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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소고기 경합에 돌입한 <식객>은 봉주(권오중)와 성찬(김래원)의 대결구도에만 고집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아쉬운 모습이다. 21일 방송된 <식객>에서는 도축된 소고기 품질 판정이 볼거리라 할만하다. 그렇지만 최고의 한우를 찾아라 판정대결에서 정작 봉주의 운암정과 성찬의 대진유통 사이에 흐르는 대립각에만 심취해 있고, 정작 본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고기에 대한 판별에 있어서 심사관들이 어떤 것에 기준을 두고 있는지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는 아쉬운 모습이었다.

점수로만 쇠고기 등급을 판정하는 모습 

전회에서 성찬과 진수 그리고 강무사 일행은 소고기 운반에 따라 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여졌다. 소위 사람이 먹는 소고기가 식탁에 올라오기 이전에 최고의 품질을 얻기 위해서는 도축하기 전에 소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또한 소에 대한 일반적인 한국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관념에 대해서도 잔잔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즉, 단순히 먹기 위해 키워지는 동물이라는 관점보다 한국사회에서 소라는 동물은 사람의 생활과 함께 한 친근한 존재로 그려냈었다.
성찬이 최고의 한우를 찾기 위해 꽃순이를 찾게 된 배경과 꽃순이와 병을 앓고 있고 소년의 관계를 풀어내면서 농가에서는 살림밑천과 더불어 사람이 성장해 나가면서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모습을 함께 그려내 놓았다. 또한 도축에 앞서 식탁에 오르기 전 미물일지라도 인간의 배려(드라마에서는 강무사의 운송모습으로 보여줌)함으로써 인간에게 최고의 고기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반대로 가장 나쁜 품질의 고기를 제공해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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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소고기 경합에 돌입한 21일 방송된 <식객>에서는 험악하게 다룬 운암정의 소고기에서 근출혈이 발견되고, 대진유통의 강무사가 운반한 소고기에는 최우수 판정결과가 나타났다. 그렇지만 왠지 한우의 품질을 다루는 부분인데도 분주하게 품질기준표와 비교해가며 품질을 판정하는 판정단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진수(남상미)와 출판사 한부장(강남길)의 앵무새처럼 읖어대는 판정기준에 대해서만 보여줄 뿐이었다.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다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인기를 얻는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주연배우들의 대결구도가 첫번째라 할만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식객>의 모습은 대결구도가 필요없는 부분에서도 예외없이 성찬과 봉주의 대립에만 필요이상으로 촛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지나친 대립각은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요소가 될법하다. 최고의 한우를 찾는 경합에서 대립구도는 성찬과 봉주의 맞대결도 아닌 운암정과 대진유통에서 운반해온 한우에 있었다. 불필요하게 성찬과 봉주의 눈빛에만 카메라를 맞추고, 진행자인 성찬과 한부장에게만 카메라를 맞추기보다는 한우를 판별하는 판정단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 옳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원작 <식객>을 본다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대립구도는 어찌보면 '오버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주연배우들이 풀어내는 재미는 분명 존재하지만 본질적 소재의 주인공은 식재료와 음식에 있는 것이 <식객>이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드라마로 보자면 대장금을 빼놓을 수 없을 법하다. 대장금에서의 최고의 볼거리는 주인공들이 펼치는 대립구도에 있다. 그중에서도 음식을 놓고 경합하는 대결구도가 으뜸이라 할만하다. 대장금에서의 대결모습은 인물들간의 대결보다는 음식이 그 중심에 있었다. 무엇이 재료로 쓰여지고 또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클로즈업 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드라마를 전개시키는 것은 당연히 배우들의 몫이고, 또한 대결이나 대립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등장인물의 몫은 자명하다. 드라마 <식객>의 완성도는 어찌보면 주인공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보다 제작의도에 힘을 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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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이름이 드라마에 앞서 거론되는 것은 어찌보면 드라마의 내용보다 배우의 연기력에 더 필이 꽂혔다는 것으로 풀이될만할 것이다. 종영을 앞두고 있는 MBC의 <스포트라이트>가 그러하지 않을까.

