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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구가의서, 최강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by 뷰티살롱 201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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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비교질하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연예블로거이기는 하지만, MBC의 환타지사극인 '구가의서'를 시청하고 있으면 자꾸만 주인공인 최강치와 구월령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드라마 전체에서 두 캐릭터는 확실한 매력을 뽐어내며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던 캐릭터라 할만했다.

그에 비해서 두 캐릭터의 희비는 엇갈린다. 서로가 전설로 시작된 신수와 반인반수였다. 인간이 아닌 신수였던 구월령(최진혁)은 서화(이연희)와의 슬픈 운명으로 결말되었다. 그에 비해 구월령과 서화의 아들인 반인반수 최강치는 여전히 인간이 되고자 하는 길이 진행형이다. 백년객관의 박무솔(엄효섭)로부터 아비의 사랑으로 키워졌고, 이순신(유동근)으로 인해서 자애를 얻었으며, 담여울(수지)에게는 사랑을 얻었다. 그리고 4군자 중 하나인 공달선생(이도경)에게는 인내를 배웠고, 난초의 표식인 천수련(정혜영)에게는 근본을 배웠다.

반인반수인 최강치가 완전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과정이 드라마 '구가의서'의 가장 중심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구월령과 윤서화의 최후가 보여주었던 애절함은 최강치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염원을 뛰어넣는 애절함을 담아놓은 모습이었다.

종영을 2회 남겨놓은 '구가의서'는 최강치가 인간이 될 수 있는 해법이 담겨있는 환웅의 언약서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말이다. 과연 '구가의 서'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고대시대의 환웅은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인간이 되고자 눈물을 흘리자 그 해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인내심이 없었던 호랑이는 끝내 인간이 되지 못했지만 곰은 굴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여자가 되었드랬다. 무엇이 곰을 여인으로 둔갑시켜 놓았던 것일까?

최강치가 사람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과제들을 떠올려보게 되면 반인반수의 존재가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강치는 담여울로 인해서 신묘한 팔찌가 없이도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고, 담평준(조성하)에 의해서 자신의 힘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마인드컨트롤이다.

어쩌면 강치가 인간이 될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트릭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소정(김희원)은 강치에게 구가의 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쓰여있는 서책을 건네주었다. 구가의 서를 얻기위해서 따로 별도의 책이 존재한다는 점은 아무리생각해도 이상하기만 하다. 보물찾기의 조각맞추기도 아닐진데, 온전한 '구가의서'라는 책을 얻기위한 방법이 적혀있는 또 하나의 책이 존재한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강치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면서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믿음이라는 단단한 인연으로 묶여져 있다. 신수도 아닌 인간도 아닌 반인반수의 괴물이 되어버린 모습에 담여울은 착했던 강치를 떠올리며, 모두가 칼을 겨누고 있을 때에 강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곤 강치는 처음으로 신묘한 팔찌의 힘이 아니고서도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 믿음이 사람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지막 인간이 되고자 하는 최강치의 염원보다도 어찌보면 신수인 구월령과 복수를 위해서 다시 돌아온 윤서화의 사랑이 심금을 울리지 않았을까. 한국적인 전설은 대체적으로 그 끝이 애절하기만 하다. 특히 귀신과 사람, 미스테리한 존재와의 사랑은 특히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이 더 많다. 그중에 하나인 구미호의 전설역시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월령과 서화의 사랑은 전형적인 한국적 전설과 설화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배신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서화는 지난날 신수로 변해버린 구월령을 배신해 토포군을 이끌고 달빛정원으로 돌아오게 되었었다. 그리곤 담평준에 의해서 구월령은 긴 잠속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으로 상처입은 데에는 특효약은 사랑뿐이다. 죽은 줄 알았던 서화는 왜의 상단행수가 되어 조선 남도일대의 군사적인 정보와 지리를 얻기 위해서 조관웅(이성재)에게 돌아왔다. 허나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복수보다 뼈에 사무쳤던 것은 자신의 가족들을 죽음으로 내몬 조관웅이었다. 결국 서화의 복수는 끝을 보지못하고 말았다.

천년악귀가 되어가면서 지난과거의 기억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있는 구월령을 다시 만나게 된 서화는 자신의 목숨으로 구월령을 구했다. 사랑이 없었다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겠는가. 서화는 구월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지난 과거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을 찾아헤맸었다. 허나 산과 강은 서화의 접근을 불허하고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서화의 발길을 막았던 것은 구월령의 깊은 한 때문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태어나자마자 강에 버려졌다해서 지어진 이름 '강치'. 최강치는 박무솔 가족으로부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아련함을 느끼게 되었었고, 담여울을 만나서 아련함은 염원이 되었다. 확실한 목표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바라는 것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인간이기에 말이다. 신수인 구월령은 어려움에 처했던 서화를 신수의 능력으로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었던 달빛정원으로 데리고 왔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닌 신수의 능력이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서화와 지내면서 구월령은 인간이 되고자 바랬다. 함께 세월을 살아가고 늙어가기를 바랬다. 신수의 능력을 버리고자 했던 셈이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서화의 배신이었다.

비록 잘못 선택된 인간의 길이었다 해도 구월령과 서화의 사랑은 끝내 슬프기는 했지만 뭉클하기도 했다. 서화는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된 선택과 구월령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생을 마쳤다. 이루어지 않았다 해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최강치는 인간이 되고자 담여울과 헤어지기를 결심했다. 자신이 절제력을 얻어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 하더라도 피냄새를 맡게되면 이성을 잃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통이지만 세번째 마지막 소원으로 담여울에게 헤어질 것을 말했다. 구가의 서를 찾아서 인간이 될 수는 있겠지만, 최강치는 인간의 모습으로 담여울을 다시 만나게 된다해도 사랑은 완전하지 못하다. 사랑은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담여울은 최강치의 결정에 눈물만 나올 뿐이다. 자신을 위해서 한 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서운함마저 들게 만드는 강치의 결정이 아닌가. 두 사람중 한사람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소정의 예언이 있었기에 강치는 여울과의 이별을 통보했지만, 과연 초승달 아래의 매화나무 아래에서 만난 인연은 두 사람이 비극을 의미하는 것일까?

매화나무 아래서 만난 인연은 두사람 중 한사람이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예언은 어딘지 석연치만은 않다. 담여울은 소정의 예언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다. 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부터 걱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죽어야 끝이날 운명이라는 점은 어쩌면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라는 것과 같다. 혹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지막 방법은 어쩌면 지켜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에 그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필연의 상황이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대는 조선과 왜의 전란이 들이닫치게 되는 시기다. 왜구들의 침략으로 임금마저도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선택해야만 했던 전란의 시대에 인간이 되고자 염원하는 최강치의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도 연결되어 있을 법하다. 소정의 예언을 보면서 왜 이순신 장군의 한마디 말이 생각나는 것일까? '살고자 하는 이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이는 살 것이다'라는 필승의 각오를 던지는 비장함 말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양상을 단숨에 뒤바꾸어버린 이순신 장군의 필승의 불패신화는 어쩌면 최강치와 담여울의 사랑의 전설속에 그 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최강치는 인간이 될수 있을까? 담여울과 최강치의 사랑은 소정이 말한 예언처럼 슬픈 결말을 보여주게 될지 궁금하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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