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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추노, 민폐녀 언년이는 이상한 논리가 아닐까?

by 뷰티살롱 2010.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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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인 <추노>를 애청하는 시청자의 한사람으로 추노에 대한 여러가지 리뷰와 기사들에 대해서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글과 기사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다름아닌 언년이에 대한 글일 듯 보여집니다. 시셋말로 민폐녀라는 말이 나올만큼 드라마 <추노>에서도 언년이에 대한 혹평에 가까운 글들이 많이 눈에 띄이더군요.

현재까지 방송되어진 추노를 살펴보면 그럴만도 하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과연 언년이(이다해)라는 캐릭터가 드라마를 고꾸라지게 만들만큼 민폐스럽게 보였던 것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왜 민폐녀가 되어버린 것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더군요. 처음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언년이는 양반의 신분을 가지고 혼인식을 하게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혼인식을 뛰쳐나오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며 도망노비가 된 송태하(오지호)와 동행하게 됩니다. 송태하를 쫓게되는 이대길(장혁)은 지난 10여년간을 오로지 언년이를 찾아 헤맨 추노꾼이었는데, 높으신 양반의 명으로 송태하를 뒤쫓게 되죠.

3~4회까지를 시청하면서 이다해의 존재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도 존재감의 부재에 대해서 글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 언년이 아니 혜원은 송태하와 동행하게 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겼기 때문이었죠. 극중 모든 캐릭터들이 자기들만의 개성을 지니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숨가쁘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딱히 혜원은 자신이 오라비인 큰놈이이자 김성환(조재완) 대감과 최사과를 피해 도망해야 하는지 하는 목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죠. 목적의 부재는 캐릭터가 지닌 존재감의 부재로 이어져 보여서 언년이라는 캐릭터가 존재감이 없다는 단점을 내포한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기는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점차 언년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시선은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민폐녀가 되어버린 것이었죠. 모든 상황들이 언년이때문에 라는 유행이 번지기도 했을만큼 혹평이 많이 눈에 띄였습니다. 등장인물이 하나하나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들도 모두가 언년이 때문이라는 논리가 성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 공감이 전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리만큼 몰아가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듯 보여졌습니다.

언년이→존재감부재→민폐녀→때문에→이다해

처음 시작은 언년이라는 캐릭터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언년이 캐릭터 이다해라는 배우로 이어지기에 이르더군요. 특히 극중 캐릭터들인 설화(김하은), 초복이(민지아) 등과의 연기비교까지 빈번하게 나올만큼 최종적으로 이다해라는 배우의 연기력 비교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죠.

그렇지만 과연 언년이를 두고 민폐녀라는 말이 옳은 표현인까 싶더군요. 극중 언년이에 대해서 알아본다면 언년이는 100% 오리지날 노비의 신분입니다. 오누이로 엮어진 큰놈이 김성환(조재완) 대감은 그나마 반쪽짜리 양반의 피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였죠. 큰놈이는 대길과의 재회에서 자신과 이대길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며 자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년이를 찾지 말라고 말하죠. 세사람의 관계를 놓고본다면 분명 이대길과 언년이는 아무런 관계도 아닌 남남이 되는 관계이지만 큰놈이가 둘 사이에 있음으로 해서 완전한 남남이 될수 없는 관계가 성립이 될법해 보입니다.

추노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내려져 있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언년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두가지 시선을 찾아갈 수 있어 보이더군요. 하나는 밑바닥 인생이라는 노비라는 시선과 또 하나는 대길과 태하라는 남자를 통해 보게 되는 이상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시대적인 배경이 도망노비가 많아지고 이를 추쇄하기 위해 추노꾼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회입니다. 노비의 신분은 태생에서부터 정해지기 마련인데, 이러한 모습은 초반에 보여집니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귀천이 엇갈리게 되는 것이었죠. 노비의 신분은 몸에 낙인을 찍어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집안노비였다 도망해서 잡히게 되면 여지없이 사람들이 눈에 가장 잘 띄이는 얼굴에 낙인을 새겨넣습니다. 한번 도망간 노비는 또다시 도망할 수 있기에 일부러 보이는 곳에 낙인을 새기는 것이었을까 싶어 보이기도 합니다. 언년이와 큰놈이에게도 이러한 낙인은 있었지요. 그렇지만 도망노비가 아니었기에 얼굴에는 새겨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언년이의 태생이 완전히 노비신분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때, 반쪽짜리 양반인 오라비 큰놈이와 그리고 완전한 양반가의 자식인 대길에게 언년이는 두 남자에게서 온갖 보살핌을 받았을 것입니다. 노비로써의 신분이었지만 오라비로부터는 모진 노동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고, 대길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받았던 그야말로 온실의 화초같이 성장했을 거라 여겨집니다. 보살핌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 쉽게 세상속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가 바로 송태하이자 전직 훈련원 군관이었죠.

