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일만에 무사히 풀려난 19인의 인질귀한 소식을 접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함과 한편으로의 안도감이 교차했다.
선교와 봉사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교회를 나가지 않는 입장이지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런 말을 하다보면 일부 개신교도들에게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필자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는 어린시절 방언기도라는 것을 접하고 나서부터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매주일마다 아니 수요예배라는 것도 빠지지 않고 나갔던 터였다. 그러던중 부흥예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기도중에 방언기도라는 시간이 있었다. 평상시의 기도와는 달리 그 시간만큼은 이상스럽게도 사람들이(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쓰러지면서까지 몸부림치며 무슨말을 하는지 알수 없는 말로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다.
개인적인 종교관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종교 그 자체는 경건하고도 숭고한 것이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현재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집안의 식구들조차도 큰 교회를 나가고 있지만, 유독 필자 혼자만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 그 이유를 몇가지 서술해 보자면 간단하다.
개신교라 하는 것 자체를 나쁘게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번째 요즘의 개신교를 돌아보면 너무도 그 병폐가 많다는 게 결론이다. 사회에서 소위 뉴스화되는 일들 중에 성추행이니, 가정파탄에 대한 부조리가 불거져 나오는 데에는 일부나마 개신교가 열루되어 있는 사건이 많다. 그렇지만 그러한 뉴가 많다해서 개신교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불교의 경우는 사찰이 산속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숨겨져 있을 수 있지만, 교회는 사회의 일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빨간 십자가가 없는 동네는 많지가 않다. 그 수가 많은 곳은 한 구역에 5~6개가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일반 사회에 밀접하게 위치하고 있다.
두번째로 타종교의 무시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것 또한 개신교다. 물론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나가야만 구원받는다는 게 개신교의 교리지만, 그렇다고 타인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죄인이니, 사탄이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일부가정에서는 한국사회의 오랜 전통인 제사가 없어지게 된 것 역시 이러한 개신교의 교리때문이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 즉 귀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과연 옳은 해석인지 궁긍하다.
한국은 예로부터 윗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은 하나의 예법이다. 또한 제사를 지낸다는 것 자체는 죽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필자역시 지금은 제사가 없어지고 현재는 예배를 하는 것으로 구정이나 기타 기일을 보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조상들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귀신을 섬긴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묘지에 가서 묵념을 하는 것이 개신교에서는 위반이 될 수 있다. 필자의 견해로 볼 때 조상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는 비록 죽었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 최대한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세번째는 요즘의 교회는 너무도 기업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서울에서만도 이러한 폐단은 너무도 많이 볼 수 있다. 신도수로 그 교회가 유명세를 타고, 크기로 교회의 영적크기를 가름한다. 때문에 너나할 것없이 교회의 크기는 갈수록 커진다. 예초에 작았던 교회들도 몸집 부풀리기 식으로 형태가 비대해진다. 기업형태의 교회라고 할 말에 대해서 여러 종교인들은 어쩌면 반발을 할 지 모르지만, 어느 누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거둬들이고 있는 소위 십일조에 대해서 알고 있을 까 묻고 싶다. 도리어 어떤 곳에서는 십일조에 대해서 적게 낸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한다. 당연히 적게 번 사람들은 그 액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것인데, 달리 듣게 되면 오히려 적게 낸 것이 죄가 되는 것처럼 들린다. 소위 헌금이라고 칭하는 것 역시 그 쓰임새에 있어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그 액수가 어떻게 책정되어 있는지 알수가 없다. 그렇게 말한다면 청년부에 예산이 있을 것이고, 학생부에 따로이 예산이 따로 있다고 말 할수 있겠지만, 소위 각 부서로 떨어지는 총 액수는 어느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단지 교회 관계자들만이 알 수가 있을 뿐이다.
네번째의 예로는 선교형태에 대해서의 의구심이다. 물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는 한국임에는 분명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 역시 한국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는 선교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개신교의 선교다. 지하철에서는 이러한 형태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타인이 '조용히 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조금 조용히 해 주세요'라고 하면 '지옥갑니다. 당신이 지옥에 가지않기 위해 하는겁니다'하고 오히려 죄인이니 사탄이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다섯번째로는 개신교의 숫자에서다. 성경의 애초 해석에 있어서 다양하게 파생되어 그 종파가 많아졌기 때문에 어쩌면 교회의 수가 많아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많다. 그렇지만 그 종파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본질은 같을 것인데,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종파마다 경쟁을 하는 것일까?
글의 주제와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글이 흘러간 것 같다.
