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2.19 [경기 남양주]다산유적지, 정약용의 과학과 실용사상을 만나다 by 뷰티살롱
  2. 2018.02.08 [미국여행]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by 뷰티살롱

 

서울에서도 가까운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다산유적지는 복잡한 서울 시내에서 승용차로 3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강남이나 혹은 강북에서 출발하게 되면 팔당대교를 지나 10여분이면 걸리는 거리라며 주말이면 드라이브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겠다.

 

과거에는 이곳 다산유적지가 개방돼 있었던 터라 쉽게 강가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여유를 즐기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놓아서 번듯한 주차장을 구비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약용이라는 인물은 어떨까?

 

가장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쩌면 드라마 '다산'에 잠깐 등장했던 궁궐 담장을 넘어서던 모습이기도 할 듯하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일생을 살았던 정조대왕과 인연이 많은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기도 하다. 드라마 '이산'에서는 정조와 홍국영이라는 인물이 주체가 돼 소개되었고, 정약용의 모습은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서 깜짝 출연했던 인물이다.

 

 

다산이라는 호 만큼이나 정약용의 호는 알려진 바가 많다.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籜翁) 등의 호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산'이라는 호가 현대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을 듯하다. 하지만 정약용 본인은 자신의 집필집에서 '사암'이라는 호를 많이 드러내 놓고 있기도 하다.

 

조선후기 실용주의 학자로 분류할 수 있는 정약용은 무거운 돌을 들어올릴 수 있는 '거중기'를 비롯해, 정조의 명으로 수원성을 축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현대 군대에서 볼 수 있음직한 도하작전을 연상케하는 '배다리'를 창안해낸 인물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다산유적지에서 정약용의 실용적인 세계를 만나볼 수 있을 법하다.

 

다산유적지 주차장을 들어서면 눈에 띄는 정자가 보인다. 천일각이라는 정자다.

 

다산의 18년 강진 유배 생활중 1808년부터 10여년동안 거처하던 다산 초당에서 약 110m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정자로 이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심신을 달래고 소일했다고 한다.

 

초당 안에는 해배를 앞두고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려는 뜻에서 바위에 글자를 새겨 '정석과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이던 크고 넓적한 바위에 다조, 바닷가의 돌을 주워 만든 작은 연못인 연지석가산, 그리고 다산이 손수 바위틈의 수맥을 찾아 만들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많은 물이 솟아난다는 약천이라 부르는 조그만 샘이 있는데, 이 모두를 다산4경이라 부른다.

 

 

다산유적지에 있는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은 사실상 유실되었던 것을 복원한 집이다. 생가 여유당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86년 복원한 것으로 집 앞에 내가 흐르고 집뒤에 낮은 언덕이 있는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선생은 수각이라고도 표현했다.

 

정약용의 호인 '여유'로도 알려져 있기도 한데, 호는 정약용이 1800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으로 여유당기를 통해서 기록돼 있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도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한다.
.
.
.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의 말에 여 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 여! 사방을 두려워 하는 듯하거라 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깍는 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히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
.
.
내가 이런 의미를 해득한 지가 6,7년이 된다. 당의 이름으로 하고 싶었지만 이윽고 다시 생각해 보고 두만두어 버렸었다. 추천으로 돌아옴에 이르러서 비로소 써가지고 문미에 붙여놓고 아울러 이 이름붙인 이유를 기록해 아이들에게 보도록 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개혁군주로 일컬어지는 정조와 함께 개혁의 아이콘이기도 해 보인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기반은 언제나 기존 세력가들인 권세가들에겐 공격의 대상이 된다.


다산 정약용이 형조참의로 있던 1799년에는 정약용에 대한 노론의 공격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 해는 정약용을 비롯한 남인의 정치적 스승이었으며 정조의 충직한 신하였던 번암 채제공이 죽은 해이기도 했다.

 

 

이 무렵 정조는 정약용 선생을 무한 신뢰하고 있었으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흔한 광경으로 정약용이 판서가 되고 재상이 돼 제2의 채제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던 때였다.

 

노론벽파는 정약용을 제거하려 했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1797년에 천주교와의 관계를 모두 고백했고, 그 뒤 곡산부사로 외직에 나가 선정을 베풀고 돌아온 터였기 때문이다. 이에 노론은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을 공격해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는데, 이 사건으로 가족이 물러나면 벼슬자리에 있는 다른 가족도 사직하는 것이 관례였던 터라 정약용 역시 벼슬을 그만두고 관직을 그만두려 상소했다.

 

이에 정조는 만류했지만 정약용이 벼슬을 거부하자 그해 7월 26일에 이를 허락하게 된다.

 

다음해인 1800년 봄에 정약용은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 마현으로 돌아와서 집의 문미에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은신했다.

 

다산은 유형원, 이익으로 이어지는 실학을 계승했으며 북학파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실학을 집대성했다. 조선시대의 인물들 중에 현재까지 회자되는 정약용의 문집은 일생동안 500여권이 넘는 저술과 2,700여수의 시를 남겼다. 가히 집필가로써는 손꼽히는 인물에 속한다 할 수 있겠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통해 실용적인 사례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까지도 귀감이 되는 저서들이 많다.  

