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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아랑사또전 16회, 옥황상제를 사랑한 선녀 무연!...상제의 마지막 한수는?

by 뷰티살롱 201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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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을 알아내기 위해서 사람으로 환생한 아랑(신민아)이 비로서 과거의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MBC 수목드라마 '아랑사또전'에서는 주왈과 서씨(홍련이라 불려야 할지 아니면 무연이라 불려야 할지...) 그리고 아랑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가 밝혀졌습니다. 16회에서야 비로서 모든 비밀이 밝혀졌는데,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자 했던 것이었을까 하는 한가지 의문점이 남게 됩니다. 염라(박준규)와 상제(유승호)는 매일처럼 바둑을 두면서 천상에서 쫓겨난 무연(임주은)을 소멸시키고자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하늘을 가리는 결계덕에 무연은 인간세상에서 모습을 감춘채 400년을 살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은오사또(이준기)에 의해서 결계가 깨어지고 무연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마당에 옥황상제와 염라는 왜 무연을 천상으로 데려오거나 아니면 소멸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세상과 저승의 세상은 다릅니다.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면 인간의 세상에 귀신들과 악귀들이 드나들게 되는 혼돈의 세상이 됩니다. 저승사자인 무영(한정수)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홍련(무연이지요)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이는 인간의 세상인 이승과 귀신들의 세상인 저승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며, 두 세계는 공존하되 간섭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상제나 염라라면 능히 무연을 직접 단죄할 수도 있는 능력이 있으련만 하늘에서 바다건너 불구경하듯이 지켜보기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인간인 은오나 인간으로 환생한 아랑이 무연을 제거하게끔 유도하는 것일까요?

16회를 시청해 보니 어느정도의 윤곽이 드러나 보이더군요. 상제가 지상에서 내려와 은오를 제자로 삼았던 이유와 비녀를 건넸던 이유 말이지요.

400년에 걸친 무연찾기는 사실 상제나 염라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두 신이 천상에서 쫓겨난 무연에게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400년동안이나 직접 손을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라는 얘기지요. 상제는 지상에서 내려와 한때 직접 무연의 뒤를 쫓았다고 하는데, 짐짓 어디에 있었는지 알면서도 염라에게 숨긴 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제의 속임수를 염라또한 속아준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그리고 상제가 은오에게 무술을 가르쳐주고 비녀를 건네게 된 경위를 떠올려 보았어요. 의외로 상제와 염라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쉽게 알수 있을 법해 보이기도 해요. 무연은 수백년간을 사람의 모습을 바꾸어가며 최대감(김용건)의 집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최대감 이전에는 박대감이 살았다고 하는데, 그 역시 무연의 능력으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마을사람들이 말을 하더군요. 일종에 '집터'는 사람의 부와 권력을 가져다는 명당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평생을 부귀를 누렸으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부귀영화들이 사람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연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무연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윤달 보름마다 처녀의 맑은 영혼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3년마다 찾아오는 윤달이라 가정할 때에 400년간 무연에 의해서 살해당한 처녀들이 족히 300~400명은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점에 대해서만은 상제의 마지막 한수가 잔인하기까지 해 보였습니다. 무연을 위해서 준비해둔 마지막 한수때문에 죄없는 처녀들이 죽어나갔기 때문이지요.

16회에서는 무연이 그토록 인간이기를 바라는 염원이 보여졌습니다. 다름아닌 욕망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욕심이기도 한데, 하늘나라에서는 무소욕이기에 자신의 것이 없습니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무연이 인간이 되고자 한 것은 바로 자신의 것으로 취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연의 욕망을 놓고 생각해보니 흔히 '전설의고향'에서 심심찮게 나왔었던 멘트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전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 과거에 방영되었었던 전설의 고향 마지막 나레이션은 늘 이런 식으로 끝이 났었지요.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갈구하는 무연과 상제의 관계가 약간은 의심되기도 합니다. 바둑을 두는 염라와 상제의 옆에서 차를 따라주던 선녀의 표정은 늘 한결같았지요. 그런 선녀에게 '너는 왜 그리도 꿍한 표정인게냐. 무연을 쫓아내고 난 후부터 그 표정이구나' 하고 상제가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나요. 16회에서야 상제가 준비해둔 마지막 한수가 무엇인지가 떠오르더군요.

인간과 천상의 존재의 다른 점은 생로병사에 있을 거예요. 천상의 존재들은 무소욕에 욕망이나 슬픔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무연은 인간의 욕망을 갈구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 유추해보니 어쩌면 '상제를 사랑한 선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천상에서 사랑이란 감정이나 소유에 대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개똥밭에 있어도 이승이 좋다며 욕망을 탐한 무연이 인간이기를 갈구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소유에는 책임이 있듯이 무연에게 욕망의덩어리는 오로지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 열망일 뿐이었습니다. 무연의 욕망, 인간의 가진 욕망을 가지고 싶어한 무연에 대한 처사를 염라와 상제는 다르게 심판했는데, 염라는 지옥으로 보내자는 것이었지만, 선녀는 인간세상으로 도망을 쳤었지요.