필자는 블로그를 오픈한지 하루가 채 지났다. 필자는 어떤 이해관계를 위해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아니다. 단지 운전하다보니 이래저해 할 말도 많고 핸드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서 블로그를 개설한 것 뿐이다. 이해관계라면 아주 나중에 클릭스나 센스정도의 광고나 달아볼까 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극적으로 아프간 인질석방에 대한 종지부가 찍혔고, 19명은 모두 무사히 귀국했다. 그들에 대한 여론은 곱지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잘못했건 잘했건 덮어두길 바랜다는 마음이다. 얼마를 받고 풀려났는지, 국가위상이 어떻는지에 대해서, 그들을 추궁하거나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충분히 40여일을 그 댓가로 지불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여론에서, 블로거들에 의해서, 엄중한 댓가를 치렀다고 본다. 그간의 블로그들에서 보여졌던 글들과 소식들로 충분한 댓가를 치렀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국내 개신교에 대한 선교방침에 대해서는 어느정도의 잣대가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선교라는 목적은 그 종교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과 이해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위 대학생 선교회로 많이 알려진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필자는 좋은 시각은 아니다.
대학생들이나 일반 신도들로 구성된 선교활동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종교에 대한 이해가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종교라는 것은 나쁘게 본다면 집단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군중심리에 의해 형성되는 것 역시 종교의 한 병폐가 될 수 있다. 개신교의 활동중에 어린이 선교단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에게 필자는 선교단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다. 굳이 어린이를 내세워 선교단을 꾸리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단과 정통은 표현하기 차이다. 어린이들이 과연 개신교에 대해 자신이 다니는 곳에 대해서 체계적인가를 묻고 싶다.
이번 피납자들 중에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나이어린 사람의 경우, 과연 선교를 할 자격조건이 갖추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교라는 말은 선교자가 죽음을 당할 경우에 부여되는 말이다.
아무런 꺼리낌없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내면서 1000명의 순교자를 만들어낸다는 말은 억측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 자신이 목숨을 내거는 사람에 대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진정한 선교를 위해 선교자로 보내는 사람들은 그들의 선정기준을 어떻게 정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단지 간다는 데에 대해서 동의하기 때문에.... ....
아프칸은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위험한 지역이다. 교회에서 선교의 목적으로 보낸 것이라면 분명 선교자의 자격으로 그들을 보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그들은 선교자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살아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뉴스에 비쳐졌다.
필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타깝고, 애초롭기까지 했다. 그들은 단지 약한 사람들에 불과했고, 결코 선교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종교는 겸허하고 순수하고, 그 자체만으로 위대한 것이어야 한다. 경박하거나 가벼워서는 아니된다는 생각이다. 종교인의 말을 빌어 보자면 신이란 존재는 인간보다 더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인데, 어떻게 인간이 그 앞에서 경박하거나 가벼이 움직일 수 있는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무사히 돌아온 사람들도 하루빨리 안정을 찾아가기 바랍니다.
선교와 봉사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교회를 나가지 않는 입장이지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런 말을 하다보면 일부 개신교도들에게는 '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필자가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는 어린시절 방언기도라는 것을 접하고 나서부터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매주일마다 아니 수요예배라는 것도 빠지지 않고 나갔던 터였다. 그러던중 부흥예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기도중에 방언기도라는 시간이 있었다. 평상시의 기도와는 달리 그 시간만큼은 이상스럽게도 사람들이(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쓰러지면서까지 몸부림치며 무슨말을 하는지 알수 없는 말로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다.
개인적인 종교관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종교 그 자체는 경건하고도 숭고한 것이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현재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집안의 식구들조차도 큰 교회를 나가고 있지만, 유독 필자 혼자만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 그 이유를 몇가지 서술해 보자면 간단하다.
개신교라 하는 것 자체를 나쁘게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번째 요즘의 개신교를 돌아보면 너무도 그 병폐가 많다는 게 결론이다. 사회에서 소위 뉴스화되는 일들 중에 성추행이니, 가정파탄에 대한 부조리가 불거져 나오는 데에는 일부나마 개신교가 열루되어 있는 사건이 많다. 그렇지만 그러한 뉴가 많다해서 개신교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불교의 경우는 사찰이 산속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숨겨져 있을 수 있지만, 교회는 사회의 일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빨간 십자가가 없는 동네는 많지가 않다. 그 수가 많은 곳은 한 구역에 5~6개가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일반 사회에 밀접하게 위치하고 있다.
두번째로 타종교의 무시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것 또한 개신교다. 물론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나가야만 구원받는다는 게 개신교의 교리지만, 그렇다고 타인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죄인이니, 사탄이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일부가정에서는 한국사회의 오랜 전통인 제사가 없어지게 된 것 역시 이러한 개신교의 교리때문이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 즉 귀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과연 옳은 해석인지 궁긍하다.