 

 

여유당을 돌아 다산유적지의 생태공원으로 산책을 나서며, 과거 유배지에서 수많은 저서들을 집필했던 정약용의 모습을 떠올려 보며 여유로운 시간속으로 빠져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에서 불과 3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여서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풍광까지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를 만끽하기엔 주말 당일여행이 적격일 듯 하다. 더 멀리 양평이나 청평으로 길을 잡으려면 갈림길이니 고민될 법도 하다.

 

<재미있으셨다면 하트를 꾸욱~~>

Posted by 뷰티살롱


 

도심속의 휴식공간 센트럴파크,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TV 뉴스속에 등장하는 타임스퀘어...

 

세계의 도시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생동감이 넘쳐보이는 도시가 어쩌면 뉴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많은 고층건물들과 복잡한 교통정체도 하나의 이미지로 부각될만큼 뉴욕은 문화와 금융의 중심지라 할 수 있겠다.

 

뉴욕은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들, 일류 박물관과 공연예술극단, 금융·패션·미술·출판·방송·연극·광고의 중심지다. 뉴요커들도 당당한 태도, 이국적 다양성, 세련된 멋쟁이, 악센트 등으로 유명하다. 자유의 여신상에서 타임스퀘어까지 뉴욕은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뉴욕은 맨해튼, 브루클린, 퀸즈,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5개 독립구로 나뉘어 있다. 이중 뉴욕 관광의 중심지인 맨해튼은 동쪽으로 이스트강, 서쪽으로 허드슨강, 남쪽으로 어퍼 뉴욕만에 둘러싸인 기다란 섬이다.

 

오히려 맨해튼이 뉴욕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유명한 쇼핑가와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불리는 월 스트리트, 예술·문화의 중심지인 브로드웨이 등 뉴욕을 대표하는 모든 곳들이 모여 있다.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기증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우호증진을 위한 선물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들에게 미국의 상징, 더 나아가 자유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리버티 아일랜드(Liberty Island)에 있다. 리버티 아일랜드까지 가는 사우스 페리는 배터리 파크에서 탑승하면 된다. 30~45분 정도 소요된다. 자유의 여신상 무게는 225t, 대좌(받침대) 높이는 약 47.5m, 동상 자체의 발끝에서 횃불까지 높이는 46m다.

 

지면에서 횃불까지 높이는 93.5m다. 자유의 여신상 손만 해도 5m, 집게손가락은 2.44m나 된다.

 

대좌(받침대)에서 정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을 올라가야 하며 이 엘리베이터를 타기위해서는 보통 3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은 왕관까지 2층을 더 올라 12층까지 갈수도 있다. 이곳에는 박물관 선물가게도 있다.

 

타임스퀘어(Times Square)

연말 혹은 연초가 되면 의례적으로 보여지는 곳들 중 하나가 타임스퀘어다.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화려하게 펼쳐지는 불꽃놀이와, 그 아래에서의 잊지못할 사랑의 키스는 아마도 연애를 하는 연인들에게는 꿈꿔오는 장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겠다.

 

 

1904년 뉴욕타임즈가 이곳에 사무실 빌딩을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뉴욕 최고의 번화가 타임 스퀘어를 탄생시켰다. 타임 스퀘어는 7번가와 브로드웨이, 42번가가 맞닿은 삼각지대를 포함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극장가, 화려한 네온사인, 거리의 공연예술가로 가득한 이 지역에는 수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12블록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브로드웨이는 미국 극장가의 대명사다. 밤이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환해지는 타임 스퀘어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이다.

 

41번가와 53번가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브로드웨이에는 38개의 극장들이 있다. 대부분 44번가 서쪽과 45번가에 집중돼 있다. 뉴욕시티를 방문해서 브로드웨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지 않는다면 뉴욕을 완전히 본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지역이다.

 

록펠러 센터(Rockefeller Center)
록펠러 센터는 미드타운의 중심에 있다. 19개 빌딩으로 이뤄진 복합단지다. 록펠러센터는 5번에서 7번 애비뉴 사이와 49번가에서 52번가를 차지하고 있다. 록펠러라는 명칭은 1928년 콜롬비아대학으로부터 이곳을 임대한 억만장자 존 D.록펠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49번 스트리트와 50번 스트리트 사이의 로워 플라자(Lower Plaza)에 있는 실외 아이스링크는 록펠러센터 트레이드마크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노천카페로 이용된다.

 

로워 플라자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건물은 록펠러 센터의 가장 높은 타워인 70층 높이의 GE(General Electric) 건물이다. 12월에는 이곳에 들어서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최고의 볼거리다.

 

6번 애비뉴와 50번가 서쪽에 위치한 라디오 시티 뮤직홀은 6,000여 좌석을 갖춘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실외 극장이다. 뉴욕시티의 60년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곳에서 제공하는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 보는 것도 좋다.

 

브룩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
브룩클린 브리지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교각이다. 사우스 스트리트 씨포트(South Street Seaport) 바로 북쪽에 있다. 1870년 착공했으며 1883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이자 뉴욕시티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총 길이는 5,989피트, 가장 높은 곳은 1,595피트에 달한다. 총 1,800만달러를 투자해 완공됐다. 브룩클린 브리지를 가로질러 걸으면서 감상하는 풍경이야말로 뉴욕 관광의 하이라이트가 될 만하다.

 

<본 포스팅은 Electric Power 2월호에 기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Posted by 뷰티살롱

script type="text/javascript" src="//wcs.naver.net/wcslog.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