걸작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드라마가 '아랑사또전'이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너무도 이야기를 공감되지 못하게 이끌어낸 것도 있었겠지만, 쓸데없는 복선으로 가득채워서 정작 길을 잃어버린 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주왈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골비단지였던 주왈은 배불리 먹고 추운 곳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욕망이었습니다. 그러던 이후에 홍련을 만나게 되고, 욕망은 변했지요. 어머니를 얻고자 하는 것, 어머니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 욕망이 되었습니다.

살인의 기억에 대한 고통을 잊고자 홍련에게 처녀공양을 바칠 때마다 주왈(연우진)은 자신의 기억을 지울 수 있게끔 청을 했었는데, 홍련은 주왈의 기억을 지워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주왈은 수많은 처녀들을 죽였지만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는 주왈은 사람으로 환생한 아랑을 통해서 이서림(신민아)이라는 밀양고을 부사의 딸이 자신을 연모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하일기에 쓰여진 이서림의 고백은 주왈에게 살아가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 일깨워주게 되었습니다. 연모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 말이예요. 하지만 3년전에 사라진 이서림의 행방불명에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자신의 모습에서 이서림의 연정을 받을 수 없었기에 다시 아랑에게 일기를 건넸던 것이었습니다. 정혼녀였었던, 자신의 아내가 될뻔했던 이서림이었는데, 3년전에는 주왈의 마음은 한겨울의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랑을 만나게 되면서 주왈에게는 사람이 가지는 또 하나의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눈물이 씨앗이라고 하는 사랑이란 놈은 사람을 아프게도 하지만 그리워하게 하게 하는 변화무쌍한 놈이지요. 한번 눈꺼풀이 씌우게 되면 주위의 것들은 볼 수 없게 하는 신비스러운 것이니까요. 아랑을 만난 주왈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아랑을 통해서 이서림의 죽음을 알게 됩니다.

최대감에 의해서 덮혀진 골묘와 없어진 폐가를 찾은 주왈은 과거 이서림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인간의 마음,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인 사랑을 알게 됩니다. 이서림의 죽음에 대해서 어미인 홍련에게 과거의 일들을 캐물으며,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게 되고 아픔을 알게 되지요. 과거에 이서림을 한번도 마주해본 적은 없었지만, 주왈은 이서림이 자신을 연모한 감정을 죽은 이후에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지요.

이제 상제가 준비한 마지막 한수는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사람으로 변신한 상제는 은오앞에 나타나 '모든 것은 너로부터 온다' 라고 말했었습니다. 어쩌면 은오뿐만이 아니라 상제의 말은 모든 세상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단지 드라마의 주인공이기에 사건의 중심이 은오이기에 상제는 그리 말했다고 할 수 있어 보이더군요. 상제가 주왈을 만났다 하더라도 주왈에게 '모든 것은 너로부터 온다' 라고 말해 주었을 거예요.

16회에서야 비로서 은오의 부친인 김응부(윤주상) 대감이 모습을 보이게 되었는데, 최대감과 은오모인 서씨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은오는 서자에 얼짜였지만 뼈속부터 양반이었습니다. 외조부가 좌의정까지 오르게 된 명망높은 가문이었지만 최대감에 의해서 역모죄를 쓰고 일가가 죽게 된 것이었지요. 그 때문에 서씨(강문영)는 최대감에게 복수하고자 최대감 집에 식모로 들어가 음식에 독을 탔던 것이었습니다.

최대감과의 적대적인 관계, 은오모의 원한을 갚아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사또가 된 아들 은오입니다. 이는 인간세상에서 얽히고 설켜있는 인과의 관계로 보여지기도 한 모습이었는데, 무연으로부터 속박되어 있는 서씨가 자유롭게 죽을 수 있는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즉 아직까지는 죽을 수 없는 서씨를 편안하게 몸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들인 은오인 셈이지요. 서씨의 욕망, 복수라는 이름의 욕망덩어리가 몸을 죽지 않게 만들고 무연이 서씨의 몸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할 거예요.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절하기도 한 것이 인간의 욕망인 셈이지요.

김응부 대감은 은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나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것이나 매 한가지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 이라고 말하지요. 과거 은오는 귀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넋두리는 들어주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이었지만, 아랑을 만나고 나서부터 밀양고을의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점차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이 원하는 현명한 판사가 되고 있는 셈이지요. 천상을 다스리는 상제와 염라가 있다면 인간세상에는 은오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람이 원한을 품고 죽으면 원귀가 되는데, 은오같은 현명하고 사람을 위하는 관료들이 많아지게 된다면 원귀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드라마 '아랑사또전'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또 은오가 되는 것입니다.

