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의 한반도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진면목을 보고자 한다면 경주에 위치한 '황룡사 역사박물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옛부터 경주는 개발이 더딘 지역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개발을 하려고 땅을 파고 건물을 지으려 하면 지역 전체가 문화재가 출토되는 곳이라 개발이 쉽지 않다. 신라의 동궁과 월지는 아름다운 조형물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다.

 

 

경주의 역사유적지구에는 동궁과 월지를 비롯해 첨성대와 월성, 석빙고, 계림 등이 모여있는 곳이여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하지만 강성한 신라를 대변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황룡사지 9층목탑의 진면목을 보고자 한다면 약간은 유적지구에서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첨성대와 더불어 신라의 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가 황룡사지 9층 목탑이다.

 

황룡사는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그 터만 존재하고 있다. 본래은 왕실을 지으려 했었는데, 황룡이 하늘로 올라 절을 지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면 그래서 이름이 황룡사라 붙여졌다고 한다.

 

위치적으로 황룡사지와 첨성대, 월성과의 거리, 동궁과 월지 등이 위치해 있는 곳을 감안해 본다면 절터가 아닌 황궁으로 지으려 했다는 추측이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기 때문이고 국내 사찰들이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것에 비해 황룡사가 위치해있는 곳은 평지에 가까운 곳이다.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첨성대와 더불어 황룡사는 신라의 왕권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건축물이라 할만하다. 높이가 80여 미터에 달하는 9층 목탑은 그 시대 가장 높은 초고층 건축물이 아닐까 싶기도 해 보인다. 더군다나 돌이 아닌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신라인들의 목조 건축기술을 들여다볼 수 있기도 하다.

 

황룡사지 9층목탑을 모티브로 경주의 보문단지에는 기업이 지어놓은 연수원(연수원인지는 정확치는 않지만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로는 그렇다)의 규모를 본다면 다시 황룡사 9층목탑의 위용은 대단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는 교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고 경주에는 세계의 상인들이 찾았다고 하는데, 그들이 황룡사 9층목탑을 눈으로 봤다면 어땠을까?

 

 

현대사회에서야 층수가 10여층이 되는 건물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높이면에서 본다면 높다 여겨질 수 없을법한 수준이겠지만, 당시의 건축술과 건물의 형태를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준의 기술이었을 거라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애석하게도 황룡사 목탑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황룡사지는 그 터만 남아있지만, 규모가 어느정도인지를 가름할 수 있는 건물을 올렸던 기석이 남아있어 건물의 크기를 유추해 낼 수 있다. 특히 이곳 황룡사지에는 거대불상이 놓여있었다고 한다. 무게만도 3만근에 달하고 황금 1만근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장륙존상이 그것이다.

 

황룡사 역사박물관에는 9층목탑을 재현해낸 모형이 만들어져 있으며, 9층목탑을 올리는 과정들이 묘사돼 있어 흥미로운 역사기행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신라의 대형건축물을 올리던 기반을 조성하는 기술들이 소개돼 흥미로운 발걸음을 할 수 있을거라 여겨진다.

 

 

천년고도의 시간을 간직한 신라의 심장부인 경주의 융성을 재현하기 위해 지자체에선 월성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황룡사의 복원 또한 그 중 하나일 듯하다.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듯한 9층목탑의 위용과 이를 바라보던 이들의 심정을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Posted by 뷰티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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