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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야기

주말예배,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비난은 자제돼야

by 뷰티살롱 2020.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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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는 것이 무엇일까?
천주교와 불교, 그리고 개신교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는 종교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고, 신도수도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만치 많아졌다. 이같은 개신교 중에서도 이단으로 불리우는 교단이 있고 사이비도 많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패닉상태나 다름없는 상태다. 초기 중국에서 발병하며 최대 8만여 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었지만, 중국이 안정세를 찾아가는 반면에 이제는 전세계 감염자 수는 중국의 감염자를 넘어섰다. 특히 이탈이아와 프랑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연합 국가에서의 감염자 확산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역시 초기 확진자수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감염자 수가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확진환자에 비해 완치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실상 완전하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루 발생하는 확진환자들이 100며 명 아래로 내려갔지만, 8천여 명이 넘는 확진자에서 많게는 최고 1만명까지는 갈 듯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현재까지 사망자는 질병관리본부 집계에 따르면 3월 19일 기준 91명에 달한다. 총 30만명의 누적검사자 수를 기록한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진단키트 등이 해외로 수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중증환자와 치료를 요하는 전염자 등 그리고 앞으로 발생될 누적확진자를 예상해보면 적어도 100~120여명까지는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보여지기도 하다.

 

코로나19의 전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국내에서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가운데, 체계적으로 질본의 방역활동 등이 맞물리면서 확진자가 줄어들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외국에서도 한국 국민들의 사회적인 동참에 대해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모습이며 의료시스템과 참여시스템을 갖췄다고 극찬하는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다.

 

개인이 외출시에는 바이러스의 흡입을 막기위해서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로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한 것은 효과적인 대응 중 하나였고, 감염자가 발생하면 자가격리 및 집단으로 묶어 코호트격리 조치를 취함으로써 단계적 확산을 미연에 막아내는 방법을 취했다.

 

그러던 와중에 터진 것이 교회의 주말예배를 통한 집단감염 소식이다.

 

교회 예배를 본 예배자들이 집단으로 감염됨으로써 사회적으로 개신교에 대한 좋지않은 시선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이를 계기로 개신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간혹 종교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집단감염의 단초가 됐던 대구의 신천지를 통한 대규모 확산을 한차례 경험한 우리나라의 국민들이기에 대다수가 여러명이 모이는 곳이나 종교단체 등을 경시하는 현상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을 놓고 볼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개신교의 목사나 교회들이 똑같지는 않다는 점은 직시해야 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비호감 내기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변이 많다고 해서 모든 정치인들이 정당의 기득권 싸움이나 혹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같다. 일부에 의해서 많은 부분들이 욕을 먹게 되는 경우에 해당할 듯하다.

 

사람들은 왜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보는 것일까? 그에 앞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부터 질문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간혹 교회의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동의하지 못하는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신의 존재나 혹은 어떤 명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때, 증명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대다수의 교인들은 '믿음이란 부분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내세우며 대화를 종결시킨다는 점이다.

 

즉 어떤 성서에서의 사건이나 혹은 명제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문에 대해서 '이단'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동물과 다른 것이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스스로가 답을 찾으려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성경의 천지창조에서 나와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만들어졌기에 질문과 궁금증은 끊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개신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주말예배는 집단으로 모여 신께 감사를 드리고 또 찬양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람들은 사회의 규범을 통해 절제를 따르게 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과 악의 양면적인 선택은 사회의 규범에 따르기보다는 종교적인 믿음에 따라 달라진다. '나쁜 것'과 '잘된 것'의 선택은 사회적인 규범으로써 감내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사람이 만든 제도적인 장치인 법을 보더라도 최종판결에서는 완전한 정의는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차별과 혹은 재벌들의 갑질 등에 대한 논란에 대해선 명확하게 법의 심판으로는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같은 잘잘못을 따질 때에 사람들은 '양심'을 얘기하기도 하고 '인간'의 도의를 제시하기도 한다. 종교라는 부분은 이러한 양심과 인간적인 도리에 해당하는 이성을 형성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나쁜 짓을 하게 되면 지옥에 간다거나 혹은 악한 일을 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혹은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등의 것들이 법적으로는 어떠한 제제도 없지만 개개인들이 믿게 되는 종교나 윤리관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지켜져야 할 것들이 되는 것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서 스스로가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특히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된 현대의 사람들에겐 선택이라는 폭도 상당히 광범위하게 됐다. 동물은 단지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간다. 언어를 익힌다거나 혹은 학습을 통해서 새로운 편리할 찾는 진화의 과정을 동물들에겐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서 또 연구하고 개발함으로써 오늘보다는 더 편리한 내일을 살수 있는 존재다. 삶의 다양화가 인간들에게 주어진 영광이라면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그런 인간이 수수께끼와 물음에 종교는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가 전염력이 강해 여러차례 집단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발견됐다. 신천지의 비밀스러운 집단예배가 그것이고 패쇄되어진 좁은 공간에서의 감염으로 이어진 콜센터 사례도 그러하다. 또 PC방이나 노래방 등에서의 밀폐공간에서의 전염도 있었던 터라 질병본부와 정부는 집단적인 모임이나 예배 등을 자제해 주길 권고했다.

 

주일예배는 신앙을 믿는 교인으로썬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부분에선 전염병과 대치하고 있는 현 시국에서는 자제하는 것이 더 옳은 종교인의 자세라 여겨진다.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는데 그중에서 인터넷을 통한 예배나 방송을 통한 예배 함께하기가 그중 하나일 듯하다.

 

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 해서 집단예배로 감염가능성이 엿보이는 모습들에 대해서 손가락질과 질타도 자제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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