첫 방송을 타면서 <스포트라이트>는 어찌보면 사회부 기자라는 전문직 드라마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예감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극중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중심적 배우는 단연 서우진 기자역의 손예진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드라마 작가가 바뀌고 사실상 현재의 사회적 이슈라 할만한 촛불집회를 취재하려 한 대목에서 느닫없이 환경이 변해버린 듯한 모양새로 다소의 실망스런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련의 드라마속 사건사고에 대한 주연배우들의 중요도가 어찌보면 마치 수박겉핧기 식으로 포장만 요란하게 되어버린 듯한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었다. 그 때문에 사실상 서우진 기자는 땅바닥을 고정되어 있는 듯한 그림자처럼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 보여지기만 한다.

그렇지만 <스포트라이트>의 묘한 매력은 서우진 기자가 아닌 오캡 오태석(지진희) 기자에서서 발산하고 있다. 이제 1주 종영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에서 수면위로 튀어오르고 있는 배우가 바로 지진희라는 애기다. 경제특구에 대한 보도를 위해 오태석 기자는 기자회를 통해 다른 기자들의 동의서와 자신의 기자직까지 내걸고 국장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어찌보면 드라마 <스포트라이트>는 오태석과 국장의 대화에 그 주제가 숨겨져 있는것이라고 보여진다.
오태석기자 : 이 보도를 내보내지 않는 일은 기자의 양심을 꺽고 대한민국 언론의 입을 막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정하는 범죄행위다
국장 : 정권을 상대로 일개 방송사가 맞설수 없다. 이번 일에는 GBS방송국의 수많은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목까지 걸려있다.
이들의 대화는 사실  이상과 현실이라는 평행선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목적지와 방향은 같은데, 둘 사이는 아무리 걸어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과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은 사실 어느 한쪽이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만나게 된다. 일종의 타협점이 그것이라 할만하다.
오태석기자 : 우리 GBS는 혼자가 아니다. 보도가 나가는 순간부터 우리는 국민과 함께 할것이다.
국장 : 언제까지 이 자리에서 지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도국의 사활을 걸고 움직여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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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스포트라이트>의 행진은 너무도 늦어버린 감이 없지않아 있다. 시청자들이 이미 채널을 돌리고 있는 상태에서 종영을 앞두고 있다는 게 아쉬울만큼 지진희의 연기파워는 논란이 될만하다.
배우 지진희는 개인적으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진모와 닮은꼴을 지니고 있는 배우라는 느낌이 많다. 상대 여배우를 놀라울만큼 인기도를 높여주는 남자배우가 아닌가하는 싶다. 전작이었던 <대장금>에서 이영애와 연기호흡을 맞추며 등장했을 때에도 이영애의 가치를 높게 만들어주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배우 이영애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지진희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 라는 의문부호를 남기게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스포트라이트>에서의 지진희는 다른 모습이다. 스스로가 드라마의 중심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오태석 기자가 정부 관계자와의 만남에서 남긴 대사가 이 시대의 기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궁금하다.

"당신의 그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언론이, 방송이, 기자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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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보다 더한 작품은 사실상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설이 무색하리만치 드라마 <식객>의 첫출발은 허영만 만화 원작에서 보여지던 식재료의 선정과 맛깔스런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미 스크린으로 한번 알려진 바 있는 <식객>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에서는 사실상 운암정이라는 식당에서의 음식경합을 주요 볼거리로 채용하고 있었고, 대령숙수의 맥을 계승한다는 에피소드를 띠고 있었다. 그렇지만 원작에서 사실상 대령숙수에 대한 에피소드는 <식객>이라는 만화내용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 부분이다. 또한 운암정을 놓고 음식경합을 하는 에피스드에서도 사실상 성찬과 봉주의 경합에는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경합보다는 음식에 촛점이 맞추어져 맛을 내는 비결과 식재료의 선택 등에 보다 포커스가 맛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 <식객>의 출발은 사실상 맛에 대한 평가와 음식의 모양새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재료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보여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운암정에서의 경영승계를 위해 세명의 인물 성찬(김래원), 봉주(권오중), 민우(원기준)라는 인물이 펼치는 대립은 있었지만 사실상의 음식에 대한,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민어 부레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승계자 경합에서도 음식의 어울어짐을 찾기위한 모습은 없이 대결 그 자체만으로 마무리되어 있는 모습은 사실상 원작의 묘미를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원작이 보여주는 <식객>의 재미는 사실상 음식경합이라기 보다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온갖 식재료와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식객>은 대립구도보다는 다양한 맛거리를 찾아내는 것에 초첨을 맞춰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대립없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식객>은 그 맛거리와 식재료에 대한 에피소드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드라마다. 과거 대장금에서 상궁나인이던 장금(이영애)의 음식만들어내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각기 재료들을 사용함으로써 궁합이 맞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그 궁합으로 인해 보다 좋은 맛을 내는 것을 보았었다. 그러나 정작 <식객>이라는 드라마에서 음식은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케익크의 종류들을 나열해 놓은 모습일뿐 정작 그 속에 숨어있는 맛에 대한 비밀은 없어 보인다.
주인공들은 고민없이 음식을 만들어내고, 얼렁뚱땅 음식이 만들어지는 모습은 사실상 원작의 <식객>에서 보여진 음식에 대한 진정성은 전무해 보이기만 하다.

