물어뜨릴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조그마한 돌조각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소망을 담아 올려진 것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나무들 사이로 멀리 한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족히 20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폭포앞에 다다랐다.

 

홍류폭포다.

 

간월재로 오르는 산행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비경이 이곳 홍류폭포가 아닐런지 싶다.

 

 

 

 

 

한동안 말을 잊게 만드는 광경이다.

 

낙수의 물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폭포를 만드는 것일까.

 

홍류폭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듯 하다. 폭포 바로 아래의 바위에 걸터앉아 떨어지는 낙수를 바라보면 근심거리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우렁찬 폭포소리에 온통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시끄러운 소리속에서 평온이라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 표현인가 말이다.

 

 

 

영남알프스에는 통도사, 운문사, 석남사, 표충사 등의 문화 유적지 또한 즐비하다. 일년전 가지산 밑에 자리한 석남사를 찾았던지라 기억이 새록새록하기만 하다. 하지만 간월재로 오르는 간월공룡능선 산행길에는 명승고적은 없다. 하지만 가벼이 오르는 산행코스로는 제격이다.

 

간월재로 오르는 곳곳 산행길에서 만나는 갖가기 비경이 발길을 붙들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간월재로 오르는 산행을 그리 얕잡아 볼 수는 없다.

 

느릿느릿 걸은 탓일지 시멘트로 정돈된 간월공룡능선을 만나게 된 것은 산행을 시작한지 한시간여가 후쩍 지난 때였다.

 

 

등억온천단지에서 시작되는 간월재로의 산행은 걷기 편한 간월공룡능선을 따라 올라갈 수도 있다. 승용차가 지나갈 수 있는 시멘트길이라 현대인들에게는 걷기 편한 길이기도 하지만, 필자는 일부러 빠른 지름길을 택해 산속으로의 산행을 택했다.

 

왼편으로 보이는 시멘트길은 간월폭포로 향하는 길이다.

 

 

 

힘든 산길을 벗어나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간월재로 향한다.

 

비스듬히 경사진 길을 따라 걷는 길은 마치 동네 오르막길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다. 복합웰컴센터에서 시작된 고단했던 산행길이 끝나고 편안해진 포장길이라서 낯설음이 들기도 하다.

 

 

헌데 이 길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움은 다른 지역의 산에서 만나는 감흥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포장길을 따라 천천히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다보면 얼마나 걸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도 들게 만든다.

 

포장길이 마치 산허리를 한바퀴 돌며 정상으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3킬로미터를 걸어 오른 간월재로 향하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마주하고 나면 아침에 계획했던 것들을 다시 수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득 든다.

 

꾸불꾸불 포장도로는 마치 옛 동요에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라는 연상하게 만든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간월재로 오르는 산행에서 만나게 되는 두번째 비경이라 할만하다.

 

첫번째 시선과 걸음을 붙잡게 만들었던 홍류폭포의 웅장함은 꼬부랑 포장도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 서게 되면 또 한번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마치 자신이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는 것이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까 싶기만 하다.

 

한동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포장도로의 꾸불렁길을 바라본다.

 

한차례 바람이 불어온다.

 

 

드디어 간월재에 올랐다. 포장도로가 휴게소와 대피소까지 이어진 길의 끝자락에 온 것이다.

 

간월재 곳곳에 나무난간이 만들어져 있고, 온통 갈대들이 뒤덮여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은 간월재의 억새바람길은 온통 황금색으로 도배되어져 있는 모습이다. 황홀경이 따로 없다.

 

 

간월재 휴게소와 무인대피소가 마련돼있는 이곳 간월재는 배내골 사람들과 밀양사람들이 언양 장터로 넘어가던 고개길이란다.

 

330.578m2의 억새평원은 바람이 불기만 하면 춤을 추는 모습이다.

 

마치 추수를 앞둔 밀밭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힘들게 오른 간월재에 오르게 되면 나무벤치에 앉아 바람부는 언덕을 감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영축산까지 오르는 하늘억새길 1구간으로 향하려던 계획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 듯하기만하다.

 

간월간과 영축산으로 이어진 나무계단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간월재 에서 보는 억새평원의 모습에 일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가지고 온 캔커피 하나를 홀짝거리며 마치 춤이라도 추듯이 뉘었다가 일어서는 갈대들의 춤사위에 넋을 잃어버린다.

 

 

간월재 휴게소에서 내려다보이는 꾸부라진 길이 아찔하기만 하다. 홍류폭포와 더불어 제2의 비경이라 생각했던 꼬불탕길이이었는데, 간월재 억새평원은 산행의 백미가 아닌가.

 

문득 영화 한편이 떠오른다. SF서사물인 피터잭슨의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는 3부작으로 1부에 비해 2부의 전투씬은 한층 업그레이드돼 있다. 3부는 말할 것도 없다. 위쇼스키 형제(현재는 자매로 바뀌었지만)의 디지털 고전인 '매트릭스' 3부작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영남알프스의 하나인 간월재로 오르는 산행이 한편의 3부작 영화같은 느낌이다. 홍류폭포의 시원함과 꼬부랑길의 여유로움 그리고 억새평원의 황홀경은 산행의 3부작을 만난 듯하기만 하다.

 

 

 

 

영남알프스의 기암절벽들은 옛날 화산활동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남알프스에서 가지산에는 현재 7백60여 종의 식물과 국내 전체 조류 4백50여 종 가운데 1백여 종의 새가 살고 있어 자연이 만든 거대한 동식물원이라 불린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일지 아니면 억새평원의 황홀경을 찾은 젊은 연인들이 꽤 많이 눈에 띄기도 하다.

 

산을 오를 때에는 내려올 것을 미리 생각해 놓아야 하지만, 간월재 억새평원을 본다면 내려오고 싶지가 않을 법하다. 하산하려 하면 마치 싸이렌의 유혹처럼 갈대의 흐드러짐이 시력을 빼앗기 때문이다.

 

 

간월재 억새평원의 백미는 사실 봄철이 아닌 억새가 만발한 가을이다. 가을이면 이곳에서는 산상음악회와 패러글러이딩 등이 열려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영남알프스 간월재는 국내 대표적인 억새군락지 중 하나인데, 산림청이 선정한 국내 100대 명산 중 하나라 한다. 그만큼 빼어난 비경을 갖고 있는 곳이다.

 

너무 천천히 올라온 탓일지 간월재에서 영축산으로 오르는 1구간은 포기할 수밖에 없어 하산을 준비한다.

 

 

 

산행을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하늘억새길인 간월재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1구간을 오를 계획이라면 당일코스는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잆어 보인다. 1박2일의 여유로운 시간을 할애해 보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다행스럽게도 울주에는 꽤나 매력적인 야영장이 마련돼 있다. 등억온천단지에서 멀지않은 곳에 수변야영장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작청정 별빛야영장'이다.

 

 

 

 

 

과거에는 작수천 야영장으로 불리기도 했었는데, 산책로와 야영장, 넓은 주차장, 잔디광장이 마련돼 있어 외지에서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객을 기다리는 곳이다.

 

작청전야영장에는 20여개의 야영공간이 구비돼 있고, 별빛야영장에는 25여개의 야영장이 마련돼 있어 가족단위 1박2일로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라 여겨진다. 특히 작청정별빛야영장은 시간을 흐르는 작쾌천 물줄기가 이어져 산책로는 그만이다.

 

태화강을 중심으로 석남사, 언양읍성, 오영수문학관, 고헌사 등의 볼거리들이 즐비한 울주로의 여행을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힐링여행이 아닐까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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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주군을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다는 데에 세삼 놀라움이 들기도 했는데, 지역 문인의 박문관이 개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계 오영수. 한국의 정서와 원형적 상상을 단편소설의 미학에 충실하게 담아낸 대표적인 서정소설인 난계 오영수 문학관이 울주군 언양읍 헌양길에 개관되어 있다.

작은 기념관 같은 모습이기도 했었는데, 이곳 오영수 문학관을 통해서 난계 오영수의 작가주의를 만나볼 수 있다.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이곳 오영수 문학관에는 눈길가는 곳이 문화사랑방이라는 곳이다. 문인의 살아온 삶과 문학정신을 알리는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소통하는 데에는 필자와 독자의 소통이 중요한 법이다. 문화사랑방에는 푸른 경치를 배경으로 오영수 선생의 책과 여러 서적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사랑방같은 곳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필자에게는 지역문인으로 울주군의 대표적인 문인인 난계 오영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는 않았다. 문학관을 통해서 난계 오영수에 대한 작품들과 문인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난계 오영수는 1949년 9월 대표적인 서정소설 작가인 김도인의 추천을 받아 '신천지'에 '남이와 엿장수'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머루'가 입선된 이래로 1979년 '특질고' 필화사건으로 절필할 때까지 평생을 단편소설 창작에 매진한 작가다.


문학관으로 들어서는 출입문 옆쪽으로는 난계 오영수 작가의 전신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문학관을 찾는 이들에게는 좋은 기념촬영장소가 될법해 보였다. 벤치에 앉아있는 전신상은 어딘가 모르게 사색에 빠져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빈 옆자리에 앉아있게 되면 난계 오영수 작가와 문학세계로 공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감흥에 빠질 법도 해 보였다.


오영수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 보자.

난계 오영수 작가의 작품은 근대적 도시문명으로 부터 이격되어 있는 농촌, 산골, 어촌 등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도시 문화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공동체적 정서와 친화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도시공간과 생활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이 작품 면면에 아로새겨져 있다.


오영수의 데뷰작인 '남이와 엿장수'라는 작품에 통해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된 일화와 신춘문예에 입선된 작품인 '머루'가 소개되어 있다.  기념관 안에는 오영수 작가의 가족들과 함께 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유푸믈이 전시되어 있다.


