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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드라마인 <대왕세종>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재상이라 현대에까지 추앙받고 있는 황희정승의 재등용에 대한 서경권을 발동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토론장면이 눈길을 끈다. 드라마를 통해 알려지고 있는 황희정승의 실체는 어찌보면 청백리에 가깝다 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세종집권기에 황희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인재등용과 리더쉽에 대한 자질 때문이었을 법하기도 하다.

양녕의 차기 지존추대를 주장하던 황희는 태조 말에 정사에서 떠나가지만 태조의 유언에 따라 세종대왕은 재임명되는 인물이다. 그만큼 태조뿐만 아니라 세종대왕 자신에게도 황희의 인물됨과 인재등용에 대한 식견은 버릴 수 없는 장점이었던 셈이다. 어찌되었건 황희의 출사에 따라 조정 대신들은 황희를 심사하게 되는 이른바 서경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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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署經)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관리를 처음 임용할 때 대간에서 심사하여 동의해 주는 고신서경(告身署經)과 예조의 의첩을 거친 의정부의 의안에 대해 대간에서 심사하여 동의해 주는 의첩서경(依牒署經)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서경에서 ‘서’(署)는 ‘서명’을 ‘경’(經)은 ‘거친다’를 뜻한다.
------<출처 워키백과>

대왕세종에서 보여진 황희의 서경은 인사등용에 따른 심사라기보다는 향후 있을지 모르는 정적을 미리 없애버리려 하는 지신사 조말생의 음모가 숨어있기도 했다. 그 와중에 불거진 것이 기록에도 남아있는 박포의 처를 취한 일이 황희를 따르는 신료들에게는 날벼락같은 모습이었지만, 일의 자초지정이 최만리에 의해 밝혀지게 되고 서경권 발동이 무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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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31명 비리 스캔들과 서경권발동!!

한국에서의 정치적 비리에 대해서 소위 청문회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대왕세종에서 보여주고 있는 서경제도와는 그 차이가 있다 할만하다. 임기중이거나 혹은 임기 후에 치뤄지는 청문회는 임기중의 직무에 대해 판단하고 잘못된 일들을 조사해 나가는 게 일반적이만 드라마에서 보여지고 있는 서경은 직무를 수행하기 앞서 관련인사에 대해서 심사하고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현재의 한국의 정치적 모습을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 될 수 있겠지만, 최근 모 국회의원 나리님들이 무더기로 비리 스캔들에 연루되어 시끄럽기만 하다. 비단 국회의원들 뿐만이 아니라 청와대 인사들도 몇달간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와 미국 쇠고기 수입으로 국민들과의 소통이 문제시되어 교체되기도 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처음부터 고위 관직에 내정하기에 앞서 그 사람에 대한 심사를 논의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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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버라이어티인 <1박2일>이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올랐다.
1박2일이라는 컵셉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특집성으로 제작해 4박5일이라는 긴 여정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오른 모습이 감동으로만 전해졌다. 그런데 왜 1박2일의 <백두산에 가다>편을 보고 시청한 후에 느끼는 것은 환희나 감동보다는 아쉬움과 착찹함만이 더 남는 것인지...

국제경기에서 아니 앞으로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비공식적으로 인기없던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혹은 한일 월드컵같은 경기에서 4강진출의 자막이 올라온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직접 그라운드나 운동 경기장에 출전하지 않았는데도 선수와 함께 뛰것처럼 벅차오름과 북받침이 밀려온다. 희열과 환희를 지나 감동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또한 게양대에 태극기가 오르는 것을 시청하고 있노라면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커지곤 한다. 하지만 <1박2일> 백두산에 가다 편에서 느낀 감흥의 맛은 사실상 국제경기나 여타의 운동경기에서 우승했을 때의 감동은  아니었다.

