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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라

레미제라블(2012), 오페라의 장중함에도 2%의 부족함이 드는 까닭

by 뷰티살롱 201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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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골든글로브 4개부분 노미네이트 작품인 '레미제라블'을 얼마전 지인과 함께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독자들에게는 꽤나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장발장'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더 많이 유명하기도 한 작품이다. 빅토로 위고의 작품인 '레미제라블'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장편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헐리우드에서 혹은 유럽 영화계에서 영화화한 작품들을 모아보더라도 평균적으로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더라도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만을 스크린안에 쏟아붓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레미제라블은 개인적으로 총 3부작의 이야기로 꾸며질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1부는 죄인이 된 장발장의 이야기다.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서 빵을 훔치게되고 그 죄의 댓가로 19년을 감옥에서 살게 된다. 고작해야 빵한조각인데 어떻게 19년이란 긴 시간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것일까? 죄에 대한 값은 혹독한 것이 아니었지만, 감옥에 갇힌 장발장은 탈옥을 시도하게 되고 다시 붙잡혀 형량이 높아지게 된다. 그 때문에 원죄보다 무겁게 19년이란 긴 시간을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가까스로 가석방을 선고받은 장발장은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지만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헐벗고 굶주린 늙은 노숙인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석방중이라는 죄인의 신분때문에 장발장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차에 그를 맞아주는 따뜻한 신부를 만나게 되고, 오랜만에 따뜻한 잠자리를 얻게 되지만, 장발장은 교회의 은접시와 수저들을 훔쳐 달아난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얼마 못가고 다시 붙잡혀 신부의 앞에 무릎이 끓린다. 신부는 장발장에게 자신이 그것들을 선물로 주었다고 말하며 '왜 은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는가' 하면서 남아있던 교회의 은촛대마저 장발장에게 건네준다. 죄인의 신분으로 온갖 수모와 시련을 맞이했던 장발장은 신부의 은혜로움을 받고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게 제 1막이다.

제 2막은 장발장이 신분을 바꾸고 시장이 되면서 판틴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다. 부유한 신분에 마을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시장을 맞게되는 화려함은 죄인의 신분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고, 과거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멸시받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장발장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판틴이라는 여공의 등장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장발장이라는 죄인을 찾아 집요한 질베르 경감의 추격과 판틴의 딸 코제트의 만남이 이어진다. 죽어가는 판틴은 시장에게 딸을 부탁하게 되고, 때마침 법원에는 장발장이라는 도둑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장발장은 스스로 법원으로 나아가 붙잡힌 장발장은 가짜이고 자신이 진짜임을 증언한다. 지금껏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되는 증언인 셈이다.

제 3막은 판틴의 딸 코제트와 장발장의 은둔생활이다. 코제트와 함께 수녀원에 숨은 장발장. 코제트는 성장해 마리우스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과 함께 마리우스는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장발장은 딸 코제트를 위해서 혁명군에 가담해 마리우스를 살리게 되고,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식이 될 수 있도록 해 준다. 하지만 정작 장발장은 자신을 숨긴채 쓸쓸하게 죽어가는 운명을 맞게 된다. 마리우스는 자신을 살린 은인이 다름아닌 코제트의 아버지 장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함께 쇠약해져 있던 장발장을 찾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은 문학소년을 꿈꾸었던 학창시절에 감명깊게 읽었던 고전이기도 하고, 영화화된 작품이 흑백TV를 통해 방송되었던 것을 시청한 바도 있다. 그런 작품이 2012년 연말에 개봉되었다는 것은 설렘이 들기에 충분하기만 하다.

원작이 주는 감동을 톰 후퍼 감독은 어떻게 이끌어냈을까?

처음부터 톰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이 오페라 형태의 영화라는 사실도 모른채, 무턱대고 비중있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기만 했다. 장발장 역의 휴잭맨과 질베르 역의 러셀크로우, 판틴 역에 앤 해서웨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제트 역에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드는 작품이다.