아직은 첫 스타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설부른 평은 이르기는 하겠지만, 운암정에서 떠나 성찬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정한 맛을 찾아내는 본격적인 <식객>의 전개에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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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이라 해도 좋고, 정통사극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세하게 기술되지 않은 민초들의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그 중심에 서 있는 사극드라마의 모습이 의적의 일대기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사극류의 드라마라 볼 수 있다.

인물위주의 구성, 사료를 중심으로 고증할수 있는가의 기준 

흔히 퓨전사극이라 하는 부류의 드라마들은 실제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건을 비툴어 조명해보임으로써 혹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식의 전개방식을 취한다. 대체로 사극은 그 진중함으로 기본으로 전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시대의 인물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KBS의 대하사극은 인물과 인물간의 대립이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1인주인공 위주의 전개에 다양한 주변인물을 포섭해 놓고 사건을 통해 회유와 결합, 혹은 갈등을 야기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MBC와 SBS의 드라마류는 어떠할까. 대체적으로 두 방송에서 보여지는 사극드라마는 한 인물에 맞추어 사건을 전개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장금이나 해신, 허준, 연개소문, 현재 방송되고 있는 <이산>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전개방식은 1인칭 시점을 주로 채용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사극 드라마를 퓨전사극이라 부르지는 않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드라마를 정통사극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단지 사극 드라마라 얘기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흔히 사극이라 부르는 드라마들은 절제된 대화법과 어법이 중심을 이룬다. 그 때문에 퓨전이라 부르기도 모호하다.

퓨전사극의 기치를 내건 홍길동과 일지매

조선시대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었던 사극이 과거에는  퓨전이라 부를만한 정도의 파격적인 모습은 보여주었던 적이 흔치 않았었다. 절제된 어법을 토대로 정통사극에 버금가는 듯한 스케일과 인물구성을 위주로 전개되었던 것이 과거 사극의 모습이었다. 그러기에 어찌보면 퓨전이라는 의미보다는 사극드라마라 부를 수 있었다.