슬픈 역사속에 남겨진 현재의 자화상 탓

백두산에 가다 편은 어찌보면 재미보다는 가슴 숙연하게 만드는 에피소드였다. 과거 시청율을 갱신하다시피 한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생방송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한번쯤 눈시울을 적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법하다. 백두산편은 그때의 숙연함과 뭉클함이 더 많았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터에서 1박2일 맴버들이 씨름을 하는 모습들이 유머러스하게 보여지긴 했지만, 재미보다는 비장미에 가깝게만 느꼈졌다. 일제 치하의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아픔과 자책이 있었기에 그러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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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무엇보다 <백두산에 가다>를 시청하면서 아쉬움이 많았던 것은 다름아닌  천지에 오르는 과정과 오른 후에 팀원들이 미처 외치지 못하는 말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민족의 성산 혹은 신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은 옛 조선에서 부터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으로는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현대의 모습에서는 한민족에게는 신산으로 각인되어 있는 백두산이 중국과 북한에 의해 두동강나 있는 모습이다. 마치 현재의 남과 북한의 모습처럼 말이다.  천지로 오르는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중국식 표기들이 눈에 띄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천지에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더하다는 얘기다.

1박2일, 최동서남단의 물을 뿌리는 모습 눈시울 적셔

현대 한국사회에서 민족성을 논하는 것은 어찌보면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도 그렇것이 결혼의 국제화시대에 따라 외국여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2세대격인 자녀들이 점차 국제화적인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이 것들이 변해간다는 것은 그러한 국제화된 모습속에 변질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역사를 바꾸거나 변화되지는 않는다. 외국여성들이 한국으로 시집으로 된다는 것은 한국사람으로 동화되어 간다는 것이지 대한민국이 변화하고 민족성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그저 그런 전세계에 많이 산재되어 있는 산들중의 하나가 아니다. 대표성을 띠고 있는 산이라는 얘기다.

1박2일에서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강호동과 이승기, 은지원, 김C, 이수근, MC몽 6명의 맴버들이 각기 한국의 최동서남단에서 떠온 물을 쏟아붓는 장면을 연출했다. 물이란 막힘이 없이 유구히 흐른다. 막힘이 있으면 돌아서 흐르고, 가파른 경사치를 만나면 낙수를 거듭한다. 무릇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 법이다. 백두산 천지를 시작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물줄기는 하나인 셈이다. 1박2일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이러한 하나된 모습을 염원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1박2일>은 그동안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여행지의 소개 혹은 지역사람들과의 융합을 통한 소통의 묘미를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번 백두산 편은 소통의 묘미보다는 염원과 바램에 그 의미가 깊었다.
그럼에도 <1박2일>을 백두산에 가다편을 생각해보면서 화가 난다.
왜일까.
한민족의 신산으로 추앙받으며 신성되어 있는 백두산이 북한도 아닌 중국과 나뉘어져 있다는 것에, 그 위에서 마음놓고 태극기 한번 휘날리지 못하는 모습에 짜증스러움이 난다는 얘기다. 최고봉 산을 등정하더라도, 최 남극이나 최북극점을 오르더라도. 가장 높다는 산에 오르더라도 등정대는 자기네 국기를 휘날리며 기념하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최근에는 가뜩이나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모습에 화가 나기보다 국가적 치욕스러움을 더 느껴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참에 대마도를 제주도에 편입시켜야 하는게 옳은 거 아닌가? 이미 세종대왕 직권시기에 대마도주를 복속시킨 역사도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면서 시청한 <1박2일 백두산에 가다>편에서 느껴지는 것은 재미와 환희보다는 아쉬움과 뭉클함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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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왕세종>의 대마도정벌이 시작되었다. 대마도 정벌은 사실상 세종대왕이 즉위후 이듬해 본격적으로 단행된 해외정벌이라는 점에서, 또한 조선의 건국이래 첫 군사정벌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러한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왜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목숨이라는 것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다.
"설령 적이라 해도 그 목숨을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세종은 윤회와 장영실을 대마도로 급파하는 한편 집현전을 중심으로  대마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한다. 그 와중에 상왕인 태종과 대립하게 된다. 어찌보면 조선의 역대왕 중 가장 서민적인 정치와 이상적인 정치를 펼쳤던 세종대왕의 인간애와 통치관을 보여준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윤회와 장영실의 보고를 통해 세종은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한 모습에서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
"정벌을 명하십시오, 아바마마 소자 아바마마를 도와 조선군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할 것입니다"

역사속에 비친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대마도 정벌은 세종 즉위 1년후인 이듬해 1419년에 이루어진 대규모 원정 정벌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종에 의한 피의 숙청으로 이루어진 왕권은 세종에게 양위되고 난 후이기에 어찌보면 조선이라는 나라안으로는 혼란스런 시국이었을 수 있을 것이고 더욱이 장자 계승이 아닌 3남에 해당되는 충녕대군에게 왕위가 이양됨에 따른 사회상의 술렁거림이 있었을 수 있는 시기라 할 듯 싶다. 이 때문에 대마도 정벌은 사실상 세종대왕에게 있어서는 왕위계승자로써 백성들에게 보여지는 첫 시험대라 할만한 사건이다.