이서림은 죽음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서림을 죽인 범인은 서씨였는데, 서씨의 몸속에는 무연이 함께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연이 서씨를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서씨와 무연 두 존재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서씨는 최대감의 아들인 주왈을 죽이려 칼을 들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 이서림이 방패막이가 되어준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서림은 선녀인 무연이 죽인 것이 아닌 서씨의 손에 죽음을 맞은 것이라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완전하게 죽음을 맞지는 않은 듯 보여졌습니다. 이서림이 완전하게 생사를 결정지었던 것은 주왈의 품에 안겨서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이서림은 서씨의 비녀, 은오가 어미에게 준 비녀를 쥐고 있었습니다. 주왈이 이서림을 안아올리고 손에 있던 비녀를 폐가에 떨어뜨리게 되었습니다. 즉 완전히 숨을 거둔 시점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서림의 죽음은 주왈에 의해서 죽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요.

이제 비녀가 왜 필요했던 것이었을까요. 16회에서 이서림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비녀. 상제는 먼 훗날에 있을 비극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겁니다. 홍련은 서씨의 몸속으로 들어갔는데, 윤달 보름에 맑은 영혼을 취하고 힘을 얻었습니다. 헌데, 이서림은 맑은 영혼을 가진 처녀였을 터인데, 서씨 몸속으로 들어간 무연은 이서림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최대감의 집 사당에 만들어졌던 결계처럼 비녀는 상제가 무연의 눈을 속일 수 있었던 결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 보였습니다. 이서림의 혼을 보호해줄 수 있는 결계같은 것이란 얘기지요. 서씨의 몸속으로 들어갔기에 세상을 보는 눈은 홍련이 아닌 서씨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서씨의 눈에는 아들이 주었던 비녀 '모심잠'의 영력때문에 제대로 이서림의 맑은 영혼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상제가 준비해놓은 안배는 너무도 깊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인간으로 다시 살아돌아온 아랑에게는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주왈도령과의 사랑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고, 주왈은 비로소 과거에 자신이 놓쳐버린 사랑을 찾은 것이기도 하지요. 또한 아랑으로 인해서 은오는 '측은지심'의 덕목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주왈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이러한 세 남녀의 운명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은오는 결국 살아남게 되지만 결국 행복하지 않을 거란 것이 아랑과의 운명적인 헤어짐이 예상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랑과의 마지막 사랑을 맺게 되는 것은 주왈이 되겠지만, 그 역시 죽음으로 맺어진 사랑이기에 해피엔딩은 아닐 거란 예상이 들어요.

상제가 만들어놓은 잔인한 한수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주왈과 무연을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라 예상이 듭니다. 천상에서 쫓겨나게 된(도망친것이었을지 애매모호) 무연은 인간의 욕망을 얻고자 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란 더없이 덧없는 것이지도 합니다. 수백 수천년을 불사의 몸으로 살아가는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한낱 덧없는 욕심일 뿐입니다. 그런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갈구하는 무연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욕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자 한 상제의 마지막 한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연이 서씨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 또한 우연이 아닌 상제의 장난에 불과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미 오래전 400년이란 긴 과거에 만들어놓은 상제의 함정이 아닐까 싶어요.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자 한 무연은 영원불사인 천상의 선녀를 포기하고 인간의 세상에서 인간의 몸으로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선녀 무연은 사람의 몸을 바꿔가면서 400년을 살아왔던 것이지요. 헌데 서씨의 몸을 취하고 들어앉은 무연은 오랜세월을 인간의 몸으로 살아왔지만 한가지 얻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집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귀를 얻었지만 배품과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뿐이었을 겁니다. 서씨의 몸을 취한 무연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될 것으로 예상이 들어요. 마지막 4회가 남은지라서 예상하건데, 무연은 인간의 마음 중에 사랑을 배우게 될 것이고, 은오는 최대감을 단죄함으로써 어미인 서씨의 원한을 풀 수 있게 될 거라 예상이 들어요.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만이 인간이 가진 것은 아닙니다. 무연은 정작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갈구했지만 인간에게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주왈은 무연에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마지막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주왈의 죽음은 선녀 무연을 구원해 주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운명으로 다시 환생한 아랑과 죽음을 맞게 된 주왈은 그렇게 맺어질 수 있는 운명이기도 할 겁니다.

상제의 마지막 한수는 어쩌면 인간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미인 홍련을 구원함으로써 죽음을 맞게 되는 주왈을 통해 선녀인 무연은 욕망이 덧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상이 들더군요. 배고픔과 추운곳을 피하는 것이 최고의 욕망이었던 주왈은 양반인 최대감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어미인 홍련의 사랑을 받는 것이 최고의 욕망이기도 했었습니다. 처녀공양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운명이었지만 어미인 홍련을 위한 아들의 마음을 담고 있는 이가 주왈이었습니다. 그런 주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다 준 사람은 아랑이었구요.

드라마 아랑사또전은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며 욕심과 사랑이라는 소재로 걸작이라고 불릴만한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풀어나가는 데에 너무도 허술한 점이 약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결말이 예상처럼 흘러가게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사진은 인용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MBC 수목드라마 '아랑사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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