거상 임상옥이나 대장금, 허준 등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점은 의상과 사용되는 어법이 등일하다. 이들 인물은 역사적으로도 이미 기록되어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어찌보면 현대적인 감각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이러한 사극들의 중심에서 간간히 퓨전이라 불릴만한 드라마들이 선보였긴 했었다. 소위 의적들을 소재로 채택한 드라마가 그것이었다. 임꺽정과 장길산을 소재로 다룬 사극드라마가 그 중심에 있다해도 무방할 법하다. 이들은 소위 실존인물들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나 양반의 출신이 아닌 천출이나 평민의 출신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사극의 유형을 띠고 있다지만 작가의 의도나 제작의 묘미에 따라 새롭게 변화하고 코믹스런 소재를 가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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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의적을 소재로 다룬 장길산이나 의적 임꺽정이라는 드라마가 퓨전사극의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의 요소나 조선시대의 복색, 사용되는 어투까지도 일반인들이 흔히 이해하는 정통사극의 요소를 따라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퓨전적 요소를 따르고 있는 드라마가 어찌보면 <쾌도홍길동>이 아니었을까. 등장하는 모습에서부터, 복장이나 어법까지도 사극이라 부르기에는 황당할 만큼 파격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엄밀하게 따져본다면 과거 의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는 하나 장길산과 임꺽정과는 사뭇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드라마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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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뒤를 이어서 <일지매>의 경우도 <쾌도홍길동>의 퓨전적 스타일은 답습해 나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같은 모습은 어찌보면 장길산이나 임꺽정이 조선시대의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홍길동과 일지매는 실존인물인지 아닌지의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균의 홍길동전을 통해 알려진 홍길동은 단지 상상의 인물이다. 또한 일지매 또한 물건을 훔치고 그 자리에 매화꽃의 그림을 남기고 사라지는 도둑이야기로 실존했던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조선시대 의적이 일어나 활빈당을 자칭하는 사례는 그 시대를 말해준다. 폭정이나 혹은 기근이 심해져 민초들의 열망으로 탄생되기도 했고, 혹은 상상속에서라도 현실을 타파하고픈 욕구가 그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장길산이나 혹은 임꺽정은 현실에서 현 시대를 타파하려는 실제적 용트림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에 반해 홍길동과 일지매는 열망의 산실로 탄생했다. 어찌보면 이러한 점으로 퓨전이라는 스타일을 도입하기에 무리가 없는 인물들이라 볼 수도 있다.

퓨전이 대세인 현대 사극의 모습  

최근 사극드라마를 살펴보면 퓨전을 도입시킨 부분이 부각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드라마 <이산>에서의 이산정조와 홍국영, 그리고 정조가 개혁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에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정통사극 모양새를 찾아가곤  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코믹스런 연기자들의 모습이나 혹은 어법은 정통사극의 비주류에 해당하는 모습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정통사극이라 불리던 <대왕세종>에서도 이같은 파격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있다.

쾌도와 일지매의 경우에는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같은 파격적인 모습의 채택은 어찌보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모습으로 분석될 수 있다. 사극드라마의 주 시청자는 과거 중장년 층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극드라마는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흥미있게 시청하는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사극이라는 요소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옮겨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속에서 시청자는 새로운 재미를 찾는다는 의미가 될 법하다. 과거 사극이 중장년층에게 쏠려있던 데 비해 최근에는 점차 젊은 층으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시청자들이 확산으로 인해 단순히 교훈적이라든가 혹은 지식기반의 사극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기 마련이다. 일종의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사극에 새롭게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어찌보면 의적의 트랜드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극의 퓨전화는 새로운 드라마 시청자들의 아우르기 위한 변화된 사극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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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을 시청하다 보면 최근들어 관심있는 배우들이 있다.
한지민과 박은혜가 그 관심배우가 아닐까.
드라마상에서 이 둘의 배우가 처음 호흡을 맞추었던 모습은 <대장금>이라는 역시나 이병훈PD의 대표작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장금>과 <이산>에 등장하는 효의왕후 역의 박은혜와 성송연 역의 한지민은 사뭇 완전히 다른 역전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배우라 할 수 있다.

<대장금>에서 먼저 모습을 보인 것은 장금의 동무로 등장한 박은혜였었다. 둘은 드라마 초반부터 시종일관 함께 등장하면서 우정어린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랑을 받았었다. 그에 비해 한지민은 장금이 상궁에서 누명을 쓰고 제주관아의 노비로 끌려가고, 의녀가 되어 다시 궁으로 돌아왔을 때, 동료로 등장한다.

<이산>에서는 정반대의 등장이다. 한지민은 처음부터 이산(이서진)의 동무로 등장하며 얼굴을 내비쳤고, 박은혜는 알게모르게 이산의 정비로 조용하게 등장했다. 영, 정조 시대의 르네상스 시대를 보여주려 한 드라마 <이산>에서 어찌보면 애초 여주인공으로 낙점을 받은 것은 한지민이라 할 수 있다.

