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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국내여행

[태백여행]광부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철암탄광역사촌'

by 뷰티살롱 201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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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을까? 강원도 태백을 찾았던 때가 벌써 1년이 지나고 있는 듯하다. 한창 더운 날씨였던 때였으니 여름철에 태백이라는 곳을 찾았던 듯 하다. 태백의 첫 여행에서 가장 인상이 남았던 것은 맛있게 먹었었던 태백한우의 맛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안전'을 테마로 한 365세이프 타운은 더더욱 아니었다.

물론 태백을 처음 접했던 것인지라 어느 곳이나 새롭고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오랜동안 기억에 남았던 곳은 '까치발 건물'이 20여채 남아있던 철암역 인근이었다. 1년당시에는 까치발 건물에 대해서 외형적인 모습만 살펴보며 지나쳤었는데, 광부들의 애환이 숨어있는 특이한 건축물 중 하나였다.


태백에서는 철암역 까치발 건물을 두고 두가지 방향이 엇갈렸었다고 한다. 철거를 할 것이냐 아니면 보수를 해서 남겨둘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결과적으로 과거 태백이라는 곳의 삶의 한 모습이었기에 보수를 통해 보수하고 보존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까치발 건물은 석탄을 캐기위해 광산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이이다. 태백이라는 곳은 산으로 둘러싸워 있는 곳인지라 석탄을 나르는 데에 철도가 지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태백으로 몰려들면서 도시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강원도에서 석탄을 운송하기 위해 철도를 만들었고, 그러한 철도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있으니 한편으로 본다면 시대적인 아픔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이곳 태백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해방과 함께 전쟁이 일어나고 경제발전을 이루던 시기에 강원도 태백은 에너지원인 석탄을 공급하는 중요한 곳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진 곳이다. 태백 뿐만 아니라 삼척과 정선 등 강원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통해 1970~1980년때까지 태백은 풍부한 석탄자원을 제공해준 곳이기도 하니 지역적으로는 고마운 곳이기도 하겠다.

허나 태백의 많던 탄광들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폐광이 되었고, 운용되고 있는 탄광은 많지 않다. 과거 활발했던 탄광산업 시절 태백에는 지나가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만큼 사람들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었고, 요즘에 많이 인용되고 있는 '막장'이라는 말이 탄광의 끝을 의미하는 말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태백으로 유입되었고, 그렇게 생겨난 건물이 일종에 까치발 건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건물들의 들어졌지만, 높은 산새와 지형으로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은 한정되었고, 그 때문에 건물이 들어설 곳은 내천을 끼고 면적을 넓혀기 위해 건축물의 한쪽은 주춧대 위에 지어지게 된 셈이라 할만하다.

 
 까치발 건물의 내부 구조는 어떠했을까? 처음에 건축물을 보았을 때에는 내부 모습이 궁금했었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1년여 시간이 지나서 다시 찾아간 태백 철암역 인근의 까치발 건물은 새롭게 '철암탄광역사촌'으로 모습이 바뀌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까치발 건물의 내부는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다세대 가구를 연상하면 될 듯하다.


건물 하나에 여러개의 방이 있는 건물로 대학가에서 방하나에 부엌이 하나 딸려있는 구조의 자취집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현대적인 다세대 집과는 달리 까치발 건물은 좁은 입구에 여러개의 방구조를 갖고 있고, 내천의 집과 안쪽의 집과의 차이가 상당하다. 햇볕이 들지 않는 안쪽의 방은 냄새까지도 날만큼 습기가 많이 차오르는 곳이기도 했었을 터였고, 한 건물에서 여러 세대들이 생활하기에는 현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어두운 면이 없지 않아 드는 곳이기도 하다.


남편이 탄광으로 일을 나가고 아내는 일나간 남편을 기다릴 것을 생각해 보면 까치발 건물이 주는 느낌은 광부들의 애환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법하다. 70~8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시대극을 보면 태백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 있기도 한데, 이곳 까치발 건물이 남아있는 철암 탄광역사촌에선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의 앞쪽 모습이다. 커다란 도로를 끼고 형성된 건축물인지라 다른 현대의 건물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도 하는 곳이다. 하지만 과거 자동차들이 많지 않던 시대에 태백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은 철도편이었을 것이다. 철암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물들은 상대적으로 면적이 충분치가 않았을 것이니 하천을 끼고 버팀목으로 면적을 충당해 지어지게 된 것이었으니 태백이라는 곳의 형성과 탄광역사의 한 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탄광 역사촌으로 새롭게 조성되어 있는 까치발 건물에는 태백의 형성과 탄광산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까치발 건물의 모형도 만들어져 있어 당시 지어진 건물의 모습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밀랍으로 만들어져 있는 듯해 보이는 당시 광부들의 생활하는 모습이 전시되어 있고, 생활했던 가구와 용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때의 태백은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살며볼 수 있는 곳이 이곳 철암 탄광역사촌이었는데, 오늘날에 태백을 여행하는 분들에게는 그저 청정지역 산소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광부들의 몰려들던 70~80년대에는 가옥들로 빼곡하게 들어서 도시를 이루던 곳이었다. 과거의 흑백사진들을 통해서 태백의 마을들을 살펴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돌꾸지 마을이 담겨있는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한참이나 걸음을 멈추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기도 했다.

다시 찾은 태백에서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새롭게 단장한 까치발 건물의 모습은 변화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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