뮤지컬은 지금껏 10여편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라는 장르는 TV에서나 소개되는 정도였지 직접 극장을 찾아서 관람했었던 적은 없다. 뮤지컬은 음악과 춤으로 이루어진 장르지만 한편으로 배우들의 대사들이 채워지는 게 상례다. 그에 비해 오페라는 대사 하나하나가 음악과 노래로 채워져 있다. 얼핏 같은 형태의 장르지만 뮤지컬과 오페라는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페라에서 전해지는 음악을 통한 대사전달이 장중함을 이끌고 있다. 거기에 한정된 무대공간을 넘어서 영화가 주는 무한공간이라는 최대의 장점을 살려 스펙터클함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첫 장면의 압도적인 시각적 효과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시작부터 끝까지 압도하는 장중함을 보여주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관람하면서 2시간이 넘은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원작이 주는 죄와 벌, 가난과 자유, 신분과 굴레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적 감정구도는 날카롭게 교차되어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장발장(휴 잭맨)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신부의 믿음을 저버리고 교회의 은접시와 수저들을 훔쳐 달아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선과 악이 대립되는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장발장과 질베르의 대립적인 인간적 구도는 배우 휴잭맨과 러셀크로우의 톤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원리원칙적인 질베르의 노래는 언제난 힘에 가득하고 군인의 절제미가 숨겨져 있다. 반면에 죄인에서 도둑으로 시장에서 도망자로 신분이 바뀌게 되는 장발장역의 노래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함이 숨겨져 있는 대립적인 음율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질베르는 자신이 행한 모든 행동과 장발장에 대해서 알고 있던 진실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데, 자살하게 되는 순간까지도 질베르라는 인물의 독한 성품과 굳은 의지를 노래속에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음악을 담당했던 감독은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추어 노래로 전달하는 대사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던것은 아닐까 싶어 보이기까지 한다.

여관에 남겨놓은 자신의 딸을 부양하기 위해서 판틴(앤 해서웨이)는 힘든 노역일을 한다. 장발장이 운영하고 있는 공장에서 일하지만 그마저도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하루를 먹고 살아가는 힘든 노동자의 신분이었지만 판틴에게는 어여쁜 딸이 먼저다. 일을 잃어버린 판틴에게 돌아온 것은 고왔던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고 건강한 치아를 발치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녀의 육체까지도 남자들의 정욕에 던져놓게 만든다.

판틴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배우 앤해서웨이에 대해서 다시 한번 평가하게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자신의 딸을 장발장에게 맡기면서 마지막으로 딸의 환영을 보면서 환희에 차있던 판틴의 역할을 너무도 마음아프게 소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여공의 신분에서 홍등가의 몸파는 여인으로 전락시켜 놓은 불과 10여분의 러닝타임동안에 배우 앤 해서웨이라는 배우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치명적이게도 연기로써는 눈물나게 슬프고 가슴아린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었지만, 배우가 대사없이 노래로만 모든 대사를 소화한다는 것은 왠지 버거운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기도 했었다. 아니 앤 해서웨이 뿐만이 아니라 휴잭맨과 러셀크로우의 대사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에 의해 전달되는 대사였기에 버거움마저 드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감동을 만들어내기까지 하나의 독백이 관객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으련만, 배우들이 시종일관 노래로만 감정을 전달한다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대해서 관객들이 평가가 호평이 압도적이라는 점에서도 찬성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뮤지컬 영화였던 고전 '사운드오브뮤직'이라는 작품을 생각하게 만든다.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로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점 말이다.

캐릭터가 단지 노래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100% 전달하기 보다는 대사와 독백을 적절하게 넣어서 만들었다면 2%의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진들로만으로 최강의 조합이다. 특히 빅토로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오페라 형태가 아니라 휴잭맨, 러셀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앤 해서웨이 4명의 배우들이 출연해 스펙터클한 영화로 만들어졌다 해도 흥행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을 법한 작품일 것이다.

톰 후퍼 감독은 흥행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영화의 혁명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로 기억되기 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레미제라블'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만 하다.

한낱 도둑 장발장과 그의 뒤를 쫓는 경감 질베르의 추격이 작품 레미제라블의 주요한 사건이지만,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어쩌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신분, 가난을 넘을 수 있는 파리의 바리게이트를 넘어서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아마도 자유와 평등 평화의 세상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질베르와 장발장의 대립적 구도는 마리우스를 구출하며 자신의 딸 코제트의 행복을 염원하던 장발장이 꿈꾸는 세상이었고, 질베르의 원칙이 무너지는 것 역시 이러한 혁명을 원했던 바리게이트와 같은 것이었으리라.

감동의 영화를 보게 해 주었던 지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블로그를 통해서 전해주고 싶다. 아울러 극장을 나서면서 '레미제라블' 이 완전한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로 완성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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