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이야기

아파트경비원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by 뷰티살롱 2020. 5. 13.
반응형

'인간이란 무엇인가'

 

소위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혹은 캠퍼스의 대학시절에 한번쯤은 떠올려봤을 말일거다. 문학청년이 아니더라도 지식과 세상을 돌아보는 전환기에 인생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해본 적이 없었을까. 왜 삶이 있는 것인지 혹은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도 지독스럽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깊은 사고를 한번쯤은 해봤을거라 여겨진다.

 

얼마전 아파트경비원의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됐다. 경비직을 하면서 아파트 단지내에서는 친절함으로 주민들에겐 신망도 쌓아왔단다.

 

하지만 경비원의 삶은 한사람의 갑질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주차장에 주차시켜놓은 차를 밀었던 것을 빌미로 '왜 자신의 차를 만지는가'에 대해 폭언과 폭행을 한 아파트 입주자의 행동은 점차 극단적인 폭력으로 진행해나갔다고 한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봐도 주차장에 주차시켜 놓은 차량이 주차구역이 아닌 통행로에 주차돼 있다면 으례히 사이트브레이크를 풀어놓고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운전자는 내린다.

 

혹시라도 주차선 안에 들어가 있는 차량이 출차하게 될 경우에 앞을 가로막고있는 차량을 힘으로 밀어서 진입로를 확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주차구역이 협소한 주차장에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주차돼 있는 자신의 차량을 손으로 밀었다고 폭행과 폭언을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회적 갑질이나 다름없다.

 

아파트 경비직은 어떤 직종일까. 단순히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고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일하는 직종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하는 일이 많다.

 

소위 말해 한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집사'의 개념과는 확연히 다르겠지만, 아파트경비직은 아파트단지를 관리하기도 하지만 늦은 밤 시간대에 순찰을 돌기도 하고, 낮 시간대에도 불필요한 외부인들의 접근을 선별하기도 하는 등 일종의 '시큐리티'를 겸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경비직이 대다수 현직에서 은퇴한 고령자들이 많다보니 일각에서는 '관리'적인 측면보다는 '일하는'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해 일종에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이 주는 관리비로 월급받는 사람이라는 '월급인'으로 마치 머슴이나 다름없이 치부해버린다.

 

어찌보면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미세한 감정이 입주자들과 경비직원들간에 형성돼 있기도 하겠다. 이런 사고의 고리는 문제가 되긴 않겠지만 문제는 고용인이 됐든 피고용인이 됐든 그것을 확대해석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있다.

 

사회적으로도 갑질문화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던 모 항공사나 혹은 재벌3세의 패륜적 행태 등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갑질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었고,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물질만능주의가 낳은 비틀어진 괴물은 어쩌면 사람에 대한 예우가 점차 없어진다는 점일 거다. 아파트 경비직을 하던 분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투신자살을 하게 이르렀다는 뉴스는 암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애도를 추모하는 발길과 손길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지는 점은 세상에 대한 희망의 빛이 아닐런지 싶다.

 

어느 집단이든 계층을 나누려는 소수의 이기적인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작 강한 자에게는 그다지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못하고 약자에게 힘을 과시한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한 갑질역시 이러한 인간으로써의 존엄이라는 부분을 망각한 인간들일 게다.

 

직업에 대한 귀천은 없다 말하지만 사회에 만연돼 있는 온갖 갑질에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이른다. 샐러리맨들은 회사를 출근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회사에 이익이 되게끔 하지만, 지위를 이용해 아래사람을 소위 머슴처럼 대하기도 하는 인간이 있기도 하다. 이럴 경우에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지 아니면 과감하게 사표를 던질 것인지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기도 한다.

 

누구를 굴복시키거나 누굴 굴림한다는 건 과거 봉건사회에서의 계급주의에서나 가능하다. 급여를 받는다고 해서 사람의 존엄까지 내다판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것도 필요하고 윗 상사에게는 상사로써의 예우를 다해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예우를 해 준다는 의미가 자신이 그 사람의 노예처럼 허리를 굽신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며 존엄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 또한 아니다. 인간으로써의 도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사회라는 무리에 속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소유욕이 동시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평등과 불평등, 갑질의 본질은 어쩌면 인간의 양면성 중에 동물적 성향이 강한 소유욕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고파는 것이 자유로운 자본주의에서 자신의 가진 혹은 자신의 위치하고 있는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마치 노예와도 같이 대우한다면 인간의 길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심히 일하고 주위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극단적인 선택으로 투신자살을 선택한 아파트 경비원의 명복을 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