소설 '갯마을'의 배경이 된 어촌마을을 닥종이로 연출하여 만들어진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30여년의 창작활동 기간을 동틀어 150여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작가였고 '애환과 인정'을 매개로 향수, 인정, 순수성, 자연친화성 등의 측면을 주목받아 온 난계 오영수 작가의 작품세계와 삶을 찾아볼 수 있었던 울주군 오영수 문학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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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백자나 청자 등과 같이 도예기술이 발달한 나라다.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에게 끌려갔던 수많은 도예공들을 회유하기 위해 높은 벼슬을 주었다는 사서를 보더라도 한국의 도예기술은 그 깊이가 널리 알려졌었던 것이라 할만하다.

백자나 청자 등과 같은 예술혼이 담긴 도기와 달리 서민적이고 생활속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것이 옹기다. 예로부터 옹기는 숨쉬는 그릇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는 태토가 되는 찰흙에 들어있는 수많은 모래알갱이가 그릇 벽에 미세한 공기구멍을 만들어 옹기의 안과 밖으로 공기를 통하게 함으로써 안에 담긴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오랫동안 보존해 주기 때문이다.


경남 울주에 가면 옹기에 대한 모든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을 접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외고산 옹기마을' 이라는 곳이다. KTX를 타고 울산역에서 내리게 되면 울주군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인데, 가볼만한 곳으로는 서생포 왜성과 진하해수욕장, 간절곶, 내원암 등이 인접하고 있어 관광코스를 잡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울주군은 볼거리가 많아 하루에 많은 지역을 여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동쪽과 서쪽을 각기 나뉘어 1박2일코스로 여행한다면 좋을 듯 한데, 울산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작괘천과 산불산억새평원, 가지산 석남사, 언양읍성, 반구대 암각화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남창역을 중심으로 한 동쪽으로는 내원암을 비롯해, 진하해수욕장과 간절곶, 남창시장과 외고산옹기마을 등이 있으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참고해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외고산 옹기마을 한곳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족히 한나절은 필요로 할 듯한데,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고, 볼거리와 울산옹기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이곳 '외고산 옹기마을'이다.

체험과 볼거리 등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에서는 전통적인 옹기제작을 눈으로 볼 수 있기도 하고, 직접 옹기를 체험할 수 있는 아카데미가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 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여행코스가 아닐까 싶다.

손으로 직접 옹기를 만들어보자 '옹기 아카데미'

옹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흙으로 만들어지는 그릇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직접 옹기를 만들어본 적은 없었을 것인데, 외고산 옹기마을의 '옹기 아카데미관'에서는 방문객들이 직접 옹기를 제작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아카데미 이용을 위해서는 여러명의 방문자들이 필요로 할 듯하니 우선적으로는 문의를 해본 후 확실하게 체험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체험안내
신청 : 052-237-7893

체험료는 개인의 경우에는 7천원이고 단체일 경우에는 5천원이 소요되며, 만들어진 옹기는 아카데미관에서 마무리를 해주어 완성된 작품을 택배로 배송해 준다. 택배비용은 별도인데, 자신이 만든 옹기를 집에서 받을 수 있으니 체험해 보는 것을 권하는 바이다.

필자역시 안내와 교육에 따라 옹기를 만들어보기로 했는데, 주어지는 것은 찰흙과 물레질을 할 수 있는 받침 하나가 전부다. 옹기를 전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빚어 만들어내기에는 기술이 필요하기에 이곳 옹기 아카데미에서는 간단하게 일반인들이 옹기그릇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며 안내해 준다.

찰흙과 함께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돌림판.

옹기를 전문적으로 빚어 만들기보다는 간단한 절차로 그릇을 만드는데, 우선적으로 일정량의 찰흙을 떼어 그릇의 밑바닥에 해당하는 부분을 넓직하게 두드려 펴서 밑면을 완성한다.

밑면을 완성하면 밑면에 쌓아올린 대를 만드는데, 굵은 원형대를 완성한다. 두손으로 굵기가 일정하도록 미는 것이 관건이다.

원형대를 그릇의 밑면위에 둥그랗게 쌓으면 1단이 완성된다. 이음새 부분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진이겨서 이음부분을 없앤다.

똑같은 방식으로 둥근대를 계속해서 쌓아가면서 옹기의 높이를 조절해 나가면 된다.

높이를 정할 때에는 미리 무슨 용도로 만들 것인지를 정해놓고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한데, 작은 물건들을 담아놓을 용도로 옹기그릇을 만들려 한 필자는 높이를 4단으로 높게 쌓아서 완성해 나갔다.

그릇이 완성되면 손가락을 이용해 외형을 변형시켜서 나름대로의 모양을 잡아주면 옹기 만들기가 완성된다. 갖가지 눌림판들이 있어서 문양을 찍어서 그럴싸한 작품을 만들어보았다.

제각기 취향에 따라 옹기의 형태를 달리할 수 있는데, 일반인의 옹기만들기 체험은 여기까지이다. 이후에는 유약을 발라 옹기를 구우면 되는데, 후반 과정은 이곳 아카데미관에서 완성해 준다. 옹기를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전달해주면 며칠후에는 집에서 자신이 만든 옹기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외고산 옹기마을에서의 옹기만들기 체험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이곳저것을 둘러보며 다양한 옹기의 모습들을 관람할 수 있다.


흙이 단단한 옹기로 탄생하기까지는 사람의 정성이 필요하지만 자연의 힘도 필요하다. 바로 불이다. 강한 불로 빚어낸 옹기를 굽게 되는데, 가마안의 온도는 900도에서 1200도에 이른다.


옹기는 예로부터 쌀이나 보리, 씨앗 등을 넣어 두는 용도로 널리 사용해온 용기다. 옹기에 넣게 되면 다음해까지 썩지않고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흔히 시골에는 장독대가 있기 마련인데, 갖가지 음식들을 담아두고 용도로 사용한다. 고추장이나 된장을 담아두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예전에는 시골에서 옹기에 김치를 담아 흙에 묻어두기도 했었다. 겨울동안에 땅에 묻어두었던 김치는 오늘날의 김치냉장고에서 익는 김치보다 더 깊은 맛을 내기도 한다. 기술이 발전했다 하지만 역시 자연속에서 만들어진 맛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법인가 보다.


울주의 '외고산 옹기마을'에서는 옹기그룻이 하나의 예술품을 이룬다.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높은 불속에서 강인하게 만들어진 옹기그릇들과 찰흙으로만 빚어 만들어 만들어진 듯해 보이는 황토색 그릇들을 쌓아놓아 마치 예술품을 보는 듯하기만 한 광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인의 옹기만들기 참관
외고산 옹기마을을 찾아 뜻하지 않게 반가운 참관을 할 수가 있었다. 옹기 아카데미에서 어술프지만 직접 옹기를 만들어보기도 했었지만, 대형 옹기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참관했다는 점은 뜻있었던 울주 외고산 옹기마을 여행이었다.

절반정도를 완성해 놓았던지라서 흙반죽하기 과정을 볼 수 없었다. 물레에 올려진 대형 옹기 그릇이 보인다.(허진규 장인의 옹기만들기 시연입니다) 옹기의 태토인 찰흙을 반죽하는 과정은 발로 짓이겨 가래떡처럼 길게 뭉쳐서 흙띠를 만드는 과정이다. 흙띠를 하나씩 올려면서 옹기를 만드는데, 보기에는 반쯤 만들어진 옹기에 소요된 흙띠가 어느정도일지 가름해 보기도 했다.

수레질을 하면서 3~4단으로 쌓아 흙띠를 고르게 다듬어준다. 도개의 면을 다듬는 과정인데, 매끈하게 다듬어지게 되면 계속해서 흙띠를 올려나간다.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이다. 물레를 돌리면서 표면을 마무리한다. 옹기의 안쪽부분도 손으로 눌러주면서 함께 매끄럽게 작업하는데, 작은 옹기는 만들때에는 쉽게 손으로 작업할 수 있지만 큰 옹기를 제작할 때에는 손이 닿지않아 특별한 옹기 제작도구를 사용한다.

아래부분이 완성되면 위에 또다시 흙띠를 올리면서 높이를 높여나간다. 한개의 흙띠를 붙이고 수레질과 평탄작업이 계속된다.

흙띠가 올려질수록 옹기의 크기도 높아져가고 어느새 성인 한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만큼의 높이까지 쌓아올라간다.

옹기가 완성되면 이제 마무리 단계로 입구를 만들 차례다. 전체적으로 모양을 잡음으로써 완성되고 임구부분을 완성시키는 단계가 되었을 때에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장인의 손끝이 지날때마다 옹기의 입구는 모양이 잡혀가는 모습이란 참으로 신기하 따름이다. 옹기의 외벽에 문양을 만들어 대형 옹기를 완성해 나갔다.

헌데 의문이 생길만도 하다. 옹기를 빚은 찰흙은 직접 만지게 되면 변형되거나 흠집이 생길 터인데, 어떻게 물레에서 분리시킬까? 전통적인 방식으로 분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천을 이용해 두사람이 동시에 밑부분을 들어올리는 방식이다.

안전하게 옹기를 분리해 낸다. 마지막 단계는 옹기의 윗부분인 뚜껑을 만드는 과정이 남았다.

옹기의 뚜껑을 만드는 과정을 참관하게 되니, 옹기 아카데미에서 직접 체험했었던 방식이 그대로 이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뚜껑의 밑면을 다지는 작업을 마치고 흙대를 계속해서 쌓아가며 높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옹기 몸체에 맞게 뚜껑부분을 늘려 크기를 완성한다.