역사에서 보면 1418년(태종 18) 대마도도주 소 사다시게가 죽고 아들 소 사다모리가 뒤를 이었는데, 대마도에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왜구는 대거 명나라 해안으로 향하던 중, 비인현 도두음곶과 해주 해안을 약탈하였다. 원래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양국 사이의 해협에 위치하여 중개역할을 하며 선을 상국의 예로 대했지만 토지가 협소하고 척박하여 기근이 심할 때면 해적으로 돌변, 조선 해안을 약탈해 고려때부터 조정에서는 군사를 일으켜 이를 정벌해 왔다. 조선에서는 왜구의 창궐과 행패가 새 도주 소 사다모리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 보고 이듬해인 1419년 (세종 1년)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임명하고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을 주고 대마도로 진격시켰다. 일본에서는 규슈의 제후를 총동원해 대마도를 방어하게 하였고 원정군은 대마도 전체를 토벌할 수 없었으나,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그해 6월에 회군했다. 이 정벌이  기해동정이다.

이같은 사건은 외교적으로 큰 계기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전이 지나도록 조선으로의 해상침략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수군을 위용을 공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위용을 보여준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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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간판 사극 드라마인 <대왕세종>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단순히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그려내기에 과연 그시대(세종대왕 집권기)의 태평성대라 할만한 조선시대를 드라마로 표현한다는 점은 자칫 모험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시청자들의 시선으로는 태평성대의 화려하고 정적인 모습에 관심을 쏠린다기보다는 다소의 사건과 반전 그리고 갈등구조가 있어야 관심을 끌수 있는 요인이 될수 있겠지만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국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건이나 갈등을 접목시키기에는 다소의 모험이라고 볼 수 있는 드라마 소재가 아닐까 싶다.

태평성대의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인물로 채워

<대왕세종>의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다른 드라마에 비해 등장인물들이 많다는 점일 듯 하다. 등장인물이 많다는 의미가 단순히 출연하는 배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타 사극 드라마에 비해 비중있게 다루지는 조연들의 역할이 100%를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엄밀하게 말해 <세종대왕>이다. 그렇지만 대왕세종은 세종대왕(김상경)을 주인공으로 보여지는 듯한 드라마는 아니다. 그 시대에 실존했던 인물들을 골고루 배치해 놓았고, 비중또한 세종대왕보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예전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이전이었던 국본의 자리에 양녕을 올려놓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사실상 세종대왕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았었다. 어찌보면 세종대왕이 주연에서 조연으로 바뀌어있는 듯한 느낌도 들기도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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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본의 자리에 양녕(박상민)이 올라있을 당시만 하더라도 조정은 크게 두 진영으로 갈라진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 중 핵심인물이 양녕을 왕위로 올리려한 황희(김갑수)였다고 할 수 있었고, 여기에 충녕을 왕위에 끌어올리려한 심온 등이 조정을 양분한 양상을 보였었다. 그 때문에 세종은 다소 드라마에서 주변인으로 전락해 버린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고, 그 중심에 양녕과 태종(김영철), 그리고 황희가 드라마의 중심인물로 자리했었다.