한지민, 비중 낮아진 성송연

어찌보면 성송연의 비중은 드라마 <이산>에서 비중있는 인물로 그려졌어야 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정조와 성송연의 로맨스만으로는 시청자의 눈길을 끌어오는데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것인지, 점차 영조(이순재)의 카리스마와 정순왕후의 표독스러움에 가려져 주인공다운 면모를 갖추지는 못했다. 어쩌면 성송연과 정조의 로맨스에 대한 얘기보다는 보다 자극적인 권력암투를 통해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었을까 드라마의 전개는 성송연의 비중을 점차 작게만 만들었다.

당연한 결과다. 세손의 위치에 있는 이산은 왕권을 갖기 위해 영조에게 인정받아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던 반면, 성송연에게는 어떠한 과제도 없었던 것이 문제다. 단지 이산 정조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능력이라고 해야 단지 그림 그리는 재주가 전부(?)였기에 왕족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배경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정순왕후와 노론의 공세에 몰려 정조는 영조대왕이 생존했을 때에는 왕이 되기 위해 한단계씩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퀘스트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지만, 성송연은 사랑을 찾기 위해 사실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성송연의 드라마 전체에서 주인공이라느 면모를 잃어가게 된 결과를 낳게 되었고, 드라마는 이산이 왕이 되기까지 어찌보면 1인 주인공적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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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이산이 왕으로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송연의 비중을 쉽게 올릴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현재 드라마 <이산>에서의 중심적 인물은 홍국영(한상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홍국영은 세도정치로 인해 권세를 오래동안 지속시키지 못하게 되는 인물이다. 홍국영의 축출에 있어서 중심인물은 다름아닌 정비인 효의왕후라 할 수 있다.
결국 드라마 <이산>에서는 로맨스는 없는 셈이다. 그 때문인지 성송연이 후궁으로 간택되는 과정이 너무도 빈약하게 그려질 것으로 보여진다.

왜 성송연의 비중이 낮아졌나
 
드라마의 초반 이산은 살아남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 했다. 점차 그 배후가 드러나면서 노론과 정순왕후(김여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대립적인 관계로 발견시켜 나갔다.
그에 반해 성송연은 이산의 곁으로 가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는 여인으로만 그려졌다. 그러나 마음에 품은 정인에게 다가서기 위한 행보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면이 있었다. 도화서에 들어가고 화원들과의 경합을 벌이는 부분까지는 어떤면에서 성송연의 비중이 결코 낮지만은 않았었다. 그렇지만 화원으로 인정받고 나서부터 급격하게 성송연의 비중은 추락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후로는  어찌보면 <이산>이 왕이 되기 위해서 벌이는 암투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어 원톱 주인공적인 모습으로 흘러간것이 아닐까.

만약 성송연이라는 인물에 대해 계속적으로 도화서에서의 업무에 대해 도전과제들이 주어졌었다면 지금처럼 비중이 얕아졌을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모습을 <대장금>에서 보여진 단계별 위기극복의 모습으로 보여졌었다면 보다 부각되었을 법하다. 그렇지마 이러한 위기극복의 모습을 투톱 주인공을 겨냥해 전개시키기엔 다소 무리가 따랐던 것이었을까?

대세는 이제 홍국영의 축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궁중 인물인 효의왕후의 비중은 점차적으로 높아져 가고 있는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후궁간택에 있어서도 성송연이 중심인물이 아닌 혜경궁 홍씨와 이산 정조의 힘겨루기적인 모습이 보다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속에서 성송연의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지민과 박은혜의 성공, 이번에도 무승부일까

궁금해지는 건 효의왕후 역의 박은혜와 성송연 역의 한지민의 드라마 출연에 대한 성적일 듯싶다.
먼저 호흡을 맞추었던 <대장금>에서는 사실상 어느 누가 더 좋은 성적을 올렸는지 가름하기는 어렵다. 한지민의 경우 대장금 출연은 사실상 의녀라는 늦은 출연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박은혜 역시 수랏간 나인으로 장금의 동무로 출연해 후궁으로 모습을 바뀌면서 연약하고 여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조연으로써는 한지민과 더불어 기억되는 캐릭터로 자리를 했었다.