완성된 옹기는 굽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잇는 균열과 파손을 막기 위해 동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서서히 말리는 과정을 거치고, 건조과정이 끝나게 되면 유약을 바른다. 유약이 마르기전에 다양한 문양을 그려 옹기를 완성하고 가마에 넣어 굽게되면 옹기가 완성된다.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다양한 옹기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옹기업체들이 입주하고 있어서 저마다 만들어진 형태도 다양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때 효소인기 덕으로 몇년 전에는 작은 옹기를 구입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입할 때에는 옹기산업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었던 때가 있었다. 매실이나 혹은 복분자, 구기자 등의 열매를 설탕과 배합해 일반인들이 집에서 만들어먹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때가 떠오르는데, 옹기는 이러한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에는 최고의 용기라 할만하다.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울산옹기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관람객들의 볼거리를 충족한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최대 높이의 대형옹기다. 성인 높이보다 큰 옹기의 높이는 2미터 23센티미터이고 둘레가 517.6cm에 달한다. 기네스에 등재된 대형옹기의 모습에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옹기 제작도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높은 옹기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큰 도구를 사용해야 했을지 상상해보면 어마어마한 크기다.


생활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종류의 옹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울산옹기박물관에는 용도와 지역에 따라 변화되어 온 한국의 옹기들에 대해서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나라의 옹기도 전시되어 있어 한국의 옹기와 비교하면서 관람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마 하나가 전시관 통로로 만들어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체험과 볼거리가 한데 어울러져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은 산책삼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옹기를 이용한 마을 곳곳의 인테리어가 시선을 끄는 모습이니 말이다.

울산 옹기축제가 이곳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매년 열리는데, 올해에는 10월 24일에 개최된다.
(당초 울산옹기축제는 2014년 5월2일부터 5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전국민적 애도 물결에 동참하고자 울산옹기축제가 2014년 10월 24일로 연기되었답니다.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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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으로의 여행에서 뜻하지 않은 맛집을 알게 되었다. 여행온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기분좋은 일은 예상치 않았던 반가운 여행지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기분좋게 만드는 맛집을 만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울주의 다양한 볼거리들을 둘러보고 시장기가 몰려드는 오후에 찾은 '얼크니손칼국수' 집은 예상을 깬 맛있는 식당 중 하나였다. 흔히 손칼국수가 거기서 거기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갖은 야채에 미나리가 듬뿍 들어가 야채육수가 맛깔스럽기도 했었고, 얉게 썰은 대패 등심 탓이었을까 국물맛이 일품이기도 했다.


사실 음식점을 처음 찾았을 때에는 당황스러운 면도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가옥이 없는 허허들판에 덩그라니 세워져 있는 '얼크니손칼국수' 간판은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듯해 보이기도 한 모습이었다.

넓은 주차장을 끼고 있는 곳에 세워져 있는 간판은 마치 고속도로의 휴게소 간판을 연상케하는 큼지막한 간판이었는데,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간판만 있는 식당? 인가 하고 말이다.


식당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주차장으로 되어 있어서 식당은 없나 하는 의심마저 들만큼 넓직한 음식점이다. 더욱이 음식점 건물을 보면 어느 누가 음식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흔히 음식점이라면 건물 출입문에 그럴싸한 간판 하나쯤은 붙어있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데, 현대식 2층 건물이 달랑 세워져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가정집이라 생각할만한 주택이다.

대형 간판이 아니었다면 길 양쪽으로 논으로 조성되어 있는 넓은 공터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음식점 건물은 꾸며지지 않는 모습에 놀랐었다. 아니 어쩌면 서울에서 살면서 늘상 음식점을 찾을 때마다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간판부터 눈에 띄었던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최면효과 덕에 '얼크니손칼국수' 음식점의 모습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계 안에는 두부과자도 판매하고 있는데, 보통의 가정집 같은 넓은 거실가 작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방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구조다. 거실은 널직해서 대형 손님들이 몰려도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작은 방도 규모는 마찬가지다.


오전에 많이 걸어서일까 배가 출출함을 느끼던 시간이어서였을까 배고픔이 간절하기만 하다. 일행이 앉자마자 대뜸 주문한 것은 얼크니손칼국수인데, 단일메뉴이니 주문이 따로 필요없을 듯하기도 하다. 헌데 손칼국수 치고는 가격이 비교적 비싼 축에 해당한다고 여겨지기도 하다. 손칼국수 가격이 7천원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오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우선은 육수가 담겨있는 큼지막한 냄비에 나왔고, 버섯과 야채들이 넘칠만치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특히 언양읍성 내에서 목격했었던 미나리밭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던지라서 냄비에 담겨져있는 미나리를 보니 울주의 랜드마크라 할만한 '언양읍성'이 생각난다.


접시에 담겨져 나온 등심은 샤브샤브용으로 먹기에 적합하다. 얇게 썰려있어서 끓는 육수에 잠깐만 넣어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양도 푸짐하기는 마찬가지다.


반찬은 아삭해 보이는 배추김치는 작은 항아리에 담겨져 있어서 꺼내 먹으면 된다. 헌데 이미 썰어있는 김치가 아닌 통배추김치다.


육수가 끓으면 넣는 손칼국수 한접시도 금새 나왔다.


야채가 뜨거운 육수가 적당히 익히면 건져서 먹으면 된다. 취향에 맞춰서 야채의 익히는 정도는 손님이 고려해서 먹으면 되는데, 어느정도 익었을 때에 대패 등심을 넣어서 야채와 함께 먹으면 된다.


얼큰한 육수에 야채가 숨이 죽을 때에 등심을 넣었다. 두께가 얇아서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 야채가 익었으니 샤브샤브처럼 먹으면 그만이다. 서울에서도 샤브샤브 요리를 간혹 즐기던 터라서 얼크니손칼국수의 조리법은 익숙했다.


미나리가 많이 들어가서였을까? 육수맛이 일품이다. 등심이 익혀지기가 무섭게 일행의 젓가락질이 시작되고 금새 게눈감추듯 등심이 사라져갔다.


시장기가 많았었나 보다. 야채와 등심이 금새 자취를 감추고 끊은 육수에 오랫동안 테이블을 지키고 있던 칼국수를 투척한다.


뜨거운 육수물에 칼국수가 익어간다.


부지런히 낚시질을 한 덕에 남아있던 등심이 딸려나왔다. 월척인가 ㅎㅎ


갖은 야채와 등심 샤브샤브에 칼국수로 배를 채우고 식사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맛의 시작은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일 듯 하다.

육수를 끓였던 냄비에서 남아있던 육수와 건더기를 건져놓고는 냄비를 주방으로 가지고 갔다. 흔히 칼국수집에서는 볶음밥을 할 적에 손님 테이블에서 누룽지를 만들어주듯이 주걱으로 이리저리 요리르 해주는 게 일반적인데, 울주의 '얼크니손칼국수'에서는 거실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조리대에서 볶음밥을 만들어서 내어준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볶음밥을 먹지 않는다면 아마도 '얼크니손칼국수'의 백미를 맛보는 것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을 듯 하다.


이정도면 가격이 착한 가격에 속하지 않을까?
야채와 등심 샤브샤브에 칼국수 그리고 볶음밥까지 하나의 코스요리를 맛보는 셈이니 말이다.


덩그라니 주택가옥만 있어서 처음 식당안으로 들어설 때에는 당황스러움이 들기도 했던 울주의 '얼크니손칼국수' 음식점이었는데, 나올 때에는 만족스러움에 웃음이 나온다. 역시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점을 만나게 되는만큼 기분좋게 해주는 것은 없을 듯 하다. 울주를 여행한다면 언양불고기를 추천하는데, 얼크니손칼국수집이 울주가볼만한 곳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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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에 위치해 있는 가지산은 등반코스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산이다. 울주 상북면과 경북 청도군 그리고 경남 밀양시 신내면에 뿌리를 내린 가지산은 울산의 울타리가 되어 있는 산이기도 하다. 해발 1000m 이상의 일곱 산이 이어져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울산 산악의 주봉이기도 한 가지산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 '석남사'다.

석남사는 1200년 전 신라 현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후 수차례 중수를 거듭하다 1957년 바구니 인홍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현재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도의국사의 부도, 3층 석가사리탑, 3층석탑, 석남사 수조 등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어 울주의 대표적인 명소인 석남사를 향해 길을 잡았다.

석남사를 통해 가지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눈에 띄이는 시간이었는데, 이곳 석남사에서 출발해 가지산 정산 인근에는 또하나의 명소가 자리잡고 있다. 바로 쌀바위라는 곳이다. 쌀바위 아래 암자에서 불경을 외던 수도승은 며칠에 한번씩 마을을 내려가 식량을 동량했는데, 어느날 아침부터 날마다 바위틈에서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어쩌랴. 수도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욕심이 생겼고, 쌀이 나오는 틈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틈을 크게 만들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그 이후로 바위틈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쌀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석남사로 향하는 길은 곱게 단장한 포장길로 이어져 있다. 산을 오르지 않고도 명승고찰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포장된 길을 따라서 석남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산책로가 아닐까 싶다. 길 양쪽으로는 정돈되어져 있는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산책길은 흥이 난다.

특히 수백년은 됨직해 보이는 뿌리깊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갖가지 나무들을 감상하면서 길을 걷는 것도 좋으리라.

 
문득 석남사를 향해 한발 한발 대딛다 생각하는 것이 국내의 명승고찰들은 수려한 산을 배경으로 건립된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기 위해서 자연과 하나가 되기위해 험한 산속에 사찰을 지었던 것이었을까?

오늘날에 와서야 사람들에 의해서 산책로가 다듬어지고 산을 오르기 위한 등반로가 만들어졌지만, 과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이곳역시 험준한 산줄기와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로 유일하게 오르는 사찰로 향하는 길은 돌무더기와 흙길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문든 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주고받는 말이 흥미롭게 필자의 귀에 들려온다. 국내의 유명한 산을 가보면 그곳에는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산이 먼저였을까 아니면 사찰이 먼저 들어서 산이 유명해진 것이었을까?