왕위에 오른 시점에서 과연 세종은 주인공으로의 모습을 갖추었다 할 수 있을까.
MBC의 <이산>과 비교해 보자면 사실상 세종대왕은 주인공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이산에서 정조로 출연하는 이서진이 1인칭 주인공시점을 띠고 모든 정무를 혼자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세종대왕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왕위에 올랐지만 세종의 주위에 측근으로 등재되어 있는 사람들의 살신성인의 모습과 그들의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 상왕인 태종의 모습이 보다 더 부각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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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을 왕위에 올려놓은 장인이자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심온(최상훈)의 죽음이 그려진 28일 방송에서도 이같은 구도는 변함이 없다. 세종은 단지 주변인에 머물러 있는 듯한 모습이고 그 안에 심온의 죽음과 심씨인 소헌왕후(이윤지)가 채워져 있다.
기억이 맞다면 그동안 많은 횟수가 방송되었는데, 심온의 죽음이 자막으로 처리된 점은 대왕세종에서 보기드문 모습이라 여겨진다. 등장인물의 인물자막이 자주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심온의 죽음이 자막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은 <대왕세종>이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고증을 토대로 사실성에 입각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 자체가 너무도 뒤늦게 채택되어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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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의 이같은 부각은 드라마를 자칫 산만하게 만들 수 있는 단점을 지니고 있을 수 있지만, <대왕세종>은 극의 전개에 있어서의 몰입도나 완성도에 뒤지지 않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세력규합과 인간군상의 모습, 권력이동과 인사이동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모습

심온과 그 외의 집현전 학자들인 최만리, 정운지 등의 인물들과 장영실, 강상인, 조말생, 박은 등의 등장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지지세력들간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이들은 각기 구왕인 태종과 새로운 신진이라 할 수 있는 양녕과 충녕, 효령과 경녕 4명의 왕자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간의 권력을 잡기 위해 혹은 이권을 잡기 위해 모략과 책략을 만들어낸다.
어찌보면 이러한 모략과 책략 등이 <대왕세종>을 보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충녕이 왕위에 오르기 이전, 양녕이 국본에 올라있을 당시에는 민무구와 민무휼 등의 민씨집안 세력이 권력을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녕과 민씨세력에 의해 드라마의 진행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양녕의 권력에 제동을 걸기위한 충녕의 지지세력들의 움직임이 다각도로 보여졌었다.

권력이란 것이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권과 사법 행정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핵심인물들이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독단과 독재는 사실상 지지기반이 없다면 무너져내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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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세종은 단순히 드라마라기 보다는 이러한 인간군상들을 통해 권력의 이동과 쟁취를 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등장과 이들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인 세종대왕 혼자만의 모습이 아닌 세력들간의 모략과 권모술수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대왕세종>이 대표적인 정통사극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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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이라 해도 좋고, 정통사극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세하게 기술되지 않은 민초들의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그 중심에 서 있는 사극드라마의 모습이 의적의 일대기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사극류의 드라마라 볼 수 있다.

인물위주의 구성, 사료를 중심으로 고증할수 있는가의 기준 

흔히 퓨전사극이라 하는 부류의 드라마들은 실제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건을 비툴어 조명해보임으로써 혹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식의 전개방식을 취한다. 대체로 사극은 그 진중함으로 기본으로 전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시대의 인물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KBS의 대하사극은 인물과 인물간의 대립이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1인주인공 위주의 전개에 다양한 주변인물을 포섭해 놓고 사건을 통해 회유와 결합, 혹은 갈등을 야기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MBC와 SBS의 드라마류는 어떠할까. 대체적으로 두 방송에서 보여지는 사극드라마는 한 인물에 맞추어 사건을 전개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장금이나 해신, 허준, 연개소문, 현재 방송되고 있는 <이산>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전개방식은 1인칭 시점을 주로 채용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사극 드라마를 퓨전사극이라 부르지는 않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드라마를 정통사극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단지 사극 드라마라 얘기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흔히 사극이라 부르는 드라마들은 절제된 대화법과 어법이 중심을 이룬다. 그 때문에 퓨전이라 부르기도 모호하다.

퓨전사극의 기치를 내건 홍길동과 일지매

조선시대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었던 사극이 과거에는  퓨전이라 부를만한 정도의 파격적인 모습은 보여주었던 적이 흔치 않았었다. 절제된 어법을 토대로 정통사극에 버금가는 듯한 스케일과 인물구성을 위주로 전개되었던 것이 과거 사극의 모습이었다. 그러기에 어찌보면 퓨전이라는 의미보다는 사극드라마라 부를 수 있었다.