현재 한지민과 박은혜의 경우에는 어떠할까. 현재의 모습에서만 본다면 효의왕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드라마 <이산>에서는 한지민보다는 박은혜라는 여배우가 주인공적인 모습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모습으로 볼 때에는 아직까지는 무승부에 지나지 않는다.
효의왕후가 부각되는 것은 단지 홍국영의 세도와 그의 축출이라는 과제가 안겨져 있기 때문이지 성송연이라는 배역의 비중이 낮아서는 아니다.
홍국영이 떠나고 난 <이산>에서 둘의 비중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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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서를 떠나 잃었던 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성송연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정조와의 만남에서 보여준 한지민의 연기는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했다.
또한 양자를 입적시켜 오래동안 권세를 누리려 하는 홍국영을 향해 냉혹해져 가는 효의왕후의 모습을 연기한 박은혜의 연기또한 일품이었다.
홍국영의 축출과 후궁간택은 한지민과 박은혜의 본격적인 연기대결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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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손에 대한 암살음모가 드러나자 그간 중궁전에서 감금되다시피 하던 정순황후(김여진)의 표독스러움이 재현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조의 어명으로 중궁전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노론세력들과의 접선을 하지 못하던 정순황후는 영조의 매병(치매)을 계기로 새로운 음모를 꾸미고 있어 이목을 집중시킨다.

<궁중에서의 실제 영향력 보여>
 
이산에서 정순황후의 권력에 대한 야욕은 가히 섬짓할 정도다.
사실 어느 누군가 말했듯이 정순황후 때문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10여년을 퇴보했다는 얘기가 나올법하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김여진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력은 당시의 정순황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구중궁궐에서 지아비라 하는 영조는 이미 죽음을 눈에 두고 있는 늙은이에 불과한 것이라 여겼다면 어찌보면 정순황후의 권력에 대한 야욕은 이해가 가긴 한다.
특히나 <이산>에서 보여지는 정순황후는 모든 세력들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어떤 때는 눈물을 보이면서 영조에게 읖조리지만 조정의 대소신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격이다.
또한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어의와 사관까지도 정순황후의 손안에 놓여있는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다.
드라마만을 놓고보면 기실 정조(이서진)에게는 궁궐에서 단지 남사초와 체제공 정도의 아군만을 가지고 있는 반면 정순황후는 일개 임금을 보필하고 있는 내시까지도 자기사람으로 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영조의 치매를 정조대왕이 모르고 있었을 수밖에 없다.

<내부의 적은 무장한 적군보다 무서운 존재다>

드라마를 보면서 영조(이순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수렴청정 형태의 영조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사람들을 요직으로 불러 들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익위사의 박대수(이종수)나 홍국영(한상진) 등을 수하에 두고는 있다 하지만 쉽게 얘기해 스파이가 없는 셈이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영조대왕을 보필하는 내관은 어찌보면 내시부에서도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상원영감(대장금에서는 그리 나온 것 같은데)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을 법한데, 이러한 요소요소에 정순황후는 영조에게 일종의 스파이를 심어둔 격이다.
그렇지만 정조 이산은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다.

영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해주고 얘기해줌으로써 정순황후는 조정에서의 실리를 여지없이 찾아가고 있는 꼴이다. 그에 비해 정조를 보필하는 남사초는 소위 실권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영조에게 있어서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내시부의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싸움을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정조는 감행하고 있는 꼴이다.

<아군의 잘못을 일벌백계로 다스린다>

정순황후는 영조의 병증을 빌미로 자신에게 있어 행동대장격인 김귀주(정명환)를 다시 궁중으로 불러들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노력세력과 화완옹주(성현아)와 정후겸(조연우)에게 다시는 등을 돌리지 못하게끔 일침을 놓는다.
'소위 덮는다'의 식이 아닌 무언의 협박을 함으로써 목에 감긴 올가미를 조여놓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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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이라는 배우는 사실 악역보다는 상처를 받는 비운의 여인이나 착한 캐릭터로 등장해 왔던 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김여진씨가 악역의 배역으로 드라마에 출연했던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어쩌면 필자가 모르고 지나친 현대극에서 악연으로 출연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장금>에서는 의녀 장덕역으로 출연해 대장금(이영애)의 조연자 역으로 손색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바 있다. 어쩌면 장덕이라는 캐릭터가 아직까지도 남아있어 현재의 정순황후의 표독스런 연기가 왠지 김여진이라는 배우를 빛나게 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악역이지만 김여진의 연기변신에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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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수많은 병법서와 처세술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드라마 <이산>을 시청하면서 몇가지 눈에 띄는 인간관계와 처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작년 말을 기점으로 태왕사신기와 대조영이 종영을 맞으면서 올해에는 사극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예상외로 드라마 <이산>의 전개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어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 사극을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들어 이산을 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흔히 대장금이나 허준 류의 사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이산에서는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이산을 통해 성공하기 위해서 손자병법과도 같은 병법과 처세술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몇가지 흥미로웠던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수긍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개인적인 의견이니 읽어주시기를^^