보도블럭으로 깔끔하게 단장된 석남사로 향하는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아직은 때이른 쌀쌀한 바람이 부는 4월의 둘째주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기에는 이른 계절탓이었을까? 아니면 오후로 접어들어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이미 한차례 지나간 탓에 한산함이 마치 도를 깨닫기 위한 수도승의 마음만큼이나 한적하기만 하다.

멀리서서나 들리는 경내의 불경소리가 이곳이 사찰임을 알게해주기도 하다.

석남사 입구에서 사찰까지는 200여미터에 이르는 길이다.


사찰의 첫 관문처럼 보여지는 청운교에 다가랐다. 청운교가 명명한 다리는 아마도 현대에 들어서서 지어진 다리인 듯 보인다. 말끔하게 잘려나간 돌표면과 조각들은 과거에 지어진 것이 아닌 현대의 기술력으로 지어진 듯 보여지는 다리였다.


청운교에서 바라보는 석남사 앞을 흐르는 내천의 모습은 마치 수도를 하는 수도승처럼 한폭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은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으니 말이다. 콘크리트로 내천을 정비한 것일진데, 언제부터인가 물줄기는 낙수를 이루고, 새로운 물길을 열고 있는 모습이다.


석남사는 개산이래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조선 현종때에 탁영, 선철선사 등이 중수했으며, 그 뒤 순조 3년에 참허, 수일선사 등이 중건한 후 근래에 이르러서는 1912년에 우운선사가 다시 중수를 거듭한 사찰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문을 개설한 가지산문의 개창자이자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국사가 1200년전에 창건한 이래 많은 중수를 거듭한 셈이다.

청월 추연이 지은 사적기에 따르면 창건 당시에 화장보탑의 성려함과 깨침의 길을 여는 자비로운 미화가 영남에서 제일이라 하여 지은 이름이 석남사라 한다.


1200년 전이라 하니 가히 천년 세월을 버티고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니 그 모습에서는 고귀함과 웅장함마저 깃들어 있는 것이 석남사의 모습이다.


명승고찰을 찾을 때마다 필자는 종교를 떠나 사찰의 처마에서 느껴지는 갖가지 그림들과 건축양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천년 전에 살았던 선조들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처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공을 들였을까 생각하면 숨이 멎을 듯한 섬세함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랜세월이 지나 뚜렷했던 색감들이 빛을 바랬지만, 빛바램마저도 인고의 시간처럼 찬연하기만 하다. 섬세한 그림들과 아름드리 나무들, 그리고 사찰을 이고 있는 석조기둥은 깨우침을 위한 수도승의 고단한 수행을 그리기 보다 천년의 예술혼이 그대로 담겨있는 모습이 아니던가.

 
석남사 안뜰을 차지하고 있는 삼층석가사리탑이다. 연꽃들이 둘러쌓인 모습을 보니 어저깨가 바로 부처님 오신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라 현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호국의 염원으로 15층의 대탑을 건립했지만 애석하게도 임진왜란 때 손실되었다고 한다. 현재 석남사에 남아있는 석탑은 1973년에 인홍선사가 주변의 탑석을 모아 삼층석탑으로 복원하고 스리랑카 사타시싸스님이 부처님 진시사리 삼과를 모셔다가 석남사 석가탑 안에 봉인했다고 전한다. 잡 높이가 11m에 혹은 4.57m이다.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 우리나라는 아픔이 많다. 깨우침을 얻기 위해 수도하는 사찰임에도 침략으로 인해 소실되거나 파괴된 흔적들이 보인다니 가슴아픈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임진왜란 뿐만 아니라 호란을 겪으면서 많은 문재유산들이 잿더미가 되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불교는 한민족과는 떨수 없는 종교이기도 하다. 필자는 불교를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명승고찰을 찾을 때마다 엄숙해지고 숙연해진다.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 종교는 호국으로 바뀌었고, 수천년의 역사를 지탱해오지 않았던가.


부처님의 위신력이 온갖 마군을 항복받은다는 뜻을 갖고 있는 석남사 대웅전은 웅장함을 깃들어 있다. 19754년 인홍선사가 해체 복원한 건물로 중앙에 석가모니불상과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이 봉인되어 있다. 정면의 계단 소맷돌은 용이 여의주를 머금고 불법을 호위하는 자채를 보이고 있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는 3층석탑은 대웅전 뜰 앞에 위치하고 있던 것을 1973년에 극락전 옆으로 옮겨 세운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는 탑이다. 높이 5M에 폭 2.3M의 작은 규모로 소박하고 단아함을 느끼게 하는게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특징이기도 하다.


석남사을 들른다면 봐야 할 것들 중에 3층석탑과 더불어 석종을 빼놓을 수 없다.


신라시대에 구유로 만들어진 것을 지금은 물받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등산객들에게 시원한 약수 한그릇을 선사하는 돌수조는 사면의 모서리에 연꽃봉우리 모양의 무늬를 넣어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석남사에는 특별함이 깃들어 있는 사찰이다. 필자는 처음으로 석남사를 찾았지만 고찰이 주는 아름다움과 고귀함과는 다른 모습을 찾아보았다. 많은 세월을 버티며 남아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석남사를 찾는다면 사찰 내부에서보다는 오히려 사찰주변을 감사안고 있는 자연을 돌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경내의 한가로움을 뒤로 하고 석남사를 나오면서 석남사 앞을 흐르는 내천은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에 눈이 간다. 쉼없이 흘렀던 물줄기는 단단하게 보이는 돌을 가르고 물줄기를 만들어낸 모습은 가히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이 아니고 무엇일까.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있듯이 조용하게 흐르는 것만 같은 물줄기는 견고한 돌을 매끄럽게 다듬어 물길을 만들어놓고 있는 모습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연의 힘앞에서는 인간의 힘은 무기력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나무의 생명력은 암석 한가운데를 뚫고 뿌리를 내려 거목으로 성장한다. 도저히 씨앗이 살아나올 것 같지 않은 암석을 나무뿌리가 자라나 돌을 쪼개고 있지 않은 가 말이다.

석남사 주변을 둘러보면서 마치 자연이 부처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듯한 모습에 발걸음을 몇번이나 멈추고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자연의 깨달음을 본다는 것만으로 석남사를 찾은 의미가 있겠지만 현대사의 아픔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인 현대사에서 일본의 태평양전쟁 당시에 일본군의 만행이 서려있는 곳이 이곳 석남사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산천에서 송진을 채취해갔었고, 이곳 석남사 주변의 소나무들은 밑둥이 흉물스럽게 벗겨진채 아름드리로 성장해있다. 필자는 석남사를 내려가면서 인근에 자라난 크고작은 소나무들에서 똑같은 모습들을 발견했다. 작은 몸통을 지니고 있는 소나무는 온전한 모습이었지만 족히 수십년은 넘은 듯한 큰 소나무들은 여지없이 밑둥부분이 껍질이 벗겨진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자연의 생명력은 놀랍기만 하다. 껍질이 벗겨져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소나무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름드리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울주의 석남사를 찾게 된다면 1200년전에 개설한 가지산문의 유서깊은 선찰이 주는 웅장함과 부처의 깨달음을 눈으로 보는 것도 좋은 관람이겠지만 석남사를 흐르는 물줄기와 자연의 생명력을 보는 것 또한 잊지 말기를 바란다. 특히 현대사의 아픔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분명 뜻있는 여행길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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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여행의 첫째날 저녁에 진하 해수욕장의 분위기에 취했었던 게 문제였었던가 싶다. 간단히 하루 여독을 풀겸 한잔 했었던 소주 한잔은 횟집 주인의 친절함과 구들장 장어구이라는 요리에 넋을 빼앗겨 버린 듯한 것만 같다.

여행의 이틀날에 일찍 일어났다는 것이 6시가 지나고 어느샌가 7시를 향해서 시간이 지나고 있는 시간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숙소 잠자리에서 깨어났다. '아이쿠~~' 하는 단발마마저 나올 뻔했다. 다름 아니라 아침일찍 동해에서 가장 빨리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울주 간절곶을 찾을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뒤로 물릴 수는 없다. 아직은 타임머신을 발명해내지 못한 시대이니 이론으로만 만족해야 하지 않은가. 너무도 섭섭하기만 했다. 헌데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은 창문을 열고나서야 어느정도 풀리는 듯 하기도 했다. 이미 해는 올라온 상태였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 구름이 진하 해수욕장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객실에서 묵고 있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날씨가 좋지 않아 일출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밤 명선교 위에서 찬바람이 많이 분다고 여겼었는데, 날씨가 도움을 주지 않은 일정이었나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간단히 세면을 끝내고 객실 로비에서 일행을 만나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서 숙소를 나섰다. 해수욕장 인근에는 의외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이른 시간이라 맛집을 기대하기보다는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만족해야 하는 마음으로 식당을 찾는 여행객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지인과 함께 찾아간 곳은 남해 가정식 뷔페라는 식당이었다.


간단한 된장찌게에 밥 한공기가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전날 먹었던 회 안주와 장어구이에 소주를 한병가량 마셨던 탓도 있었지만 아침을 그리 많이 먹지 않는 식습관 탓에 구수한 된장찌게 하나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만 했다.

남해 가정식 뷔페는 단체손님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큰 식당처럼 보여지는 음식점이었다. 식당 바로 앞에는 승용차를 주차시킬 수 있는 주차공간이 완비되어 있는 식당이라서 이른 아침 해수욕장을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좋은 식당이라 여겨지기도 하다. 물론 필자가 다녀본 대부분의 지방여행에서는 주차문제로 골머리를 썩여야 할 일은 없긴 했다.

서울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는 운전자라면 주차장을 찾아야 하는 곤란한 경험을 한두번 해보았을 터이지만 대체로 지방의 명소를 찾아가게 되면 주차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아직까지는 없을 듯하다. 물론 부산이나 대전 등 대도시의 도심 한가운데에서 식당을 찾을 경우에는 예외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침일찍부터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눈에 보였고, 함께 이번 여행을 떠나온 일행들이 일찍 자리를 잡고 아침을 시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간절곶을 갔다온 일행도 있었는데, 날씨탓에 일출은 감상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있었다.