10여년을 언년이를 찾아 헤맸던 대길이와 마찬가지로 언년이 또한 그 시간동안을 혼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라비의 강압으로 최사과와 혼례식을 치르게 되지만 자신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찌보면 언년이라는 인물은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았기에 쉽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라비에게 반기를 들어 혼례식을 도망하게 되죠. 그렇지만 그 차후의 계획은 없었겠죠. 단지 자신의 마음속에 남자라고는 오로지 죽은 이대길밖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 정처없이 떠돌며 이대길의 넋을 위로하는 것이 인생이라 여겼을 거라 보여지기도 합니다. 언년이의 행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 보입니다. 화초처럼 성장해온 인생에서 유일하게 세상밖으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 탈출구에서 송태하를 만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추노>를 보면서 어찌보면 캐릭터에 대한 관점보다는 열연하는 이다해의 모습에 보다 더 혹평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도 예쁜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서, 화장기 얼굴로.... 등등 점차 민폐녀로 전락하게 되었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언년이 즉 혜원이라는 캐릭터가 다른 배역들과 같은 흙투성이에 남루한 복색으로 출연했더라면 과연 설득력이 있었을까 싶더군요.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것이 언년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존재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보여집니다.


이대길과 송태하에게 혜원은 어떤 존재일까 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혜원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상에서 인물적인 요소를 드러내보이기보다는 전체적인 추노의 주제와 색깔을 표현해놓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다름아닌 송태하가 이루려고 하는 세상과 이대길이 쫓는 세상을 의미한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시대적인 상황을 말하기도 해 보입니다.


이대길에게 있어서 언년이는 자신의 미래이자 희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필요치 않고 단지 언년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소망이죠. 그렇지만 조선사회에서 이대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죠. 신분의 차이가 언년이와 이대길을 함께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대길의 희망은 어찌보면 추노에서 보여지고 있는 정치적인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양반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권력분배와 암투속에서 소박하기만 한 꿈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대길에게는 그것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이는 조선사회에 반하는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분을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송태하에게 혜원이라는 존재는 어떤 것일까요. 호란으로 부인과 자식까지 잃어비린 비운의 무사인 송태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선비의 절개와 충정뿐입니다. 어떠한 것을 지키려는 것도 하나의 의무감에 의해 쉴새없이 달렸던 것이었습니다. 소현세자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자신의 진정으로 마음에 품었던 주군이었기에 무사로써 죽은 사람의 뜻을 잇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하가 목숨을 걸고 제주도까지 내려가면서까지 구한 원손 손견을 두고 혁명을 이루려는 동지들간에 내분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렇지만 그 의견대립또한 하나의 과정이라 여길만큼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뭉쳐져 있습니다. 권력의 이해관계보다는 송태하에게 원손은 삐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인한 인물이라 믿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난 것입니다. 다름아닌 혜원이겠지요. 원손은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꿈이 이루어지고 난다면 어찌 될까요. 혜원은 송태하를 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된 것이죠. 세상이 바뀌고 나면 송태하는 혜원과의 인생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대길과 태하에게 있어서 혜원은 꿈이자 희망을 의미하고 있는 캐릭터로 보여집니다.

  

지난 13회에서는 지금까지 다른 엔딩장면이 선보이기도 했었죠. <추노>라는 드라마가 추노꾼 이대길인 장혁으로 끝나는 모습이었지만, 13회에서만큼은 혜원인 이다해의 엔딩으로 끝이 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엔딩 장면을 보면서 이대길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 혜원이 앞으로 품아야 할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영원한 정인이었던 대길, 그리고 현재의 지아비가 된 태하 사이에서 가슴앓이를 해야 할 운명에 빠져버렸으니까요.

민폐녀가 되어버린 언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공감이 가지 않더군요. 민폐라는 표현은 사실 그다지 곱지않는 표현이기 때문이죠.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연기력에 대한 부재라는 표현까지 이어질 수 있는 단어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적잖게 언년이에서 출발해 이다해로 변화된 모습도 없지않아 있었으니까요. 대길과의 재회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이미지가 남겨졌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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