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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라

지구가멈추는날 시사평, 볼거리는 있지만 주제가 빈약하다

by 뷰티살롱 2008.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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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하반기 헐리우드 영화중에 관객의 가장 관심을 끄는 영화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뱀파이어 영화인 <트와일라잇>과 키아누리브스의 신작 <지구가 멈추는 날이 아닐까 싶다.
특히 키아누리브스의 출연작인 <지구가멈추는 날>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어느정도인지 시사회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몇번의 영화 시사회를 참석한 적이 있었지만 극장안에는 빈 좌석이 있을정도로 기자들의 참석이 빈약했었지만(물론 영화계의 전문기자가 아니어서 흥행을 거두었던 영화들의 시사회를 참석한 적이 많지 않은 이유도 있고,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적인 측면이 많았던 것은 인정합니다) 지구가멈추는날(2008)의 시사회장은 빈자리가 없을만큼 대 성황(?)적인 모습이었다. 그만큼 키아누리브스라는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에서 보여진 선지자적인 SF영화류를 기대했던 까닭도 있었겠고, 예고편에서 보여진 화려한 CG와 특수효과와 같은 볼거리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밝혀둘 얘기가 있다는 본 글에는 어느정도의 스포일러가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살리고 싶은 방문객이라면 여기에서 글을 읽을 것을 멈추었으면 한다.

지구가 멈추는 날의 진짜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어찌보면 영화 <지구가멈추는날>이 하나의 재난영화류에 속하는 영화 혹은 세기말적인 이마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일 수 있다.
"지구가 살기 위해서는 인간이 죽어야 한다"
다소 섬짓해 보이는 영화홍보 카피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은 외계인 클라투(키아누리브스)와 고트의 지구 방문에서 시작된다. 2008년에 개봉되는 키아누리브스의 <지구가멈추는날>을 얘기하기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이미 1951년에 개봉된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점이다. 지구를 방문하는 클라투와 고트의 등장역시 과거 51년에 개봉되었던 원작의 등장을 살리고 있다. 문제는 과거에 상영되었던 영화를 현재의 리메이크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어떤 것에 맞추어야 할까 하는 문제일 법하다.

과거 원작에서 지구를 방문한 클라투는 지구를 살리기 위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근원적인 주제는 인류애라 할법하다. 1951년 당시의 세계관은 어떠했을까.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의 냉전체제가 극대화되던 시기였었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두 냉전체제에 직면해 있는 나라간에 혹은 인간들간에 심화되어 있는 냉전과 불신에 대한 문제를 꼬집고 있었다.
현재로 거슬러 올라와 재 개봉된 영화 <지구가멈추는날>의 메인 주제는 이미 여러 영화관련 전문 블로그나 영화프로에서 소개된 바 있듯이 냉전에 대한 주제에서 지구환경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즉 인간으로 인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클라투가 지구에 온 것이다.

문제는 주인공인 클라투에 대한 지구인과의 교감은 살아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에 있어서는 심각하게 그 범주를 벗어나 있는 모습이다.

감정이 없는 클라투, 인간의 문명을 파괴하기 위한 고트 


외계인 클라투는 인간의 감정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단지 지구를 살리고자 하는 사명만이 있는 외계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지구를 살리기 위해 파견된 클라투는 먼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 대
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 주인공이 되는 인물이 우주 미생물박사인 헬렌박사와 그녀의 아들이라 할만하다. 헬렌박사는 스피어에서 나타난 클라투를 살리기 위해 정부로 호송되는 과정에서 약물을 바꿔치기 하게 되고 클라투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헬렌박사는 클라투의 임무가 지구를 살리는 것임을 알게되고 진정한 임무를 시행하기에 앞서 인간에 대해 수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클라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그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클라투가 지구를 살리기 위한 선지자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면 함께 등장한 고트는 클라투와 반대로 무조건적인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클라투의 조종을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클라투가 헬렌박사와 동행하는 과정에서 고트는 미국 정부에 의해 갇히게 되고 폭주하기에 이르는데, 변형된 로봇 즉 나로봇으로 변형되기에 이른다. 고트 즉 나노봇으로의 폭주는 지구의 모든 문명을 삽시간에 무로 만들어놓기에 이르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클라투다.
과연 클라투는 고트의 폭주를 멈추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인류를 생존하게 할 것인가.....

그렇지만 영화에서 보여진 클라투와 고트의 변화에 대한 미묘함은 어딘지 모르게 부족함을 내재한다. <지구가 멈추는날>이 영화관객의 관심을 끌고 있는 연말 기대작 중에 하나임에는 분명하겠지만, 클라투와 고트의 정체성은 너무도 빈약하게 그려지고 있어 어찌보면 관객의 냉혹한 평가를 피할 수 없을 법하다.

키아누리브스에 올인 작전일까?

키아누리브스라는 배우를 말하기에 앞서 떠오르는 단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열에 아홉은 <매트릭스> 시리즈 3부작에서 보여진 구원자적 이미지와 SF영화였던 퇴마사 혹은 엑소시즘을  소재로 다루었던 <콘스탄틴>에서의  영혼의 정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도 아니라면 데뷰작이었던 <스피드>의 액션배우로 이미지가 강한 배우다.

새롭게 선보이는 <지구가 멈추는날>은 말 그대로 SF에 해당하는 영화다. 나노봇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건물을 모래성 허물듯 파괴하는 모습이나 거대한 스피어의 등장 등은 화려한 볼거리를 관객에게 보여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거대한 모래폭풍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CG의 처리속에서도 관객들은 아쉬움을 나타내기에 다분한 영화가 <지구가멈추는날>이라 할법하다.

요즘 일요일에는 3부작으로 TV를 통해  방송되는 <북극의눈물>을 시청하게 된다면 지구온난화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세삼 느끼게 한다. 잘 짜여진 구성과 실제적인 현상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줌으로써 인간으로 인해 점차 죽어가는 북극의 빙하왕국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지구를 파괴하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지만 <지구가멈추는날>이라는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연결고리라 할 법한
 "왜 인간을 죽여야만 지구가 사는가"
라는 주제는 심히 작게만 표현되고 있다. 볼거리를 통해 혹은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진 키아누리브스라는 대형배우에게만 맞추어져 있어 과거 매드릭스나 콘스탄틴에서 보여지던 선지자적 이미지를  무조건적으로 앞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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