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기틀을 마련했던 선덕여왕 제위에 대한 소재를 드라마화 한 <선덕여왕>에서 눈길을 끄는 한 인물이 있다. 다름아닌 10화랑의 하나인 비천지도의 수장인 알천랑(이승효)이다. 그가 역사에 실존하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드라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일관했던 백제와의 아막성 전투에서일 법하다.
영화배우 이준기와의 닮은 꼴로도 눈길을 끄는 이승효의 카리스마 연기가 돋보이는 배역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알천랑은 신라시대 실존인물로 태생은 김유신보다 권력의 핵심에 더 가까이 있었던 인물이라 할만하다.

알천랑은 박혁거세를 길러준 여섯부족국가의 돌산고허촌장 소벌공의 25세손으로 현재의 진주소씨의 시조라 한다. 그가 태어난 때가 577년이니 595년에 태어난 김유신과는 16년의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라 할만하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본다면 김유신(엄태웅)은 드라마에서와 같이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세력이었던 김서현의 가족 즉 가야세력이라 할수 있는데, 당시 신라에서는 어렸을 적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반면, 태생이 먼저인 알천은 신라계의 공신력있는 세력을 등에 업고 있었을 수 있는 인물이다.

고대시대에 있어서 힘의 원천은 두가지에서 나오는 모습이 대부분인데 하나는 막강한 군사력이었고, 또다른 하나가 민간신앙이라 할 수 있는 종교라 볼 수 있다. 현재에 와서는 하늘의 이치를 어느정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별자리의 이동을 예측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과거 달의 기울기와 월식과 일식이 일어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곧 하늘이라 여겼다. 드라마에서 본다면 미실(고현정)이 책력을 통해 하늘의 힘을 얻은 데 반해 김유신과 알천은 군권을 장악하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 모습을 취한다.

선덕여왕에게 있어서 이 두 인물 알천과 김유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인물들이라고 보여진다. 특히 선덕여왕 제위기간동안은 김유신보다는 오히려 알천이라는 인물이 더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이야 과거 고대사에 대해서 이렇다할 분석을 한다기 보다는 알천랑광 김유신이라는 두 인물에 대한 평전을 보게 된다면 다분히 알 수 있는 일이 될 법하다. 김유신 장군에 대한 인물평전을 살펴본다면 629년에 신라군이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 때, 중당당주(中幢幢主)로 참가한 김유신은 적진에 돌입하여 유린함으로써 신라군의 사기를 북돋워 고구려군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때부터 그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641년(선덕왕 10) 백제가 신라의 서쪽 40개 성을 함락하고 대량주(大梁州:지금의 경남 합천)를 점령하여 김춘추의 딸과 사위인 김품석(金品釋)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피해를 주자, 신라는 당시 적대국이었던 고구려에 김춘추를 보내 원병을 청하기로 했다. 이때 압량주(押梁州:지금의 경북 경산) 군주로 있으면서 고구려에 억류되었던 김춘추의 귀환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644년 소판(蘇判)이 되고 상장군(上將軍)에 올라 백제국의 가혜성 등 7성을 점령하고, 매리포성(買利浦城)을 방어하는 등 수차에 걸친 싸움에서 이겼다. 647년(진덕왕 1) 명활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상대등(上大等)
비담(毘曇)과 염종(廉宗)을 진압했다. 그해 10월에는 압량주군주로서 무산성·감물성·동잠성을 공격한 백제군을 격퇴했다. 648년 백제가 점령하고 있던 대량주를 공격하여 12성을 함락시킨 공으로 이찬(伊飡)이 되고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에 올랐다. 이듬해 백제장군 은상(殷相)이 대군을 이끌고 석토(石吐) 등 7성을 공격하자, 중앙군 편대를 지휘하여 죽지(竹旨)·진춘(陳春)·천존(天存) 등과 함께 백제군을 도살성(道薩城)에서 격파했다. 그뒤 신라의 통일전쟁에서 뚜렷한 공적을 세워 당시 신라에 귀화한 가야왕족으로서는 불가능했던 신라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했다.

김유신 장군이 선덕여왕 제위시절에 있어서 대장군까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각종 전투에 승리함으로써 상당한 군사적 인물로 올라섬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에 반해 알천은 선덕여왕 제위시절에 이미 대장군의 반열에 올라 군사적인 측면에서 최일선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선덕여왕 후대에 진덕여왕으로 넘어가면서 상대등에 오르게 된다.
각종 전투에서 승리하면서까지도 알천과 김유신은 각기 비슷한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군사적으로 힘을 키워나가는 김유신 장군에 비해 알천은 후대에 정치적 인물로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 점은 어찌보면 후대 고구려와 백제를 규합하여 통일신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었던 초석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할만하다. 상대등로 격상하며 정치적 발언권이 높아진 알천랑과 군사적으로 세력이 높아진 김유신은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거쳐 무열왕을 제위에 올리는 결정적 인물들이다. 알천랑은 신라에서 진덕여왕이 죽고 군신들이 왕으로까지 추대할만큼 영향력이 신라에서는 큰 인물이었지만 물러설때를 알고 있던 인물이었던지라 김춘추를 추대하고 뒤로 물러나 일선에서 모습을 감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고대사의 역사에 대한 기록에 대해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가하기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만큼 고대사에 기록이 남아있는 부분이 많지않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한편으로는 신라시대의 인물평전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지는 때가 많다. 그중 하나가 극중 중심인물이라 할만한 덕만과 김유신의 관계다.



개인적으로는 선덕여왕 제위시절에 과연 김유신이라는 인물이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왕을 보필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특히 김유신에게 있어서 한가지 결점은 신라계의 정통 귀족출신이라 하는 부분이다. 물론 신라계의 왕족인 만명부인을 어머니로 두고 있는 진골 출신이라 할 수 있지만, 김서현이라는 가야출신의 아버지를 두고 있는 반쪽짜리의 귀족에 불과했었다. 금관가야를 통일한 신라라 하더라도 신라에게 있어서 가야라는 나라는 변방국가로 인식할 수 있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한다면 알천이라는 인물은 선덕여왕에게 있어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법하다. 오히려 알고 있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어낸 김유신 장군에 버금가는 인물이 알천이라는 인물이었을 수도 있을 법하다.

김유신과 알천은 태생이 화랑에서 시작된 인물들로 어찌보면 군사적 입지를 넘겨줄만한 후계자 구도를 띠고 있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고대시대에는 사람의 수명이 50~60세를 넘기는 것이 흔한일이 아니었다. 17년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고대사의 연령대로 본다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나 다름없는 시간차를 두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알천은 화랑을 지나 본격적인 군사적 힘을 지니고 있는 대장군의 지위에 올라있으면서 김유신과의 관계에서도 동료나 전우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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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7.22 17:1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드라마에는 허구성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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