간절곶을 방문해보지 않았던 탓에 날씨때문에 일출을 감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필자는 그곳을 가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크기만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드라마 촬영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도 하고, 명물이 된 우체통 등 볼거리들도 있었다며 설명해 주었다.


부페식 식당은 부담이 없어서 좋다. 어떤 음식을 많이 담기도 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반찬은 식판에 담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요즘에는 식당에서 손님들의 밥상에 차려지는 수많은 반찬들을 처리하는 것도 여러가지 환경문제일 수 밖에 없다.

먹고싶은 음식이나 좋아하는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게 얼마나 좋은가. 적당하게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용량만큼 식판에 담아 가져다 먹을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반찬들도 정성이 들어가 있는 깔끔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곳 울주에서 처음으로 보게 된 반찬들 중 유독 눈에 띄는 반찬이 있었는데, 오곡 등을 조림 형태로 만든 반찬이었다. 물엿을 넣어 맛을 낸 것인지 달달한 맛도 있고, 여러가지 잡곡이 들어가 있어서 씹는 맛도 제각기 다르다.

전날 저녁 횟집에서도 이같은 반찬이 나오기는 했었는데, 차마 주인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커다란 전기밥솥에서 먹을만큼의 밥을 식판에 담아 반찬들을 조금씩 담아냈는데도 가지수가 많아서 식판이 금새 가득하다.


식당에서 갓 요리한 계란후라이 한개와 갖은 반찬들, 그리고 된장을 접시에 담아 아침을 든든하게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한잔을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면서 아침 날씨를 살폈다.
 
좀처럼 날씨가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는데,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시간에는 빗줄기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는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한 아침이었다. 간단한 부페식으로 든든한 하루를 시작한 진하 해수욕장의 '남해 가정식 뷔페'의 아침은 남다른 맛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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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울산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언양읍이다. 다른 지역에서 울산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 울산역을 거치게 된다면 언양의 먹거리를 맛보고 쉬어가는 것이 어떨까. 언양의 대표적인 지역먹거리인 언양불고기를 언양불고기특구에서 맛보고 피로한 몸을 잠시 쉬어본다.

언양은 크지않은 읍으로 태화강의 상류인 남천을 경계로 남북으로 각각 나쥐어 상북, 중북, 하북을 천북삼면이라 일컫고, 상남, 중남, 삼동을 천남상면이라 하여 모두 6개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폐읍되어 자립할 능력이 없어 일시 울산도 호부에 병합되었다가 광해군 때에 다시 언양현으로 독립되었는데, 숙종 이후 철종 말기까지 150년간 수차 식년에 발간된 자료에 의하면 언양에 대한 자료가 전해진다고 한다.

울주로의 여행 첫째날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하는 KTX에 몸을 싣고 울산역에 도착한 필자는 언양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언양불고기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도 먹어본 적이 있었던 언양불고기였지만 현재에서 먹는 먹거리만큼 맛있지는 않다.


본격적인 울주여행에 앞서 점심으로 배를 채운 탓에 운식하기가 귀찮은 것은 당연했다. 가까운 곳에서 시간도 보내고 소화도 시킬 겸 언양읍에 위치한 언양읍성을 들러보기로 했다. 지난 2013년에 남문 영화루를 복원했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출발에 앞서, 어떤 모습일지 조바심마저 들었다.

오전에 출발할 때부터 좋지 않은 날씨였는데, 간간히 소낙비가 내렸다.
봄비인가?
겨우내 황금색의 옷을 곱게 차려있었던 언양읍성 북쪽은 아직 보수가 진행되는 과정이었던지 어디가 시작인지 분간이 되는 않았지만, 성곽 주위에 파릇하게 새싹이 돋아난 잔디들이 옛 성곽터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북쪽으로 진입하는 언양읍성의 성곽터는 돌무더기가 길게 쌓여져 있어 옛 성곽터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성인키의 허리높이가량이 남아있는 성곽터는 오래되어 바래진 색깔만이 고혹스럽기마저 한 모습이었다. 이곳 언양읍성의 높이는 어느정도였을까 짐작해 본다. 비록 세월이 지나면서 바람에 무너지고 혹은 전란으로 소실되어 이제는 성인의 키 절반가량만이 남아 있는 모습이지만, 과거에는 장신의 키를 지난 성인도 쉽게 오르지 못할 높이가 아니었을까 싶어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언양읍성이 자리한 위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평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필자는 충청남도 서산에 위치하고 있는 해미읍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국내에서 평지에 축조된 성들 중에서 성곽과 보존상태가 깔끔하게 이어져온 성 중에 하나가 해미읍성이라 할만하다.


언양읍성의 성곽 안쪽은 돌무더기를 지탱하기 위해서 비스듬하게 흙이 쌓여져 있는데, 언양읍에 대한 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면 아픔이 많은 곳이기도 해 보인다. 남쪽바다에서 올라온 왜구에 의해서 조선의 강산이 유린당했던 조선시대 임진왜란은 부산을 통해 왜구들이 북진했다. 부산에서 울산을 거쳐 한양으로 가게 되는 길목에서 언양읍성을 만났을 것이고,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이곳 언양읍성을 방패삼아 싸웠을 것을 상상해 본다.

한때 언양은 전란으로 인해 일어설 수 조차 없어서 피폐해졌다는 기록을 보면 이곳 언양읍성이 가진 아픔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대부분의 성곽들이 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반면, 언양읍성은 평지에 축조되어 있는 형태다.

조선시대가 아닌 이미 삼국시대에 축조된 언양읍성은 둘레가 약 1,000m로 네모꼴 형태를 띠고 있다. 사각형 형태의 성곽이 의미하는 바는 어쩌면 성을 중심으로 마을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계획된 도시정비를 통해서 성곽의 형태마저도 마을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인데,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마을 백성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언양읍성 내부는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흡사 수백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유적지가 되었음에도 사람들과 함께 숨쉬는 문화유산의 좋은 방향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드는 모습이기도 했다. 산성이나 혹은 문화재로 등재되어진 문화유적지를 찾아가게 되면 대부분 일반인들의 접근을 불허하게 만들어놓은 게 일반적인 형태라 할만하다.

문화재의 보호와 유지보수를 위해서 값비싼 입장료를 받아내면서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모습을 보면, 과거의 유물이 마치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데, 언양읍성의 모습은 그러한 상업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남문의 영화루뿐만 아니라 서문과 북문, 동문을 모두 복원하게 되면 언양읍성 내부를 완전히 폐쇄하며 관광단지로 만들어놓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지까지는 자유로이 일반인들이 드나들며 읍성내부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봄이 찾아온 것인가.
언양읍성 내부의 밭은 어느새 씨를 뿌리기 위해 농부가 일구어놓은 황토빛 흙이 곱게 단장해 놓은 모습이었다. 언양읍성은 조선시대에 들어 연산군 6년에 돌로 개축되어 확장되었는데, 이때의 둘레가 약 900m에높이가 13척으로 성위에 나지막하게 쌓은 첩이 834개소이고 성 안에는 우물이 네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에는 남문과 북문의 주변에 2곳의 우물터가 남아있고 조선후기에는 객관과 동헌을 비롯해 많은 관청이 들어섰다고 한다.


언양읍성을 가게 되면 특이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읍성 내부에 위치하고 있는 초등학교가 하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양초등학교인데, 아마도 언양읍에서는 대표저인 학교인 듯하다. 언양초등학교에 대해 현지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재미있다.

1906년에 영명학교로 세워진 것이 시초인 언양초등학교는 1913년에 언양공립보통학교로 이름을 바꾼바 있다. 그리고 1942년에 언양국민학교로 개칭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초등학교라는 단어는 사실상 역사가 깊지 않다. 필자역시 초동학교 출신이 아닌 국민학교를 졸업한 세대인지라 국민학교와 초동학교의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구세대 중 하나다.

1906년에 세워진 영명학교 창설당시에는 언양읍성에 대한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리라. 뿐만 아니라 언양읍성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못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게 되면서 근대사를 지나오는 과정에서 언양읍성은 어느순간 지역에서 잊혀져 갔던 그저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 보인다.

 
기온이 풀린 봄철이 되어 파랗게 자라난 미나리 밭을 발견할 수가 있는 곳이 언양읍성의 모습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북문과 남물을 가로지르는 길을 천천히 걷게 되면 좌우로 펼져지는 언양읍성의 내부는 너무도 한가한 모습이기만 하다.
 
다 자란 미나리를 수확하는 동네 아주머니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길가 오른쪽 논에서는 벼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경운기로 흙을 갈아엎는다. 멀리 성곽밖의 언양읍 아파트들이 빠꼭하게 고개를 내밀고 들어서 있는 모습은 구시대와 현대의 조우를 마주하는 풍경처럼 엿보이기도 하다.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수로가 언양읍성 한복판을 가로질러 흘러내리고 그 물은 파란 미나리밭으로 흘러들어간다. 수로 주변으로 언제 피어났는지 이름모를 들꽃들이 수줍은 얼굴을 내비치며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유혹하듯이 피어나 있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국내의 산성을 찾게 되면 문화유적지가 해서 함부로 농사를 짓거나 밭을 일굴수 없게 만들어놓았는데, 그나마 허락된 이들은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부여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아마도 언양읍성 내부의 농사도 비슷한 유형이겠지만, 이곳처럼 밭농사와 논농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성곽은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북문을 통해 가로지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남문 인근에 조성되어진 마을 주택길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오솔길을 따라가는 듯한 풍광에 잠시 걸음을 늦추게 만드는 읍성내부의 마을도 또 하나의 볼거리이자 둘레길이 아닐까 싶기만 하다.