거상 임상옥이나 대장금, 허준 등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점은 의상과 사용되는 어법이 등일하다. 이들 인물은 역사적으로도 이미 기록되어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어찌보면 현대적인 감각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이러한 사극들의 중심에서 간간히 퓨전이라 불릴만한 드라마들이 선보였긴 했었다. 소위 의적들을 소재로 채택한 드라마가 그것이었다. 임꺽정과 장길산을 소재로 다룬 사극드라마가 그 중심에 있다해도 무방할 법하다. 이들은 소위 실존인물들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나 양반의 출신이 아닌 천출이나 평민의 출신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사극의 유형을 띠고 있다지만 작가의 의도나 제작의 묘미에 따라 새롭게 변화하고 코믹스런 소재를 가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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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의적을 소재로 다룬 장길산이나 의적 임꺽정이라는 드라마가 퓨전사극의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 등장인물의 요소나 조선시대의 복색, 사용되는 어투까지도 일반인들이 흔히 이해하는 정통사극의 요소를 따라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퓨전적 요소를 따르고 있는 드라마가 어찌보면 <쾌도홍길동>이 아니었을까. 등장하는 모습에서부터, 복장이나 어법까지도 사극이라 부르기에는 황당할 만큼 파격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엄밀하게 따져본다면 과거 의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는 하나 장길산과 임꺽정과는 사뭇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드라마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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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뒤를 이어서 <일지매>의 경우도 <쾌도홍길동>의 퓨전적 스타일은 답습해 나가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같은 모습은 어찌보면 장길산이나 임꺽정이 조선시대의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홍길동과 일지매는 실존인물인지 아닌지의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균의 홍길동전을 통해 알려진 홍길동은 단지 상상의 인물이다. 또한 일지매 또한 물건을 훔치고 그 자리에 매화꽃의 그림을 남기고 사라지는 도둑이야기로 실존했던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조선시대 의적이 일어나 활빈당을 자칭하는 사례는 그 시대를 말해준다. 폭정이나 혹은 기근이 심해져 민초들의 열망으로 탄생되기도 했고, 혹은 상상속에서라도 현실을 타파하고픈 욕구가 그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장길산이나 혹은 임꺽정은 현실에서 현 시대를 타파하려는 실제적 용트림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에 반해 홍길동과 일지매는 열망의 산실로 탄생했다. 어찌보면 이러한 점으로 퓨전이라는 스타일을 도입하기에 무리가 없는 인물들이라 볼 수도 있다.

퓨전이 대세인 현대 사극의 모습  

최근 사극드라마를 살펴보면 퓨전을 도입시킨 부분이 부각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드라마 <이산>에서의 이산정조와 홍국영, 그리고 정조가 개혁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에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정통사극 모양새를 찾아가곤  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코믹스런 연기자들의 모습이나 혹은 어법은 정통사극의 비주류에 해당하는 모습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정통사극이라 불리던 <대왕세종>에서도 이같은 파격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있다.

쾌도와 일지매의 경우에는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같은 파격적인 모습의 채택은 어찌보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모습으로 분석될 수 있다. 사극드라마의 주 시청자는 과거 중장년 층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극드라마는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흥미있게 시청하는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사극이라는 요소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옮겨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속에서 시청자는 새로운 재미를 찾는다는 의미가 될 법하다. 과거 사극이 중장년층에게 쏠려있던 데 비해 최근에는 점차 젊은 층으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시청자들이 확산으로 인해 단순히 교훈적이라든가 혹은 지식기반의 사극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기 마련이다. 일종의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사극에 새롭게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어찌보면 의적의 트랜드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극의 퓨전화는 새로운 드라마 시청자들의 아우르기 위한 변화된 사극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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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이 옮기고 나서 <대왕세종>의 흥미거리가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변방인 경성에서의 여진족들과의 대립과 전투, 왕실에서의 암투 등이 어쩌면 볼거리가 아닐듯 싶다.
역사의 잣대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극 자체가 역사를 다큐로 만들어내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세종대왕 집권기에 있어서의 조선왕조 시대를 드라마로 각색하기에는 너무도 소재거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 태평성대라는 말이 세종대왕 집권기(현재 드라마에서는 왕위에 오르기 이전이긴 하지만)에 있어서 너무도 알려져 있는 역사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재미는 사건과 갈등, 혹은 반전 등이 있어야 시청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지만 세종대왕을 소재로 만들어낸 드라마라면 어떠할까. 흥미거리를 만들어내려 한다면 분명 역사의 왜곡이니 어쩌니 하는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일은 자명하다. 그나마 채널을 옮기고 나서 정통사극의 모습을 벗어놓은 듯 보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어쩌면 재미를 만들어내는 사건들을 자유롭게 만들어내는 듯 싶기도 하다.