한국은 예로부터 윗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은 하나의 예법이다. 또한 제사를 지낸다는 것 자체는 죽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필자역시 지금은 제사가 없어지고 현재는 예배를 하는 것으로 구정이나 기타 기일을 보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조상들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귀신을 섬긴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묘지에 가서 묵념을 하는 것이 개신교에서는 위반이 될 수 있다. 필자의 견해로 볼 때 조상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는 비록 죽었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 최대한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세번째는 요즘의 교회는 너무도 기업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서울에서만도 이러한 폐단은 너무도 많이 볼 수 있다. 신도수로 그 교회가 유명세를 타고, 크기로 교회의 영적크기를 가름한다. 때문에 너나할 것없이 교회의 크기는 갈수록 커진다. 예초에 작았던 교회들도 몸집 부풀리기 식으로 형태가 비대해진다. 기업형태의 교회라고 할 말에 대해서 여러 종교인들은 어쩌면 반발을 할 지 모르지만, 어느 누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거둬들이고 있는 소위 십일조에 대해서 알고 있을 까 묻고 싶다. 도리어 어떤 곳에서는 십일조에 대해서 적게 낸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한다. 당연히 적게 번 사람들은 그 액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것인데, 달리 듣게 되면 오히려 적게 낸 것이 죄가 되는 것처럼 들린다. 소위 헌금이라고 칭하는 것 역시 그 쓰임새에 있어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그 액수가 어떻게 책정되어 있는지 알수가 없다. 그렇게 말한다면 청년부에 예산이 있을 것이고, 학생부에 따로이 예산이 따로 있다고 말 할수 있겠지만, 소위 각 부서로 떨어지는 총 액수는 어느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단지 교회 관계자들만이 알 수가 있을 뿐이다.
네번째의 예로는 선교형태에 대해서의 의구심이다. 물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는 한국임에는 분명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 역시 한국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는 선교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개신교의 선교다. 지하철에서는 이러한 형태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타인이 '조용히 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조금 조용히 해 주세요'라고 하면 '지옥갑니다. 당신이 지옥에 가지않기 위해 하는겁니다'하고 오히려 죄인이니 사탄이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다섯번째로는 개신교의 숫자에서다. 성경의 애초 해석에 있어서 다양하게 파생되어 그 종파가 많아졌기 때문에 어쩌면 교회의 수가 많아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많다. 그렇지만 그 종파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본질은 같을 것인데,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종파마다 경쟁을 하는 것일까?
글의 주제와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글이 흘러간 것 같다.
필자는 블로그를 오픈한지 하루가 채 지났다. 필자는 어떤 이해관계를 위해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아니다. 단지 운전하다보니 이래저해 할 말도 많고 핸드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서 블로그를 개설한 것 뿐이다. 이해관계라면 아주 나중에 클릭스나 센스정도의 광고나 달아볼까 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극적으로 아프간 인질석방에 대한 종지부가 찍혔고, 19명은 모두 무사히 귀국했다. 그들에 대한 여론은 곱지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잘못했건 잘했건 덮어두길 바랜다는 마음이다. 얼마를 받고 풀려났는지, 국가위상이 어떻는지에 대해서, 그들을 추궁하거나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충분히 40여일을 그 댓가로 지불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여론에서, 블로거들에 의해서, 엄중한 댓가를 치렀다고 본다. 그간의 블로그들에서 보여졌던 글들과 소식들로 충분한 댓가를 치렀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국내 개신교에 대한 선교방침에 대해서는 어느정도의 잣대가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선교라는 목적은 그 종교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과 이해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위 대학생 선교회로 많이 알려진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필자는 좋은 시각은 아니다.
대학생들이나 일반 신도들로 구성된 선교활동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종교에 대한 이해가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종교라는 것은 나쁘게 본다면 집단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군중심리에 의해 형성되는 것 역시 종교의 한 병폐가 될 수 있다. 개신교의 활동중에 어린이 선교단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에게 필자는 선교단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다. 굳이 어린이를 내세워 선교단을 꾸리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단과 정통은 표현하기 차이다. 어린이들이 과연 개신교에 대해 자신이 다니는 곳에 대해서 체계적인가를 묻고 싶다.
이번 피납자들 중에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나이어린 사람의 경우, 과연 선교를 할 자격조건이 갖추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교라는 말은 선교자가 죽음을 당할 경우에 부여되는 말이다.
아무런 꺼리낌없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내면서 1000명의 순교자를 만들어낸다는 말은 억측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 자신이 목숨을 내거는 사람에 대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진정한 선교를 위해 선교자로 보내는 사람들은 그들의 선정기준을 어떻게 정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단지 간다는 데에 대해서 동의하기 때문에.... ....
아프칸은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위험한 지역이다. 교회에서 선교의 목적으로 보낸 것이라면 분명 선교자의 자격으로 그들을 보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그들은 선교자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살아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뉴스에 비쳐졌다.
필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타깝고, 애초롭기까지 했다. 그들은 단지 약한 사람들에 불과했고, 결코 선교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종교는 겸허하고 순수하고, 그 자체만으로 위대한 것이어야 한다. 경박하거나 가벼워서는 아니된다는 생각이다. 종교인의 말을 빌어 보자면 신이란 존재는 인간보다 더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인데, 어떻게 인간이 그 앞에서 경박하거나 가벼이 움직일 수 있는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무사히 돌아온 사람들도 하루빨리 안정을 찾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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