꽤 많은 가구들이 읍성내부에 터를 잡고 안에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지역 문화유산으로 지정됨으로써 내부의 집들을 마음대로 개보수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언양초등학교의 담장이 내다보이는 언양읍성 내부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나르자 거대한 고목이 눈에 띄였다. 마치 길의 끝을 알리는 이정표인양 자리하고 있는 언양읍성의 문지기가 아닌가 싶어 보이는 나무이기도 해 보였다.


지난 2013년에 복원을 끝낸 언양읍성의 남문 영화루에 도착했다. 웅장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서야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착찹해진다. 그도 그럴것이 울주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왜구들을 막아내고 북방에서 쳐들어온 호란을 겪으면서 그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언양읍성의 남문인 영화루가 복원되었을 뿐 언양읍성 전체가 복원된 것은 아닌지라 세월이 지나 완전하게 제 모습으로 복원되어진다면 언양읍성은 새로운 언양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높은 산에 오르지 않아도 시내에 인접해 있는 읍성을 보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인가 말이다.


남문 영화루의 모습은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성곽이 외부와 100%로 개방되어 있는 다른 성들과는 달리 남문 영화루는 외벽을 쌓음으로써 성문을 방어하는데 효과적으로 설계도어져 있다. 반형 형태의 외벽을 쌓음으로써 적군의 성문공격을 직접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성문을 공격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적군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 외벽쌓기 성곽의 특징이라 할만하다.

과학적으로 지어진 조선시대 개혁군주인 정조가 수원에 축조한 수원성은 이같은 원리를 활용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수원성 서문인 화서문은 반원형의 외벽을 쌓음으로써 직접적인 성문공격을 할 수 없도록 해 놓았다. 언양읍성의 남문 영화루가 실제 이같은 형태로 지어진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과학적인 방어체제를 갖춘 설계라 할만하다.


특히 특이한 점은 영화루가 지니고 있는 성문의 형태였다. 다른 석조성곽의 성문들과는 달리 언양읍성의 영화루는 성문을 하나의 문으로 만들어져 있다. 성문 누각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성문의 형태는 국내에 있는 성들과는 다른 형태의 모습이라 여겨진다.

돌을 쌓아 성문의 테두리를 유지한 것이 대부분의 성문의 형태인데 반해 언양읍성의 성문은 사람이 들고나는 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으로 이같은 설계는 단점이 있어 보인다. 성문이 적들에게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쉽게 깨뜨려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도 언양읍성의 영화루는 방어개념의 성문이라기보다는 출정을 위한 성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우리는 숭례문이 불에 타 소실됨으로써 재복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복원과 보존은 엄밀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 여겨진다. 옛것이 지닌 그대로의 예술과 멋은 복원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언양읍과 인접되어 있는 언양읍성 영화루의 복원은 울주를 관광하는 여행객들에게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하는 것이기도 한 동시에 울주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여유로운 시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성루에 올라 복원을 기다리는 성곽의 외곽을 바라보면서 완전히 언양읍성이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사각형 형태의 평지에 축조된 성은 산성보다 방어에 어려움이 많이 들기도 할 터이다. 산을 오르면서 적군이 지치는 것도 산성에서 지키는 병사들이 유리한 이유중 하나이겠지만, 개활지에서 사방 어느곳으로 공격을 해 올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평지 성곽이 지닌 단점이라 할만하다. 그만큼 평지에 세워진 성을 지키는 장수는 지략적으로 꽤 높은 식견을 지니고 있어서 하지 않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영화루의 모습들을 담아내는 카메라 셔터에 자꾸만 손이 가게 되는 것은 왜일까?
여러장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기진 배를 움켜진 듯이 손가락이 자꾸만 카메라 셔터로 향한다.


남문 영화루를 지탱하는 나무기둥에 '서기 2013년 4월 5일'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기도 했다.

언양읍성의 남문 영화루를 뒤로 하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언양과 울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현지인에서 들을 수 있었다. 본디 같은 지역인 울산과 언양의 백성들은 과거에는 친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혼담이 오가지 않은게 울산과 언양간의 불협화음이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언양의 양반들은 채 3%를 차지하지 않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언양지역은 86% 가량이나 되는 많은 양반들이 있었고, 울산은 68%가 차지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울산에 병마절도사가 있었기에 조선시대 후기에 성행했던 사고파는 양반문서의 매매에 언양이 많은 양반들이 유입될 수 있었다고 한다.

울산은 예로부터 교육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울산과학기술대학이다. 조선시대에 울산에는 향교와 서원들이 들어서게 되는데 대표적인 서원이 보광서원이란 곳이다. 임금에게 직접 현판을 하사받은 사원은 일명 사핵서원이라 칭하며, 울산에도 이같은 사핵서원이 자리하고 있고, 교육의 중요성을 어느지역보다 우선시 하는 지역이라 설명해 주었다.


언양읍성 영화루를 뒤로 한채 언양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다. 언양에서 가장 가까운 KTX 역인 울산역에 대한 비화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여행객들이 듣게 된다면 아마도 묵은 피로를 날릴만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울산시내에서 가까운 기차역은 사실 울산역이라기 보다는 태화강역이 있다. 동해남부선의 연장선인 기차길은 애초에 울산역을 지나 남창역을 지나고 있었다. 헌데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가는 KTX 증설로 울산을 통과하게 되면서 역 설치를 현재의 언양에 만들었다고 한다. 애초에는 역 이름을 언양역이라 할지, 아니면 통도사역으로 할지를 정하는 데에도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언양에서 가까운 곳에는 1500년전에 지어진 통도사가 유명하다. 최종적으로 기존 울산역을 태화강역으로 개명하고 현재의 KTX 역을 울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북문으로 되돌아나가는 길목에서 언제 앉았는지 논에 한가로이 내려앉은 백로 한마리가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혼자 생각해 본다. 언양읍성의 모습이 완전히 복원된다 하더라도 한가한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읍성내부에 자리하고 있던 언양초등학교가 언양읍성 복원사업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다. 헌데, 필자는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든다. 옛것을 복원하는 사업이라 해서 읍성내부에 학교가 있는 것이 부당했던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쩌면 온전히 제 모습을 찾았다 하더라도 언양읍성 내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있는 것이 더 특별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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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



부산에서 약 1시간거리에 위치해 있는 경남 울주군이 최근들어 투어 관광단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울주에는 가지산으 비롯해 신불산(간월산)과 영축산, 천황산, 고헌산이 위치하고 있어서 한나절 등산코스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은 지역이기도 하고, 산사와 문화유적지들이 있어서 아이들의 학습에도 도움을 주는 여행코스를 두고 있다.

울주군에는 가보아야 할 곳으로 울주8경이 있다. 동해에서 가장 처음으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간절곶과 가지산 사계, 대운산 내원암 계곡과 반구대, 태화강 상류에 위치한 선바위와 기암괴석, 신불산억새평원, 작괘천과 파래소폭포가 그것이다. 울주의 8경을 둘러보는 데에만 하루코스로는 터무니 없는 모자랄 시간이다. 울주의 다양한 모습들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최소 이틀은 족히 잡아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경남 울주로의 여행 첫날에 필자는 새벽부터 서울역 KTX에 몸을 실었다. 빠르게 출발해야 조금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서둘렀던 탓에 눈커플은 비몽사몽이기만 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의 출발선에서는 늘 이른 아침에 맞게 되는 피곤함이 몰려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지역에서 마주하게 될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이 피로를 씻어낸다.

세상이 참으로 빨라진 모습이다. 옛날에는 부산까지 가는 데에만 꼬박 반나절이 걸렸는데,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가 300km로 달린다니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부산에 못미쳐 울산역에 도착한 것은 고작해야 두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여전히 오전시간이라니... 오전에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둘러보는 것으로 여행의 발걸음을 멈췄다. 울주군의 대표적인 고대유물인 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서의 산책으로 등산화를 신고 있는 발이 고단함을 먼저 느꼈다.

 
울산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는 역시 언양읍성을 꼽을 수 있다. 오전의 일정으로 배고픔이 먼저 느껴지고 언양읍성은 오후일정으로 시간을 맞추어 우선 배고픔을 채워주기로 결정하고 언양한우 불고기 특구로 함께 동행한 안내자는 핸들을 꺾었다.

울주 관광의 첫 관문과도 같은 곳이 언양읍이기도 해 보였다. 지방에서 내려오는 여행객들에게는 가장 좋은 수단이 기차편이다. 울산역을 통과하는 KTX에서 내려 언양읍내로 들어서게 되면 가장 가까운 언양읍성 뿐만 아니라 가까운 가지산의 석문사까지도 이동이 용이하다. 동쪽으로는 울산항과 울산시청 방향이고 북쪽으로는 경주로 가는 길목이니 교통편으로는 가히 울주의 여행관문이라 할만하겠다.

특히 여행자들에게 출발점으로 언영읍을 추천하는 이유는 한가지 이유가 분명하다. 오전에 울주로 출발하게 되면 오전시간내에 도착하게 되고, 석남사나 혹은 가까운 언양읍성을 구경하게 되면 오전시간이 지나간다.


울주군 언양은 울주 언양 한우불고기 특구로 지정받은 곳이기도 하다. 흔히 언양과 봉계 한우로 많이 알려져 있는 불고기 축제가 10월경에 열린다. 언양읍과 함께 울주 두동면 봉계리에서 전통 한우 먹을거리 특구로 지정된 것이 바로 '언양 봉계 한우 불고기 축제'다. 여행 시기를 적절하게 맞춘다면 '한우 불고기 축제'를 찾아보는 것도 유쾌한 여행의 팁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봉계리와 언양읍에서 번갈아가며 10월에 열리는 '한우 불고기 축제'는 대형 텐트를 설치해 관광객들이 직접 최고 품질의 한우 불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게 하는 축제다. 생고기를 그대로 참숯불에 얹어 왕소금을 뿌려먹는 맛이 일품이다.