양녕과 충녕의 묘사는 극과 극

<대왕세종>에서 주인공인 충녕대군(후일 세종대왕)의 성정은 어떠했을까.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두 왕자의 모습은 물과 불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형인 양녕대군(박상민)이 불이라면 동생인 충녕대군(김상경)은 물과 같다.

두 왕자의 모습은 크게 나뉘어보면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양녕대군은 군주의 기질을 강조하는 모습이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지만 군주라는 의미가 단순하게 말해 백성을 생각하는 성군의 모습이 아닌 절대자적인 군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폭군의 모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는 자신이 군왕이기에 모든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세계관 그 자체가 조선이라는 울타리에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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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충녕은 소위 말해 성군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왕이라는 절대권력(이직 왕도 그렇다고 국본의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의 지위에 있다지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나 이외의 타인의 생활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백성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려 한다.

충녕과 양녕의 관계는 왕실의 존재에 대한 고정적 사고와 왕실의 지위에 있지만 백성을 그 위에 두고 생각하는 사고의 대립과도 같다. 그 때문에 왕실위엄을 먼저 생각하는 양녕과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는 충녕은 계속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둘의 대립은 드라마에서 북벌이라는 하나의 소재로 맞닥드리고 있는 분위기다. 양녕은 북벌에 대한 계획보다는 조선이라는 자긍심과 자존심으로 능히 북벌이 가능하다 생각하고 실행해 나간다. 그에 비해 충녕은 북벌은 백성에게만 짐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어쩌면 이러한 둘의 사고는 드라마에서 국본의 자리다툼이라는 소재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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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둘의 생각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양녕은 저돌적이면 공격적으로 북벌이라는 자체를 일사천리로 이루어내야만 한다고 하지만, 충녕은 북벌에 있어서는 분명 찬성하지만 시기가 문제라는 것을 지적한다. 두만강 일대까지의 북벌을 이루어내야만 여진의 남하를 방어하는 데 최적이라고 한다. 결국 충녕대군도 양녕대군도 북벌의지는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왕세종>의 황희는 마치 제갈량을 보는 듯


지금까지의 <대왕세종>을 시청해오면서 절대자인 태종 역의 김영철 씨의 카리스마에 감탄하기도 했었고, 이에 질세라 원경왕후의 최명길씨의 연기도 만만치 않음을 보았었다. 그리고 양녕대군의 박상민과 충녕대군의 김상경씨의 비중도 점차 그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주목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왕세종>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어쩌면 황희의 김갑수씨가 아닐까.
세종대왕을 생각해본다면 치세에 있어서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이기도 하지만, 왕이라는 자리,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인재다. 세종대왕 집권기에 수많은 현인들의 이름이  현 시대에까지도 전해지는 것은 그만큼 인재등용에 각별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중에서도 황희정승은 세종대왕이 태평성대를 이룰어내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조선시대의 명 재상이 아닌가.
그렇지만 드라마이니만큼 <대왕세종>의 주인공은 분명 충녕대군 즉 세종이어야 하겠지만, 극중에서 보여지는 황희의 존재는 주인공을 능가하는 모습이다. 황희가 태종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왕세종>의 전개를 살펴보면 충녕대군이 납치되면서 그대 왕재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살인사건의 중심에도 그렇거니와 양녕대군이 다시국본으로 오르면서 인사이동이 있을 때에도 스스로 관직을 낮추어(낮춘것은 아니지만) 예조로 갈 것을 주청했던 모습들이나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 등에서도 항상 중심에 서 있었다.