첫번째, <인재등용, 자기 사람을 만들어라>

성공을 위해서는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록 이러한 일은 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동궁전에 기거하면서 이산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의 위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방영때부터 자객의 동궁전 난입, 거기에 익위사 관원들의 헤이해질데로 나태해진 모습들에서 이산 정조에게는 일말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하다못해 익위사 관원들조차도 동궁에 대한 신임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상황을 역전시켜 정조는 익위사 관원들을 자기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신은 관원들보다 더 많은 활시위를 당겨 스스로에게 그들에게 본을 보였고, 결국 비평만하던 관원들은 동궁의 보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홍국영의 천거는 어떠한가. 비록 홍국영이 관료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노론세력의 본질을 캐기 위한 행보는 정조가 아닌 영조의 밀명에 의해 이루어지긴 했지만, 처음부터 정조는 홍국영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책사로 곁에 두었다.
또한 이번에는 실용학자인 박제가의 등용과 무술인 백동수의 등용이다. 그 당시의 등용은 어쩌면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을 것이다. 특히 후일 군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실질적인 세력으로 자리하게 될 백동수의 등용은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이치와 일치한다.

현재의 사회는 어떠한가. 회사가 만약 구성원들이 떠나는 곳이라면 그곳은 그다지 장래가 불분명한 곳이다. 또한 구성원들을 멀리하고 끌어안지 못한다면 분열되는 형국을 초래하게 된다. 서로가 믿고 의지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정착될 때 회사는 발전하게 된다.
이산의 인재등용은 어쩌면 현재의 경영인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두번째, <적은 경계하되 가까이 두어라>

원수를 사랑하라?
사실 이 말을 일반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전혀 어불성설이라 본다. 어떻게 자기에게 적개심을 드러냈는데, 사랑(?)하라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적어도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멀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홍국영이 정후겸의 배후에 누가 있을 것인지, 동궁을 시해하려는 음모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거처를 정후겸의 집옆으로 옮기고 난 후 정후겸에게 한 말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백승 이라는 말이 있다.(한자 입력을 못해서 한글로 올림) 이는 적을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적의 전술이 어떠할지 미리 알아내고 적의 규모와 무기 등이 무엇인지 사전에 알고 있다면 싸움은 해보나 마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정보전'이 아닌가. 스파이를 심어놓든 아니면 첩자를 보내든 적의 모습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현대의 사회에서도 이같은 형태의 정보전은 다양하다. 특히 대기업 간의 신제품에 대한 정보수집은 치열하다. 요즘은 인터넷의 범람으로 인해 해커의 출현이 불거져 있는 상태고 기업의 전산망을 파고들어 중요 문서를 빼내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정보전이 네트워크였다면 과거에는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면이 중요했을 것이다. 때문에 경쟁자를 멀리하는 것보다 늘 옆에 두고 살피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된다.

세번째, <때로는 강경책, 때로는 유화책>

이 부분은 세손의 처세술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정순황후의 처세술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표독스럽게 노론 세력의 규합하며 세손을 압박해 나가고 있지만 정순황후는 때에 따라서는 너무나도 가녀린 모습을 보인다.
바로 그녀의 지아비인 영조대왕의 앞에서다.
그러나 적의 실체는 영조가 아닌 이산 정조인 만큼 그녀의 유화책은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조에게 정순황후는 오직 강경책으로만 대응한다. 암살과 모략으로 이어지는 정순황후의 강경책은 오히려 세손에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게 만든 구실을 만들어준 것이 된 듯 싶다.