언양 봉계 한우불고기 축제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는 필자는 오전의 일정을 마치고 언양 한우 불고기 특구로 방향을 잡은 안내자의 설명으로 처음에는 맛있는 꽃등심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 기대감이 부풀었다. 한우고기의 백미는 역시 '꽃등심'이 아니던가. 눈꽃처럼 핀 환상적인 마블링과 숯불에 적당히 익혀 씹을수록 육즙이 고소함을 더해내는 맛이 일품이 아닌가 말이다.


언양읍의 한우불고기 특구에 자리한 갈비구락부는 한눈에 보기에도 가족외식으로 인기있는 전문음식점이라는 느낌이 드는 3층 목조자재로 지은 건물이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오늘 점심은 불고기입니다'라는 말에 기대감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한우고기라면 가장 맛있는 등심을 상상하기에 충분했었는데, 느닺없는 불고기 공격이라니 말이다.

사실 울주로 여행한다면 맛보아야 할 것이 불고기라 할만하다. 언양 봉계 불고기 축제가 있듯이 울주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한우 꽃등신을 숯불에 구워서 먹는 음식이 아닌 불고기 형태로 먹는 '언양불고기'라는 ㅇ음식이다. 언뜻 언양불고기를 서울에 거주하면서도 들어본 듯한 메뉴이기는 했었는데, 흔히 불고기는 전골형태로 익혀서 먹는 것이 대표적인 먹거리라 할만하다.

하지만 언양불고기는 국물이 조금 남아있는 전골형태의 불고기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기도 하고, 형태도 다르다.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 지역의 향토색과 문화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느끼는 체험이라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처음으로 가게 되는 지역에서는 빼놓지 않고 들러보는 코스가 있는데,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에서의 다양한 먹을거리와 상품들을 보게도면 그 지역의 식문화를 어느정도 알수 있기도 하고, 특색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장통에서 접하게 되는 사람들과의 접촉은 지역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 하나의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지역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맛보는 것이다. 울주의 대표적인 지역 먹거리인 언양불고기를 본고장에서 맛보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새로운 일이었다. 가족식 외식장소로 손색이 없어보이는 갈비구락부는 어느덧 봄이 찾아온 모습이었다. 입구를 들어서는 화단에는 어느새 피었는지 튤립이 꽃망울을 떠트려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 보여지기도 했다.


실내로 들어서니 한쪽 변면으로는 많은 연예인들이 찾아와 남기고 간 싸인집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인다.


락그룹 부활의 싸인과 기념사진이 걸려있는 모습도 보였다. 학창시절 필자가 가장 좋아했었던 락 그룹이었던지라 벽면에 걸려있는 부활의 사진에 자꾸만 눈이 간다.


넓은 홀안은 테이블은 수십명의 단체인원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테이블 수를 갖추고 있었는 모습이다.


한상 가득 반찬들이 채워지고 가운데에 은박지 위에 다진 고기를 익힌 메인 메뉴가 등장했다. 불고기라는 말에 전골을 생각했었는데, 특이한 모습이라 할만하다. 사실 필자는 언양불고기를 서울에서도 맛보았었다. 소고기를 특이하게 갈아서 떡갈비 형태로 만든 것이 언양불고기였는데, 처음 맛보았을 때에는 흔히 말하는 떡갈비의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헌데 언양읍 한우불고기 특구인 갈비구락부에서 맛본 '언양불고기'는 서울에서 맛보았던 것과는 다른 맛이 들었다. 대체적으로 형태는 비슷하기는 했지만, 갈비구락부의 언양불고기는 은박지에 육즙이 남아있어 숯불에 계속해서 끓는 듯한 형태다. 그렇다고 전골형태의 불고기처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식당에서 미리 익혀서 손님들 상에 나오는 '언양불고기'는 특수부위에 해당하는 소고기를 요리하는 음식은 아니다. 언양불고기의 유래는--- 과거 언양에서 소고기를 부위별로 나누어 도축하고 난 후 조각조각 나있는 고기들을 한꺼번에 다져서 먹었다고 한다. 헌데 한꺼번에 여러 부위의 고기들을 다져서 먹게 된 불고기가 맛있어서 그 이후에 불고기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 언양불고기란다.


여러 지방으로의 여행을 떠날 때에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식당을 찾게 되면 의외로 색다른 서비스에 만족하게 되는데, 지방에서의 후한 인심만큼이나 밥상의 무게는 비례하는 듯해 보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족히 2~3만원으로나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 지방으로 가게 되면 저렴하다는 것도 특징이기도 하다.


오전에 많이 걸어서인지 배고픔으로 불고기를 한점 깻잎과 상추에 싸서 맛을 보았다.

 
함께 나온 콩나물과 마늘을 얹여서 한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쌈을 싼다.

서울에서의 언양불고기는 떡갈비의 맛이 강하다고 해야 할듯 했는데, 울주에서의 언양불고기는 소고기 육질이 그대로 살아있는 맛이 일품이다. 질기지 않고 고소한 맛이 깻잎향과 어울어져 입안에서 맴돈다.


후한 지방 인심만큼이나 서비스맛도 달랐다. 서비스라고 나온 조그마한 육회의 맛도 일품이다. 참기름이 많이 들어가 고소한 맛이 소고기의 맛을 희석시키는 것과는 달리 약간의 참기름으로 버물려서 소고기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언양에서 맛본 육회의 맛이었다. 강한 단맛이 나기보다는 소고기맛이 더 강하다고 해야 할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든든하게 언양불고기로 점심을 해결하고 한가로워 보이는 갈비구락부 2층 나무탁자에서 10여분의 시간을 유유자적하며 한가로움을 느껴본다.


완연한 봄기운이 춘곤증마저 불러일으키게 하는 날씨다. 경상남도 울주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다. 울주8경을 비롯해 석남사와 외고산 옹기마을에서의 체험도 울주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의 한 부분이다. 신라시대의 고찰들과 조선시대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울주에 간다면 맛있는 먹거리로 '언양불고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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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비행기, 스마트폰으로 지구반대편으로의 이동과 통신이 용이해진 오늘날의 문명을 비교해 본다면, 1만년전 지구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날에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질좋은 옷가지와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지만 빙하기를 지나 고대 선사시대의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지 궁금해진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는 선사시대의 시간을 담아놓은 유적지가 있어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현대의 일상시간을 쫓개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KTX를 타고 이동하면 고작해야 3시간 남짓으로 도작하는 오늘날이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과 부산까지의 거리는 5~6시간이 걸려야만 도착했던 머나먼 거리. 기차길은 굽이굽이 산을 돌아 나아갔었고, 산허리를 돌아내려가는 하행선에서는 속도마저 늦추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곳이기도 했었습니다. 여행객들은 그런 지루함마저도 여행의 묘미로 생각하며 기차에 몸을 실기도 했었다.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천리 각석을 방문하기에 앞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번지에는 만년의 세월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이 그것이다. 국보 제285호와 국보 147호로 제정된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중심으로 한국 암각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고 특히 태화강의 지리적인 특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방문하고 암각화와 각석을 찾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울주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모든 정보들이 담겨있는 울주암각화박물관은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하고 있는 중간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거리 1.2KM의 도보길을 따라 어느 방향으로 먼저 길을 잡을지는 여행객의 발길이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지역이 여행지를 가게되면 도보를 좋아한다. 무릇 여행의 묘미는 걷는 데에 있다 할 수 있고, 도보로 목적지를 향해가는 여정에서 마주치는 특별함이 좋아서이다. 울산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 대한 정보들이야 요즘 시대에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여행객들의 마음까지 알수는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정보의 바다속에서 정작 여행이 주는 참맛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반구대와 천천리각석 어느방향을 먼저 찾을지 고민하던 필자의 눈앞에서 울산암각화박물관 앞을 흐르는 사연호의 강줄기가 손짓을 한다. 마치 무언가를 그려놓은 듯한 모습에 한참이나 개울의 물줄기를 들여다보았다. 박물관 안에서 선사시대 인들이 사냥했던 혹은 푸른 바다속에서 긴 꼬리를 펼치며 거센 물보라를 만들어내던 거대한 고래의 형상을 닮은 개울의 모습이 저절로 반구대암각화를 향하게 만든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문양은 얼핏 보기에는 특이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알수 없는 상형문자와 도형을 그려놓은 듯한 천전리각석과는 달리 반구대암각화에는 마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꼬마가 그려놓은 듯한 동물들의 뭄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투르지만 뚜렷한 고래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곳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이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 탐방로를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띄였다. 여행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배려가 엿보이는 것이기도 한데, 위성사진으로 지리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탐방안내도이다. 각기 1.4km내외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 두곳의 선사시대 유적지는 길게 펼쳐본다면 5km의 거리라 보면 이해랄 수 있는 거리다.

지역의 유적지를 찾으면서 도보를 즐기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목적지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여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특별한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필자는 경북의 '문경새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깨끗하고 걷기 편하게 닦아놓은 산책로도 걷고싶은 산책로 몇위안에 선정될만큼 예쁘게 조성되어 있는 곳이지만 과거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서 반두시 거쳐야 했었다던 문경세재의 험한 산길이 선비들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으리라.

울주 반구대암각화 초입을 들어서면서 필자는 예상하기도 힘든 선사시대 인간들이 생활을 떠올려 본다. 대곡천 하류로 강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이곳 언양읍 반구대안길이지만, 아주 오랜 선사시대에는 이곳이 바다와 인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반구대암각화로 향하는 산책로에서는 수많은 세월속에서 쌓이고 깎여져 드러난 단층의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간의 수명보다 더 오랜 지구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켭켭히 쌓인 단층이 아니던가. 수십년의 세월을 돌아 아니 수백년, 수천년의 세월의 시간속에서 쌓이고 쌓인 단층들은 흐르는 물줄기에 의해 부서지고 깨어져 오늘날의 모습을 보였다.


