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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드라마리뷰

추노 마지막회, 대길이 태양을 향해 시위를 당긴 까닭은?

by 뷰티살롱 201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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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채널의 인기수목드라마인 <추노>가 비극적 결말을 내보이며 종영을 했습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참여를 불러일으켰던 <추노>는 예상대로 새드엔딩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죠. 대길(장혁)은 끝내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업복이(공형진)는 초복이(민지아)와의 마지막 노비키스를 마지막으로 궁으로 홀홀단신 뛰어들었죠. 송태하(오지호)와 혜원(이다해)은 부상당한 몸으로 싸움의 한복판에서 벗어난 모습이었지만, 부상이 심한 송태하가 살아남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이 모두 줄초상 내지는 심한 부상으로 막을 내린 드라마 <추노>는 어찌보면 힘없는 민초들의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진 자들의 횡포와 그 속에서 숨죽이고 살아가야 하는 민초들을 가장 밑바닥 인생이라 할 수 있는 노비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극과극의 대비를 보여주었던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지막회에서 보여준 비장미의 모습은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죠. 어찌보면 시원스럽게 끝을 맺지 못한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지만, 마지막회에서는 두명의 캐릭터를 통해서 <추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담아낸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대길과 업복이가 그들이었죠.


드라마 <추노>는 도망노비와 그들을 쫓는 추노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노비라는 신분의 굴레를 안고 태어난 자들이 중심이었죠. 관동포수인 업복이는 한번 도망을 갔었지만 추노꾼 이대길에 의해 다시 붙잡혀 온 노비였어요. 그런 업복이의 삶은 다른 노비들과 달리 시대에 항거하기도 하고 시대에 동조하는 2중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종의 신분으로 돌아가 양반집 노비생활을 했지만, 밤마다 노비당에 들어 백중백발의 실력으로 양반을 학살하는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노비의 경우에는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산으로 숨어들어가 짝귀와 합류한 모습이었거나 그냥 노비의 신분을 받아드리며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양반의 밑에서 숨쉬고 있지만 업복이와 초복이 두 캐릭터는 굴복하지도 그렇다고 항거하지도 않은 묘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업복이는 노비들을 해방시킬 그분이 등장했지만, 다른 노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단지 그분이라는 신분으로 다른 강아지나 끝봉이가 우러러보는데 반해 업복이는 사람의 신분에 대해 되묻곤 하고, 세상이 뒤집어지면 현재의 양반이 노비가 되는 세상이 아니냐며 질문을 거듭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한 업복이가 그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결국 홀로 궁으로 들어가 연류되었던 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자 아무런 저항없이 붙잡히게 되죠. 업복이가 잡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노비는 업복이의 눈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었죠. 양반들에 의해 철저하게 신분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믿었던 철저한 노비근성을 가졌던 사람의 마음 한켠으로 업복이의 의지가 전해졌던 장면이었죠.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예감했던 대길은 끝내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반전이 숨어있찌는 않았을까 싶었지만 그 반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대길의 죽음에 숨어있는 또다른 것은 어쩌면 업복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을까 싶더군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변한다는 첨예한 대립속에서 대길은 자신의 사랑이자 희망이었던 언년이를 보냅니다. 황철웅(이종혁)과의 혈전으로 이미 소진되어 버린 힘을 쥐어짜내며 수많은 관군들이 들이닫치는 사지를 향해 홀로 칼 두 자루를 거머쥐며 달려나갔습니다.

대길의 시야에는 이미 언년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보내주기 위해 수많은 죽음이 엄습해 오고 있었지만 대길은 두려움이 없었겠죠. 언년이가 살아야 내가 살아간다는 말처럼 희망으로 점철된 언년이가 시야에서 사라진 모습은 어쩌면 희망이 안전선에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싶었습니다. 세상을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던 태하는 결국 혜원에게 청나라로 떠나지 않을 것임을 얘기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겠지요. 태하가 청나라로 가지 않기를 결심하게 된 것은 대길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다른 세상으로 피신하며 세상이 바뀔것을 도모하기보다는 어지럽고 지랄같은 세상속에 남아있으며, 거칠고 힘겹게 맞서싸우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업복이에게서 시작된 싸움은 마치 대길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진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업복이에서 시작되어 대길의 죽음으로 의미가 전달되어진 주제는 살귀가 되어버린 황철웅에게 전이되었습니다. 태하와 원손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되찾으려 했던 황철웅은 대길의 잡초같은 저항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듯해 보였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쫓아왔던 태하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삶은 그 누구가 만들어준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비루한 가난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편협된 자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황철웅은 대길의 죽음으로 그토록 자신이 찾아헤매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이 패배했음을 알게 되죠. 그토록 외면하던 부인에게 돌아감으로써 철웅은 일그러져 있는 자신의 모습에 오열했던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일 뿐이겠지요. 진실을 가진 자는 죽어간 자들의 슬픔을 떠안으며 현실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인조와 봉림대군의 대화에서처럼 <추노>는 인조의 역사입니다. 철웅으로 넘어간 마지막회의 나레이션은 이같은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인조의 승하 이후 효종으로 왕권을 쥔 봉림대군은 왕손인 석견을 유배에서 풀어주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초복이는 은실이에게 저 태양이 누구것인지 아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저 태양은 우리들의 것이라고 말하죠. 살아오면서 자신의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노비라는 신분을 가진 자들. 태양이라는 것은 일종에 모든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 태양이 우리의 것이라는 말은 왕이 곧 자신들임을 암시하는 듯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다른 의미로는 초복이는 언제나 변함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자신에게 돌아오겠다는 업복이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었을 겁니다. 초복이에게 업복이는 새로운 세상이자 희망이었기 때문이었겠죠.

비장미로 끝이 난 인기드라마 <추노>의 마지막회는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으로 끝이 난 추노는 그 마지막까지도 역시나 인기드라마 <추노>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태양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대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쩌면 닿지않을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과녁이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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