그에 비해 세손은 노론벽파의 거센 대응에 대해 시종일관 강경책으로 대응해 나갔었다. 시전상인의 일만해도 노론의 의지에 대항해 홍국영과 강경하게 대응해 나갔다. 결과는 참패하지 않았었나. 물론 그 때까지만 해도 세손은 자신의 적이 정순황후였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된 '적을 알지 못한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역전되어 노론세력이 득세하는 조정에서 자신들의 안위가 위태해질 것을 염려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고, 세손은 그들의 세력과 그들의 비리를 한손에 움켜쥐고 있는 상황이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세손은 모든 것을 중지했다. 하나의 유화책을 선택한 셈이다. 그들 스스로가 생존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는지, 모든 개혁의 중심을 세손의 의지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노론의 수뇌라 할 수 있는 최석주 이판대감이 머리를 조아리며 정책을 바꿀것을 간청한다.
서민과 서얼의 등용은 노론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겠지만, 최석주 이판대감이 선택한 것은 결국 생존이었다.

네번째, <성공 그 첫발을 위해서는 믿어라>

말로만 되는 정책은 공허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공약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표명된 말 자체를 실행시키기 위한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세손은 궁중에서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익위사의 나태해진 모습과 돈과 세습으로 녹을 먹는 관원들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했다. 있어야 할 사람은 그 자리에 있게 했고, 쓸모없는 사람은 버린 것이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사항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성공의 첫걸음을 위해서는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느낀 것이었을까?

또한 세손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익위사 관원들에게 매일 무예수련을 종용했다. 물론 말로만 끝맺는 것이 아닌 스스로 활을 쏘며 관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일종의 합의일체에 의한 믿음을 심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기에 익위사 관원들은 세손에게 거의 친위대같은 형태로 변해있다.
또한 노론의 자금줄을 캐기 위해 시전상인을 혁파하기 위해서 난전상인들과의 만남을 스스로 자처하면 은밀히 출행했었다. 물론 실패에 그치긴 했지만, 난전상인들에게 자신의 경솔함을 비춰주며 그들에게 자신을 믿어주었음에 대해 잊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심어주었다.

비단 이 4번째 사항은 세손에게 적용되는 성공론이 아니다. 노론세력에 있어서도 현재 모습에서는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석주 이판대감의 변론으로 노론세력은 서로에게 이미 믿음을 잃고 있는 상태가 되었고, 황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미 불신이 조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자기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성공전략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성공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사람이다. 그 첫번째 항목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역시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섯번째, <계획을 세워라>
 
어쩌면 4가지 사항을 실천했다 해도 일시에 끝나버리는 개혁은 한계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보다 진일보한 혜안이 없다면 개혁이라 말하기보다는 조그만한 변화가 그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이같은 사항은 적용된다.
회사의 규모가 작건 크건간에 사람과의 믿음을 쌓고, 새로운 신입 사원은 채용하고, 때로는 자신의 경쟁자를 벤치마킹 한다고 해서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사보다 더 높은 이상의 회사로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만 한다.
이상이 없는 목표는 한낱 메아리에 불과하다.
세손과 홍국영은 자신들의 적에 대한 실체를 캐기 위해 시간을 두면서 그물을 던졌다. 그러나 무작정으로 그물에 물고기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각 관료들의 집을 봉쇄하고 압박하는 듯하는 전략을 통해 비로서 낚아낸 결과였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실행하라 라는 말이 있듯이 급하게 먹는 물은 채할 수 있기 마련이다. 다 알게 된 사실을 요란스럽게 행동해 잃어버릴 수 있지만 그들은 모든일에 있어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계산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이상은 요즘 드라마 <이산>을 보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처세술에 대한 생각이다. 이산의 인기비결이 비단 성송연과 이산정조의 애뜻한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것은 이러한 인간관계와 처세술을 보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방송되었던 대조영이나 허준, 대장금과 비교해 보자면 무엇이 다를까.
분명 이들 드라마에서는 볼 수없었던 매력이 숨어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