문득 의문이 든다. 선사시대에 이곳이 바다와 연접되어 있었던 곳이라면 대곡천을 흐르는 물줄기는 강물은 강물이 아닌 바닷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울주에서 가까운 울산 앞바다까지 원시인들은 하루나절을 걸어서 고기를 잡기 위해 이동했었까 하는 의문점들 말이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반구대 암각화 산책로를 걸으면서 마치 조각칼로 깎아놓은 듯한 지층단면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옛날에는 어떤 생활들을 했을까'를 떠올린다. 나무로 얽기설기 만든 배를 타고 대곡천을 따라 망망대해가 내다보이는 덞은 울산의 앞바다까지 고기잡이를 하는 선사인들의 모습이 눈이 들어온다.


암각화박물관에서 도보로 30여분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한옥스테이와 대곡리 연로개수기를 만나게 된다. 외국인들에게 한옥스테이는 한국을 다시금 찾게되는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복잡한 서울의 도심에서 생활하다보면 빡빡하게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에 숨이 막히는 답답함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답답한 도심속에서 한가로움을 즐길 여유는 없는 듯 제각기 자신들만의 갈길을 행해 진직을 하고 옆을 돌아보지 않는다. 바쁜 일상의 생활이 습관처럼 변해버린 것일까?

암각화박물관과 반구대암각화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는 대곡리 연로개수기는 반고서원에서 반구대암각화 방향으로 약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곡천 가장자리의 바위 면에 새겨진 일종의 마애기로 훼손이 심한 것이 못내 씁씁함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는 얼마쯤일까?
대곡천 이정표를 지나 만나게 된 대곡리 연로개수기를 만나면서 봄기운이 한껏 올라있는 기온이 상큼하게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아 길을 길으면서 '사색'에 빠져보기도 했었고, 문경새재의 과거기릉 따라 '선비의 길'을 걸어도 보았다면 이곳 울주의 '반구대암각화 산책로'는 '세월'을 걷는 듯한 묘미에 빠져본다.


반구대암각화에 가까워올수록 현대와 선사의 시간이 만난다. 목조로 만들어진 현대적 감각의 다리는 주의의 자연과 더불어 또하나의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길이 50여미터에 이르는 목조다리를 걷다보면 마치 습지를 떠도는 듯한 느낌에 다른 세계로 공간이동을 하는 듯하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줄기는 대곡천을 만든 지류일까? 머리아픈 학문을 접어두고 단지 자연속으로 한발 다가선 자신을 발견하는 듯한 감흥에 휩싸여 또 한번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빠곡히 자라난 대나무 숲속길을 따라 걷아보면 어느샌가 바람이 동행을 한다.

울주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이곳 울주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이기도 하지만, 넓디넓은 대밭이 펼쳐져 있는 '십리대밭'이 유명하다. 지난 여름에 담양 죽녹원을 찾았던 때가 떠오르던 반구대 암각화로 오르는 산책로였다.

 
반구대암각화에 다가설수록 설렘이 앞선다. 선사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담겨있는 암각화를 볼 수 있다는 들뜬 마음이랄까? 암각화란 말 그대로 바위에 다양한 기술로 그려진 그림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문명이 발생한 곳에서 발견되는 암각화를 이곳 울주에서도 볼 수 있다니 말이다.

허나 울주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선택이 중요하다. 반구대암각화는 1965년 울산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물속에 잠긴다고 한다. 연중 5~6개월 가량 물속에 잠기며, 6~7개월 정도가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1년중 갈수기인 11~5월까지의 7개월중 단 2~3개월 정도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한 대곡천으로 인해서 가까이에서 반구대암각화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고 반구대암각화 건너편에서 가로 3m와 세로 1.5m 크기의 대형 모형도을 설치해 방문객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필자는 사실 반구대암각화의 선사시대 유적지에 대한 감흥보다 반구대암각화를 접하기 전에 펼쳐진 대곡천 지류가 만들어낸 푸른청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조형물보다 더 아름답고 거대한 푸른 수림의 모습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인간의 손길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푸른 버들나무의 군락지에 눈이 돌아가게 만들고 몇번인가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위대한 자연의 웅장함마저 감도는 모습이었다. 대곡천이 만들어낸 습기로 인해 군락지의 땅위는 푸른 양판자를 깔아놓은 듯한 모습이었고, 멀리 보이는 산의 나무들과는 확연히 다른 군락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이처럼 좋은 풍경을 단지 몇시간 몇분으로 족하고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에 말이다. 울산이나 부산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두어달에 한번은 찾아와 푸른 청해를 만들어놓은 군락지를 다시금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배어나온다.


30여분을 걸어 산책로를 따라 반구대암각화에 올랐을 때 많은 여행객들이 눈에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대곡천으로 인해 깍아놓은 듯한 단층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었던지라 반구대암각화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조차 여러웠다.

고정식 망원경을 통해서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반구대암각화가 전부였던지라 아쉬움이 많이 들었던 여정이었다.


너비 10m 높이 3m의 울주 반구대암각화에는 300여저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육지와 바다동물들이 그려져 있고, 사냥과 포경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울주 반구대암각화다. 바다동물로는 고래와 거북, 물고기, 늑대, 여우, 너구리 등이 새겨져 있고, 배와 작살 부구를 이용하여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어 울산만이 뛰어난 해양어로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유적물이다.

반구대암각화의 제작연대는 고환경연구와 고고학적 비교연구 결과를 미루어볼때, 선사 약 7,000~3,5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고대암각화는 선사시대 북태평양 연안의 독특한 해양어로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유적이자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으로 평가되어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선사의 긴 세월의 담아놓은 유적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많이 들기도 했었다. 반구대에 새겨진 암각화는 흐린 날씨에는 망원경을 통해서도 희미하게 형체만을 알아볼 수 있다. 날이 좋아 암각화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방문객에게는 행운이 따르는 날이기도 할 듯하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발길을 돌려 천전리각석 지역으로 걸음을 바삐했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즐거움과 설레임이 들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 법일까? 흔히 산행에서 겪게되는 오름길과 내리막길의 느낌이 다르다. 물 무더기 하나 암석 하나를 밟으며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은 설레임이 차지하지만 다시 똑같은 길을 따라 내려와야 하는 내리막길은 터벅터벅 나그네의 봇집진 어깨의 무게만큼이나 더디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구대암각화를 뚜렷하게 관람하지 못한 여운이 들었던 까닭이었을지 박물관으로 다시 돌아오는 여정에서는 대곡천 하류의 암석지대를 깎아놓은 지층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혹시라도 새로운 유적물이 내눈앞에 포착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에서 말이다.


반구대 암석화에서 3km를 걸어 반대방향으로 돌아나온 곳에는 천전리각석이 위치하고 있다. 곳곳에 방향을 표시해놓은 이정표들로 찾기가 쉬워 초행길에 나선 여행객들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들어있는 곳이기도 했다.

천전리각석은 암각화박물관에서 대곡천 하류로  1.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천전리에 위치한 암각화를 '각석'으로 불리는 까딹은 암각화뿐만 아니라 신라시대 명문과 세선화가 함께 새겨져 있는 때문이다. 바위면은 너비 약 10m, 높이 약 3m로 전체 암면이 15도 경사져 있다. 바위면의 상반부에는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각종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물결문, 음문, 마름모 등이 새겨져 있다.


세월이 지나서 사람이 사는 곳은 같은 것인가 보다. 반구대암각화와는 달리 천전리각석에서는 시대를 풍미하는 시간을 들여다보게 된다. 선사시대에서 신라시대로 이어지는 문명의 물줄기말이다.


선사문화길로 지정되어 스토리워킹 태화강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인다. 혹시라도 문화적 산물이 훼손될 것만 같아 바삐 뛰는 걸음마저도 천천히 걷게 만드는 경건함이 드는 까닭은 왜일까?


천전리각석은 반구대암각화에서 못대 아쉬웠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주는 곳이기도 했다.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선사시대의 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와는 달리 천전리각석은 바로 눈앞에서 각석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온갖 문양들이 아로새겨진 암석의 각석들을 들여다보면서 '언제 새겨졌을지'를 떠올려 보게 한다.


분명 최초의 누군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또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그림과 문양을 새겨 넣을 것이리라.

하반부에는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새겨진 신라시대의 행렬과 돛단배, 말, 용 등이 세선화와 신라 법흥황 시대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오늘날에는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한사람에 의해서 새겨진 것이 아닌 여러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양들과 그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종이와 잉크가 없었던 선사시대에는 후손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단지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지식을 구전으로 아들과 그 아들들, 아들들의 또다른 아이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이리라.


사람보다 더 큰 바다의 왕이라 불리는 고래를 어떻게 인간들이 잡을 수 있었을까? 아이들과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 마을의 촌장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에 대애서 바위에 그림으로 새겨 남겨주었을 것이고, 후대의 아이들은 선조들의 지식을 통해서 바다에서 고래와 물고기를 잡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시간은 그렇게 또 한세대를 흘러가고 선사의 시간은 신라의 시간으로 겹쳐져 흘렀다. 천전리 각석은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데, 추상적인 도형들은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으로 오늘날의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아래부분에 새겨진 신라시대 명문은 을사, 기미 등을 통해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명문은 크게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아들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선사와 신라를 잇는 역사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천전리각석 앞에서는 암석에 핀 이끼마저도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장엄함을 발견했다. 그 옛날 선조들은 후손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전하기 위해 단단한 돌위에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여행한다면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곳이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서의 시간여행이 아닐까 한다. 경주와 부산에서의 거리가 한시간 남짓 거리이니 울주군 가볼만 한 곳으로 만년의 세월이 숨어있는 유적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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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뷰티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