또한 양녕대군이 국본으로 오르면서 북벌준비를 황희를 배제하고 다른 사람들과 도모하고 있지만, 마치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오공을 보는 듯하다. 황희의 생각은 태종의 생각을 가름해  어떻게 하면 행동으로 옮길까를 미리 간파하는 듯하기도 하다. 또한 대신들의 생각조차도 황희의 머리속에서 움직인다.
이쯤되면 중국의 유비나 장비, 관우로 익히 알려져 있는 삼국지의 제갈공명을 능가하는 지략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역사에서는 황희가 양녕의 측근이기는 하다지만 드라마 <대왕세종>에서는 황희의 발길이 어떻게 향해갈 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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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데스비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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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방송되는 KBS 1TV의 간판 대하사극이 완전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어 다소 황망함마저 든다.
물론 드라마라는 의미에서 재미와 볼거리를 만들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간 대하사극의 팬이라면 팬이라 할 수 있고, 단지 시청자라하면 할말이 없겠지만, 채널을 바뀌고나서부터는 아예 소설같아진 드라마의 전개에 솔직히 짜증스러움이 들기도 한다.

시청율이 올라가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대하사극의 장르를 즐겨보는 고정 시청자들은 상당수가 있을 것이다.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극 장르를 이어오고 있는 KBS의 대하드라마는 분명하게 MBC나 SBS와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왠말일까. 그나마 시청율이 오르지는 않았었다 하더라도 1채널에서만큼은 그 특성을 살리려 하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었는데, 2채널로 옮기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흥미위주의 전개로밖에는 보이지가 않으니 말이다.

고려왕실의 잔재가 조선왕실을 침범했다?

고려왕실의 존재세력을 드라마에 내세우며 보기좋게 범궐거병을 도모하려 하고 급기야 왕이 있는 편전 문턱까지 들어와 목숨까지 위협하더니만..... .... 그래도 참을 만하다. 어차피 드라마 보면서 역사니 뭐니 하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건 세종대왕을 보기좋게 내세워서 엮이는 듯한 모양새다.

최근 인기있게 방영되고 있는 MBC의 사극드라마인 <이산>은 일찌감치 역사적 사실들과는 달리 픽션이 감미되어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다. 어찌보면 <대왕세종>과 <이산>의 경계는 없어진 셈이다. 이산이라는 드라마가 역사의 일부분에서 작가의 픽션을 가미해 전개되고 있다는 점과 <대왕세종>의 전개는 그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세종대왕 시기에 이렇다할 문제를 내세워 갈등을 유발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의 눈을 고정시킬 만한 사건이 다소 없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인정된다. 그만큼 재미를 이끌어낼만한 피의 숙청이라든가 전쟁이라는 굵직굵직한 흥미거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듯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왠지 <대왕세종>의 최근 전개되는 모양새는 그동안 KBS의 대하사극을 즐겨보던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써는 다소 실망스런 부분이 많다.

충령은 그저 달린다. 양녕은 북벌에 미쳤다

이미 대하사극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지고 홈페이지에도 <대하드라마>로 표기되어 있는 만큼 '실망스럽다' '짜증난다'라는 표현이 어불성설이겠지만, 이번주의 전개는 실망감을 안겨준 모양새가 아닌가.

양녕이 보위에 오르게 되면 그 뒤에 민씨가의 세력이 웅크리고 세도를 잡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봐도 뻔한 사실이다. 양녕은 외숙들의 충심을 의심하지 않고 풀어주지만 조정중신들에 의해 다시 옥사에 갇히게 되고..... 이번에 양녕이 직접 추국하겠다고 나선다.
그런데.... ....
갑자기 자결을 거론하고 이에 사약을 엎어뜨리는 민씨가의 외숙.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직 보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세자에게 막대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에 <태왕사신기>를 떠올리지 않을수가 없지 않나. 혹은 <이산>과 다를바가 없지 않나.

100%의 고증적 전개는 기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으로 KBS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모습을 담으려 하는 모습은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더욱이 북방으로 떠난 충녕(후일 세종)은 매일같이 말만 타고 달린다.
급기야 이번주에는 최윤덕에게 싸다기까지 맞고 나댕군다.
북방으로 밀려났다 하더라도 엄연한 왕자의 신분일 터인데, 일개 절제사(지위에서도 떠난 상태였는데....)에게 왕자라는 걸 알면서도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라니....

정말 KBS의 대하드라마의 명백은 끊긴 것일까? 아니면 광고를 위해서 흥미위주로 전개시켜 시청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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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데스비기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